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쥐어짜는 느낌으로 써요 (G. 송지현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22회)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동해 생활』이라는 에세이를 쓸 당시에 동생과 같이 살았어요. 2년 동안 둘이 작은 집에 살다 보니까 항상 마감을 할 때는 동생이 앞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모든 저의 상상력이 가족을 향해 가게 되더라고요. (2022.01.13)
안녕하세요. 황정은입니다. 검은 호랑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연말과 연시에 우리가 늘 듣는 뉴스가 있습니다. GDP 몇 퍼센트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성장 목표율과 달성률인데요. GDP로 상품의 총량을 계산하면서 항상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더 많이 성장하고자 하는 사회는 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보완하고 호혜를 주고받는 경험보다는 경쟁을 더 자주 경험합니다. 경쟁의 과정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생산성으로 판단이 되는데요. 이런 시스템에서 사람들은 자꾸 필요와 쓸모로 삶을 판단합니다. 우리의 좋은 삶을 망치는 시스템은 거대하고 복잡한데 거기에 비해 사람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크지 않아서 '나는 쓸모가 없다', '너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저는 한때 쓸모를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일에 지쳐서 ‘사람 사는 일에 쓸모, 그것이 굳이 있어야 하냐’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생태계 붕괴 그리고 기후 붕괴를 겪고 있는데 이런 시기에 나의 쓸모를 생각하지 않는 일은 너무 쉬운 선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산책을 다니면서 저의 쓸모를 생각해 보곤 하는데요. 나의 쓸모를 어디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내게 좋은 삶일까, 그것은 어떻게 나를 포함한 생명 공동체에 좋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읽은 소설들에서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필요와 쓸모를 생각하느라고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버린 화자들을 만났습니다. 오늘은 이 소설들을 쓴 작가를 초대해서 이 화자들이 가진 질문과 대답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하겠습니다.
“밝은 곳으로, 농담이 넘치는 곳으로, 이윽고 상처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소설가 한 분을 모셨습니다. 두 번째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출간하신 송지현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 지난해 <문장의 소리>에 출연하셨는데요. 그때 이번 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첫 번째 소설집에 비해서 ‘진중하게 호흡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발랄함은 덜해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책이 나오고 몇 달 지났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송지현 : 그때 제가 (이번 책을) 쓰고 있었나 봐요. 쓸 때는 항상 진중하게 골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다 묶어서 내고 보니까 좀 웃긴 부분도 많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왜 그런 소리를 했지?’ 이런 생각을 또 해봤지만, 첫 소설을 또 다시 펼쳐보니까 첫 소설에서 뭔가 ‘내가 이 소설로써 세상을 바꾸겠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각오가 있었던 20대를 약간 지나서, 좀 숙성된 느낌으로... (웃음)
황정은 : 네, 그렇게 느끼시는군요. 그러면 오늘 첫 번째 단편집보다 숙성된 단편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 모두에 가족이 중요한 관계나 배경으로 등장을 합니다. 관계가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이 되고 사건도 가족 관계에서 발생을 하는데요. 작가님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 가족을 이렇게 자주 생각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송지현 : 일단은 전작이 『동해 생활』이라는 에세이인데, 동해 생활을 실제로 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을 한 것인데, 당시에 동생과 같이 살았어요. 2년 동안 둘이 작은 집에 살다 보니까 항상 마감을 할 때는 동생이 앞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모든 저의 상상력이 가족을 향해 가게 되더라고요. 심지어는 제가 마감을 너무 힘들게 하니까 원고를 메일로 보냈을 때 동생이 운 적도 있어요. 드디어 끝났다, 이러면서. (웃음)
황정은 : 왜 그랬을까요?
송지현 : 제가 너무 괴로워하다 보니까 동생도... (제가) 이야기를 하면 (동생이) 옆에서 대신 쳐주기도 했었거든요.
황정은 : 동생이 타이핑을 해줬다고요?
송지현 : 네. 제가 누워서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문장을) 말하면 그거를 쳐줬었어요.
황정은 : 왜 그러셨어요?
송지현 : 제가 소설 쓸 때 정말 쥐어짜는 느낌이 드는데, 너무 쥐어 짜지다 못해서 의자에 못 앉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동생이 제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그러면 누워서 발화를 해봐라, 내가 그것을 적겠다’ 해서 그렇게 쓴 적도 있었고.
황정은 : 멋지네요.
송지현 : 지금도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 ‘작품을 못 쓰겠어’라고 하면 저희 집에 달려와서 제 앞에 딱 앉아서 ‘몇 매 썼어?’ ‘그러면 20매만 더 쓰고 누워’ 이렇게 매니징을 해주고 있습니다. (웃음)
황정은 : 소설에 또 친척이 자주 등장을 하는데요. 주로 이모, 외삼촌, 모계 쪽이고 부계는 잘 등장하지 않더라고요. 고모는 단 한 번도 등장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송지현 : 일단은 제가 고모가 없어요. 아버지가 일곱 형제거든요. 아들만 일곱. 심지어 일곱 형제의 막내이셔서 큰아버지만 있고 고모가 한 분도 없어서, 일단은 그게 제일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사실은 친가 쪽의 여성을 본 적이 없으니까, 보통 어른들을 보면서 제가 어떤 유전자를 받았는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여성의 유전자가 없으니까 ‘친가 쪽에서는 뭐가 왔을까’ 이런 생각을 그냥 상상으로만 하게 되고. 그래서 모계가 등장하는 건 저에게는 되게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이모들도 많고, 엄마가 동생들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어울리고, 또 이모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저희 집에 다 살다가 갔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좀 더 중요한 부분이고 저의 어린 시절을 형성하고 있는 커다란 부분이더라고요.
황정은 : 작가님의 소설들에서 엄마들이 왜 다들 술을 먹고 우는지 사실은 그것도 좀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술을 드시고 우시니까 딸들이 괴로워하잖아요.
송지현 : 네. (웃음) 술을 먹는 아버지 캐릭터는 굉장히 많이 등장했었는데 술을 먹는 어머니 캐릭터가 좀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황정은 : ‘내가 써버리겠어’ 이런 건가요? (웃음)
송지현 : 내가 한번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술 먹는 어머니로. (웃음)
황정은 : (웃음) 그렇군요.
송지현 : (웃음) 그런 것도 있고, 제가 술을 워낙 좋아하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왜 우냐’라고 했을 때, 아버지들은 아버지라는 이름이나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 좀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사회생활하다 술을 마실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엄마들은 이상하게 엄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느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엄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라는 생각으로, 또 그것의 주정이 우는 것으로 발현되는 분들이 종종 아니 자주 보이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엄마들이 술 먹고 미안해하고 우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죄책감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해서 울게 만들었는데...
황정은 : 너무 울리셨군요.
송지현 : 네, 너무 울렸고. 그리고 저도 술 마시면 종종, 자주, 웁니다. (웃음)
황정은 : 본인이 소설에 많이 담기는 편이군요. (웃음)
송지현 : 아, 네. (웃음)
*송지현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에세이집 『동해 생활』이 있다.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에 글을 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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