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은 언어로 말하는 박승열 시인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박승열 시인 인터뷰
우리가 게임을 할 때 어떤 의미를 갖고 하지 않듯이, 그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써내고 싶어요. (2022.08.29)
2018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주목받는 젊은 시인 박승열. 대개의 첫 시인의 첫 시집이 그러하듯 새로운 언어와 활기를 품고 있는 이번 시집은 제목부터 위트 있고 궁금증을 자아낸다.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시의 성격에 따라 부(部)를 나누는 통상적인 구성과 달리 총 세 개의 막(幕)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편의 시들이 이야기성을 띤 상황극이라는 점, 독특한 운율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형식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1막과 2막, 2막과 3막에는 '사이'라는 휴지부를 두어 시를 읽어나가는 이의 호흡까지 고려한 바,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완결성을 지닌 '3막극'이라 할 수 있다.
시편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는 것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소회가 어떠신가요?
편편이 쓸 때는 몰랐는데, 모아놓고 보니 일련의 작업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다른 시를 써야할 때라는 생각도 들고요.
시집 표지 색깔을 선정할 때 보라색 계열로 말씀해주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시와 연결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보랏빛 꽃도 있고 보라색 식물도 있지만 보라색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은 아니잖아요. 저는 시를 쓸 때 흔하지 않은 언어와 방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라색이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까진 사실 사후적인 이야기고, 처음엔 그저 막연하게 보라색이 좋았어요.
시집의 문을 여는 「감자 독백」은 묘하게 그로테스크하면서 애처롭기도 해요. 시집의 제목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도 이 시에서 따온 것이고요. 이 시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고, 가장 처음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시는 '감자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상황에서 사유를 출발시켜서 몰고 간 시였어요. 시를 모으면서 사물시가 많고 확실히 제가 사물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물이 현실의 주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어요. 내가 감자를 보는 게 아니라 감자가 나를 보는 것이라는 시선의 도치가, 이 모든 자리바꿈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감자 독백」을 첫 시로 배치했습니다.
이 시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부(部)'가 아니라 '막(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예요. 평소에도 연극이나 무대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연극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실은 '심즈'와 같이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 무대라는 몇몇 과학자의 의견에 흥미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시 속에 꿈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고 현실 속으로 비현실이 틈입하는 이야기도 많고, 이런 이야기를 모아 놓아보니 자연스럽게 '막(幕)'이라는 구성을 택하게 됐던 것 같아요.
시편들을 모으면서 본인도 몰랐던 단어나 구절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 있으셨나요?
평소에 시를 쓰면서 저는 모르는 것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그리고 '앎'으로 언어를 장악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시를 쓰고 나면 저도 몰랐던 구절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시를 가장 많이 읽는 건 저 자신이기 때문에, 시편들을 엮으면서는 몰랐던 단어나 구절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시집에서 시인님이 가장 아끼는 시가 있을까요?
이제 이 시집에 쓰인 시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그럼에도 아끼는 시가 있다면 「생각하는 계란」과 「오렌지의 꿈」인 것 같아요. 군대에 간 시간 동안 시를 쓰지 않아서 전역하고 시를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이 시들을 쓰고 나니 고민이 조금 풀렸거든요.
조이와 하조와 나는 오렌지의 꿈속에 들어와 있었다 오렌지의 꿈속에서는 오렌지가 주인공이었다 반쯤 찌그러진 오렌지와 껍질이 다 벗겨진 오렌지와 한 조각만 덩그러니 남은 오렌지가 서로를 감각하고 있었고 조이와 하조와 나는 그 사이에 사물로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조이와 하조와 나의 꿈속에서 오렌지들이 사물로 배치되듯이 (……) 마지막 한 조각의 오렌지까지 다 먹고 나자 잠이 몰려왔다 조이도, 하조도, 나도 오렌지가 나뒹구는 초록 들판 위에 누워 몰려오는 잠을 몰려오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받아들임 또한 오렌지의 무의식이 피워낸 것이겠지만 잠을 받아들이는 이 나태함, 나른함만이 오렌지의 무의식에서 단 몇 밀리라도 떨어진 채 피어나는, 조이와 하조와 나에게서 독자적으로 피어나 간신히 틈을 벌리는 의식은 아닐까, 하고 오렌지의 무의식이 시키는 것과 같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잠에 들고 있었다 _「오렌지의 꿈」 중에서 |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앞으로 더 재밌는 시를 쓰고 싶어요. 저는 시가 어떤 의미를 담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나의 놀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게임을 할 때 어떤 의미를 갖고 하지 않듯이, 그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써내고 싶어요.
*박승열 2018년 <현대시>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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