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비혼에 대한 공포심 조장, 그만합시다 (G. 곽민지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21회)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지금 제 옆에 “’최애’한테 해주고 싶은 말을 스스로한테 해주면서 살자”고 말하는, 에세이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출간하신 곽민지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2.01.06)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러니까 결혼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멋지게’ 살아야지만 비혼 자격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 나아가 그 결혼이 파기된 사람도 복지나 권익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결혼으로 꾸린 가족의 존재가 없다는 이유로 돌봄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가정을 경영하면서 전업 주부의 이름으로 살아가다가 사회로 나왔을 때 경력 단절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배우자가 먼저 사망한 노인이 고독하게 죽음을 맞지 않도록. 그걸 함께 개선하려는 노력에 비혼이나 기혼의 편 가르기는 필요 없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곽민지 작가님의 에세이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비혼 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이기도 한 곽민지 작가님은 비혼의 삶을 이야기하자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에 놀라고 맙니다. 결혼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이토록 주목을 받을 일인가, 하고 말이죠. 그리고 말합니다. “독립적이고 고유해서 가치로운 우리 모두가”, “더불어 혼자 살자”고 말이에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출간한 곽민지 작가님을 모십니다. 비혼을 선택한 삶이 어떻게 사랑과 연대로 나아가는지, 함께 이야기 나눠볼게요.
오은 : 편집자 분이 책 미팅을 처음 할 때 “<책읽아웃> 나가셔야죠.” 라고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곽민지 : 말하면 이루는 분들 있잖아요. 그 미팅은 이 책을 기획하는 미팅도 아니었고요. 그냥 저희가 처음 만나는 자리였어요. “안녕하세요. 저희가 이런 걸 고민 중인데 작가님 어떠세요?” 하고 제안하는 자리였고, 계약서를 쓴 상태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씀을 하신 거죠. 뭔가 그 패기를 믿고 계약한 것도 없지 않았던 것 같아요.(웃음)
오은 : 그리고 실제로 나오셨네요. 나와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진행하고 계신 팟캐스트 <비혼세>가 2020년 2월에 시작했어요. 매주 업로드하는 것에 여러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요. 돌아보면, 어떤가요?
곽민지 : 처음에는 심심하니까 팟캐스트나 해볼까, 라는 생각이었어요. 첫 방송을 올렸을 때도 친구들한테 “잘 나오나 한번 봐라, 어디 끊기는 거 없나 한번 들어봐라”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웃음) 예전에 ‘셀럽맷’ 님한테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어떻게 <영혼의 노숙자>를 그렇게 오래 하셨냐고요. 그랬더니 그냥 한 주 한 주 하다 보니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비혼세>도 똑같아요.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고요. 곧 100회가 되는데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오은 :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에세이스트, 방송작가, 팟캐스터, 독립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그러니까 ‘부캐’가 많은 사람. 놀이터에서 놀다가 응가를 하고도 미루며 놀던, 될성부른 ‘미루미’의 싹을 간직한 유아기였다. 말 잘하는 연년생 언니와 말하기를 놀이로 하며 성장했다. H.O.T, 스타크래프트, 치차리토, 김이나, 맥켄지 데이비스, 김희진으로 이어지는 덕질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회사의 예산을 편성하는 일을 했지만 곽민지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20대 중반, 프리랜서로 전직하고 지금껏 그 삶을 이어오고 있다.
2차 성징처럼 언젠가는 결혼 생각이 생겨날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비혼 언니들을 만나면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묻곤 했다. 지금은 해방촌에서 폴댄스를 하고, 커피와 맥주를 좋아하는 비혼자로 살고 있다. 공기 청정기는 없지만 와인 셀러는 있고, 정수기는 없지만 폴과 식기 세척기와 로봇 청소기는 있다. 곽민지에게 비혼은 ‘나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일상을 치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고, 삶이 쓴맛을 보여줄 때마다 글을 써서 돈의 단맛으로 바꾸고 있다. 용기내서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는 스토리텔러들을 좋아한다. 불완전한 사람들끼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는 게 좋다. 확신의 ENFP, 남산 턱 밑에 살면서 맨날 남산 사진 찍는 남산 광인, 영화 <매드맥스>는 30번도 넘게 봤다. 공식 반려맥주는 ‘홉하우스’이고, 요즘 제일 눈여겨보는 계정은 ‘제주탠져린즈’ 반려견 입양 홍보 계정이다.” 부캐가 많다고 소개를 드렸는데요. 본인이 현재 ‘본캐’라고 인식하고 있는 정체성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곽민지 : 방송 작가 같아요. 지금은 잠깐 쉬고 있지만 방송 작가의 일이 제 대부분의 월세를 내주고 있기도 하고요.(웃음) 정확히는 예능 작가인데요. 예능 작가로서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어요. 또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은 예능 작가를 하지 않았다면 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팟캐스트도 그렇거든요. 예능은 너무 큰 예산으로 큰 팀에서 하잖아요. 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럴 때 ‘만약 내가 이 채널을 갖고 있다면, 내가 제작자라면, 내가 진행자라면, 내가 사장이라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데’ 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팟캐스트로 잘 해소했기 때문에 예능 작가로 일하는 현장에서는 일일이 싸우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은 :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작가님이 직접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어떤 책이죠?
곽민지 : 비혼자의 삶 자체가 그렇듯, 꼭 비혼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고요. 제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일궈왔는지에 대해 덤덤하게 얘기하는 에세이예요. 비혼인 사람들은 외롭게 살 것이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는 분들이 있는데요. 저한테서 그런 두려움을 없애게 해준 모든 고마운 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오은 : 책 쓰면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적절한 사람이어야만 말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대해서도 쓰셨죠. 그러면서 ‘약자성’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 고민은 어떻게 진행됐고, 지금은 좀 해결된 상태인지도 궁금했어요.
곽민지 : 저는 비혼이 이렇게 여러 챌린지를 많이 받는 정체성인지 몰랐어요. 팟캐스트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비혼세>를 듣고, ‘저 사람은 비혼이라는 사람이 연애 얘기한다’거나 ‘저 사람은 비혼이라는 사람이 이런 걸 지키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비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도 워낙 많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 결혼한 사람의 입장에서 말할 때 “당신이 뭔데 결혼한 사람으로서 얘기를 하냐, 당신이 결혼한 사람을 얼마나 대표할 수 있느냐”라는 얘기를 듣지는 않잖아요. 이런 일들은 어차피 약자한테만 생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그냥 내 이야기를 덤덤하게 하는 것 자체가 용기가 되겠다, 생각하고 좀 자유로워졌어요.
또 하나는 ‘국민 하리보’(웃음) 김희진 선수를 좋아하게 되면서 해결된 점도 있어요. 어쨌든 책 계약을 했고, 이 글을 쓰는 게 나의 직업이니까요. 운동 선수도 마찬가지잖아요. 기분이 어떻든, 컨디션이 어떻든 매일 자기 일을 계속 해나가요. 그렇게 10년을 지낸 사람을 좋아하게 되니까 거기서 용기를 많이 내게 됐어요. 내게 주어진 것을 당장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그게 또 최고일 수도 있다는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오은 : 이렇게 스스로를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책이었는데요. 흔히 비혼은 돈이 많아야 한다라는 말을 해요. 거기에 <작은 아씨들>을 인용하면서 말씀을 하셨어죠.
곽민지 : 지금은 <작은 아씨들>의 대고모처럼 돈이 많아야 결혼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시대와 달라요. 여성도 일을 하고 직업을 구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그때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떻게 보면 기혼 여성에 대한 비하로도 이어질 수 있어요. 결혼한 사람들은 그렇다면 경제활동을 하거나 자기 삶을 직접 꾸릴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남성 파트너에게 의존하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는 말이 될 수 있잖아요. 비혼에 대한 과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 그만해야 되고요. 제 이야기는 돈이 없어도 비혼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정도의 경제적인 감각과 스스로를 돌보면서 사는 것은 당연히 가져야 하는 일이니까 그 앞에 굳이 비혼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예요.
오은 : ‘최애한테 해주고 싶은 말을 스스로한테 해주면서 살자’가 좌우명이니까 작가님이 곽민지 자신에게 최애한테 하듯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뭔가요?
곽민지 : 막 살아도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해 주고 싶어요. 저의 모든 최애는 스스로를 굉장히 많이 사랑하고, 중심이 단단하고 이런 분들이에요.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막 살아도 된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고요. 새해 첫 방송인데요. 다들 약속도 많이 잡고, 모두가 희망에 차 있을 때 진짜 샤워 한번 하러 가기도 너무 힘든 분들이 이 방송을 듣고 계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분들께 너무 외롭다고 생각하지 마시라고, 그 와중에도 이 정적을 이기려고 팟캐스트를 틀고 이 방송을 듣고 있는 거 너무 잘하고 계신 거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곽민지 배우자 없이 태어난 이후 살던 대로 살고 있다. ‘비혼 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 제작자 겸 진행자.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미루리 미루리라』 등을 쓴 에세이스트 겸 칼럼니스트이기도 하고, 광고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모바일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곽민아의 동생, 이준과 이솔의 이모, 맥주, 폴댄스, 여자 배구팀 그리고 고유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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