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특집] 어느 식물학자의 예의 - 『이웃집 식물상담소』 신혜우
<월간 채널예스> 6월호
식물학자 신혜우의 눈에 식물은 하나의 종이나 다름없다. 길고 긴 진화의 역사를 품고 있고,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생물이다. (2022.06.09)
식물학자 신혜우의 눈에 식물은 하나의 종이나 다름없다. 길고 긴 진화의 역사를 품고 있고,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생물이다. 나와 다름없는 존재로 볼 때, 식물에 대한 예의를 갖게 되고 존중하는 태도가 생긴다.
이웃과 나눈 식물 이야기가 『이웃집 식물상담소』라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식물상담소’를 열었어요. 플리마켓 한쪽에서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 갤러리에서 전시와 함께 하기도 했는데요. 보안책방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났어요. 중간에 빈 기간도 있었지만 2년 조금 넘게 한 것 같아요. 상담이라기보다 식물에 관해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질문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나노 입자를 연구하는 과학자분이 오셔서 예상 밖의 질문을 했는데 그때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이렇게 반짝반짝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요.
식물상담소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우선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았고요. 의외로 진로에 관한 질문도 많았어요. 퇴직을 하고 식물 곁에서 살고 싶은데 어떤 식물과 함께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도 궁금해하셨죠. 저처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눴어요.
책을 보면 식물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공존하더라고요.
여러 직장을 전전했던 30대 여자분이 있었어요. 직장에서 온갖 일을 겪었던 모양이에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음 직장을 구하기도 전에 관뒀는데, 혼자서 자주 산에 다니셨더라고요. 한번은 산에서 쉬다가 우연히 옆에 있는 돌을 봤는데 ‘왜 이렇게 예쁘지?’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렇게 자연에 눈이 뜨이면서 마음이 많이 치유됐다고 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우리는 왜 불현듯 자연에 눈을 뜨고 위로를 받는 걸까요?
식물을 통해 깨닫는 건 인간도 결국 태어나고 사라지는 존재라는 사실 아닐까요? 도시에 살면 잊고 있었던 진실을 마주하는 거죠. ‘나도 저 식물과 똑같은 존재구나.’라는 깨달음은 삶의 방향성, 가치관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현실 세계에서 아등바등 경쟁하며 치열하게 사는 것의 무의미함을 받아들인다고 할까요? 인간도 자연이잖아요. 진화론적으로 탄생한 생물 중 하나고요.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진실뿐 아니라 나 역시 저 자연처럼, 식물처럼 이 순간 살아 있는 아름다운 존재이고 그것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겠지요.
반려 식물을 키울 때 식물의 진짜 이름(학명)과 고향을 알면 도움이 되나요?
당연히요. 원래 서식지에서 어떻게 자라는 식물인지 알면 거기에 맞는 환경을 맞춰줄 수 있잖아요. 가끔 ‘잘 자라던 식물이 요즘 시들시들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아요. 전 원래도 잘 자란 건 아니었다고 말씀드리죠. 원래 열대 우림에서 20m씩 자라던 것이 30cm 정도 크기로 적당히 있었던 것뿐이니까요.
책을 보면 식물원 온실에서 일하고 있다는 상담자가 수시로 잡초를 제거하는 자신이 파괴자처럼 느껴진다고 얘기했다는 대목이 있어요. 잡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강아지풀, 바랭이, 소리쟁이, 질경이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서 잡초라고 하지만 다 각각의 종이에요.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인 것과 같죠. 인간이 역사를 통해 무수한 문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잡초들도 자기만의 진화 스토리가 있어요. 잘 모른다고 함부로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흔히 가꾸는 정원을 파괴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을 잡초라고 하지만 다른 생물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잡초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번식률도 너무 강하고 독점적으로 자원을 이용하고 환경을 파괴하니까요. 인간이 없어지면 다른 종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잖아요.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삶의 모습도 달라질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이 지구를 차지하지는 않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나도 다른 종들처럼 좀 있다가 사라지는 개체일 뿐인데, 강아지풀은 평생 사는 동안 지구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반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내 생활은 어떤가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책에는 절화를 보고 ‘살아 있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이미 죽은 꽃’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와요.
저는 잘린 꽃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뿌리도 잎도 없이 꽃만 댕강 잘려서 팔리는 꽃은 죽은 게 맞죠. 사람들은 잎이나 뿌리보다 꽃에 관심이 더 많아서 예쁜 꽃을 모아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것 같아요. 거베라의 꽃은 기억하지만 거베라의 잎과 뿌리의 형태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사실 꽃부터 뿌리 끝까지가 하나의 식물이고 살아 있는 모습인데 말이죠.
원예 품종으로 나온 꽃들에 대한 식물학자의 생각은 어떤가요?
절화로 판매되는 꽃은 대부분 원예 품종이에요. 교배를 하기도 하고 DNA를 건드려서 만들어내죠. 원예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싫어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단지 예쁘게 보이기 위해 종의 근본을 건드리는 일이 꼭 필요한가?’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어떤 뉴스를 봤는데 일본에서 파란색 국화를 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국화는 원래 야생 종류 중에서는 파란색 색소를 내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어떻게 교배를 해도 안 나와요. 근데 파란 국화를 만들고 싶어서 초롱꽃의 DNA를 넣어 파란 국화를 만들었다고 해요. 추운 겨울에 털이 많이 있었으면 싶어서 고릴라의 DNA를 인간의 몸에 주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종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야생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야생의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맞이할 죽음에 대해서 걱정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식물을 키우다 사랑하는 마음이 과해서 죽이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과습으로 뿌리를 썩게 만들거나 지나친 영양을 주어 죽게도 하죠. 사 온 식물이 알고 보니 1년생, 2년생이어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도 해요. 고도로 조작된 원예 품종 중에는 첫해에만 예쁜 꽃이 피도록 하거나 번식을 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도 하죠. 식물의 원래 특성이나 상품으로 팔기 위한 전략 때문에 죽는 경우도 있는 거예요. 과한 사랑이 문제였다면 거리를 둬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식물이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걸 깊이 깨달아서 식물을 위한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는 계기도 만들고요. 식물을 좋아한다면 키우던 식물이 죽더라도 용감하게 계속 좋아하면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진짜 식물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자연과 그림을 가까이하면 좋다고 하셨어요.
아이가 여섯 살 이전에 자연을 충분히 접하지 못하면 평생 자연과 가까워지기 힘들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자신도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과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린이를 위한 자연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비록 동물학자들보다 인기는 떨어지지만 어린이들을 만날 때면 각별히 관심이 가고, 특히 식물을 좋아하는 ‘외로운’ 어린이를 보면 응원해 줘요. 그리고 그림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표현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초등학생 이후에 그림을 손에서 놓잖아요.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그림도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인데 그냥 잘라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책을 읽을 때도 식물이 등장하면 유심히 본다고요.
소설이든 시든 식물이 등장하는 부분은 꼼꼼히 읽는 편이에요. 일단은 학명이 맞는지 살피는데 그런 건 그냥 눈에 보이더라고요. 좀 감상적인 글의 경우에는 대부분 식물이 관대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로 등장해요. 어떤 편견이 있는 거죠. “떡갈나무를 닮고 싶다. 그 포용력” 이런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게 재밌더라고요. 동물은 그 동물의 특성에 맞게 개성도 부여되고 다르게 등장을 하는데 식물은 대부분 이미지가 비슷해요. 생태적 특성을 보자면 글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단어의 아름다움 때문에 사용하는 것도 있어요. 물론 그렇지 않은 글도 만나는데요, 메리 올리버라는 시인의 작품에선 작가가 식물을 가까이에서 오래 보고 썼다는 게 느껴져요.
자연을 향한 낭만적 시선이란 건 뭘까요?
어떤 식물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꽃은 나를 위해 피어난 게 아니에요. 식물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하나의 생물이라는 시선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나에게 필요한 거지, 식물이 그것 때문에 있는 건 아니니까요.
식물상담소를 찾아온 분들에게 종종 “식물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냐?”라는 질문을 하신다고요. 작가님께 식물은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식물과 제가 지구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서로 피해 주지 말자고 생각하죠. 그림을 그리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식물을 사랑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관찰하고 그리는 이유가 그것이겠죠. 저처럼 식물을 연구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서 앞으로도 열심히 제가 본 식물의 세계를 그림으로 대신 알려주고 싶어요.
*신혜우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영국왕립원예협회의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세 번의 금메달과 트로피를 받았다. 『랩걸』의 표지 그림을 그렸으며, 지은 책으로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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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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