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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를 지키는 괜찮은 죽음, 가능할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괜찮은 죽음』 번역자 고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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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조금은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꼽아볼 수 있는 요소로는, 너무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그리고 본인이 어느 정도 자신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 ‘괜찮은 죽음’이 뭘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지요. (2021.01.27)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괜찮은 죽음』은 죽음이 임박해서가 아니라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임을 말하며,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일곱 단계로 나누어 내용을 확인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우리가 생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가능한 한 건강하고 기분 좋게 몸의 기능을 유지하고, 불안하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계별 안내가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현재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인 고주미 역자가 번역을 맡아, 국내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료 용어를 사용하여 세심하게 옮겼으며 각 챕터마다 ‘우리나라에서 알아두면 좋은 팁’도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 팁에는 국내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법부터 호스피스, 가정방문 의료 서비스, 치매나 장애에 대비한 지정대리인 청구 제도 등에 대해 현재 국내의 정보를 상세하게 담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를 위한 <내 마음의 인터뷰>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고, 병상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힘겹게 통과하는 이들의 마음을 함께 마주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분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일을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럴 때 있죠, ‘누가 좀 나에게 물어봐줬으면…’ 싶을 때요. 내가 굳이 먼저 말 꺼내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 먼저 나에게 말 걸어줬으면 할 때. 병원에서 특히 위중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절실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보통 환자들과는 한 번 이상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당사자가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려 해요. 어려운 상황 앞에서는, 가까운 가족보다 때로는 제삼자가 더 편할 수 있고 의외로 당사자는 이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도 정작 그 생각들을 가족들과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내고 나서 많이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때 그 말을 꼭 했어야 하는데…’인데, <내 마음의 인터뷰>를 통해서든, 어떤 형식이 됐든, 조금이라도 담아놓았던 부분들을 풀어낼 수 있다면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헤어지는 건 감당하기 힘든 오래 가는 상처가 되는데, 예방할 수 있으면 좋은 거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괜찮은 죽음에 대하여』 제목처럼 '괜찮은 죽음'은 어떤 죽음을 의미할까요?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먼저, ‘괜찮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조금은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꼽아볼 수 있는 요소로는, 너무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그리고 본인이 어느 정도 자신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 ‘괜찮은 죽음’이 뭘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지요.

그간 말기 환자들과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요한 정보가 참 멀리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맞닥뜨리는 주요 지점들 중에 취직, 결혼, 출산, 이사 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데, 정작 목숨과 관련한 투병, 죽음, 노화의 문제로 고민스러울 때는 물어볼 곳도, 확인해 볼 곳이 의외로 찾기 힘들다 느꼈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할 때는 일단 찾아볼 수 있는 참고도서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미국서 출간된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출판사에 제안을 하게 됐습니다.

'웰다잉'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왜 삶 속에서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할까요?

역시 ‘웰다잉’이라는 것이 자신에겐 어떤 의미인지 한번 짚어봐야겠지요? 젊거나 건강하신 분들에게는 사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칙칙한 얘기 같기도 할 것이고요. 그리고 사실, 오늘 하루 살아가기도 버거운데 웰다잉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하지요. 결국 죽음의 고비 근처까지 직접 가보거나 아니면 주변의 누군가로 인해 심각하게 생각할 계기가 주어지면 그때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웰다잉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 준비를 할 수 있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그다음은 각자의 성격과 상황이 다르듯, 다양한 갈래 길이 나오겠지만 결국은 육체적, 정신적 측면과 사회적, 개인적(인간관계)측면의 준비가 있겠습니다.

왜? 라는 질문에는, 준비 없이는 죽음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본인이 준비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가족에게 돌아가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미리 말하거나 준비해놓지 않으면 원치 않은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고 남은 이들로선 더더욱 힘든 부분들이 생깁니다.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거나 생존해 있는 것이 고통뿐인 상태에서도 현대의 의료기술로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뒤로 미룰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아픈 곳도, 걱정되는 것도 없는 사람에게는 낯선 이야기로 들릴 텐데요. 이런 분들에게는,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좋고, 해두면 마음 편안하고, 마음이 편하면 지금의 삶이 더 견딜 만하다 정도로 저는 답해보겠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호스피스'에 대해 잘 모릅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내가 죽어가는 것이 확실할 때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과 같은 의료기술로 내 죽음을 연장하기(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내가 살아있을 때 미리 내 생각을 밝혀두는 법적인 문서예요. 외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법이 만들어져서 19세 이상 누구나 서명할 수 있는 서류입니다. 나중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이만 중단해달라고 자녀나 부모, 배우자가 요청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후에 남은 가족 간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당사자가 미리 준비를 해놓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습니다. 

호스피스는 여명이 6개월 정도 남은 사람이 남아있는 삶을 고통 없이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의료 서비스로, 입원하면 입원형 호스피스, 병원 외래나 일반병동에서는 자문형 호스피스, 집에서 요청하면 가정형 호스피스로 나누어집니다. 보통 호스피스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부정적으로 인식하시는데, 남은 삶의 질 향상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전문인력(호스피스 의료진,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등)이 돌봄을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를 위한 곳인데, 담당의사가 적극적으로 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말기 암 환자들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나 몇 주를 겨우 앞두고 호스피스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럴 경우 삶을 정리할 시간이란 게 정말 너무 짧지요. 호스피스가 ‘삶의 질’을 목표로 한다는 것만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삶의 변화가 있다면?

이 질문에는 ‘오늘 하루에 감사한다’가 답이 돼야 할 듯한데, 사실 죽음을 준비한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해도 막상 닥치면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꼽아보자면, 삶이 좀 더 선명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자기 삶의 우선순위가 뚜렷해지고 좀 더 당당하고 용기를 낼 수 있죠. 후회할 일을 덜 만들게 되고요. 여행으로 치면, 최종 목적지를 알면 그만큼 중간 경유지도 더 즐기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못했지만, 이 세상을 뜰 때는 최소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스타일대로 정리할 수 있다면 나와 남은 가족과 지인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실은, 오랜 질병이나 급작스러운 질환으로 죽음을 저만치 예감하는 몸이 아픈 사람들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성인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은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대비라는 것이 불가능할 때가 많고, 내가 어떤 형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지는 상상이 안 되지만,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삶이나 직업, 배우자처럼, 죽음에 대해서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면, 오늘의 삶이 더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꼭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거 정말 중요한데’ 싶었던 포인트가 있으셨나요?

병원에서 중한 치료를 앞둔 분이라면, 그 치료가 정확히 무엇을 위한 것인지, 치료 후에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등 이 책에 소개된 질문들을 꼭 한번 살펴보고 힘들어도 담당의사와 소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의사선생님에게 다 믿고 맡긴다고 하지만, 의사로서는 치료가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지 평소 환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즐겨하는지까지 확인하기 힘듭니다. 

또한 올해 2월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가능해진 지 3년째가 되는데요, 많은 분들이 이 서류 하나만 작성해두면, 이후의 모든 과정이 순조로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법이란 게 새로 만들어졌다고 실제 현장에서 바로 매끄럽게 적용되지만은 않습니다. 따라서 서류 작성 시, 주의사항을 충분히 확인해봐야 합니다. 작성 후에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알리고요. 무엇보다 지금 사전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도 병원에서 원치 않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해당 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해요. 현재 3차병원에는 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그 외의 병원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는 요양병원에는 윤리위원회가 없는 곳이 많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법적인 서류를 갖추고 나서는, 그 의사가 반영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 담당주치의나 해당 기관에 확인해봐야 합니다. 개인이 용기를 내서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의료 시스템 어디서든 원활하게 작동하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법안이 시행되서 서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이전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거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우리는 죽음을 뉴스,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에서 정말 많이 접하지만, 실제로 죽어가는 이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고인의 시신을 만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양한 이미지와 머리로만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요. 이 책을 집어보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마도 어떤 필요나 이유가 있을 텐데, 먼저 이렇게 정보를 찾아보는 것은 참 잘하고 계시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큰일 앞에서는, 많은 경우 더 큰 뉴스가 기다리고 있을까 봐 외면하거나 미루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도리어 점점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도 어렵고, 어디서 무얼 물어볼 수 있는지도 때로는 너무도 힘들게 느껴지지만, 뭘 모르는지, 뭘 알아야 하는지를 차근히 정리해보는데 이 책이 어느 정도 방향은 제시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본인의 건강상태 때문이든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문제로 고민이 되든, 혼자 다 끌어안지 말고 주변의 누군가 나눌 수 있으면 의외로 조금은 짐이 더 가벼워집니다. 그 누군가가 뜻밖의 사람일 수도 있고, 기관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고, 모임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이 되건, 짐을 나눌 수 있는 대상도 이번 기회에 같이 한번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찾아보고 알아보는 만큼, 분명히 세계는 확장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고주미(번역)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마쳤다. 대기업, 언론사 등에서 오래 일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를 위한 [내 마음의 인터뷰]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 병상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힘겹게 통과하는 이들의 마음을 함께 마주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옮긴 책으로는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공역)』, 『평화로운 전사』, 『웹 경제학』 등이 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괜찮은 죽음에 대하여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괜찮은 죽음에 대하여
케이티 버틀러 저 | 고주미 역
메가스터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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