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이 책이 한 끼 식사가 되면 좋겠어요”

『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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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버릇이 있어요.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될 때가 많고요. (2021.07.12)


김혜진 작가는 2004년 판타지 동화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시작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여러 이야기들을 써 오고 있다. 오랜 시간 청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져 온 작가가 이번에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학교폭력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완벽한 사과는 없다』는 학교폭력이 끝나고 난 뒤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은 사건이 끝나도 계속되는 일상을 살아나가야 하는 청소년들의 상황에 주목하며, 인물들 사이 미묘한 관계 변화 및 사소한 갈등 요소들을 섬세하게 다뤄낸다. 작가는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양심, 용서, 사과와 같은 의미들을 소설 속에 녹여내며, 독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제3자는 어디까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작가에게 이야기를 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며, 어린이 청소년 독자는 어떤 의미일까? 이번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작가님은 동화와 청소년 소설, 단편과 장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폭넓은 이야기를 쓰고 계신데요, 작가님 안에서 계속해서 이야기가 나오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정말 그럴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버릇이 있어요.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될 때가 많고요. 저는 학생이었을 때 수학을 제일 좋아했어요. 수학은 답이 있잖아요. 그 외의 과목들은 ‘이걸 답으로 하자’ 하고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지선다 문제를 풀 때면 오답인 보기들이 정답이 될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곤 했어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는 이게 답일 수도 있어’ ‘윤리체계가 다른 사회라면 저것도 답일 수 있어’ ‘여기 지문에는 없는 정보가 더 있으면 답이 달라질 거야’ 이런 식으로요. 거기다 상상을 보태고 쌓으면 바로 이야기가 되는 거였죠.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든 확실한 주장이나 신념 같은 것을 보면 한 번씩 뒤집고 꼬아서 생각해 봐요. 정말 그럴까? 하고요. 그러다 보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인물들이 등장해서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죠. 『완벽한 사과는 없다』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이미 써 주셨지만 이 소설이 시작하게 된 사소한 계기 혹은 학교폭력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요즘은 이른바 ‘사이다 썰’이 많아 보여요. 불합리한 상황에 통쾌하게 대처하고 배로 갚아 주는 그런 스토리요. 그런 ‘사이다’ 스토리에서는 피해를 준 사람, 그러니까 갑질을 했거나 폭력을 저지른 사람은 되게 나쁘고 개과천선하지 못할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야 거리낌 없이 갚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서 의문이 생겼어요. ‘누군가 잘못을 했다면, 저렇게 당해도 마땅한가? 저 사람이 잘못을 한 것이 온전히 그 사람의 잘못인가? 그 사람이 태어나 자란 환경이나 당시의 상황을 헤아린다면 다른 답이 나오지 않을까?’ 또 잘못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얼마나 갚아 줘야 피해자의 속이 시원해질까에 대해서도 생각했고요. 

거기에 ‘내가 친한 사람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겹쳐졌어요. 보통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식이거든요. 그 사람 편을 들거나, 아니면 그 사람을 버리거나. 

저는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한 아이에 대해 ‘사이다가 아닌’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칼로 자르듯 정리할 수 없는 와중에서도 한 걸음씩 굳건히 나아가는, 진짜 강한 마음에 대해서요.  

자칫하면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균형을 세심하게 잡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습니다. 

『완벽한 사과는 없다』는 ‘어떤 양심은 귀뚜라미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피노키오와 지미니 크리켓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캐릭터 지미니 크리켓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지미니 크리켓은 1940년 판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에 나오는 귀뚜라미예요. 피노키오를 따라다니며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애쓰는, 피노키오의 ‘양심’을 맡은 귀뚜라미죠.

몇 년 전 제 아이가 6살쯤에 같이 그 애니메이션을 봤어요. 파란 천사가 지미니 크리켓에게 피노키오의 양심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아이가 저에게 “양심이 뭐에요?” 하고 물었어요. 어떻게 설명을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에서 피노키오도 똑같이 묻더라고요. 파란 천사는 “사람들이 듣지 않는,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가 양심이라고 대답했고요. 

그 장면이 마음에 깊이 남았어요. 목소리로의 양심, 귀뚜라미로서의 양심. 그렇게 언뜻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 영감을 주었죠. 언젠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앞서 말한 그런 상황들과 연결되면서 ‘가해자의 양심’이라는 주인공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이름은 이지민인데, 피노키오가 ‘지미니!’하고 귀뚜라미를 부르는 것에서 착안했어요. 지민이, 지미니, 그렇게요. 『완벽한 사과는 없다』는 충분히 큰 목소리가 되지 못했던, 그래서 자책하고 있는 인물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번 작품을 보면 등장인물 성별에 대한 정확한 지칭이 나오지 않아, 여러 가지로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작가님께서 의도하신 걸지 궁금합니다.

네, 의도한 것이 맞습니다. 요즘 들어 글을 쓸 때, 인물의 외모를 묘사하지 않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세세하게 묘사를 해야 독자가 이입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어요. 머리카락 길이나 키,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같은 것들이요. 2020년에 청소년 소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을 쓰면서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도리어 시원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완벽한 사과는 없다』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성별을 모호하게 두었어요. 독자들이 나름 성별을 상상하며 읽은 뒤에 한 번 반전시켜서 생각해 보길 바라고 있어요. 당연히 여자라 생각한 인물을 남자로, 또 그 반대로도요. 그러면 성격과 관계의 색깔까지 다르게 느껴질 텐데요, 그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게 또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남수 작가님이 그려 주신 표지도 그런 느낌을 잘 담고 있어서 좋아요. 표지의 세 사람은 모두 남자일 수도, 모두 여자일 수도 있고, 또 다를 수도 있죠. 

소설에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정말 많았습니다. 혹시 작가님께서 쓰시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으셨을까요? 

‘세상에 완벽한 사과는, 용서는 없을 것이다. 듣는 사람도 만족하고 하는 사람도 맘 편해지는 그런 완벽한 건 없다. 언제나 여지를 남기고 흔적과 실밥을,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로 지나간 발자국 같은 긴 흠집을 남긴다. 용서는 약속이 아니다. 결과가 아니다. 기나긴 과정이다. 우리는 그 긴 과정의 문턱을 겨우 넘었을 뿐이었다.’ (pp.159-160)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동시에 이야기가 계속 될 것임을 말해 주는 부분이에요. 예전에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식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특히나 십 대들의 이야기에서 그런 마무리는 기만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미묘하게 달라졌어요. ‘행복하게 산다’는 게 뭔지에 따라 그런 결말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상처받고, 넘어지고, 고통스러워도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매일 웃고 화창하고 좋은 일만 일어나는 지옥도 있을 거구요. 저는 이 책의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요. 흠집과 흉터가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 행복의 모양은 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꼭 있을 거예요. 희미하고도 뚜렷한, 희망이 있다는 것이요.

 


작가님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독자로 둔 이야기를 많이 쓰시는데요, 작가님에게 어린이, 청소년이란 어떤 존재일지 궁금합니다. 

저는 십 대 때 가장 복잡하게 생각하고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봤어요. 그래서 십대의 취향이나 사고를 단순한 것으로 치부하는 게 싫었어요. 제가 청소년 소설을 처음 썼던 2004년에는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거든요. 그에 반해서 내가 아는 십 대가 얼마나 복잡하고 깊은 존재였는가를 쓰고 싶었어요. 겉으로 봤을 때는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른 바 ‘평범한’ 십 대에게도 엄청나게 깊고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게 제 창작동기 중 하나입니다.

어린이에 대해서는 좀 다른데요, 처음 동화를 쓰기 시작했을 때 ‘상상의 독자’를 정해 놓고 쓰라는 충고를 읽었어요. 조안 에이킨의 『꿈과 상상력을 담은 동화쓰기』였을 거예요. 그때 저는 상상의 독자로 어릴 적 제 자신을 택했어요. 언제나 어린 시절의 내가 읽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를 써 왔지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지금 아이가 9살인데 아기 때부터 집 앞 놀이터에 거의 매일 나갔거든요. 놀이터에 모이는 아이들을 매일 보면서 동화를 쓰는 의미를 새롭게 찾았어요. 이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거예요. 저는 어린이들은 이야기를 밥처럼 먹고 자란다고 생각해요. 제 책이 괜찮은 한 끼 식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은 판타지 동화도 쓰셨는데요, 혹시 이야기를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차기작에 대해 들려 주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한동안은 청소년 소설 쪽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일주일의 학교』라는 가벼운 판타지 동화를 썼어요. 환상을 마음껏 오가는 이야기를 쓰니까 좋았어요. 비슷한 톤으로 『모자x모자』(가제)라는,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올해 안에 나올 예정입니다. 또 십 대부터 성인까지 읽을 책으로는 『고양이의 제단』이라는 추리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래 수수께끼 풀이를 좋아해서 본격적인 추리소설을 꼭 써 보고 싶었거든요.  

『완벽한 사과는 없다』에도 추리소설 같은 분위기가 있지요. 각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날 때 미묘한 파장이 생길 거예요. 독자 여러분이 열린 마음으로 그 파장을 받아들여 주기를, 손 모아 기대합니다.   

 


*김혜진

붉은 벽돌 틈의 이끼와 오래된 물건에 난 흠집을 좋아한다. 이야기가 거기 꽁꽁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작고 평범한 것에서 시작하는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1979년에 태어나 대학에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와 끝없이 펼쳐졌다가 휘휘 감아 펑 터트리는 이야기를 번갈아 쓰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과 조용히 숨겨진 마음에 자리 잡은, 결국엔 벅차게 펼쳐질 이야기를 찾아 문장으로 옮기고 싶다.

청소년 소설 『집으로 가는 23 가지 방법』, 『프루스트 클럽』,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오늘의 할 일 작업실』, 『밤을 들려줘』, 『가방에 담아요, 마음』, 『귀를 기울이는 집』, 그리고 『완벽한 사과는 없다』와 판타지동화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시리즈인 『아로와 완전한 세계』, 『지팡이 경주』, 『아무도 모르는 색깔』, 『열두째 나라』 등을 썼으며, 그림도 조금 그렸고 『지붕 위에서』를 비롯한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가족입니다』를 함께 썼다.




완벽한 사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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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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