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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철 “그림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뀐 사람이 바로 나”

『내가 사랑한 화가들』 정우철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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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시대일수록 감성을 자극하는 느린 취미가 필요해요. 그림 감상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들을 채워주는 최고의 취미 아닐까요?”(2021.04.19)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시대, 불과 몇 달 전의 유행도 금방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바로 2021년이다. 일을 할 때도, 쉴 때도 트렌드와 유행을 좇으며 온갖 매체와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은 한없이 건조해지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일상에 생기와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도슨트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정우철 도슨트는 그림 감상을 추천한다. 미술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실 수 있는 최고의 취미라는 것이 그의 생각. 먹고사는 데 아무 쓸모도, 효용도 없는 예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예술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 아닐까?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셨는지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전시해설가, 도슨트 정우철입니다. 관객들이 전시를 더 다채롭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쉽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듯 안내하는 전시해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를 찾는 많은 분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림의 분석이나 정보도 중요하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인생을 궁금해한다는 점이었어요. 저 또한 화가의 삶을 알고 감상할 때 그림이 더 재미있어지는 경험을 했고요. 제가 느낀 재미를 전시장에서 만나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도슨트님의 하루 일과는 어떨지 궁금해요. 도슨트계의 아이돌, 전시관의 피리 부는 사나이, 미술계의 열정남까지 많은 별명을 갖고 계신데 아무래도 전시가 많이 줄었잖아요.  

쉬는 날에는 대부분 집 앞 카페에 가요. 미술책을 한 권 들고 가서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마시며 창가 자리에서 읽곤 하죠. 요즘은 다시 전시회가 오픈하고 있어서 조금씩 바빠지고 있어요. 언택트 강연이나 인터뷰도 많아졌고요. 

사실 엄청나게 특별한 일과는 없어요. 가고 싶은 전시회가 있으면 혼자 조용히 찾아 관람하기도 하고요. 여러 매체에서 저를 소개할 때 붙여주시는 별명들은 사실 조금 쑥스러워요.  

당연히 미술 전공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전공이라 하셔서 좀 의외였어요.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미술계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학부 시절 영화를 공부할 때도 그림을 같이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영화와 그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거든요. 지금도 많은 영화감독들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거나 구도를 참고하는데 저도 그렇게 공부했죠. 

사실 제 어머니가 화가셨는데, 미술계로 전향하게 된 데는 집안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미술해설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졸업 후 교육 영상 회사에 취업했는데 처음에는 만족했어요. 촬영을 하면서 강연도 듣고, 쉬는 시간에 교수님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 관리자가 돼야 했고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닌 일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그때 생각했죠. ‘지금이 내 인생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더 행복한 일을 찾고 싶어.’ 그래서 무작정 나왔고, 한동안은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온갖 일을 다 했어요. 막노동까지 했는데 의외로 그때 느낀 것도 많았고 배운 점도 많았어요. 그래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행사 관련 일을 제일 많이 했고, 그중에는 엑스트라 출연도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개인 전시장을 지키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전시장 스태프로 지원했는데, 그때 어느 도슨트가 관객들 앞에서 멋지게 작품 해설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저게 내가 찾던 일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죠. 그런데 도슨트가 되려면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다음 전시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도슨트로 오기로 했던 친구가 잠수를 타는 바람에 저에게 기회가 왔어요. 이때다! 싶어 냉큼 잡았죠. 

전시 해설을 하는 것과 책을 쓰는 건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첫 책을 쓰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 어떤 점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는지 들려주세요.

솔직히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저는 오래 앉아 있질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움직이면서 말로 설명하는 건 참 편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글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몇 달을 하다 보니 조금씩 저만의 노하우가 생겼죠. 제가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거장이라고 우러러보는 화가들도 막상 살아온 시간을 들여다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그림 한 점에 몇 백 억씩 한다는 화가들도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좌절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미래가 불안해서 울기도 했고요. 그런 사연을 알고 나면 위로도 되고 힘도 나요. 그래서 미술 정보를 소개하기보다 이들의 삶을 들려주고 싶었고, 책에도 그런 내용을 많이 담았습니다. 

총 열한 명의 화가들을 소개하셨는데 이들 중에서도 도슨트님께 각별한 화가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베르나르 뷔페’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뷔페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줬거든요. 사실 뷔페 전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도슨트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투잡도 고민했어요. 일은 좋은데 수입이 너무 적었거든요. 

‘해설 일을 하면서 쉬는 날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다른 일을 하자. 그런데 그전에 일단 뷔페 전시에 다 걸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해보고 결정하자.’ 그래서 저만의 해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일본의 뷔페 미술관까지 갔어요. 5일 동안 뷔페 그림을 보며 공부했고, 한국에서는 뷔페를 다룬 책을 구할 수가 없어서 일본 책을 사서 직접 번역도 했죠.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수입을 여기에 다 썼지만, 이렇게 공부하다 보니 뷔페의 인생이 너무나 멋지고 감동이었어요. 제가 느낀 이 감동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하려고 정말 열심히 해설을 했고, 다행히 전시회도 대성공했죠.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뷔페 그림은 지금도 핸드폰에 저장해두고 자주 들여다봐요.

사실 예술이 먹고사는 데 필수 요소는 아닌데 왜 즐겨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어렵다는 인식도 있고요. 이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맞아요, 그림을 안 봐도 먹고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틀린 말도 아니고요. 그런데 한번쯤은 이런 생각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왜 인간은 그토록 예술을 갈망할까? 왜 전시회는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부담 없이 방문하면 좋겠어요. 재미없거나 잘 모르겠다 싶으면 금방 나와도 괜찮아요. 처음엔 지루할 수 있지만 계속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에 쑥 들어오는 그림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예요. 어느 순간 내 안에 감춰두었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하고 행복했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렇게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그림 감상이 여러분의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과 전시장에서 만나게 될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지금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요. 그럴수록 고독과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만큼 취미 정도는 느리고 감성적인 시간으로 채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많은 분들과 미술관에서 함께 그림을 보며 대화하고 싶어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서요. 




*정우철

‘한 폭의 그림 같은 스토리텔링’, ‘화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전시를 봤을 뿐인데 화가의 자서전을 씹어 먹은 기분이다.’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입문 5년 만에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시해설가. 특히 EBS 클래스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알못’들에게 그림 감상하는 재미를 선사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내가 사랑한 화가들
내가 사랑한 화가들
정우철 저
나무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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