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특집]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 배우 김꽃비
『월간 채널예스』 2021년 8월호
스물아홉 나이에 낡은 중고 바이크 택트를 만나 라이더가 된 김꽃비 배우가 길 위에서 챙긴 건 자신감, 자유, 힘이다. (2021.08.10)
스물아홉 나이에 낡은 중고 바이크 택트를 만나 라이더가 된 김꽃비 배우가 길 위에서 챙긴 건 자신감, 자유, 힘이다.
제주도에 계시다고 해서 ‘한 달 살이’인 줄 알았는데, 아예 정착하셨더군요.
2년 됐어요. 바이크를 타면서 여행이 쉬워졌을 때 처음 떠난 곳이 제주도였어요. 그 후 한 달 살이를 경험하면서, 눌러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운 좋게도 전세 매물이 있길래 결정하고 내려왔어요.
‘바이크 덕분에 만나게 된 제주’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중인가요?
‘세화’라는 곳에 사는데, 바다 근처에 살다 보니 자연과 생태를 더욱 체감하게 됐어요. 타지에서 만난 ‘남의 자연’보다 내가 사는 곳의 자연과 집 앞의 바다가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중이고요.
『아무튼, 바이크』 72쪽에 실린 ‘차 세 대 배우’라는 제목이 재밌더군요. 시티100, CG, 울프를 보유한 배우! 지금은 ‘차 몇 대 배우’인가요?
‘차 한 대 배우’예요.(웃음) 세 대를 모두 관리하기도 어렵고 해서 정리했어요. 지금 타는 바이크는 가와사키 에스트렐라 기종이에요.
“바이크 여행은 달리는 시간이 내내 여행의 과정이다”(46쪽)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대부분의 여행은 목적지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부산영화제에 바이크를 타고 간 적이 있어요. 인터뷰를 하다 “10시간 넘게 바이크 타고 왔다”고 했더니 “얼마나 걸렸냐”, “지루하진 않았냐”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는데, 바이크를 타지 않는 사람에겐 10시간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하지만 바이크 여행에는 지루하고 지겹다는 수식은 어울리지 않아요. 달리는 시간이 곧 여행이거든요.
8년 동안 바이크 여행에서 만난 ‘세상의 모든 길’ 중 첫 손에 꼽는 길이 궁금하네요.
참 많이 받는 질문인데, 사실 제가 꼽는 걸 잘 못해요. 그리고 바이크 여행의 재미는 어디가 좋다더라 하면서 찾아가는 게 아니라, 기대하지 않고 달리다 발견하는 풍경, 감동적인 장면들이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시야가 트이고 초록이 많은 길을 좋아하는 취향이 바이크를 만나면서 더 강해졌어요. 남들에겐 사소할 수 있지만, 국도를 달리다 코너를 살짝 돌았을 때 만나는 잔잔한 호수나 저수지, 그 잔잔한 수면에 노을이 흩뿌려져 물들고 있을 때. 그리고 그 남은 빛이 나무나 흙길에 닿는 장면을 만날 때 감동을 받아요. 그런 장면 때문에 바이크 여행을 한다고 할 정도고요.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지금 우리에겐 자기만의 바이크가 필요하다”(84쪽)고 쓰셨더군요. ‘바이크 전도사’라 불릴 정도인데, ‘바이크 예찬’의 핵심만 귀띔하신다면요?
너무 많은데, 하나만 꼽으면 바이크를 통해 힘이 많이 생겼어요. 힘이 생긴 뒤 자신감이 붙고 주체성도 강해졌고요. 배우라는 직업에만 매몰되면 일상에는 관심을 덜 갖게 되는 경향이 생기거든요. 매니저 차만 타다 직접 바이크를 타니까 수동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주체적인 활동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런 변화가 좋았어요. 힘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독립할 용기가 생겼고, 그 후 바이크를 타는 친구가 생겼고, 영화를 만들었고, 책을 쓰게 됐어요. 이 모든 게 바이크 덕분이에요.
“바이크 타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느껴지는 특별한 편리함이 있다. 특히 1인 1바이크가 주는 독립적이면서도 자유롭고 평등한 느낌이 좋다”는 스탠스를 ‘부흥부흥’, ‘트바움’, ‘레인보우라이더스’, ‘치맛바람라이더스’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도 이어집니다.
제주에 내려오면서 지금은 한 발 뺀 상태예요. 하지만 ‘치맛바람라이더스’ 행사는 코로나가 물러가면 꼭 활성화하고 싶어요. 미국에 ‘베이브스 라이드 아웃’이라고, 미국 전역의 여성 라이더들이 한데 모여 다 같이 캠핑을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행사가 있어요. 2013년 첫 행사에 50명이 모인 걸 시작으로 2년 만에 미국과 캐나다 각지에서 2000명이 모이는 큰 이벤트가 됐는데, 그 내용을 알고 전율을 느꼈어요. ‘치맛바람라이더스’를 기획한 이유였고요. 다른 게 있다면 우리 행사는 여성 라이더 모임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라이더 모임이라는 점이에요. 차별과 혐오가 생기지 않게 다짐하는 것, 누구나 자신이 약자이면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다는 걸 다짐하고 시작하는 행사인데 첫해에 70명 넘게 모였으니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행사를 지속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바이크와 길과 음악을 바이크 여행의 삼합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8년의 여행 구력으로 꼽을 최상의 조합을 추천하신다면요?
워낙 여럿이 달리는 걸 좋아해서 평소엔 음악을 잘 듣지 않아요. 하지만 혼자 달릴 때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며 달려요. 굳이 삼합을 완성해보면 한강 근처 노들길을 달리면서 도시 야경과 함께 일렉트로니카 밴드 ‘이디오테잎’의 연주를 듣는 것. 굉장히 좋고, 굉장히 잘 어울릴 거예요.
바이크 여행 전과 후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어떤 걸까요?
삶의 무게, 제가 소유한 것들에 대한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소유한 물건이 가벼울수록 마음도 가볍고 편안하고 자유롭다는 걸 알게 됐어요.
코로나 이후의 여행법에 대한 생각, 혹은 계획 중인 바이크 여행이 있을까요?
유럽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팬데믹을 겪으면서 그런 마음이 줄거나 사라지는 중이에요. 호감이 식었다고 해야 할까. 지금 살고 있는 제주가 너무 좋아서일 거예요.(웃음) 서울에선 자연이 고파서 캠핑이 좋았는데, 여기에선 캠핑 욕구도 줄었어요. 자연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단, 가끔씩 육지 여행이 그리울 때가 있는데, 제주도는 길게 달릴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국도를 달리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 정도는 달려야 ‘바이크 탔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여행을 하고 싶어요. 아마 바이크 타는 사람들은 다 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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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 43번째는 바이크 이야기다. 스물아홉 살에 처음 15만 원짜리 중고 택트를 ‘내 바이크’로 갖게 되고서, 그 두 바퀴에 몸을 싣고 달리며 익숙한 풍경을 전혀 새롭게 느끼게 되고서, 속도와 힘을 장악하고 부리는 자유를 경험하고서, 바이크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느끼고서, 바이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