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자 임민경 "자해를 이야기하되, 자해가 중심이 되지는 않도록"
『자해를 하는 마음』
자살 의도 없는 자해란 문자 그대로 자살을 하고자 하는,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 없이 자신의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반복적인 행동이에요. (2022.03.11)
어떤 사람들은 자해를 한다. 2010년 중반 이후에는 자해에 관한 학술적, 사회적 관심도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해의 이유, 자해의 매커니즘과 자해라는 행위에 깔려 있는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해를 한때의 유행으로 보기도 하고,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편견들이 자해 당사자를 고립시킨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자해 당사자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서는 자해가 무엇인지, 왜 자해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상심리전문가 임민경은 “백신”과 같은 책 『자해를 하는 마음』으로 자해를 둘러싼 편견을 깨고자 했다. “자해 당사자를 이해하고 곁에서 도와주고 싶은 사람과 자해 당사자 사이에 조금이라도 다리를 놓아주기 위해”(7쪽) 책을 쓰기 시작한 것. 임민경은 이를 위해 자해 당사자 10명을 인터뷰하고, 자신에게도 자해의 경험이 있음을 조심스레 고백하며 당사자의 목소리를 폭 넓게 담았다. 동시에 자해에 관한 국내외 논문을 꼼꼼하게 살펴 이해를 높였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막연히 ‘이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흔하게 자해를 하”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책을 써야 했던 것은 “도움을 주고 싶은 입장에서도 좌절을 경험하기가 쉽다.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이 과정이 씨뿌리기 같은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내가 주는 도움이 그냥 사라지는 것 같아도 언제 의미를 가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곁에 있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책에 동봉된 편집자 레터를 보면 이 책이 “자해 관련 논의를 수면 위로 올리는 작은 짱돌 혹은 포문이 된다면” 좋겠다고 적혀 있어요. 작가님이 책을 쓰셨던 마음도 같았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자해 당사자와 당사자 주변 사람들이 ‘자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터놓고 얘기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자해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요. 자해 얘기를 하면 논의가 부정적으로 끝나기도 하니까요. 실은 워낙 무거운 주제예요. 당사자, 주변인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적은 것 같은데요. 그래서 책과는 무관하게 자해라는 것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책에는 자해라는 것이 살다 보면 할 수도 있는,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싶었거든요. 한편으로 주변인의 입장에서, 당사자를 도와주고 싶어도 자해라는 것이 적절하게 도움주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각자의 입장에 서 있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자해 논의를 수면 위로 올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가 편견 같아요. 책에 참여한 인터뷰이들은 가장 신경 쓰이는 편견 중 하나로 ‘자해를 통해 관심 받으려고 한다’는 말을 꼽기도 했죠.
하도 그런 편견이 강하고, 심지어 그런 편견을 말로 표현하는 분도 많아서 당사자는 방어적인 마음을 갖기가 쉬워요. 누군가가 좋은 의도로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말이에요. 저 사람에게 이런 편견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일단은 날을 세운 상태로 얘기를 시작하기 쉬운 것이 현실인데요. 주변인도 어느 정도 자해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겠지만 그것들이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거든요. 따라서 당사자로 하여금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해라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편견은 그 맥락에서 크게 방해를 하는 것 같고요.
소수의 사례지만 설령 관심을 받고 싶어서 자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다른 관계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보라는 말씀도 하셨잖아요. 이 말도 무척 중요하게 느껴져요.
그 부분을 강조했던 이유가 있는데요. 2018년에 있던 자해 특별 심포지엄에서 과거 자해를 했다가 지금은 자해를 그만둔 당사자 분이 발표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분은 자해는 무조건 ‘리스트컷(손목자해)’이 아니다, 또 관심 받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라는 내용을 강조하셨어요. 그 말씀에 큰 인상을 받았어요. 그 말이 맞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니기도 해서요. 물론 그 당사자 분이 어떤 편견 때문에 그런 반박을 하고 싶었는지 너무 잘 알아요. 그렇지만 이런 강한 반박은 관심 받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분들에게는 이중의 족쇄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수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있는 그 사람들이 더더욱 말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되게 복잡했어요. 그래서 책에 소수이긴 하지만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걸 사람들이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으로 썼던 거예요.
사실 책에서는 다루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기저에 깔린 복잡다단한 각자의 사정이 있고, 따라서 그런 것들을 주의 깊게 파악해야 된다’는 얘기를 일관되게 하고 계시죠.
자해라는 말을 들으면 일차적으로 보이는 반응이 있죠. 자해가 누군가에게는 본능적으로 되게 두려운, 혐오적인 자극이 될 수도 있고요. 내 주변 사람의 일이라면 당연히 놀라고, 걱정이 될 거예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여러 이유로 ‘놀라서’ 나오는 반응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걸 너무 많이 봤다는 거예요. 책을 쓰며 인터뷰 한 당사자 분들 대부분은 자해를 숨기려고 많이 노력했는데요. 일부는 자해 사실을 부모님한테 얘기하거나 들킨 경우였거든요. 그때 부모님들이 너무 놀라서 우시거나 욕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해요. 혼내고, 자해 못 하게 감시하고요. 사실 그 마음은 이해가 돼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조금 더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한 차례 정도는 놓치고 지나갈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초반에 있을 수 있는 정서 반응들을 미리 알고 있으면 일종의 어떤 백신처럼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당사자가 자해 사실을 고백할 때, 혹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자해 사실을 알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될까요?
“가장 힘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면 도움이 될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저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이라고 말문을 열면서 다 비슷한 얘기를 하세요. 너무 자해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부담스러우니까 그 얘기는 잠깐 치우고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라면서 배려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요. 그후에 물론 자해를 터놓고 이야기해야겠지만요.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너무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하지만 내가 너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자해와 자살은 구분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자살 의도 없는 자해란 문자 그대로 자살을 하고자 하는,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 없이 자신의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반복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사망에 이르게 됐든 아니든 자살 행동은 ‘죽을 것이다’라는 마음이 항상 기저에 있는 것 같아요. 한편 자해 행동은 지금 일어난 너무 고통스러운 감정을 어떻게든 조절해보고, 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에 일어나는 거거든요. 혹은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공허함을 느낄 때 무엇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이 기저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 한 어떤 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닐지 몰라도 나는 진짜 살고 싶어서 자해했다”고 표현하시기도 했어요. 그런 차이가 있죠.
살고 싶어서 자해한다고요. 그건 어떤 의미일까요.
약간 예민한 주제이기는 한데요. 자해의 기능 중에 ‘자살방지기능(Anti-Suicide Function)’이라는 게 있어요.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오히려 그걸 조절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기능인데요. 사실 이런 목적으로 자해를 한다고 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자살 위험도 실제로 높고요. 어쨌든 자살을 하고자 하는 마음, 이대로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엄청 고통스러운 마음인 거잖아요. 그 마음을, 그 순간을 어떻게든 흘려 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해를 하시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방금도 말씀하셨듯 자살과 자해는 구분되지만 상관관계는 있다고도 분명히 설명하시죠.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르비’님의 사례가 떠올라요.
네,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와 자살이 개념적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구분되지만은 않는 지점이 분명히 있어요. ‘르비’님은 아주 심한 자해를 하시는 분이었는데요. 자해를 하다가 “운이 좋으면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자살 의도라는 것도 자세히 봐야 해요. 죽고 싶은 마음이 24시간 계속 지속되는 건 아니잖아요. 매 순간 생각이 변하고, 기분도 바뀌죠. 그러니까 어떤 순간에는 자살 시도처럼 하시는 분들이 다음 날에는 자해를 하는 식으로 겹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 거예요.
“자기상해에 자살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려면 행위 당시 자신의 동기를 정확히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81쪽)고도 하셨어요.
어쨌든 많은 연구에서 자해 행동이 위험하다고 얘기하는 건 자해가 그 자체로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가벼운 손상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효과를 느꼈어도 자해가 거듭되면 점점 더 많이, 더 심하게 상처를 내게 돼요. 이렇듯 자해 행동이 점점 심해진다는 위험이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자신의 몸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는 점이에요. 본인이 원든 원치 않든 자신의 몸에 치명적인 손상을 내는 방법을 습득해가게 되는 거죠. 또 이런 문제도 있어요. 자해 하시는 분들은 자해를 하면 진정되는 것 같고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는 주관적인 느낌들을 얘기하시는데요. 많은 연구가 그 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우울한,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온다고 말해요. 몇 시간 내에 그럴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자해라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후에 우울증이 재발한다거나 정서 조절에 더 어려움을 겪는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이죠. 자해는 정말 목 말라서 바닷물 마시는 것과 같은 방법이에요.
그밖에 자해 당사자 분들을 인터뷰하시면서, 혹은 책을 쓰시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가장 고민했던 건 온라인 자해 커뮤니티 부분이었어요. 요즘은 굳이 어떤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않고, 그냥 소셜미디어에서 자해 얘기를 하고 사진을 올리기도 하거든요. 이곳이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데가 워낙 없고, 커뮤니티 안에서는 서로에게 있는 공통점 덕분에 유대감도 분명히 느낄 거고요. 그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커뮤니티에 대해서 말하는 게 정말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커뮤니티를 통해서 자해를 습득하거나 자해를 더 심한 강도로 하게 되는 등 안 좋은 면도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런 부작용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동시에 자해 당사자들을 향한 편견에 일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워낙 편견에 취약한 위치에 계신 분들이니까요.
결국 자해는 현상이라는 것, 자해 자체보다 자해의 기저에 깔린 복잡한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해야 할 것 같아요.
자해 행동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면 거기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병원이나 상담센터에서도 이렇게 되기 쉬워요. 예를 들어 “이번 주는 자해했어요, 안 했어요?” 하는 식으로 되기가 쉽거든요. 물론 자해를 안 하게 되는 건 아주 큰 의미가 있죠. 그렇지만 자해 중심으로 얘기를 하면 기저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놓치기가 쉬운 것 같아요. 따라서 자해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게 중심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사실 기저에 있는 문제들은 정말 각양각색이거든요. 자해 충동이 들 때의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능감이 핵심 이슈인 분도 있고요. 자괴감이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는 마음이 자극이 돼서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이런 각자의 마음이 도달해야 할 핵심일 거예요.
책 후반부에는 회복을 다루고 있어요. 작가님은 회복 과정이 지루한 연습의 연속이라고 하셨는데요. 시작과 끝이 없는 모호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거겠죠?
자해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정신과적 질환들, 심리적인 문제들이 단번에 확 좋아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간혹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분들도 있지만요. 정서 조절의 문제, 기질적인 문제는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고요. 특히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 학대 경험 등이 축적된 분들은 정말 장기적으로 봐야 해요. 그래서 어느 순간 반짝 좋아지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 좌절하는 경우도 많죠. 분명히 노력했는데 왜 또 이 자리일까, 하는 마음이 들 수 있거든요. 그 순간에 이런 말을 기억하기는 당연히 어렵겠지만, 회복이라는 게 우상향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곡선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후퇴한 것 하나 하나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전반적인 과정을 보되 예전과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이만큼 달라진 것도 사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거잖아요. 그것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조심스러운 질문이긴 한데요. 자해 행동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그러니까 위험하지 않은 정도로 자해하는 것을 유지하는 방법으로써의 치료 목표도 가능한 건가요?
자해를 계속 가지고 간다는 건 너무 위험한 선택지예요. 궁극적으로는 자해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 목표에 매달리기보다는 자해를 하게 만드는 그 힘든 마음을 조절하는 것, 그래서 결국에는 자해 외에 더 자신에게 잘 맞고 좋은 방법을 찾아서 더 이상 자해가 필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겠죠. 사실 자해를 그만둔 사람도 자해 하고 싶은 충동을 가끔씩 느껴요. 자해를 안 하는 상태라는 것이 자해를 원하지도 않고, 완전히 생각마저 없어진 상태는 아니거든요. 이렇듯 마음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떤 분의 손에 이 책을 건네고 싶으세요?
지금 자해를 하고 계신 당사자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면서 친구가 생각이 많이 났는데요. 제 주변에 있던, 자해 하던 친구 중에 자살로 사망한 친구가 있었어요. 저도 20대 초반이었고, 당시에는 연구로도 많이 밝혀진 게 없어서 그게 그렇게 위험해질 수 있는 행동인지 잘 모르기도 했고요. 자해라는 것이 발견조차 잘 안 될 때였기 때문에 심각성을 인지 못했던 것 같아요. 책을 쓰는 내내 그 당시에 이런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자해의 양상을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임민경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정신건강임상심리사.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 석사학위를 받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3년간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범죄 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인천스마일센터에서 내담자들을 만났으며, 지금은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언제나 누군가의 애독자이자 무언가의 애호가다. 지은 책으로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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