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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연 “인문학 세미나, 잘하고 싶다면”

『세미나책』 정승연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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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는 텍스트로부터 유래한 ‘앎’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또 똑같은 ‘글’이 얼마나 다르게 읽히고, ‘나’는 어디까지 이상한 길로 갈 수 있는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2021.06.15)


『세미나책』은 세미나를 잘 이끄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정승연 저자에게 ‘세미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수평적 공유’의 공부 방법이다. 특히 대부분 길거나, 어렵거나, 아니면 길고 어려운 ‘인문 고전’은 세미나로 함께 읽는 데 최적의 책들이다. 이 책들을 함께 읽어내면 보통의 일상적 ‘친구’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동료의식’-우정이 생겨난다. 그렇기에 세미나에는 반드시 ‘관계’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며 저자는 세미나를 이렇게 정의한다. ‘공부와 우정이 결합된 배움의 장소.’

『세미나책』은 이러한 인문학 세미나에 관한 정의와 더불어, 세미나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방법으로 진행하며, 발제문은 어떻게 쓰고, 어떻게 토론해 가야 하는지, ‘세미나에 관한 모든 것’을 싣고 있는 책이다. 이 책과 함께 세미나를 시작해 보자. ‘혼자서 읽기’(혼독)로는 끝까지 읽기 힘들 뿐 아니라 소화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텍스트를 세미나로 함께 읽으면 ‘혼독’으로는 경험하지 못할 만큼 ‘읽기’의 밀도가 높아지는 걸 체험하게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미나책』을 쓴 정승연이라고 합니다. 낮엔 다섯살 딸을 키우는 일을 하고, 저녁엔 회사 일과 공부를 하다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하며 잠자리에 드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문 고전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두고 책을 쓰기는 했지만, (머리말에도 썼듯이) 저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다만, ‘학교 밖’에서 공부를 해온 경험이 약간 더 많을 뿐이지요. 어쩌면 그 점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가 가진 가장 큰 ‘다른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딱히 ‘공부’가 직업이 아님에도 인생의 가장 큰 의미를 ‘공부’에서 찾는 건 특이한 일이기는 하니까요. 제게 야망이 있다면, 그런 점이 더는 ‘특이한 점’이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왜 썼느냐 하면, 그 ‘야망’의 실현에 한 발이라도 더 가보자는 의미에서랄까요? 누구라도 ‘인문 공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세미나팀을 하나씩 둘씩 만들어 주신다면, 제가 참가할 수 있는 ‘세미나’도 더 늘어나는 것일 테고, 그렇게 된다면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에 저도 나름의 기여를 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모든 사람을 ‘배우는 사람’으로 규정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의 ‘배움’과 책에서 말하는 ‘공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먼저 ‘배움’에 관해서 이야기 하자면, 생각건대 ‘배움’이란 거의 모든 생명체의 기본 특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식물’도 무언가를 배우고 심지어 자기들끼리 소통을 하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살아간다’는 말이 생명을 가진 것들을 표현하는 특유의 말이라면 이 말은 곧 ‘배워간다’로 바꿔도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이 이제 다섯 살 된 딸을 먹이고, 입히고, 어린이집 보내는 일이다 보니 ‘인간’이 어떻게 발달해 가는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 친구의 지난 4년을 돌아보니 놀랍게도 인간의 행동 중에 그 어떤 것도 배우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없더라고요. 간단하게는 자기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행동조차도 수천 수만 번의 반복 끝에 숙달되는 것이었고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죠.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거나, 직장을 옮기면 어쨌든 거기서도 온갖 새로운 것들을 익혀야만 합니다. 행동양식부터 나아가서는 그 사회의 공통적인 정서까지 새롭게 익혀야 하죠. 그러니까 이건 좋든 싫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갑니다. 그런 ‘일반화된 배움’으로부터 의식적인 성찰로까지 가는 것이죠. 모든 ‘인문학’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는 없을 테지만, 상당수의 ‘인문학’이 이러한 ‘성찰’과 연관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앞서 말한 ‘배움’이라면 ‘공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성찰해 가는 것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부’가 어떤 인간을 특유의 ‘인간적’인 차원으로 이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마저도,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성찰해 봐야 하고요. 그러니까 일상적인 배움에서 한 발 더 내딛으면 ‘배움’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공부할 것’이 됩니다. 책에서 제가 말했던 ‘공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인문학 공부'의 방법으로서 ‘세미나’의 장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인문학에 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연구자가 아니라 (이른바) ‘일반인’이라면 ‘세미나’를 빼고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나아가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세미나’를 하면 좋은 점은 책을 끝까지 읽는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등등의 여러 좋은 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말들로는 표현되지 않는 의미들이 있습니다. 

요컨대 ‘세미나’는 단지 읽고 있는 텍스트가 제공하는 ‘정보’를 더 잘 획득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세미나’에서는 텍스트로부터 유래한 ‘앎’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또 똑같은 ‘글’이 얼마나 다르게 읽히고, ‘나’는 어디까지 이상한 길로 갈 수 있는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건 그러니까 나 혼자 어떤 텍스트를 읽는 것보다 ‘나’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줍니다. 바로 그점 때문에, 어쩌면 그게 ‘공부’가 목적하는 바이기 때문에 ‘세미나’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미나를 시작하면 꼭 발제문을 써오라고 합니다. 발제문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나요?

책에도 썼지만, 다른 모든 의미를 다 빼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발제문’은 ‘말하게 만드는 글’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텍스트를 읽어야 하고, 발제문과 같은 ‘글’도 써야 하지만, 정작 ‘세미나’를 움직이는 것은 ‘말’입니다. 어느 한 사람만 그 텍스트에 대해 떠들고 있다면 그건 ‘강의’지 ‘세미나’가 아니게 됩니다. 그러니까 ‘발제문’은 세미나 참가자들의 입을 열게 하는, 비교적 목적인 분명한 글입니다. 그래서 거기엔 무엇보다 ‘질문’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텍스트를 읽었는지, 어떤 의문을 품었는지, 어떤 의문에 대해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무엇인지 등이 들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발제문’을 쓸 때는 나의 발제문을 토대로 세미나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생각대로 세미나가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발제문’을 완성해 가는 데에는 그 생각이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쓴 발제문을 가지고 세미나를 한다면, 단지 ‘글’ 자체를 완성하려고 쓴 발제문과는 분명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확신합니다.

세미나에서 모두가 텍스트의 논지에 동의하고 이해하고 긍정하고.... 그래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럴 때면, 의견이 뚜렷하게 나뉠 때보다 더 난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모두가 논지에 동의하고, 그 논지를 이해하고, 긍정한다고 할지라도 어딘가에는 ‘불균형’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걸 찾아내서 그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가면 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세미나’라는 형식 자체에 숙달되어 있지 않다면 그걸 찾아내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럴 때면 아예 반대로 생각해 봐도 좋습니다. 나는 비록 텍스트의 논지에 동의하지만, 만약 이걸 비판하겠다고 마음먹고 읽는다면 어떤 점을 비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죠. 일종의 ‘사고실험’입니다. 그렇게 ‘비판점’을 찾아내서 그걸 바탕으로 세미나를 진행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이해’가 ‘오해’였다는 게 밝혀질 수도 있고, 나의 ‘이해’와 다른 사람의 ‘이해’ 사이의 차이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참가자들 간의 ‘의견통일’보다 ‘불균형의 발견’이 세미나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아빠의 탄생』에 이어서 두 번째로 쓰게 된 책입니다. 두 책의 주제가 완전히 다른 듯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네, 당연하게도 두 책은 표면상으로는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루는 책입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두 책 모두 ‘나’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배우는 일'은 우리 삶의 바탕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의식적으로 되집어가면서 자신을 갱신해 나간다면 그게 바로 ‘공부’인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세미나’를 하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저에게는 완전히 다른 일이기도 하면서 그다지 다른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두 가지 다 언제 괴로운 일이 튀어나올지 모르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희열 가득한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처음 '세미나'를 하려는 사람들이 도전해 볼 만한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일단, 모든 것이 완전히 처음이라면, 이미 만들어진 세미나에 들어가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사실은 그게 가장 빨리 ‘세미나’라는 형식에 익숙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여건상 그게 어렵다면, 함께 세미나할 사람들과 ‘공부함’과 관련된 책들을 놓고 세미나를 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고미숙 선생님의 『호모 쿵푸스』『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같은 책도 좋고,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같은 책도 좋습니다. 그 외에도 저는 ‘인문학 공부’와 관련된 여러 책들이 있으니 그 중에 ‘인문학자’가 쓴 책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래도 무언가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하신다면, 책에도 쓴 것처럼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책’들을 텍스트 삼아 공부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 책이라면 아무래도 ‘철학사’가 좋겠죠.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처음에는 ‘소설’을 피하시는 게 좋다는 점입니다. ‘소설’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소설’을 수용하는 방식이 ‘감상’에 그쳐온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칫 세미나 시간 내내 ‘감상’만 나누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정승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으나, 끝내 졸업은 ‘안’ 했다. 따라서 여전히 자신을 ‘학생’(배우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가장 큰 배움을 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인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육아’다. ‘인문학’을 통해 ‘화를 잘 내는 법’을 배웠다면, ‘육아’를 통해 ‘화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요즘은 두 가지가 섞여서 ‘화를 낼 때와 안 낼 때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걸 진심으로 믿는다. 그래서 여전히 ‘세미나’를 만들고, ‘세미나’ 참가 신청을 하고, ‘세미나’를 한다. 어느 철학자라 하더라도 일단 그 사람의 책을 읽고 나면 금세 팬이 되고 마는 자타공인 ‘펄럭 귀’로서, 여전히 ‘공부’할 것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 이제 다섯 살 된 딸이 장차, 거리낌 없이 제 갈 길 가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다.

다 커서 만난 다른 ‘학생’ 친구들과 함께 『다른 아빠의 탄생』과 『다르게 겪기: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며 읽는 책들』을 썼다.



세미나책
세미나책
정승연 저
봄날의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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