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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물류, 겨울 방학, 고약함에 관한 책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29회) 『커넥터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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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누군가의 어떤 판단으로도 쉽게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런 면에서 모두 성공적이고 또 탁월합니다. (2022.02.10)


단호박의 선택

『커넥터스』

엄지용 저 | 마인드빌딩



물류에 관한 책이에요. 엄지용 저자는 대학교에서 물류학을 전공했고 물류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생각할 때 물류는 단순히 물건을 옮긴다는 개념이 아니에요. 물류를 ‘가치 사슬을 관통하는 재화의 흐름’으로 정의하거든요. 그러면 물류의 목표는, 그 가치 사슬 속에 비효율적인 재화를 찾아내서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요새 ‘풀필먼트’ 업체라는 게 많이 진행되고 있대요. 그게 뭐냐면, 작은 회사는 물류를 할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물류 담당이 없고 그냥 다른 일을 하던 사람한테 물류를 담당하라고 정해주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상품을 보관하고 입고 처리를 하고 재고 관리를 하고 그 물건을 포장하고 운송을 시키고, 만약에 운송된 게 불량이 났다면 반품을 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다 물류가 되는데 작은 회사에서는 한꺼번에 다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도 적고 그만한 물량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물류의 과정을 다른 업체한테 이양을 해주는데, 그걸 대신 해주는 업체가 풀필먼트 업체라고 합니다. 물류를 아웃소싱 하는 거죠. 그렇게 했을 때 생기는 문제가 뭐냐면, 가치 사슬 사이에 자꾸 비효율이 생기는 거예요.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이 반품을 요청하면 풀필먼트 업체는 택배 기사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택배회사에 물어보면 풀필먼트 업체한테 알아보라고 하는 식인 거예요. 물건이 자연스럽게 흘러야 되는데 툭툭 걸리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런데 저자가 봤을 때 문제가 뭐냐면, (물류의) 부분 부분이 효율적으로 변하면 전체로 봤을 때는 오히려 비효율적인 거예요. (관련된) 예시가 나오는데요. 마케팅 부서가 있고 물류 부서가 있어요. 마케팅 부서의 목표는 매출 혹은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이에요. 물류 부서의 목표는 비용을 절감시키거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마케팅 부서에서 이벤트를 열어서 회사 브랜드 이미지도 좋게 만들고 매출도 좋게 만들었어요. 그러려면 물류센터에 엄청난 재고와 상품이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러면 물류 입장에서는 갑자기 막 물류가 들어오니까 실을 때도 없고 어디에 놔야 될지도 모르겠고 아무렇게나 쌓고 나니까 어디에서 찾아야 될지도 모르겠고, 빨리빨리 나가지 않는 거죠. 결국 고객들 입장에서는 ‘왜 배송 안 와? 이미지 좋은 회사라며?’ 하게 되고, 오히려 전체 입장에서 보면 비효율적이 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부분 최적화와 전체 최적화라고 설명을 합니다. 결국에는 부분 최적화가 전체 프로세스의 효율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게 이 책의 요지 중에 하나이고요.

코로나 19 이후에 모든 물류를 집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잖아요. 배달을 많이 하기도 하고요. 저자의 말처럼 ‘물류가 단순히 그냥 물건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고 모든 흘러가는 것들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작업이다’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적용해 볼 만한 데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일을 하면서 효율적이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하면 전체적으로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넓게 보면 물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냥의 선택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

윤단비, 김예원, 윤치규, 김성광, 박서련 저 외 4명 | 책폴



여덟 명의 저자가 쓴 에세이를 엮은 앤솔러지입니다. 부제 ‘나의 겨울방학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학창시절 겨울방학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고요. 윤단비 감독님, 김예원 변호사님, 윤치규 소설가님, 김성광 저자님, 박서련 소설가님, 봉현 작가님, 유지현 ‘책방 사춘기’의 책방지기님, 김상민 작가님이 함께 하셨어요. 그림은 양양 작가님께서 그리셨습니다.

표지에 있는 그림은 윤단비 작가님의 이야기에 나오는데요. 작가님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서울에 왔을 때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시험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당시 작가님이 사시던 지역에는 지하철이 없어서 그때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본 거였대요.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한강의 야경이 반짝거리고, 야경이 강물에 비춰서 일렁거리고, 한강 옆 대로로 자동차들이 불빛을 깜빡깜빡하면서 달리는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셨대요. 그래서 지하철 차창에 붙어서 ‘와, 스카치 캔디 같다’라고 얘기를 하셨다고 하는데요. 그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표지에 실려 있고요. 윤단비 작가님의 글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작품입니다.

윤단비 작가님은 어린 시절에 집이 조금 갑갑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아요. 떠나본 적 없는 집이지만 마치 유배된 것 같은 느낌을 갖고 계셨다고 하는데, 그 시절에 숨통을 틔어줬던 게 소설하고 영화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겠다거나 소설을 쓰겠다는 꿈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해요. 그 꿈을 갖게 된 계기 중에 하나를 이 글에서 이야기 하고 계시고요. 그래서 수능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문예창작 학원에 다니게 됐는데, 서울로 진학을 하겠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엄청 반대를 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너는 재능이 없다, 재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 정도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도의 재능이라 특별한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는데요. 

오히려 윤단비 감독님은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시험을 보러 가고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던 거죠. 글의 마지막에서 윤단비 감독님이 ‘삶이라는 게 기나긴 여정의 열차에 탑승한 것이라면 어쩌면 삶은 열차 창밖의 풍경에 달려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세요.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풍경이 계속 바뀌면서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요. 각각의 글 뒤에는 짧은 편지가 실려 있는데 윤단비 감독님은 열아홉의 윤단비에게 편지를 쓰셨어요. 좀 더 관대하게 삶을 즐겨도 괜찮다, 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이 다 빛깔이 달라요. 우리가 ‘사춘기’ ‘학창 시절’이라고 그냥 눙쳐서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그 안에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이 담겨있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밀회』

윌리엄 트레버 저 / 김하현 역 | 한겨레출판



윌리엄 트레버가 소설을 아주 잘 쓰는 아일랜드의 작가인데요. 제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단편 선집으로 윌리엄 트레버를 처음에 만났는데, 첫 번째 단편을 읽는데 ‘좋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두 번째 단편을 읽는데 ‘좋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세 번째 단편을 읽는데 ‘좋은데?’(웃음) 그런 경험을 해서 윌리엄 트레버의 책이 나오면 반드시 집에 들여서 읽고 있고, 이 책도 그렇게 저희 집에 들어오게 된 책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어요. (번역가) 후기를 보니까 번역가 선생님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좀 있으셨던 것 같은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선택이나 삶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을 좀 겪으신 것 같더라고요. 저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 단편들마다 좀 고약한 사람이 한둘쯤 등장해요. 그래서 읽으면서 계속 그 인물들의 삶이나 선택을 도덕적으로 좀 판단하려고 하는 제가 막 개입을 하는 거예요. 이런 마음들 자체가 너무 불편해서 약간의 곤란을 겪었는데요. 달리 생각을 해보면 ‘내가 이런 복잡한 곤란함이라거나 이런 식의 고약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작가가 그런 복잡함이나 그런 고약함을 너무나 잘 썼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대단히 잘 쓴 단편들이기는 해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이 첫 번째 소설 「고인 곁에 앉다」 하고 여덟 번째 소설 「로즈 울다」였는데요. 두 편 다 사람들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러 잠시 모인 상황으로 소설이 전개가 됩니다. 

「고인 곁에 앉다」에는 에밀리라는 여성이 등장을 하는데 외딴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 남편이 7개월 동안의 병을 앓다가 죽어요. 에밀리가 시신을 위층에 눕혀두고 장의사를 기다리는데 마침 그 집에 제라티 자매가 방문을 합니다. 이 분들은 ‘마리아 군단’이라는 가톨릭 단체 회원으로, 어려운 사정에 처한 집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도 듣고 기도도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인 것 같아요. 에밀리의 남편이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어딘가에서 듣고 그 일을 하러 이 집을 방문을 한 거죠. 그런데 문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문간에서 전해 듣는 거예요. 얼마간 인사가 오가고 에밀리가 차를 한 잔 하고 가시겠느냐고 제안을 합니다. 그냥 인사차 이야기를 했는데 뜻밖에 이 자매가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위층에 남편의 시신이 눕혀있는 상태에서 세 사람이 아래층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데요. 대화를 나누고 제라티 자매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에밀리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자기 남편이 얼마나 고약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하는 거예요. 제라티 자매가 당황을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에밀리가 이모에게 물려받은 집 때문에 에밀리와 결혼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경주마를 기르면서 경마에 내보내지만 실적은 없었어요. 그럼 가산이 기울게 되겠죠. 집 안에는 울적한 분위기가 감돌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남편은 이웃이나 타인한테 아주 난폭하게 굴어서 에밀리를 사회로부터 좀 고립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배우자인 에밀리한테도 모욕감을 안기는 고약한 사람이었어요. 제라티 자매는 난감해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다 듣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그 집을 나서는데 떠나면서 자매 중에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우리가 고인 옆에 앉아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저는 이 말에 등장하는 고인이 위층에 누워있는 죽은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그와의 결혼 생활에서 계속해서 모욕을 경험하고 위축되어 있는 에밀리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사실은 에밀리도 본인을 유령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유령이 그곳에 있었고 한때 그녀 자신의 모습이었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나는데요. 저는 이 문장 때문에 에밀리가 긴 시간 동안의 모욕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났다고, 유령의 모습이 과거라는 이야기로 읽었는데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단편의 내용을 비롯해서 열두 편의 소설이 다 다른 설정과 다른 인물들과 다른 이야기들이거든요. 삶은 누군가의 어떤 판단으로도 쉽게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가 저는 소설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런 면에서 모두 성공적이고 또 탁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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