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비소설] 우리가 감동하거나 고발해야 할 단어 - 『김지은입니다』 외
<월간 채널예스> 12월호
비소설이라는 너른 범주에서 다섯 권의 책을 선정했다. 출간 전부터 크게 주목받았던 『김지은입니다』, 호프 자런(『랩 걸』!)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제외하면 뜻밖의 발견이거나 의외의 선전을 벌이고 있는 책들이다. (2020.12.07)
서른 즈음에 냅을 읽은 나는 이제 냅이 죽었을 때의 나이를 넘어섰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만 60세였을 냅은 40대에도 50대에도 좋은 글을 썼을 것이다. 중노년 여성의 삶을 누구보다 솔직하게 들려줬을 것이다. … 나는 그 글들이 필요하다. 냅이 30, 40대에 쓴 글에서 내가 30, 40대의 주제를 발견하고 변화의 단초와 공감의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냅이 50, 60대에 쓴 글이 있었다면 나는 그 글에 내 50, 60대의 삶을 포개어 또 무언가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없다.
『명랑한 은둔자』, 옮긴이의 글 중에서
비소설이라는 너른 범주에서 다섯 권의 책을 선정했다. 출간 전부터 크게 주목받았던 『김지은입니다』, 호프 자런(『랩 걸』!)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제외하면 뜻밖의 발견이거나 의외의 선전을 벌이고 있는 책들이다. 공통점이라면 뇌가 아니라 심장을 자극한다는 것이며(돈을 소재로 하는 책과 생태학 책마저도), 또한 모두 여성 저자가 썼다. 그중 한 권은 철저하게, 다른 몇 권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분명하게 여성의 권리와 그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더 해빙』은 공저자인 홍주연이 상위 0.01% 부자들의 구루인 이서윤을 만나기 위해 유럽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두 사람이 나눈 대화와 만남 전후 홍주연이 경험한 변화가 시즌제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40만 부 기념 에디션을 출간하는 등 2020년 가장 많이 팔린 책 『더 해빙』의 출발은 한 통의 투고 메일이었다. 발신자는 홍주연으로 미국 펭귄랜덤하우스에서 선(先) 출간, 전 세계 20여 개국 판권 계약을 마친 후였다고 한다. 유명하지 않은 저자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비밀은 언제나 궁금하다. 황은희 수오서재 편집자는 독자의 고백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서울에서 진행한 북토크에 참여하기 위해 부러 부산에서 찾아온 분이었어요. 자신은 부모님보다 번듯하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집을 사고도 전셋집에 살고, 손빨래를 하며 살림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책을 읽고 세탁기를 사고 살고 싶은 집을 구했답니다. 북 콘서트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조금 울었습니다. 책이 삶을 바꿀 수 있더군요.”
비소설 분야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김지은입니다』는 2020년 3월 5일 초판 1쇄를 찍고, 8월 5일에 8쇄를 찍었다. 이두루 봄알람 편집자가 말하는 이 책이 한 일은 다음과 같다. “권력자를 고발한 피해자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그가 겪은 피해를 인정하기가 왜 그토록 힘든지, 그럼에도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책을 읽는 모두가 알게 하자. 무엇보다 모두가 책 앞으로 소환되어 그의 목소리를 듣기 바랐다. 김지은 씨가 겪은 위력은 어디에나 실재하며, 여기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이 책은 지난한 승리의 기록이며, 저자가 사회에 주는 자산이다.”
『명랑한 은둔자』가 나오기 전 캐럴라인 냅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더 많았다. 나희영 바다출판사 편집자가 냅의 글을 처음 본 곳은 김명남 번역가의 홈페이지였다. “2017년 말 선생님이 올린 두 개의 글을 읽고 작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주로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여성이 겪는 세상의 답답함에 대해 썼으며, 특히 『명랑한 은둔자』에는 더 자유롭고 더 즐겁고 더 자신다운 사람이 되는 깨알 팁을 잔뜩 담았다. 냅은 42세가 되던 해 4월에 폐암 진단을 받았고, 5월에 결혼했고, 6월에 죽었다. 김명남은 이 책을 위해 유례없이 긴 옮긴이의 글을 썼다. 이 글의 마지막 문단 첫 줄은 이 책이 여자들에게 읽힌 이유를 말해준다. “적어도 그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독자들에게, 냅은 친구로 느껴지는 작가다.” 우리 모두에게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절실한 한 해였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의 원제는 ‘More’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더’ 먹고 일하고 소모해온 기록이 담겨 있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책은 많다. 호프 자런의 이 책이 유난한 사랑을 받은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는 이유는 말할 수 있다. 이번에도 역자의 변을 빌린다.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검증을 거쳐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는 과학자나 빼어난 통찰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지해내는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있다. 호프 자런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통해 이 두 가지 역할을 한 번에 해주었다.” 김영사 과학팀은 친환경 종이에 녹색으로 글을 새기고, 표지에 나카무라 다카시의 그림을 얹었다. 예쁘지만 불편한, 전운을 드리우는 풍경이다.
『배움의 발견』 한국판은 우연의 산물이다. “전임자가 에이전시 프로포절을 보고 공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소녀가 명문 대학에서 수학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의 미국 버전으로 보고 계약했다고 해요. 그런데 아니었죠.”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는 출간 1년 후인 2019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오른다. 책은 출간 즉시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90주간 베스트셀러 최상단을 지켰다. 극단적인 모르몬교도였던 아버지, 픽션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의 연속…. 많은 이들이 이 베스트셀러의 메시지에 주목하지만 김택권 열린책들 편집자가 전하는 킬링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 “캐릭터들이 선명해지는 순간부터 도저히 원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일단 펼치면 500쪽까지 단숨에 읽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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