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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환 아나운서 “실패담을 기록한 이유”

에세이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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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범민이가 이 책을 보고 우리 모두 실패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때로는 지기도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다만 잘 지는 방법도 있다는 걸 배워간다면 아빠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아요. (2021.06.21)


꽤 오랫동안 글을 썼다. 아나운서이기 전에 책을 무척 좋아하는 독자였기에 4년 전 신뢰하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고 여러 차례 수정 끝에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이 나왔다. 전종환 MBC 아나운서의 첫 에세이 이야기다. TV에 꾸준히 등장했지만 한 번도 ‘스타 아나운서’가 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전종환. 그는 원래 기자 지망생이었다. 얼결에 본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하지 않았더라면 기자로 살았을 것이고, 실패를 기록한 책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 살 아들 ‘범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묶인 전종환의 에세이는 투박하면서 부드럽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적당한 감미료를 치게 되는데, 전종환의 글은 바짝 마른 천일염 같다. 습기가 없어서 읽는 내내 산뜻했다. 15년 근속 휴가를 하루 앞둔 날, 상암동 MBC 사옥 옥상에서 전종환 아나운서를 만났고, 제주로 떠난 뒤 짧은 이메일 인터뷰를 주고 받았다.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말하는 인터뷰이는 참 오랜만이었다. 



아쉬움이 조금도 없는 책

처음 원고를 썼을 때 가제가 “저는 실패한 기자입니다”였다고요.

맞아요. 출판사에 초고를 보내 드리고 김민정 난다 대표님을 만났는데 원고를 뽑아 오셨더라고요. 슬쩍 종이를 봤는데 이 제목이 펜으로 지워져 있었어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건방진 제목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내 실패를 규정하는 것도 오만한 일이 아닌가, 싶거든요.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MBC 파업이 끝났을 무렵이라서 기자로서 겪은 부조리함, 답답함, 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기록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글을 많이 고친 셈이네요.

원래 파업 이야기가 중심이었는데 거의 다 뺐어요. 그때의 뜨거웠던 감정을 책에 담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뜨거웠으니까요. 물론 일반적인 회사가 아닌 공영 방송사의 이야기지만, 저의 분노와 아픔이 주가 되는 책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파업 당시, 직후의 이야기들은 여러 선배들의 책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요. 

1부 제목이 ‘아나운서를 하면 마음공부 많이 하게 된다’입니다. MBC 최초의 대학생 아나운서가 됐지만 방송에 적응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리셨다고요. 현직 아나운서가 자신의 실패담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한 책은 아마도 처음 본 것 같아요.

아나운서들은 보통 아카데미 등에서 훈련을 받고 방송사에 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로 들어왔어요. 중간에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로 일했으니까 두 번의 처음을 경험한 셈인데요. 아나운서라는 직업 때문에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겠지만, 사회 초년생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요. 아나운서라서 실패담을 쓰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죠. 그리고 솔직하게 쓰지 않으면 이 책을 쓰는 의미가 없잖아요. 서점에 가면 매달 새로운 책들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여기에 한 권을 얹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있는 그대로를 내어 보이는 일이 두렵다면 글을 쓸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경쟁이 치열한 아나운서 시험에서 단번에 합격했지만 신입 시절 라디오 뉴스 현장에서 부장에게 한 말은 “죄송한데, 저는 아직 준비가 안됐습니다.(40쪽)”였다고요. 

제가 뛰어난 게 그리 많지 않은데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게 자기객관화 능력인 것 같아요. 언제 어디서든 자동적으로 자기객관화를 해보는 게 몸에 배어 있고요. 다만 “준비가 안됐다”고 말한 건 정말로 너무나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리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용기이거나 자기객관화의 성격은 아니었던 듯해요. 

아나운서로의 시작도 쉽지 않았는데, 7년차 때 기자로 직종을 바꾸셨어요. 그리고 또 6년 만에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오셨고.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에요. 

문지애 아나운서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직종 전환에 지원했어요. 당시 주말 아침 뉴스 앵커를 하고 있었는데, 이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의지까지 보이면서 면접을 봤고 최종 합격했어요. 결혼이 부서를 옮기는 데 영향을 안 줬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대학생 때부터 제 꿈은 기자였어요. 얼결에 본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덕분에 아나운서가 됐지만요. 우여곡절 끝에 기자가 됐고 기자로 파 업에 참여했지만 아나운서국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어요. 하지만 ‘보도국에는 네가 없어도 되지만 아나운서국에는 네가 필요하다’는 한 선배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어요.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돌아오게 됐고요. 

 


우리는 모두 실패할 수 있는 사람

첫 장을 열면 ‘범민에게’라는 문구가 보여요. 아들 이름을 새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쓰면서 ‘이 책을 누구한테 이야기하고 싶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들이 떠올랐어요. 새벽 방송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아들과 보내거든요. 이 다섯 살짜리 친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건 뭘까?를 생각해봤을 때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알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훗날 범민이가 이 책을 보고 우리 모두 실패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때로는 지기도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다만 잘 지는 방법도 있다는 걸 배워간다면 아빠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아요. 

지금도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또 실패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인생을 전쟁으로 비유한다면 이런 저런 도전과 거기서 발생하는 실패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뤄지는 전투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투만 보지 말고 전쟁 전체를 보고 살면 실패가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을 것도 같아요.

책이 나오기 전에 인쇄소도 직접 가셨다고 들었어요.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직접 보고 싶었어요. 오래 전부터 제 이름으로 된 책이 한 권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꿨었는데 이제 실현이 된 거니까요. 굉장히 떨리고 설렜죠. 

평소 난다 출판사를 각별하게 좋아하셨다고요.

네, 너무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제 책이 나와서 정말 여한이 없어요. (웃음) 다른 출판사랑 했으면 나를 더 잘 알아주지 않았을까? 내 의도를 더 잘 이해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하나도 없어요. 제 책을 편집해주신 분이 김민정 시인님인데요. 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근 3년간 지켜봐 주신 다음에 만든 책이니까요. 누구도 저를 이렇게 파악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아쉬움이 조금도 없어요. 

저자로서 요청한 부분은 없었나요?

표지에 그림을 쓰고 싶었고 형태는 각양장을 원했어요. 하지만 이우성 작가의 그림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고요. 그 외에는 편집자가 최선의 판단을 해주시리라 믿었어요.

3부의 두 번째 글 제목이 ‘문지애 남편 전종환입니다’예요. 문 아나운서는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저답게 나왔다고 했어요. 글도 그렇게 딱 오빠 그 자체인 것 같다고. 오빠가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이야기해줬어요. 문지애 씨도 곧 첫 책이 나오는데요. 시기를 맞춘 건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 비슷하게 나오게 됐어요. 저는 회사 내의 이야기를 썼고 문지애 씨는 회사 밖의 이야기를 쓴 셈인데, 아내는 방송사에 있을 때 워낙 스타 아나운서였기 때문에 결핍이 없었을 거예요. 좋은 의미로 저와는 다른 삶을 살았죠. 

약간의 경쟁 심리 같은 건 전혀 없나요?

그랬다면 연애부터 못했겠죠. 결혼 후 아내와 방송도 인터뷰도 함께 해본 적이 없어요. 각자의 길을 가자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원래 처음에는 아내 이야기를 책에 쓰지 않았는데, 글의 생기를 위해 아내 이야기를 썼어요. 만나고, 연애하고, 헤어지고, 결혼하며 오래된 애정에 우정이 스며 들고 그 틈에서 의리가 탄생하는 자연스런 과정들을요. 한때 이 책의 제목 후보 1순위는 ‘문지애 남편 전종환입니다’이기도 했어요. 



뻔한 답 같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15년 근속 휴가로 가족과 제주 한달 살이를 하고 계시죠. 요즘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한 달의 휴식시간이 있다 보니 무리하지 않고 하루 한 곳씩 즐기자는 마음으로 쉬고 있어요. 서울을 떠나 있지만 책을 내자마자 휴가를 온 거라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일지 관심이 많아요. 리뷰도 종종 찾아 보는데, 입사 동기인 오상진 아나운서의 리뷰가 인상적이었어요. 20대 중반 어린 나이에 만나 서로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이니까요. 서로의 시간과 성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책이 좋아야 책 읽어주는 아빠가 됩니다’ 글에서 ‘내 인생의 책 10권’을 소개하셨어요. 평소 즐겨 읽는 책은 무엇인가요? 제주에 오면서 들고 온 책도 궁금합니다.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러면서도 문장이 아름다운 책을 좋아해요. 고종석, 김훈, 신형철, 김규항 작가의 글을 좋아해요. 건축도 좋아하는 편이어서 서현 교수가 쓴 『내 마음을 담은 집』과 유현준 교수가 쓴 『공간의 미래』를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고요. 제주에 오면서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 오진영 작가의 『새엄마 육아일기』, 송일준 PD의 『제주도 한달 살기』를 들고 왔어요. 

문지애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유튜브 <애TV>에서 ‘문득 전종환’에서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있어요. 부모 독자들이 특히 전종환 아나운서의 이야기를 좋아하더라고요. 

처음엔 유튜브를 하는 게 너무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즐기게 됐어요. 요즘은 지애 씨가 많이 바빠서 업로드를 자주 못하고 있는데요. 독자 분들과 책으로 소통하는 재미가 있어요.

아들이 조금 더 큰다면 아빠 책을 읽겠죠? 아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나요?

제 책 제목처럼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뻔한 답 같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좋은 삶, 행복한 삶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책에도 나왔지만 고종석 작가가 쓴 말을 인용해보려고요. “당신의 삶이 은근한 쾌락으로, 그리고 그 쾌락을 감당할 만큼의 건강으로, 그만큼만의 돈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말을 훔쳐 오자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전종환(아나운서)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2011년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로 일했다. 2017년 6년 만에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생방송 오늘아침>과 <PD 수첩>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전종환 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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