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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소설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요"

『인어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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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제2의 인생을 꿈꾸잖아요. 저한테는 제2의 직업, 제2의 인생이 소설가로서 전업 작가가 되는 건데, 지금은 변신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11.23)


당신은 먹겠습니까? 소설 『인어 사냥』은 묻는다. 생략된 목적어는 '인어 기름'이다. 먹으면 천 년을 살 수 있다는 불로장생의 영약. 그것을 얻으려면 인어를 포획하고, 숨통을 끊고, 푹 고아야 한다. 사람을 닮은 외양에, 사람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가족을 이루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를, 죽여야 한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소설은 더 집요하게 묻는다.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고, 인어 기름을 먹으면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인어 기름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1902년의 강원도 통천. 그곳의 외딴 섬에 어부 박덕무가 두 아이와 살고 있다. 그는 아내를 병으로 잃고, 오래지 않아 딸 영실도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절망에 빠진 그를 공 영감이 찾아온다. 영감은 품속에서 오래된 호리병을 꺼내 한 방울의 누리끼리한 기름을 영실에게 먹인다. 영실은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고, 박덕무는 공 영감에게 말한다.

"기름을 더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내 무슨 일이라도 하리다."

천이백 년 전, 서기 700년의 강원도 통천에는 소년 공랑이 살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떠밀리듯 바닷가로 나선 그는 우연히 들어가게 된 동굴에서 낯선 생명체를 만난다. 마을로 돌아온 공랑은 점쟁이 할머니 서 씨에게 믿기 힘든 말을 듣는다.

"네가 만난 그 아이는 인어야."

다음 날 다시 동굴을 찾은 공랑. 그는 꾸러미 가득 물고기를 채워 집으로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물고기의 출처를 묻는다. 

『인어 사냥』은 차인표 작가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이다. 그는 2009년 발표한 첫 소설 『잘 가요 언덕』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진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용서와 화해의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2011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위트 있게 그려낸 두 번째 작품 『오늘예보』를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절판되었던 첫 책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개정 복간됐다. 『인어 사냥』에서 작가 차인표가 파고드는 주제는 '인간의 욕망'이다. 소설을 다 쓰고 나니 '나 자신'이 보였다고, 그는 말했다.



거울을 보듯 제 자신이 보였어요

두 번째 소설 『오늘예보』가 2011년에 출간됐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새 작품을 쓰신 건데요. 그동안 작가로서 어떻게 지내셨나요? 

사실 작가로서는 좀 무책임한 거죠. 10년 동안 안 썼으니까. 다시 쓰게 된 계기가 코로나였던 것 같아요. 2020년에 1년 이상 외출도 못 하다 보니까, 예전보다 훨씬 많이 책을 읽었어요. 남의 글을 읽다 보니까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하더라고요.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인간한테 자극을 받으니까. 그렇게 해서 다시 쓰게 된 것 같아요. 결정적인 계기는, 작년에 『잘 가요 언덕』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복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 쓸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작가로서 다시 글을 쓸 만한 명분을 얻었다고 할까요.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어요? 

마블 코믹스를 만든 미국의 만화가 스탠 리(Stan Lee)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어요. 마블의 캐릭터가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그리고 캐릭터마다 그때그때 벌어지는 사건과 연결을 시켜놨어요. 예를 들면, 캡틴 아메리카 같은 캐릭터는 진주만이 폭격된 이듬해에 탄생했어요. 미국을 지키는 방패 같은 역할을 할 캐릭터를 만든 거죠. 그렇게 시류에 맞춰서 만화 캐릭터들을 창조해내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다가 거꾸로 생각을 했어요. 우리 민족은 미국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있는데, 5천 년이 넘는 역사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해왔고, 어떤 이야기들은 살아남아서 설화로 구전돼 남아 있잖아요. 다 이유가 있어서 살아남은 거겠죠. 그래서 설화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마블과는 정반대로, 우리 설화의 캐릭터들은 역사적인 사건의 굽이굽이마다 태어났더라고요. 전 국토가 가뭄에 시달렸거나, 왕이 병에 걸렸거나, 외침을 받았거나. 역사의 고비마다 그걸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만든 캐릭터들이 많더라고요. 우리 설화에 시대적 배경을 투영한 캐릭터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이것들을 잘 닦아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만의 해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작가의 말에 쓰시길 '『어우야담』의 우는 인어'에 마음이 사로잡혔다고 하셨어요.

네, 설화를 들여다보다가 제일 눈 여겨 본 이야기가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였어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는데 '인어를 잡았는데 인어가 흰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는 거였어요. 그걸 보고 자연이 우리 인간들을 향해서 흘리는 눈물방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어 사냥』에서 사람들이 인어를 대하듯이, 지금 우리가 자연을 폭력적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인어에 자연을 대입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인어 사냥』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이 욕망 때문이라고 보신 건가요? 

지금 저를 포함해서 인류가 가는 거대한 방향이 있잖아요. 그 방향 자체가 파국을 향해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는 재생할 수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불행하게도, 인류 중에서도 지금의 제 세대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자연을 짧은 시간에 파괴하고 있어요. 어느 순간엔가 우리가 이러한 방향을 틀어서 후손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게 만들어줘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거대한 담론을 꺼내기 위해서 글을 쓴 건 아니지만,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우는 인어'를 보면서 자연이 인간을 향해서 흘리는 눈물을 떠올렸고, 그 이유는 인간이 뒤를 기다려주지 않는 욕망을 쫓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읽으면서 '평소에도 인간 욕망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싶었습니다. 

결국은 저에 대한 질문이죠. 다 쓰고 나서 봤더니 제 자신이 보이더라고요. 어쩌면 공 영감이라는 인물에 내 안의 깊숙이 있는 욕망을 투사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울을 보듯이.

천이백 년의 간극을 두고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합니다. 이유가 있나요? 

일단은, 인어 기름을 먹고 산 사람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보여줄 인물이 필요했고요. 서기 700년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그때 통일 신라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어요. 옆에서는 발해가 건국하고 있고, 당시의 왕(효소왕)은 열한 살, 열두 살쯤이었어요. 전체적인 상황이 위태로워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박덕무가 살았던 1902년의 조선 상황과 비슷한 거예요.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박덕무가 병든 딸을 두고 인어를 잡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드실 때, 머릿속에 그리셨던 이미지가 있었겠죠. 어떤 모습을 상상하셨나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인어는 금발을 늘어뜨린 모습이잖아요. 안데르센과 서구의 전설에 나오는 인어들. 어부의 그물에 잡혀서 울고 있는 인어를 떠올릴 때는 그런 인어는 아닐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과 닮았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랑 조금 다른 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모습을 떠올렸고, 나중에 봤더니 외계인이랑 좀 비슷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엄마 인어의 경우는 천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글을 쓸 때 자유로워요

박덕무와 딸 영실은 '인어 기름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갈등합니다. 영실에게는 '내가 이것을 먹고 더 살 것인가'의 문제이지만, 덕무에게는 '이것을 먹여 내 딸을 살릴 것인가'의 문제예요. 덕무의 선택이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영실은 '나는 인어 기름을 먹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덕무가 딸에게 인어 기름을 먹지 말라고 말할 수 없어요.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죠.

덕무에게 감정 이입을 하시면서 쓰셨을 것 같아요. 고민도 많으셨을 테고요. 

덕무의 마음은 당연히 아빠인 저의 마음이에요. 저라도 그렇겠죠. 뭐라도 먹여서 살리고 싶은 게 아빠의 마음인데. 하지만 세상에 정답이 없듯이, 인어 기름을 먹어도 살지 안 살지 모르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인어 기름을 먹으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약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국 남는 건 살려야 된다는 욕망, 살리고 싶다는 욕심인 거죠. 그런데 아이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인어를 잡아왔는데, 아이는 '아빠, 광에 친구가 있어요'라고 하잖아요. 같은 대상을 놓고 한 사람은 약으로 보고 한 아이는 친구로 보고, 해석이 전혀 다른 상황인 거죠. 어떻게 보면 사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쓰시면서 가장 막혔던 부분은 없었나요? 

작년 7월부터 10월까지 석 달 동안 초고를 썼어요. 10월 말부터 드라마 촬영이 있었거든요. 글쓰기가 마라톤 같잖아요. 중간에 쉬어버리면 돌아오기 너무 힘들죠.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석 달 안에 초고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4시 45분에 일어나서 밥 먹고 운동하고, 그 다음에 8~9시 정도에 앉아서 2500자 3000자를 썼어요. 그렇게 루틴을 잡았더니 석 달 동안 초고를 쓰는 데 성공했어요. 그러고 나서 드라마 촬영을 하고 올해 1월부터 수정을 시작했는데, 수정 기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더라고요. 6개월 정도에 걸쳐서 큰 수정만 세 차례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고치는 과정이 더 힘드셨군요. 

처음 쓸 때는 새 길을 가는 거니까 저벅저벅 가는데, (수정은) 갔던 길로 다시 돌아와서 계속 뭘 찾는 느낌이니까요. 너무 하기가 싫고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고, 자꾸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타이머를 맞춰놓고 '지금부터 무조건 20분 동안 안 일어난다' 생각하고 썼어요. 20분이 지날 때마다 한 획씩 그으면서 '바를 정 자'를 썼어요. 그때 메모한 게 남아 있어서 지금 다시 봤더니, 1월 20일에는 260분 동안 썼네요. 그때는 정말 엉덩이로 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의지가 대단하신 것 같아요.

글 쓰는 건 저한테는 기쁨이니까요.

왜 기쁘세요? 

자유로워서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누구한테 속박되지 않고 나만의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극복하면서 다닐 수 있잖아요. 다만, 상상을 제대로 펼치려면 노력이 따르죠. 얼개를 짜고 구도를 잡아야 하는데 공부를 많이 해야 구체성이 생기죠. 그런데 글쓰기 외에 다른 일들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협업이 있어야 되고, 협업을 하려면 어느 정도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되잖아요. 이 세계에서만큼은 누가 뭘 가져가고, 이런 게 없어요.

하지만 편집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웃음) 편집자와 서로 의견을 맞춰가는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렇죠, 정확하게 보셨어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이야기했어요. 문장이 너무 안 좋거나 맞춤법이 틀려서 편집하는 것들은 다 수용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주제와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준다면 같이 일할 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창작을 하는 건데, 그게 침해가 되면 창작 자체가 되지 않으니까요.



전업 작가로 사는 제2의 인생

전업 작가로 사는 삶을 상상해 보셨어요?

그게 저의 목표입니다.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누구나 제2의 인생을 꿈꾸잖아요. 저한테는 제2의 직업, 제2의 인생이 소설가로서 전업 작가가 되는 건데, 지금은 변신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연기/영화 제작과 글쓰기를 병행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누구나 언젠가는 은퇴하잖아요. 저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은퇴를 할 거고, 그 준비를 지금부터 하는 거죠. 제가 은퇴를 안 하겠다고 해서 사람들이 계속 써주는 건 아니니까.

'쓰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신 건 언제인가요?

이번에 알게 된 것 같아요. 처음 두 소설은 쓰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쓰다 말다 했거든요. 그러면서 '중간에 중단하면 3개월짜리 일이 3년이고 10년이고 걸릴 수도 있구나'라는 걸 학습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석 달 안에 무조건 끝낸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해봤더니 빨리 써지기도 하고 재미도 더 있더라고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주제 의식, 목적지, 주인공 정도만 어느 정도 생각하고 시작하거든요. 어디로 갈지 모르고 몇 푼의 노잣돈만 갖고 떠나는 여행이랑 비슷해요. 그렇게 길을 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새로운 인물과 만나는 기쁨이 있어요. 예를 들면 '변 도령' 같은 점치는 사람이 툭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런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생각지 않던 사건을 겪기도 해요. 그런 데서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변 도령'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었어요. 

영화적인 인물이죠. 카메오 같은 인물. 배우 출신 이니까 어쩔 수 없이 영화적으로 생각을 하는 거죠.

『인어 사냥』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박덕무를 직접 연기하실까요?

박덕무가 가진 아버지의 마음에 제 마음이 투사된 건 맞지만, 박덕무 역할을 제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영화 <크로싱>에서 부성애를 잘 보여주셨잖아요. 그래서인지 박덕무 역할에 어울리신다고 생각했어요. 

아...(웃음) 이 책이 10월 초에 나왔는데, 그때 제가 <달짝지근해>라는 영화를 막바지 촬영하고 있었어요. 그때 한강 둔치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볕이 쫙 쬐는데 유해진 씨가 차에서 내려서 세트장으로 걸어오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갑자기 박덕무가 배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모습이 떠올랐어요.(웃음) 유해진 씨가 박덕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때 책이 나와서 그랬나 봐요. 갑자기 생각나더라고요.

그 사실을 유해진 씨도 아시나요?(웃음)

몰라요. 아직 책을 못 줬어요.(웃음)

이번 소설이 영화화 되면 어떨지, 생각해 보셨어요?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는 (소설과)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서요. 누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해도 2~3년은 걸려요. 지금부터 준비하고 투자 받고 캐스팅하고 각색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만큼 시간이 걸려요.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원작이 수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의 영화와 드라마 판권이 팔렸었어요. 제작사에서 5년을 개발하다가, 지금은 시한이 지나서 다시 저한테 (판권이) 돌아왔는데요. 시나리오도 나온 상태였어요. 그때 계약서를 쓸 때도 제가 주장했던 건 주제 의식을 벗어나면 안 된다, 너무 큰 변형이 있을 때는 작가와 상의해야 된다, 라는 거였어요. 그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죠. 각색하시는 분도 한 사람의 창작자인데, 원작자가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하면 어떻게 쓰겠어요.

원작의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는 못해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인데, 상업 영화의 대본을 쓰려면 그들만의 공식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엄청나게 촘촘한 매뉴얼이 있어요. 몇 분 안에 뭐가 나와야 되고, 주인공은 여기에서 길을 떠나야 되고, 여기에서 실패를 해야 되고... 상업 영화의 경우에는 그래요. 예술 영화 말고요. 누군가가 100억이 넘는 돈을 투자를 하는데, 당연히 그들의 룰에 따라야 되잖아요. 그 영역에서 그것을 쓸 수 있는 분들이 써야지, 원작자라고 해서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에서 엄마의 존재와 사랑이 비중 있게 다뤄졌어요.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런가요?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통분모를 하나만 꼽는다면, 저는 그게 엄마라고 생각해요. 엄마의 사랑. 엄마의 사랑이 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으시면, 종자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오늘 먹는 밥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해보면, 만 년 전의 신석기인들이 길에서 주운 낱알을 먹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그걸 심었단 말이에요. 수확한 것 중에 안 좋은 것들은 먹고 제일 좋은 것들은 (종자로) 보관했다가 또 뿌렸어요. 전쟁이 나면 종자를 갖고 도망을 가고요. 그렇게 제일 좋은 것들을 보관하고 심기를 무수히 반복해서 오늘 내가 먹는 밥이 있는 거죠. 

오늘 내가 만나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도 엄마의 사랑이 대를 잇고 잇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지금 여기 있는 거거든요. 기적이죠. 어떻게 보면 사람은 사랑의 집결체예요. 그것을 무엇이 가능하게 했느냐, 저는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영어로 대자연을 '마더 네이처(Mother Nature)'라고 하잖아요. 그게 그런 의미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연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생명이 다 자연 안에 포함돼 있는 거죠. 그런데 인간은 파괴하는 데에는 아주 선수인데, 자연의 아주 조그만 것 하나도 다시 만들지 못해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저는 파괴하는 것에 반대되는 행위는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인어 사냥』에는 탐욕스러운 인물도 등장합니다. 그런 인간들은 언제나 있겠죠. 절망스러운 현실인데, 무엇에서 희망을 발견하세요? 

그래도 영실이 같은 애가 있으니까요. 또 그런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을 바꾸고. (이 소설에는) 더 살기 위해서 진짜 생을 포기하는 사람과, 진짜 생을 살기 위해서 더 사는 걸 포기하는 영실이가 있잖아요. 영실이는 '과연 사는 게 무엇이냐, 시간만 보내는 게 사는 것이냐, 아니면 주어진 오늘 안에서 진짜 삶을 사는 게 사는 것이냐'를 고민한 거예요.

전업 작가가 됐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면 어떠세요? 어떤 작품을 쓰고 계실까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제가 이제 세 번째 장편 소설을 썼는데, 계속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잖아요. '배우'라는 말이 앞에 붙고 "배우인데 소설도 쓰네, 배우인데 소설가가 됐네"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직까지는 배우로서 더 많이 활동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차인표는 배우다, 대중 연예인이다'라는 고정 관념은 말로 해서 절대로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말로 남의 관념을 바꿉니까. 제가 꾸준하게 책을 내서 그 책이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 받게 되면, 그 시간이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해야 될 일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1년에 한 편 정도는 내려고 해요.

너무 힘든 일 아닌가요? 

한 6개월 정도 구상하고, 그 다음에 3개월 정도 온전히 쓰고, 수정하는 시간을 좀 줄여서 3개월 안에 마치고, 이렇게 잡으면 1년에 한 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도전해보려고 해요. 어떻게 보면 존 그리샴이 저의 등대 같은 존재인데요. 그 분은 변호사였잖아요. 1987년에 첫 소설 『타임 투 킬』을 쓴 이후로 30년 넘게 매년 한 권씩 내고 있는데, 저는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존 그리샴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도 매년 한 권씩은 내는 다작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어요.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다작을 하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만, 작가가 써내는 것보다 더 큰 조건은 독자들이 읽어줘야 되잖아요. 지금 제가 당면한 조건은, 다음 책을 낼 수 있을 만큼 다수의 독자들에게 읽히는 좋은 작품을 써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소설의 주제나 소재를 정하셨나요? 

지금은 용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인어 사냥』에 이어서 '한국형 판타지 시리즈'로 나오는 건가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소설을 먼저 쓴다면 그럴 것 같아요. 한국형 판타지 시리즈의 다음 편은 아마 용이 될 것 같고요. 요즘 주로 용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제가 느낀 한류의 역사에 대해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가지고 코믹 소설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고요. 몇 가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에 대한 소설은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합니다.

인어에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투영했다면, 용은 권력을 투영하거든요. 집단의 권력. 이번 소설보다 스케일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독자들이 『인어 사냥』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 것 같으세요?

소설가로서 저의 목표는 재미 추구, 가독성이에요. 그게 없으면 소설을 읽기 참 어려운 장르예요.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무언가 배우려고 읽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는 거의 강박적으로 (소설은)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빨리 읽혀야 되고 재밌어야 된다. 그 이면에는 재미없는 소설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지 못하는 저의 독서 스타일도 있는데요. 독자 분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찾으신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그리고 큰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소설의 끝에 가서는 제가 그랬듯이 자신에게 한 번씩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나의 그릇된 욕망이 후손들이 살지 못할 만큼 무언가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작가로서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는 책을 썼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차인표

소설가이자 독서광 그리고 29년차 배우. 1994년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차인표. 극중 상대 배우였던 신애라와의 결혼으로 더욱 큰 플래쉬를 받았던 그도 이제는 중견 연기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 CF, 최근 인터넷 방송국의 PD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또한, 그는 다양한 기부 활동을 비롯, 세계의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NGO단체 '컴패션'의 자원봉사자로 사회 구호에도 열정적으로 임하며, 나눔 문화의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카메라 뒤에선 한 사람의 작가로 인간의 삶을 부단히 관찰하고 본질을 탐구하며, 존재해야 할 세계와 사람과 이야기를 창조하는 데 전념한다. 




인어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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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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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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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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