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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수진 “국제 연애, 항상 쓰고 싶은 주제였어요”

『유진과 데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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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이 결혼은 아니잖아요. 이 소설이 사랑의 실패라거나 불가능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랑의 가능과 불가능, 더 나아가 사랑이 과연 무엇인가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2022.05.06)


호주인 남편을 둔 서수진 소설가에게 ‘국제 연애’는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주제였다. 연애라는 관계 안에 사회, 정치적인 맥락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국제 연애만큼 잘 보여주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뵙는 여자친구 어머니께 빗자루를 선물하겠다는 호주 남자 ‘데이브’. 남자친구의 가족을 만나는 자리에서 설거지하려는 한국 여자 ‘유진’. 두 사람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소설 『유진과 데이브』를 읽다 보면 ‘혹시 작가의 경험담이 아닐까’하고 궁금해지는데 이에 대해 서수진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호주인과 결혼했다. 이 책을 나와 남편의 연애 이야기로 읽을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 항변을 적어둔다.’   _(201쪽)

 


인물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어요

「작가의 말」까지 다 읽었을 때, 가장 궁금한 건 이 소설의 시작이었어요. 어떻게 쓰게 됐나요?

오래전부터 국제 연애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연애 안에 사회, 정치적인 맥락이 담겨 있다는 걸 그 무엇보다 국제 연애가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제 고민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한국전쟁이나 세계대전, 한인 살인사건과 같은 사회, 정치적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넣었고요.

호주인 남편을 둔 작가님께서 국제 연애의 불가능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사랑의 완성이 결혼은 아니잖아요. 이 소설이 사랑의 실패라거나 불가능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랑의 가능과 불가능, 더 나아가 사랑이 과연 무엇인가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나와 닮은 점이 많은 이야기를 쓰는 일이 어쩌면 그 반대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유독 쓰기 어려웠던 장면 또는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글을 쓸 때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객관화하지 않으면 글이 써지지 않아서 3인칭을 고집하고, 감정 서술도 배제하는 편이고요. 그런데 연애소설이다 보니 감정을 깊이 다루는 장면이 많아서 쓰기 쉽지 않았어요. 인물의 감정을 다루되 어떻게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썼죠. 

작가님 작품에는 외국인, 외국어 같은 소재가 자주 나오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외국인 남편을 만난 지 12년 되었고, 그동안 외국을 떠돌면서 외국인으로 살았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경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외국인으로서 경험하는 자기소외, 자기혐오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고요. 한동안 이러한 주제를 다뤄 보려고 해요.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서글프지만, 그게 삶이 아닐까요?

책의 제목이기도 하죠. ‘유진’과 ‘데이브’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인물의 나이와 국적, 성별을 정하고 나면 같은 조건을 가진 실제 이름들을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그중에 제가 생각하는 인물의 느낌과 닮은 이름을 고르고요. 이번에는 둥그런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진이 데이브의 이름을 처음 듣고 둥글고 부드럽게 들려서 마음에 들었다는 문장이 있거든요. 그런 느낌의 이름을 상상하면서 골랐어요.

주인공 유진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좌절을 경험하고 도망치듯 호주로 갔다고 하지만, 왜 그림을 그리지 않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유진이 A급 갤러리에서 전시를 따낼 거라고 모두 예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서술이 있어요. 졸업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데뷔하지 못했고요.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리기의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저도 습작 시절을 오래 거쳤고, 작가로 데뷔하지 못하면서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지쳤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런 마음으로 유진의 과거를 썼어요.

유진은 이유를 정확히 모른 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기분으로 울기도 해요. 이때 유진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는데 왜 엉망이 된 건지,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무엇이 그렇게 만든 건지,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모를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달랐을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유진도 그랬을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모든 게 나한테 있지 않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저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엉망진창의 순간이요. 서글프지만 그게 삶이 아닐까요?

데이브의 여동생 로렌에게는 동성 파트너가 있어요.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로렌 커플의 관계가 매끄러워 보여서 상대적으로 유진과 데이브의 관계가 더 아슬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로렌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로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의 행복한 삶에 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고, 이 소설에 그 일부를 담았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라 아마 다른 소설에서 다시 등장하게 될 것 같아요.

소설 속에 ‘뭉개진 그림’이 두 번 등장해요. 무언가의 은유처럼 느껴졌는데요.

무언가를 뭉개는 건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거잖아요. 뭉개는 행위가 사랑에 대한 유진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경계를 허물고 싶은 마음이요. 그런데 유진은 선이 무너지면서 모든 게 무너져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죠.



답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다름’에 대해 자주 생각했어요. 작가님에게 ‘다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그어 놓은 선 바깥의 무엇인 것 같아요. 소설 속에 유진이 데이브의 가족과 자신의 사이에 그어진 선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유진은 데이브와 그의 가족들이 그 선을 그어놓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선을 만든 건 유진이라고 생각해요.

‘선’을 대하는 유진과 데이브의 태도가 다른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선 바깥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상대의 선을 존중해주는 것이 사랑인가, 혹은 선을 무너뜨리는 것이 사랑인가 알 수 없지만, 이 지점에서 유진과 데이브의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지죠. 나는 선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사람인지 생각하면서 읽으면 이 책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퇴고 과정에서 삭제된 내용이 있다면요?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자기혐오가 있다고 했잖아요. 유진이 외국인으로서 호주에 살면서 느끼는 자기혐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비빔밥을 보면서 개밥 같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너무 과하다는 편집팀의 의견을 듣고 삭제했는데요.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해요. (웃음)

외국인 남편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작가의 말」이 재미있었어요. 책을 읽은 남편분의 소감이 궁금해지더라고요. 

한국어 실력이 소설을 읽을 정도는 아니어서 책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요. 「작가의 말」을 읽고는 데이브가 자신보다 더 멋있냐고 묻더라고요. 아주 잘생겼다고 답해주었습니다. (웃음)

이런 질문도 드려보고 싶네요. 나와 다른 누군가와 연애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걸 몰라서 이런 소설을 쓴 것 같아요. (웃음) 답을 알았다면 연애가 어려울 일도 없을 테고, 그렇다면 이렇게 소설까지 쓸 일은 더 없었겠죠. 그 답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누군가에게 한 장면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싶은가요? 

1장에서 유진이 섹스에 관한 문화 차이를 발견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부분이 아주 흥미롭게 읽힐 것 같아요. (웃음)



*서수진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20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코리안 티처』, 『골드러시 Gold Rush』 등이 있다. 현재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다.




유진과 데이브
유진과 데이브
서수진 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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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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