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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압둘라자크 구르나 “진실된 글쓰기는 인간의 양면성을 모두 다룬다”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 화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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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가 5월 18일 밤, 공식 기자 간담회를 통해 한국 언론과 만났다. (2022.05.19)

ⓒMark Pringle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가 5월 18일 밤, 공식 기자 간담회를 통해 한국 언론과 만났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식민주의의 역사를 통해, 기억과 이주, 소속의 문제를 던지는 동시대 아프리카문학의 대표 작가다. 노벨상 수상 당시 “식민주의의 영향과 대륙 간 문화 간 격차 속에서 난민이 처한 운명을 타협 없이, 연민어린 시선으로 통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3권의 소설 『낙원』『그후의 삶』『바닷가에서』를 통해 아시아 최초로 독자들을 만난다. 

“작가로서 나는 특정 행동이나 신념을 강요하기보다, 단지 부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할 뿐이다.”


화상 기자 간담회 현장 사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당시의 상황과 소감을 들려준다면.

집에서 전화로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한림원 사이트에 올라온 수상자 발표를 보고 비로소 수상을 실감했다. 노벨상이라는 세계적인 이벤트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내 작품에 흥미를 갖게 됐고 새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노벨상이 가져다 준 영광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낙원』『그 후의 삶』『바닷가에서』 세 작품이 동시에 출간됐다.

가장 먼저 출간된 『낙원』은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아프리카(당시 탕가니카)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이 어떻게 식민주의에 휩쓸리고 여정을 걷게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주제는 30년 후에 쓰여진 『그 후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두 소설은 시간을 두고 쓰여졌지만, 굉장히 깊게 연결되어 있다.

실제 삶이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개인의 삶과 소설가로서의 삶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학자 및 소설가로서 이중의 삶을 산 셈인데, 학기 중에는 학자 및 교수의 일에 전념했고, 안식년이나 방학 기간을 이용해 소설을 썼다. 4년 전 교수직에서 은퇴하면서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 외에도 가족과 친구, 정원 가꾸기 등 평범한 삶도 영위하면서 소설 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전쟁, 기후위기, 팬데믹에 더해 젠더, 세대, 인종 등 각종 갈등이 만연한 현 시대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인류는 언제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왔고, 그것에 맞서 싸우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의 첫 번째 역할은 ‘즐거움’이다.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문학을 읽는다. 두 번째, 우리는 문학을 통해 타인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 타인의 삶이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 사람 간의 관계나 행동 방식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문학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줄 뿐더러,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글쓰기는 결국 인간의 삶과 관계된 것이므로, 잔혹성, 사랑, 나약함을 주제로 삼게 된다”고 했다. 

진실된 글쓰기라면, 인간의 양면성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공정과 잔혹함 같은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있는 사랑과 따뜻함, 친절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

소설 곳곳에 『천일야화』『오디세이아』『필경사 바틀비』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상호텍스트적으로 인용되는데.

작가로서 문학적 인용을 글에 넣는 것을 즐긴다. 독자들에게도 암호 해독 같은 장난스러운 게임에 참여하는 효과를 주지 않을까.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대목들이 『바닷가에서』에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 역시 사람들이 내 이름을 잘못 발음할 때,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이름에 뭐가 있나?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로울 텐데."

작품 출간 당시, 영국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첫 작품을 출간 당시, 이미 많은 비영국 출신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작가의 출신보다는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에 관심을 보였다. 내 작품의 주요 주제는 동아프리카와 유럽의 식민지주의의 만남이다. 하지만 소설의 주제가 아프리카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문화 자체가 수백 년 간 타 지역과 교류했기 때문에, 문화적, 역사적으로 다층적인 측면을 담고 있다. 


ⓒMatilda Rahm

소설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주변의 다양한 상황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편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 고향 잔지바르에 돌아갔을 때,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연로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문득 식민주의 아래 그가 어떻게 성장기를 보냈는지 궁금해졌고, 이는 소설 『낙원』의 출발점이 됐다. 영국에 입국한 난민들의 행적과 처우에 대한 BBC 방송과, 개인적 경험을 참고하며 소설을 써 내려갔다.

소설 『바닷가에서』의 창작 동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다양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비행기가 납치되어 영국 런던에 착륙한 사건이 있었다. 국내선이었기 때문에 승객 대부분이 아프가니스탄 현지인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영국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중 연로한 백발의 신사가 왜 모국을 떠나 영국에 남기로 결정한 것인지 궁금해졌고, 『바닷가에서』 집필로 이어졌다. 이 소설은 ‘가족의 갈등’이라는 주제도 다룬다. 재산을 누가 가져가고, 어떻게 세대에 대물림이 되는지, 여성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는지 복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어로 집필하면서도 모국어인 스와힐리어와 아랍어, 독일어 등을 소설에 그대로 노출하는 이유가 있는가.

다양한 언어가 작품에 들어오는 이유는 역시 동아프리카 지역의 특성 덕분이다. 동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스와힐리어뿐만 아니라 아랍어, 힌디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며, 종교면에서도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문화적 맥락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설에도 다양한 언어가 발견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2018년에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타자에 대한 배타성과 억압을 해소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타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모든 사회에 만연하다. 하지만 타인의 삶이 전쟁, 폭력 등에 의해 위협 받을 때, 우리는 인류로서 환대의 의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회도 난민에 대한 배타성을 보이는 사건이 대상만 바뀔 뿐 계속 일어나므로, 그 양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동시 출간된 세 권의 책 중 어떤 것부터 읽으면 좋을까.

출간 순으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 여유가 없다면 가장 최신작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독자에게 내 작품이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작가로서 더없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그게 문학이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Abdulrazak Gurnah)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1948년 12월 20일 영국 보호령 잔지바르섬에서 케냐와 예멘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오만 제국의 속국을 거쳐 영국 식민주의 보호령이 되었던 잔지바르는 1963년 12월 술탄을 지도자로 하는 독립 군주국이 되었으나 불과 한 달 만인 1964년 1월 잔지바르 혁명이 발발하며 이슬람 왕조가 전복되었고, 혁명을 주도한 흑인 정권이 탕가니카와의 합병을 주도해, 같은 해 10월 수립된 새로운 국가 탄자니아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 혁명의 여파로 아랍계 엘리트 계층 및 이슬람에 대한 박해가 거세지자 구르나는 1968년 잔지바르를 떠나 학생비자로 영국에 도착한다. 페르시아어로 '검은 해안'을 뜻하는 잔지바르는 전통적으로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무역항이자 세 문화의 교차점 역할을 해왔는데, 이러한 혼종성은 구르나가 잔지바르를 떠나기 전까지 그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토양이 되어주었으며, 기독교와 백인이 중심인 영국 사회에서 아프리카인이자 이슬람으로 살아가게 된 그가 겹겹의 억압과 차별 속에서 역설적으로 자신만의 시각을 갖추고 문학과 삶을 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1987년 장편소설 『떠남의 기억』을 시작으로 『순례자의 길』 『도티』 『낙원』(부커상 및 휫브레드상 최종후보/문학동네 출간) 『침묵을 기리며』 『바닷가에서』(부커상 후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최종후보/문학동네 출간) 『배반』(커먼웰스상 최종후보/문학동네 근간 예정) 『마지막 선물』 『괴로운 마음』 『그후의 삶』(월터스콧상 후보, 오웰상 최종후보/문학동네 출간)까지 10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이 밖에 7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다수의 에세이와 비평을 집필했으며 2편의 에세이를 편집했다. 현재 켄트대학교 영문학 및 탈식민문학 명예교수이며, 캔터베리에 거주하고 있다.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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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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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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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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