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푸름 “같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나푸름 저자 인터뷰
소설집에는 같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며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한바탕 사건이 진행된 후에도 여전히 전과 같이 외롭고 쓸쓸하며 어찌할 줄 모르죠. 저는 그 부분이 제 소설과 삶의 닮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2021.06.02)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나푸름 작가의 첫 소설집 『아직 살아 있습니다』가 다산책방의 ‘오늘의 젊은 문학’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상 뒤에 숨은 불안 심리를 색다른 시선으로 그려낸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속한 관계와 위치에서 갈증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처럼 밥을 먹고 출근하고 교제에 힘쓰지만 어딘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은 멈출 수 없다. 그러한 불안을 직면하기 위해 익숙한 길을 과감히 벗어나 만나는 낯선 풍경. 『아직 살아 있습니다』는 루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바로 마주려는 이들의 이야기다. 신예 작가의 상상력뿐만 아니라 서스펜스의 묘미까지 보여주며 우리를 매료시키는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자연스레 연결되는 질문들을 나푸름 작가와 함께 나누어보았다.
첫 소설집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책이 나온 소감과 근황이 궁금해요.
작가가 자신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내는 일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모두에게 오는 기회는 아니에요. 더욱이 저는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스스로의 글에 대해, 그리고 제가 하려는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조금 더 길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고민의 결과를 드디어 독자분들께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일의 특성상 매월 마감이 있고, 거기에 맞춰 주 단위로 계획표를 짜서 움직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되게 계획성 있게 사는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계획으로 짜기 때문에 부담은 없습니다. 청탁받은 글도 쓰고 있고, 청탁받지 않은 글도 쓰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재밌는 책이 많아서 읽기에 치중하는 날도 많은데,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소설집의 표제작 『아직 살아 있습니다』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실리콘 몸체에 접속해 일하는 직장인들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그립니다. 장례까지 치른 동료 ‘박 대리’가 ‘시스템 오류’로 인해 죽은 후에도 출근해 있는 상황에서 박 대리가 정말 그인지 아닌지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씁쓸했는데요.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대면하길 바랐던 장면이나 질문이 있을까요?
박 대리나 그가 처한 상황은 분명 독특하나, 제가 소설에서 주목한 부분은 화자와 주변인들입니다. 박 대리는 비어 있는 존재라서 그의 존재도, 그의 가치도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정해집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람처럼 보이기에 동정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처럼 군다는 이유로 혐오해요. 그건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 소설은 한 직원이 어떤 일을 계기로 회사에서 외면당하고 배척당하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일들은 그 모습만 달리할 뿐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많아진 상황인지라 표제작이 더욱 밀착되어 다가왔습니다. 소설을 쓰실 때 주로 어떤 계기로 모티브를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일상 대화에서 얻기도 하고, 책 속에서 얻기도 합니다. 제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가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종종 맥락 없는 말이나 생각을 한다는 건데요, 그래서 대화의 방향이 때때로 ‘A’에서 ‘B’로 가는 게 아니라 ‘A’에서 ‘D’로 가곤 해요. 대부분의 생각은 단상에 그치지만, 아주 가끔은 쓸 만한 아이디어가 생기곤 하죠.
『아직 살아 있습니다』 는 어떻게 하면 출근을 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됐어요. 친구가 통화 중에 출퇴근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토했는데, 다음 날이 월요일이었거든요. 출근이라는 게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모되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그저 회사에 도착했을 뿐인데도 지치는 날이 있잖아요. 그래서 한 생각이 우리가 조종할 만한 몸체를 회사에 두는 건 어떨까 하는 거였어요. 먹지도 않고 화장실도 갈 필요 없이 기능만 존재하는 몸이라면 회사에서도 긍정적으로 고려해보리라 생각했거든요.
소설집의 아홉 작품 중 네 편에 초현실적 배경이 그려집니다. 위험하거나 불법적인 경험을 의뢰받은 기버(giver)가 그 기억을 판매하거나(「메켈 정비공의 부탁」), 사고로 잘려나간 손의 감각이 되돌아오고요(「윌슨과 그의 떠다니는 손」). 작품을 쓰시면서 이런 독특한 상상을 하게 된 출발점이 무엇인가요?
기억이 물품처럼 취급당하거나, 잘린 손이 돌아온다거나 하는 이야기 자체는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나 이야기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기억을 소거해주는 업체가 등장하기도 하잖아요. 이미 죽은 몸이 돌아온다는 건 좀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죠.
그렇게 보면 두 소설은, 제가 <이터널 선샤인>과 좀비 영화의 팬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볼 수 있겠네요. 다만 이러한 소재를 활용하며 주목했던 부분은 조금 다를 수 있겠죠. 「메켈 정비공의 부탁」은 기억 자체가 나를 구성하는 부분인 동시에 완전히 낯설어질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기억장애나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을 보면 실제로도 가능한 일이잖아요.
「윌슨과 그의 떠다니는 손」은 환상통(phantom pain)의 개념에서 출발한 소설인데, 저는 온전히 나만 느낄 수 있는 고통에 주목했어요. 고통 자체는 오직 나의 것인 게 당연하지만, 신체적인 고통은 외면적으로 그 상처가 보이기에 타인도 내가 느낄 고통에 대해 예측하거나 공감할 수 있어요. 다만 윌슨의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임에도 그의 돌아온 손 자체가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기에 정신적인 고통처럼 여겨지죠. 그래서 주변인들은 윌슨의 고통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죠.
부부, 연인, 직장 동료, 아버지와 아들 등 수많은 인간관계가 소설에 등장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잠재된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못하고 갈등하는데요. 이들 중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 그리고 가장 풀어내기 어려웠던 인물은 누구인가요?
가장 다루기 어려웠던 인물이라면 「목요일 사교 클럽」의 주인공을 꼽겠습니다. 50을 바라보는 여성이 주인공인데, 그 정도의 나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 자신이 나이를 먹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도 있었어요. 노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무섭기도 하고, 실감할 수 없기도 했죠. 그래서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을 관찰하기도 했는데 어머니와 대화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나이가 든다는 건 결코 적응되지 않을 일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죠.
저와 가장 닮은 인물이라면 아무래도 「중국인 부부」에 등장하는 남편이지 않나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특정 시기의 저라기보다는 여러 시기의 제가 겹쳐져 만들어진 인물 같기도 해요. 제가 품었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의 온상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사실 가장 정이 안 가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연민이 가는 인물이기도 해요. 자기 연민에 빠져 소중한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면서도 위기를 헤쳐나갈 용기는 없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소설 속 남편이 겪는 지금이 결국 그의 삶의 부분으로 지나가게 되리라 믿어요.
이번 소설집에서 해외 정착에 힘쓰는 한인 부부가 백인 이주민들에게 ‘중국인 부부’로 오인받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주류 문화에 들어가려 하지만 소외되고 마는 분위기가 지금의 한국 사회와도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는데요. 이 인물들에게 어떤 길을 열어주고 싶으셨나요?
사실 저조차도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 싶어요. 지금 그들이 겪는 문제가 후에도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고요. 아마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겠죠. 부부는 앞으로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고요.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죠. 그들은 이민에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올 수도,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삶의 부분이지 삶의 전부는 아닐 거예요. 저는 그들이 서로의 온기에 기대 밖을 바라보던 한밤중을 오래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결국 그들이 의지해야 할 대상은 서로일 테니까요.
『아직 살아 있습니다』의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려요.
소설집에는 같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며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한바탕 사건이 진행된 후에도 여전히 전과 같이 외롭고 쓸쓸하며 어찌할 줄 모르죠. 저는 그 부분이 제 소설과 삶의 닮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겪는다고 해도 삶도 사람도 바뀌기는 힘들잖아요. 다만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어쩌면 우리 스스로를, 혹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요. 그리고 타인과 내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는 타인에게 좀 더 친절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책을 읽으며 공감을 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제가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을 가고 제가 겪지 않은 일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그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했으니까요. 저의 이야기가 독자분들께도 그런 경험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푸름 1989년에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로드킬」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 『아직 살아 있습니다』를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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