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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결핍의 힘』 최준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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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동행해야 할 삶의 반려라 생각합니다. 어줍잖게 극복하려 하기보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결핍에 굴하지 말고, 때로 어루만지고 때로 맞서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곧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1.06.29)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한다. 교도소와 노숙인 쉼터, 미혼모 복지시설, 지역 자활센터, 공공도서관 등이 주된 활동무대이다. 『결핍의 힘』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결핍을 마주하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인생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한 학자가 세상에 건네는 이야기이다. 강연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그리운 어머니, 지금, 여기 우리네 삶의 풍경들,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책과 영화, 사회와 정치에 관한 단상과 비평 등이 엮인 글타래에는 우리가 좀처럼 보려 하지 않는 세상의 내면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결핍의 힘』 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몇몇 신문에 연재해 왔던 인문학 이야기와 시사 칼럼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운영하면서 느낀 단상 등을 한 데 묶었습니다. 3년 전 책고집을 차려놓고 열심히 인문 강좌를 진행하는 와중에 코로나19를 맞닥뜨렸습니다. 개인 강의도 줄줄이 취소되었고,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책고집 강연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와중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지역작가 출간 지원사업 공고가 떴기에 응모했습니다. 코로나 여파였던지 여느 해보다 많은 원고가 들어왔다는데, 운 좋게도 제 원고가 선정되었습니다. 가뭄 끝의 단비였습니다. 2000년 신춘문예(<문화일보> 시나리오 부문)에 이어 두 번째 당선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역시 책고집 강연으로 인연을 맺게 된 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이 운영하는 임프린트 북바이북에 원고를 넘겼고, 덕분에 소탈하고도 예쁜 책이 나왔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고 하셨습니다. 결핍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나요?

저 역시 결핍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이라는 결핍이 있었고, 사회에 나와서는 학위가 없다는 결핍이 있었습니다. 제 삶은 결핍에 굴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2005년에 노숙인 인문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결핍과 결핍의 만남이었습니다. 되레 반갑고 편안했습니다. 고향에 온 느낌이었달까요. 교수진 중에서 노숙인 수강생과 가장 잘 소통하고, 가장 잘 어울리고, 노숙인 인문학의 경험을 엮은 첫 번째 책(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인문과자연 펴냄, 2010)을 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제 눈에는 유독 누군가의 결핍, 남들이 보지 않는 결핍이 잘 보이나 봅니다. 신문 칼럼이라고 하면 으레 시의성이나 시사성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데 제가 쓰는 칼럼은 주로 사람 사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낸 글이 많습니다. 가령, 몇 년 전 수원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살해사건’(대부분의 언론은 ‘중국동포 우원춘 사건’이라는 프레임을 걸었지만)을 보면서도 피해자가 몇 개월 동안 외투를 갈아입지 않은 것에 주목하면서, 30여 년 전 야학 학생 시절 역시 대학생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은 외투 한 벌 사 입지 않던 미연이(가명) 누나를 떠올린다든지. 그렇게 노숙인 이야기, 여성 노숙인 이야기, 미혼모 이야기, 일용직 노동자 이야기, 삶의 지혜가 담긴 촌철살인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촌로의 이야기 등을 열심히 채집해서 글로 풀어냈습니다. 

결핍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동행해야 할 삶의 반려라 생각합니다. 어쭙잖게 극복하려 하기보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결핍에 굴하지 말고, 때로 어루만지고 때로 맞서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곧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님께서는 ‘거리의 인문학자’로 유명하신데요. 교도소와 노숙인 쉼터, 미혼모 복지시설, 지역 자활센터 등에서 강연을 진행하며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전하고 계세요.

등단 이후 짐짓 작가가 됐으려니 했습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뿐더러 작가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좀 더 차분하게,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이 이끈 첫 결과물이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부방에 원고료를 받지 않고 글을 보내주는 일이었습니다. 

마침 그곳 공부방을 운영하는 분이 성공회 신부님이었는데 그분께서 서울역 근처의 노숙인 쉼터로 발령 받으시면서 저에게 제안했습니다.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만들려고 하는데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고마운 제안이었지만 덥석 물을 수 없었습니다. 학위도 없는 제가 어떻게 교수로 불리는 자리에 갈 수 있겠는가 싶었던 거죠. 신부님이 한 번 더 제안하시더군요. 박사 학위 소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최 선생이 필요하다고.

2005년 9월 노숙인 인문학의 역사적인 첫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초긴장 상태에서. 그 뒤 4년간 한 학기로 쉬지 않고 강의했고, 노숙인에 이어 한 부모 여성 가장, 교도소 수형인, 미혼모, 장애인, 어르신, 탈북 청소년 등 강의 범위를 넓히며 지금껏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강연과 다양한 만남을 통해 어떤 것들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강연과 만남이 있을까요?

2006년 성프란시스대학 1기생 수료생 중 한 분이 말기암 판정을 받고 동부시립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책 한 권 들고 문병했습니다. 한 달 후 사망하셨는데 병원 측에선 연고가 없는 분이라 시신을 곧바로 화장터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상주를 자처했고, 성프란시스대학의 인문학 동료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장례 절차를 최대한 간소하게 진행했는데도 최소 몇백 만 원의 비용이 발생했습니다. 여차하면 혼자 총대를 멜 각오였습니다. 

뜻밖에도 부의함에 돈이 모였습니다. 무려 120만 원이었습니다. 문상객 대부분은 고인처럼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부의함에 넣은 꼬깃꼬깃한 돈이 무려 120만 원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꼬깃꼬깃 몇 번을 접었던 흔적이 역력한 돈이었습니다. 접고 접고 접어서 가장 작게 만들어 허리춤 속주머니 어디쯤, 혹은 바짓단 안쪽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돈, 인생의 마지막 비상금인 1천 원, 5천 원, 1만 원 지폐들이 부의함에 들어 있었습니다. 돈 때문에 울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노숙인도 사람입니다. 거리의 삶을 살다 죽은 동료를 위해 밤새 슬피 울고, 자기 인생의 마지막 비상금을 부의함에 넣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돈이 없다고, 집이 없고 잠자리가 없다고 사람이 아닌 건 아닙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인문학을 배워야 할까요?

인문학은 사람의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사람을 알기 위해 하는 공부입니다. 인문학은 답을 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질문하는 학문입니다. 사람을 알기 위해 질문하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입니다. 감히 제가 정의하는 인문학입니다. 노숙인 인문학을 통해 길어 올린 생각입니다. 몇 년 전 어느 여대생이 저를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동영상을 찍는다고 카메라를 거치해놓고 무려 1시간 30분이나 말을 시키더군요. 얘기 중에 노숙인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래, 대답했습니다. 노숙인은 잠자리나 돈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대생은 그 말 그대로 자막을 만들어 모 동영상 콘테스트에 출품했습니다. 대상을 받았습니다. 제목은 아마 노숙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노숙인은 돈이나 잠자리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없는 사람이다. 그건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다가가 사람이 되어주는 것,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책 제목처럼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이 되어주는 것, 그게 바로 노숙인 인문학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하는 인문학, 다른 영역에서 하는 인문학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사람을 알기 위해 하는 공부입니다.

작가님만의 인문학적인 사유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제 일의 거개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책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직접 만나면 즐겁고 책으로 만나면 진지해집니다. 둘 다 병행하며 삽니다. 제 인문학적 사유는 그 두 만남을 통해 형성되고 확장되고 심화됩니다. 둘은 때로 길항하지만 종래 사유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만남 중에서 가장 힘든 만남은 저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워낙에 바쁜 저를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기도 하고 보채보기도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 만남은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여행이라는 방식일 때 저 자신과의 만남이 수월한데 그게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기 때문입니다. 곧 저를 보다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가님이 활동하시는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은 어떤 단체인가요?

근 20년 전국을 돌며 인문학 강의를 합니다. 단발 특강일 때도 있지만 4주, 8주 연속 강의일 때도 있습니다. 강의 끝은 항상 아쉽습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라도 만나자고 만든 게 온라인 밴드 버전의 독서동아리 책고집입니다. 그게 어느덧 38곳이나 됩니다. 때로 오프라인으로 만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게 책고집 둥지입니다. 지자체에는 작은도서관으로 등록했고, 공식적으론 인문독서공동체라 칭합니다만, 우리끼리는 그냥 책고집 둥지라고 부릅니다. 

전국 3천여 회원들을 위한 책고집 둥지는 나날이 핫플레이스로 변신 중인 수원 장안문 근처에 있습니다. 여기서 연중 인문학 강좌를 엽니다. 첫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문학평론가 신형철 교수 등의 강연을 진행하면서 강좌마다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활기를 띠었지만 코로나 이후 다소 주춤합니다. 2년 전부터는 연중 과학강좌 진행을 모토로 성균관대 김범준 교수, 과학저술가 정인경 교수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과학 강좌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은 앞으로도 인문학의 향기를 지역사회에 퍼뜨린다는 신념과 전국의 책고집들과 책으로 교류하는 만남의 장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해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혹시 다음 책의 키워드도 ‘결핍’일지 궁금하기도 하더라고요. 

인기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나 봅니다. 출판사에서 종종 출간 제안이 옵니다. 공부 전문 출판사라는 닉네임을 갖게 된 유유 출판사와 글쓰기 관련 책을 내기로 했고, 그림책 전문 출판사인 책고래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내기로 약속해두었습니다. 개인적 바람은 건강을 잃지 않는 한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책고집 회원들과 보다 더 원활하게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9년 전 『결핍을 즐겨라』(추수밭)를 냈고, 지난달 『결핍의 힘』(북바이북)을 냈습니다. 이쯤 결핍을 너무 우려먹는 건 아닌지 살짝 우려됩니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닙니다. 저는 계속해서 결핍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니 결핍이라는 주제는 제 인생의 주제가 될 듯합니다. 다시 책으로 엮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핍에 대한 관심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준영(작가)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됐다. 2005년부터 노숙인, 미혼모, 재소자, 여성 가장, 자활 참여자 등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삶의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덕분에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프란시스대학(최초 노숙인 인문학 과정) 교수를 거쳐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전국을 떠돌고 있다. 2019년부터 경기도 수원시 장안문 근처에서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꾸려 운영 중이다. 2004년부터 경기방송, SBS라디오, MBC, 국악방송 등에서 다양한 책소개 코너를 진행했다. 지은 책으로 『최준영의 책고집』과 『결핍을 즐겨라』,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동사의 삶』, 『동사의 길』 등이 있다.



결핍의 힘
결핍의 힘
최준영 저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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