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김영하북클럽 선정 도서, 이렇게 고릅니다 (G. 김영하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63회) 『작별인사』 공개방송 1부
지금 제 옆에 묵직한 질문으로 돌아온, 김영하 작가님 나와계십니다. (2022.06.09)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에서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오은 : 익숙한 스튜디오를 벗어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가 와 있는 이곳은 ‘예스24 부산수영점F1963’입니다. 이곳에서 김영하 작가님을 모시고 공개방송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김영하 작가님이 <책읽아웃>에 처음 출연하신 날이기도 해요. 작가님의 출연 소감이 궁금합니다.
김영하 : 2019년에 『여행의 이유』 행사를 오은 시인님과 서울 코엑스에서 대규모로 진행했었어요. 그러고 나서 오은 시인님께 다음에 무언가 하시면 제가 꼭 나가겠다고 했었죠. 금방 실현될 줄 알았어요. 1년 안에는 어떤 것이든 할 줄 알았는데 팬데믹 때문에 자꾸만 미뤄졌어요. 드디어 거의 3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뜻깊은 자리인 것 같아요.
오은 : 작가님은 “작가 역시 독자가 있다는 걸 실감하는 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예전에 지역 서점 릴레이 사인회도 하셨고요. 지금도 독자와의 만남을 활발히 하시는데요. 독자를 마주하는 일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었습니다.
김영하 : 많은 작가들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독자를 머릿속에 그려볼 때와 실제로 만날 때, 굉장히 느낌이 다릅니다. 저는 독자가 많은, 복이 있는 작가라 평소 독자를 만날 기회가 많은 편인데요. 어떤 작가 분들은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그런 각자의 상황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다 같아졌어요. 실제 독자를 만날 일이 모두 없어져버린 거죠. 저는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일종의 메타버스 상황에서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두가 모두를 비대면으로 만나고, 실제 인간이 캐릭터처럼 느껴졌죠. 마침 책이 지금 나와서 독자를 실제로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매끄럽지 않게 만난다는 게 말이에요. 실제 인간이 시간을 들여 서점에 오고, 사인하다가 저는 실수를 하고, 이런 것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에게 더 중요하게 생각되고 더 소중하게 생각되게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오은 : 공개방송 신청 댓글에 한 독자 분께서 “『작별인사』 받아본 지 2주 정도 됐는데 세 번 읽었어요”라고 남긴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기다린 팬들이 정말 많았던 거죠. 작가님은 책 출간하고 어떤 기분으로 지내고 계세요?
김영하 : 9년 동안 장편 발표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부러워한다고 할 수 있는 작가는 스티븐 킹인데요. 많은 작가들에게 열패감을 안겨주는 발언이 있어요. 한 기자가 스티븐 킹에게 어떻게 매년 그렇게 분량이 많은 소설을 낼 수 있느냐 물었더니 스티븐 킹은 오히려 자기가 다른 작가들에게 묻고 싶다고, 도대체 글을 안 쓰고 뭐 하냐고 답한 거예요.(웃음) 그런 생산력을 저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감당할 수 없고요. 9년 동안은 그래서 늘 불편한 마음으로 살았는데요. 그래도 『작별인사』를 출간하고 나니까 의무를 다 한 느낌이 있었어요. 후련한 마음과 상쾌한 마음으로 독자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 기분이 오래 가기를 바라요.
오은 : 『작별인사』는 예약 판매 기간에 중쇄를 찍기도 했고요. 모든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하기도 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출간 후에 가장 기뻤던 건 1위를 했을 때는 아니었을 것 같거든요. 출간 이후에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김영하 : 1위를 했을 때가 사실 제일 기뻤고요.(웃음) 순위도 순위지만 읽은 분들이 잘 읽었다고 하셔서 기뻤어요. 저는 끝까지 읽어주시는 게 굉장히 고마워요. 의외로 사고 나서 안 읽는 책이 굉장히 많거든요. 여러분 많으시죠? 『정의란 무엇인가』, 『사피엔스』, 『코스모스』.(웃음) 책장에 꽂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런 책들이 있을 텐데요. 원래 책이라는 게 끝까지 읽기 힘든 거예요. 요즘 특히 그렇죠. 우리가 어디 갇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읽다 보면 친구한테 연락도 오고, 야구도 봐야 되고,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 자극들이 많은데요. 그럼에도 어떤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것은, 그래서 작가에게 독자가 보내는 평범하지만 큰 찬사라고 생각해요. 특히 소설가들에게는 그렇습니다.
오은 : 『말하다』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어떤 인물을 만들어 놓으면 한동안 그 인물이 할 법한 말을 하고 그 인물이 들을 만한 음악을 듣고 읽을 만한 책을 읽는다”고요. 한편 이 책은 그래서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김영하 :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 구체적인 인물의 삶을 상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시인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는지 상상해내기가 무척 어려웠고요. ‘작가의 말’에 이런 이야기는 다시는 못 쓸 것 같다고 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어요. 소설은 물론 상상의 산물이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잖아요. 때문에 모든 걸 시작부터 상상해내야 하는 인물들이어서 힘들었죠. 앞으로는 훨씬 잘 상상할 수 있는 인물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손에 잡힐 것 같은 그런 인물, 길을 가다가 마주칠 것 같은 그런 인물로부터 시작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은 : 『작별인사』는 ‘김영하북클럽’의 5월 선정도서이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북클럽을 시작하신 지 햇수로 3년째예요. 이 또한 코로나19의 영향이 있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죠. 김영하북클럽의 힘이 엄청나요. 선정되면 바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책이 품절되기도 하고요. 많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북클럽 책 선정에 있어 작가님이 갖고 있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김영하 : 일단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독자들이 쉽게 선택하게 되지 않는 책, 그러니까 서점의 베스트셀러 매대에 쫙 있는 책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알게 모르게 우리는 마케팅에 많이 노출돼 있거든요. 때문에 그렇지 않은 책들을 권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약간 도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요. 모든 게 그렇잖아요. 운동도 그렇고, 어떤 도전이 있을 때 만족감이 크니까요. 또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운영되었던 북클럽이기 때문에 그 시기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골랐어요.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 어울릴 수 없고, 정신적으로 고립된 느낌이 있었죠. 관계들이 끊겼단 말이에요. 확고하다고 믿었던 어떤 관계들이 과연 확고한지 의심을 갖게 되었고요. 그럴 때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들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책을 골랐어요.
오은 :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소설을 소설답게 하는 건 소통의 구멍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늘 이상한 생각을 하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던, 한 달 내내 <보물섬>을 기다리던 어린이였다. 10살 때 연탄가스를 마시는 사고를 겪은 뒤 그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김영하의 소설에 ‘기억’이라는 주제가 종종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던 김영하. 한편 20대의 김영하는 꽤나 폭력적인 젊은이였다. 대학에서는 전공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국악연구회 동아리에서 총무로 활동하며 대금을 연주했다. 하지만 진짜 관심은 소설에 있었다. 그의 데뷔작은 사실 <무협 학생운동>이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고, 라디오 디제이, 교수 등의 활동도 함께 하며 “나이 마흔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그 시절, 삶은 실로 숨막히는 것이었다.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를 꽂힌 기분을 느끼던 그는 이후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칠리아로 떠나기도 했다.
가장 영향 받은 작가는 코난 도일.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에피쿠로스의 사상이다. 결정을 빨리 내리고,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김영하, 그는 좋은 손톱깎이를 보면 일단 사는 버릇이 있다. 영감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곳은 침대로 감히 함부로 앉지 않는 편이다. 돈을 아주 많이 벌면 도서관을 짓는 게 꿈인 그에게는 연말이 되면 그 해의 10대 사건을 정리해보는 리추얼이 있다.” 소설을 소설답게 하는 건 소통의 구멍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소개를 했는데요. 이게 어떤 뜻인지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김영하 : 영화를 찍는 분들을 본 적이 있는데요. 특히 미술팀들이 굉장히 꼼꼼해요. 배경이 80년라고 하면 그때 어떤 음료가 있었는지까지 꼼꼼하게 채워 넣어야만 완벽한 영화가 되잖아요. 연극이 좋은 것은 그냥 여기를 버스 정류장이라고 ‘치고’ 한다는 거예요.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돼요. 저는 소설이 연극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비어 있기 때문에 인물을 마음대로 상상하고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지만 그래서 자신을 투영하기도 좋죠. 비어 있는 거예요. 소설은 오직 독자들이 그걸 상상해낼 수 있도록 자극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한 거죠. 그것을 어떤 작가는 도너츠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도너츠라는 것이 도너츠가 되는 것은 중간에 구멍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구멍이 있기 때문에 도너츠라고 부르듯 소설도 빈 것들이 있어야만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에요.
*김영하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잠실의 신천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에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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