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현실의 여성들에게는 왜 구원이 없었을까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61회) 『이웃집 식물상담소』,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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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많은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고 자랐는데 현실의 여성들에게는 왜 구원이 없었을까, 현실의 여성들의 입지는 왜 나아진 것이 별로 없을까, 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2022.06.02)


그냥의 선택

『이웃집 식물상담소』

신혜우 저 | 브라이트



저자는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식물학자이고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고요. 영국 왕립원예협회의 식물 세밀화 국제전시회에서 네 차례나 금메달을 받았고 최고전시상도 수상했다고 합니다. 책에도 저자가 직접 그린 세밀화가 실려 있는데 너무 아름다워요. 

신혜우 저자가 전시, 강연이, 어린이 교육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식물상담소 활동입니다. 예전부터 ‘이웃집에 식물학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사람들이 언제든지 찾아가서 식물에 관해서 묻고 이야기할 수 있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학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2019년에 처음 식물상담소를 열게 됐고, 이후 약 2년 동안 상담소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나누는 자리였다고 해요. 주로 예약으로 상담이 진행됐고 대부분 한 시간 정도 상담이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식물로 말문을 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되잖아요. 살아온 이야기도 하게 되고 지금의 고민도 이야기하게 되고요. 그렇게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다 보니 이 이야기를 대화 상대와 저자만 알고 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어떨까’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물로 『이웃집 식물상담소』가 나오게 됐습니다. 

책은 상담소를 찾아온 사람과 저자가 나누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요. ‘제가 키우는 반려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요?’,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더 알고 싶은데 어떤 도감을 보면 좋을까요?’, ‘어떤 식물원에 가보면 좋을까요?’ 같은 질문들이 많았다고 하고요. ‘제가 어떤 경험을 했는데 이런 걸 깨달았어요’,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상담소에 찾아온 어떤 분은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었대요. 그런데 그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그 길을 가지 않았고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일상이 조금 괴로웠던 것 같아요.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더 견딜 수 없어진 순간에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산과 바다로 많이 다녔다고 하는데요. 자연 속에 있으면서 ‘어떻게든 먹고 살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대요. 그리고 식물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 분이 어떤 이야기를 하냐면, 지금은 예전보다 수입이 불안정하지만 불안한 건 오히려 덜하다는 거예요. 당시에는 수입은 안정적이었지만 ‘내가 이렇게 평생 살아야 되나?’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이 있었다는 거죠. 이 대화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자연에 있다 보면 사라지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도시에는 인간이 원해서 만들어낸,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죠. 우리가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사라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그래서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불안이 끊이지 않는 것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에는 고민과 깨달음, 식물과 관련된 과학적 지식도 많이 담겨있지만 저는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에 눈길이 머물렀어요. 식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한 번쯤 품었을 법한 생각과 시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백설희, 홍수민 저 | 들녘



부제가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입니다. 지은이들은 어린 시절에 마법소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열렬히 시청하면서 자랐는데 어른이 되어서 당시 콘텐츠를 생각을 해보면 뭐라 말하기 어려운 양가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소녀 문화 콘텐츠들을 우리는 이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이 됩니다. ‘소녀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는데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소녀라는 말의 현대적 쓰임에는 소년이라는 말의 발명이 선행한다고 해요. 소년이라는 말의 주체와 의미는 개화기 남성 지식인들에게서 즉 당사자들에 의해서 정립이 되었지만, 소녀는 소년에 대응하는 상징적 기표로만 존재했다고 지은이들은 말을 합니다.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는 바로 이 소녀들이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에 어떤 콘텐츠를 감상하며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살피는 책인데요. 소녀 문화라는 것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왔고, 이 과정에서 이 문화를 둘러싸고 어떤 논의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소녀 소비자들은 이 문화와 논의 등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디즈니 프린세스에서 시작해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그중에서 특히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그리고 전연령관람가 SF영화, 그리고 게임 업계, 아동 문학 내의 소녀 소설이라는 카테고리, 어린이 책, 아이돌 산업 등 소녀들이 아동기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감상하고 소비하는 문화들을 짚어 보는데요. 

제가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은 마법소녀를 다룬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본 마법소녀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입니다. 1966년에 <요술공주 샐리>가 시초였고, 이 애니메이션이 최초의 여아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이 되었다고 해요. 소녀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샐리 서사의 캐릭터나 메시지는 소녀들의 임파워링이 아니었다고 지은이들은 말을 합니다. 샐리는 딱히 적도 동료도 없고, 마술은 사적인 영역에서만 사용되는 그런 제한된 능력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점은 이후로 제작된 마법소녀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이토 미나코라는 일본의 저자가 쓴 『홍일점론紅一点論』이라는, 국내에는 『요술봉과 분홍 제복』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책이 있는데요. 그 책에서 이 점을 조금 더 신랄하게 다루고 있기도 해요. 이 책과 같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이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소녀 만화, 순정 만화라는 장르가 등장하고 소녀를 타깃으로 하는 대중문화, 아이돌 붐이 일어나면서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침체기에 접어듭니다. 이 시점에서 업계가 새로운 소비 집단으로 눈을 돌리는데요. 바로 오타쿠, 성인 남성 집단입니다. 그 결과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에서 소녀가 사라지고 여성의 신체를 선정적이고 도발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팬서비스로 제공이 되는 거죠. 책에서는 이것을 ‘소녀들이 시청하는 콘텐츠에 남성적 시선이 개입되는 것을 허용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업계가 이런 악수를 둔 결과 마법소녀 인기는 계속 떨어지고 산업은 위축됩니다. 그러다가 1992년에 새로운 마법소녀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끕니다. <세일러문>입니다.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 분석이 있긴 합니다만, 일단은 세라복으로 표상되는 소녀들의 평범성이 평범한 소녀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요. 여기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질문이 발생을 하는 거죠.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많은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고 자랐는데 현실의 여성들에게는 왜 구원이 없었을까, 현실의 여성들의 입지는 왜 나아진 것이 별로 없을까, 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은이들은 ‘세상을 구할 것처럼 보였던 대히트작 <세일러문>에 담긴 여성주의적 메시지의 본질’을 돌아보는데요. <세일러문> 시리즈의 여성 인물들은 오늘날의 직장 여성들을 본 따 만들어졌다고 해요. 경제적으로 독립한 직장 여성, 즉 소비할 수 있는 여성들이 <세일러문>의 원형이었던 거죠. 그래서 여성 소비자들의 시장 가치와 사회적 입지가 철저하게 분리되어서 다루어져 왔다고 지은이들은 지적합니다. 말하자면 성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세일러문>을 만든 사람들의 목표가 아니었던 거죠. 분명히 여성주의적인 메시지는 있지만, 그 내용이 많은 사람들이 봤을 때 불편하다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친근하고 매력적인 여성주의적 메시지들이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메시지는 여성됨과 소녀됨의 불편하고 부정적인 이면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말합니다. <세일러문> 서사가 전지구적인 인기를 누리고도 여권 신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이유를 바로 거기에서 짚어봅니다.

책의 내용은 여성 서사로서의 청소년 소설, 한국의 소녀 소설로 들어갔다가 요즘의 영어덜트에서 마치 성차별이 없거나 이미 극복된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을 비판하기도 하고, 또 위인전으로 넘어가요. 마지막에는 아이돌로 나아갑니다. 소녀들은 이미 직접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소녀 문화가 안전 하려면 어른들이 소녀 문화의 부임과 현실을 알아야 하고 어른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책의 내용을 끝맺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멜라니 조이 저 / 강경이 역 | 심심



원제는 ‘Beyond Beliefs’인데 ‘신념을 넘어서’ 혹은 ‘신념 너머’로 번역이 될 것 같아요. 비건 내용인 건 맞습니다만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아주 유용하고 솔직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들어가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지었고요. 사회 심리학자이기도 하고 관계 코칭을 하는 전문가라고 합니다. 

첫 장의 제목이 ‘문제는 비거니즘이 아니다’예요. 저자는 비건과 논비건 사이에 상호작용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이게 사실은 동물을 먹는 일에 윤리를 두고 논쟁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사람들의 관계가 삐걱이는 이유는 윤리적 논쟁 때문이 아니고, 서로 어떤 종류의 양보를 바라는지에 대해서 잘 이야기를 안 한다거나 관계를 개선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비건과 논비건이 있을 때, 비건은 자신의 신념에 비춰봤을 때 논비건을 존중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신념에 맞춰 봤을 때 이 사람은 잘못을 하고 있어’라고 생각하기가 너무 쉽고, 논비건은 ‘내가 동물을 소비하거나 동물을 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내 자신이 존중 받지 못하는 것 같고 공격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라고 하면 서로의 관계가 삐걱이게 되는 거죠. 그 상황에 대해서 저자는 두 가지로 조언을 하고 있는데요. 일단은 어떤 사람이 행동을 할 때 그 행동과 해당 사람은 분리시켜서 생각을 해야 된다, 라고 조언을 해요.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관계에 있어서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대해라’라는 게 이 책의 주제예요.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나의 비거니즘 신념이나 당신의 논비건 성향 때문에 관계가 흐트러졌을 때, 내가 이 사람과 관계를 계속하고 싶은 의지가 있으면, 비거니즘 때문에 이 관계가 와해되지 않도록 혹은 비거니즘 때문에 관계가 와해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책이죠.

관계적인 측면에서 또 조언하는 게 뭐냐면, 가끔은 가치관의 문제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게 아니라 이게 주도권 다툼일 수도 있다고 조언을 해요. 이게 많은 관계 안에서 비슷하게 반복이 된다는 거예요. 비단 (비거니즘) 신념이 아니라 다른 신념에 대해서도. 심리학자들이 이런 역학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the more the more) 현상’이라고 부른대요. 한쪽이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면 할수록, 상대는 그렇게까지 반대 입장이 아니었는데 그 표현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반대 입장으로 가게 된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자기가 상처 입는다거나 공격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굴게 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방어적으로 굴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이 책의 많은 부분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육식주의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동물을 먹는 일이 정상적이라든지 자연스럽다든지 지금까지 계속해서 내려왔다고 믿는 사상 자체가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고, 그런 상황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깝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도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과 논비건의 입장에서 평등할 수만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비거니즘에 관해서 계속 갈등이 생기는 이유도 사회가 육식주의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는 계속 조언을 합니다. ‘상대방에게 가치관이나 성격이나 태도를 바꾸라고 요청하는 건 정중하지 않은 행동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합리적이지도 않다. 내가 믿는 신념을 같이 공유를 하고 싶다면 합리적인 방법은 태도나 가치관이나 성격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태도의 변화로 이어질 만한 행동을 권할 수는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특정한 책을 권해준다든지 어떤 자료를 찾아보면 좋겠다고 요청을 할 수는 있다는 거죠. 그랬을 때 태도를 바꿀 권리는 상대방한테 있어요.  

이 책은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지켜보는 것이 관계의 열쇠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지켜보는 건 ‘귀 기울여서 듣고,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슬픔이 있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연민과 공감으로 비판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하고요.

비거니즘에 관심 있는 분이 읽으셔도 좋을 것 같고, 관계가 어려운 분들이 읽으셔도 굉장히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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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식물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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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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