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 소설가 이서영, 하나가 되어 우주로 날아가는 꿈
SF소설집 『유미의 연인』 / <월간 채널예스> 2021년 5월호
타인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 꿈이 예쁘고 쓸모 없는 꼬리뼈처럼 환상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2021.05.07)
사랑하면 이해하고 싶고, 한 편이 되어 싸워주고 싶다. 이서영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유미의 연인』이 ‘사회파 로맨스 SF’가 된 건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가 아닐까? 김보영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말했듯, 이서영 작가는 현재 한국 사회파 SF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작가다. 소설의 배경도 우리의 현실만큼이나 문제가 많다. 배달노동자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가게는 하루 아침에 철거된다. 그럼에도 소설은 무겁게 가라앉는 대신, 사랑의 힘을 믿고 행동하는 등장인물을 그린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달달한 ‘로맨스’다.
이서영 작가는 예술고등학교에서 글쓰기로 상을 받던 ‘백일장 키드’였다.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며 데모 현장을 다녔고, SF소설의 매력에 빠졌다. “제가 다닌 대학교가 공대에 특화된 곳이었어요. 교양 과목으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를 수강했는데 과학 기술에 대한 글을 과제로 제출하면서 처음 SF소설을 썼어요. 너무 재밌어서 작품을 찾아 읽다가 한국 SF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럼 나도 써보자 하고 여기까지 온 거죠.”
‘사랑’은 그의 첫 소설집 『악어의 맛』부터 이어져 온 키워드다. 어떻게 써도 결국 로맨스가 된다는 그는 사랑이야말로 이해와 해결의 가능성처럼 보였다고 했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께하겠다는 건 알고 보면 참 이상한 행동이니까요.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기꺼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 사랑 같아요.”
소설에서 사랑을 지닌 인물들은 기술에 소외되고 약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지만,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동시에 비열한 면도 있는 보통의 존재다. “배제된 사람을 굳이 그리려 했다기 보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사람들을 살면서 조금 더 많이 봤기 때문에 소설로 나오는 것 같아요.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복합적인 존재잖아요. 가난한 사람이 곧 착한 사람은 아니죠. 그럼에도 배제의 경계에서 확률적으로 더 보여지는 비열의 양상은 있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사람이 재벌 같은 비열함을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꼬리에는 뼈가 있어」에서 장애를 가진 예린이도 뾰족한 면이 있고, 명훈이도 그 나이대 남자애 같은 나쁜 면이 있죠. 복합적인 양상 안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심이 있어요.”
첫 소설집 후기에서 작가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사랑하는 일’에 대해 썼다. 하지만 세상은 좋은 면 만큼이나 나쁜 면이 공존한다. 어떻게 전체를 사랑하면서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하지 않을 방법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싫어하는 면이 있다고 해서 그 부분만 따로 떼어놓을 수 없으니까요. 늘 제가 사랑하는 면은 싫어하는 면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아침마다 돈 때문에 싸우는 앞집 부부의 목소리에 잠을 깼어요. 그 소리를 들으며 ‘아, 아침이구나’ 하면서 일어나곤 했는데요.(웃음) 그게 불편했지만, 동시에 저는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이 서로 삶에 개입하면서 살아가는 풍경을 사랑하기도 했거든요. 제가 그 풍경을 사랑한다면, 아침의 고성은 거기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뭔가를 총체적으로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기술에 의해 소외되지만, 역으로 그 기술을 활용하여 가능성을 찾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엄마는 센서가 인식되지 않는 약점을 이용해 시스템을 파괴하려 하고(「센서티브」), 개발자는 노동자를 통제하는 알고리즘을 역으로 작동시켜 전태일을 현재에 불러온다. (「전체의 일부인」) “나쁘게 사용되는 기술을 역으로 활용한다면? 하는 질문을 자주 던져요. 기술도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죠. 특히, 인간관계에 기술을 활용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 지 이야기하고 싶어요.”
기술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에서 그는 ‘우리는 이해할 능력도 없지만, 오해라도 해야 부대끼며 살 힘이 생긴다. 수년간 오해와 이해의 사이에 기술이 환상처럼 비집고 들어가는 소설을 써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타인과 나의 생각을 생물학적으로 연결하면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SF적인 상상을 많이 했어요. 현재로서 도달한 결론은 ‘이해할 수 없다’인데요. 그럼에도 그 꿈이 예쁘고 쓸모 없는 꼬리뼈처럼 환상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의 판타지니까 소설로 나오는 것 아닐까요?”
「유미의 연인」에서 서로를 깊이 사랑한 연인은 기술을 이용해서 생각을 완벽히 결합시킨 채 우주로 날아간다.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꿈이 환상처럼 펼쳐지는 장면이다. 작가는 거기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덧붙인다.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꿈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장소제공: 컴즈커피)
*이서영 SF와 판타지를 쓴다.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는 SF를 발표해왔고, 소설 외에도 노동과 젠더가 밀접하게 뒤얽히는 지점들을 파고드는 글을 자주 쓰고 있다. 도시 빈민의 삶을 짊어지고 이십대 내내 시위를 하다 보니 빈곤과 노동에 심하게 집착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여러 시공간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썼다. 기술이 어떤 인간을 배제하고 또 어떤 인간을 위해 일하는지, 혹은 기술을 통해 배제된 바로 그 인간이 기술을 거꾸로 쥐고 싸울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여성의 경제적 위치를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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