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있는 가족을 메타버스로 만날 수 있을까?
『너를 만났다』 김종우 PD 인터뷰
MBC 창사 60주년 VR 휴먼 다큐멘터리 대기획 <너를 만났다> 시리즈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2022.10.06)
최전선의 기술인 VR, 인공 지능, 실감 콘텐츠가 게임처럼 즐거움을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여기 기억 속 가장 만나고 싶은 가족을 VR로 구현해 한때를 보내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VR 기술과 MBC의 다큐멘터리 노하우가 만나 빚어낸 〈너를 만났다〉이다. 『너를 만났다』를 통해 한 사람의 기억을 넘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길 바란다.
본인 소개와 함께 어떤 방송 작품을 주로 기획하고 만드셨는지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MBC PD로 일하고 있는 김종우입니다. 시사 교양 부문에 있고요,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어왔습니다. <불만제로>나 <PD수첩> 등, 더 올라가면 <타임머신> 같은 재연의 조상 프로그램까지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어왔습니다. 제가 기획한 프로그램으로는 <실화탐사대>가 있습니다. 2008년 고시원 화재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아무도 묻지 않은 죽음>이 저의 첫 다큐멘터리입니다. 쌍용차 사태를 다룬 <타인의 정리해고>, 치킨으로 우리 사회를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치며 만든 <닭큐멘터리 치킨> 등 재미있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심각하게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기후의 반란> 3부작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후 변화라는 사회 흐름을 잘 따라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를 좋아해서 항상 <심슨가족>처럼 지능적이면서 웃긴, 사회 풍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고, 이는 지난 시간 속에서 시도와 실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미래소년 코드박>이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트콤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해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웨이브와 협업해서 리얼리티 프로그램 <문명-최후의섬>, 그리고 지난 9월에 방송된 <막사세-막내가 사는 세상> 2부작을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저는 장르 혼합에 관심이 많고, 사회를 똑바로 바라보고 나의 식대로 해석하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다큐멘터리로만 살 것인가, 예능적인 요소가 결합된 장르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많습니다.
공영 방송의 PD로서 <너를 만났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취지와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책으로 집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소개가 이렇게 나가긴 했는데 공영 방송이랑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시즌2의 <용균이를 만났다> 정도가 공영 방송의 정체성과 좀 관련이 있겠네요. 기획은 그냥 운명처럼 떠올라서 했습니다.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간 게 마침 제 의지와 조직에서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 생긴 일인 것 같습니다. 2019년 초에 많은 기획을 하며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을 많이 보낸 과정에서 이 작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뭔가 아련한 것, 그런 기억에 대한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VR을 결합하는 순간 새로운 기획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책에서 나오듯이, 창조란 결국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하는 것만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이런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결국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책으로 집필한 계기는 기획부터 제작 단계까지 정리해서 그 생각을 많은 분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입장이 많이 들어가서 부끄럽긴 하지만, 쓰고 나니까 머리 아프지 않게 볼 수 있는 에세이 같아 오히려 좋았습니다.
<너를 만났다>를 기획부터 제작 과정과 기술 구현까지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과 즐거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시면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1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가장 즐거웠던 건 끝없이 상상하고 그걸 비주얼로, 또 새로운 경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VR 스토리텔링도 스스로 경험하고 체화해야 했고, 그걸 또 회의를 통해서 이런 거는 어떨까 하고 내놓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든 그걸 현실화시키면서 잡아나갔습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계속 부분적으로 완성해나간 느낌이라서, 참고할 만한 무엇 없이도 새로운 길을 걸었다는 게 가장 즐거운 부분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도 그 부분인 것 같네요. 또, 주변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왜 오래 걸리냐고 하는 둥 가끔씩 태클이 들어오는 게 좀 힘들었던 부분이긴 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책 내용으로 담았습니다.
VR 기술을 접목시켜 인간과 결합된 방송은 국내에서 최초의 시도인 것 같은데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프로그램을 할 때 메시지를 특별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모두 옆에 있는 가족을, 아이를 꼭 끌어안고 더 사랑해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반응이 이기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이게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사랑이라는 것.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유한한 그러나 또 영원한 것입니다.
일단은 첫 번째로 메타버스나 VR에 대해서 개괄서가 아닌,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는 자세한 경험을 들여다보실 수 있습니다. 의외로 이런 책은 흔하지 않더라고요. 하나의 강한 목표를 가지고 현실화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가를 이 책을 통해 각자 얻어 가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삶에 대한 에세이로 읽혔으면 합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고,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몇 번이나 스스로 시간과 기억에 대해 묻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생각이 또렷해졌고 그걸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삶이란 저에게 '너랑 했던 기억의 총합'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공학적이면서 철학적인 과정을 거쳐서 삶에 대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는데, 사실 인공 지능이나 메타버스 등의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어디까지 무엇이 가능할지에 대해 기술과 철학을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사유의 방송적인 사례로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일 것 같은데요. <너를 만났다> 등 휴먼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프로그램의 본질을 딱 30초만 보여주라고 한다면 그린스튜디오에서 허공을 휘젓는 엄마의 손길, 그 간절한 떨림이 본질일 것입니다. 그건 처음에 의도하거나 미리 계획할 수 없고, 계획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모른다는 태도로 약간은 무심하게, 그러나 사려 깊게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 휴먼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사람을 찍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이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처음의 태도입니다. 그러면 차츰차츰 한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 너와 나의 기억 등으로 원형적인 접근을 하게 되고 최후의 순간까지 무엇을 찍는지 의도하지 않고도 좋은 경험을 마칠 수 있습니다.
<너를 만났다> 방송 이후에 큰 화제였는데요. 도덕적 이슈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역시 필연적으로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사유입니다. 프로그램 하나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제도, 규칙, 도덕 등에서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이슈가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공학과 인문학, 공학과 철학 사이에서 깊은 이해와 사유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은 또한 '자기의 이익보다는 무엇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고 더 행복하게 할 것인가'라는 조금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죠. 도덕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 논란이 되기 때문에 토론의 재미도 있는 편이라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사유의 장이 됩니다.
앞으로 메타버스나 VR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김종우 작가님께서 향후 VR 영역에 계속 도전하신다거나 계획하고 계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사실 해당 기술을 활용하여 생각해볼 만한 것은 많습니다. 또, <너를 만났다>로 MBC가 메타버스의 이런 사례를 보여주었는데, 그 가능성을 더 가져가지 못하는 건 경영적으로도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일본과 태국 등 아시아권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프로그램을 취재하려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실 제가 일하는 환경에서는 깊은 이해를 기대하기에는 힘든 상황입니다. 어떤 기획을 할 때는 무엇보다 그걸 듣고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하기에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는 '너를 만났다'로 오랫동안 몸담아왔던 MBC라는 곳에 조금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속해서 상상하고 기획하는 건 힘든 현실이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삼성역에서 전시한 <파도>와 같이 메타버스는 아니지만 대단히 몰입도가 높은 비주얼 기술을 갖고 뭔가 더 깊은 스토리텔링을 해보는 것, 둘째로 인공 지능을 단순히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첨단 기술자와 공학자들이 모여 하나의 인격을 만들고, 그 인공 지능이 경험과 감정적인 사유를 하는 것, 더 나아가 딜레마를 겪고 판단 내리는 것을 마치 <트루먼 쇼>처럼 몇 년에 걸쳐 지켜보는 것. 마지막으로는 메타버스에 대한, 조금 더 크고 지속가능한 어떤 공간과 플레이어들에 대한 것 등의 것들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하기는 힘들겠죠?
*김종우 MBC PD.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전자 공학과에 입학했으나, <심슨 가족>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방송국 PD가 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가 멋있어 보여서 시사 교양 부문을 선택하고는 후회했으나, 귀찮아서 20년 동안 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닭Q멘터리 ‘치킨’>, <기후의 반란> 같은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와 시트콤의 조합 <미래 소년 코드박> 같은 혼종 프로그램, <실화탐사대> 등의 논픽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불만제로>와 등에 참여 하며 그럭저럭 세상과 사람을 관찰하는 교양 PD로 살고 있다. 그러다가 2020년 <너를 만났다>를 세상에 선보이고 나서 PD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문명, 최후의 섬> 같은 프로그램으로 고통받고 있으나, 웃으면서 아픈 진실을 이야기하는 모든 예술가와 코미디언들을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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