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지금 우리는 왜 베네치아로 떠나야 하는가?”
『삶이 축제가 된다면』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베네치아야말로 우리 여행의 가장 이상적인 목적지가 될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별명은 ‘세상의 다른 곳(Alter mundi)’입니다. (2020.10.29)
베네치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푸른 하늘과 더 푸른 바다가 떠오르고, 곤돌라에서 노 젓는 사공의 아리아가 귓가에 맴도는 도시. 카사노바의 고향이자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의 배경이 되었으며 화가 벨리니와 티치아노가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떠난 도시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나의 로망, 로마』 를 통해 이탈리아 로마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던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가 이번에는 『삶이 축제가 된다면』을 통해 베네치아를 소개한다. 순간을 만끽하고, 열렬히 노래하고, 삶에 뜨거운 찬사를 보내는 이 감각과 열정의 도시에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또 다른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단순히 곤돌라에 올라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아닌, 진정한 인문 기행을 즐겨보자.
오랫동안 르네상스와 서양 고전에 대해 강의를 해오시고, 대중을 위한 인문학 책을 다수 집필하셨는데요. 어떻게 여행과 인문학을 결합하는 색다른 시도를 하게 되셨나요?
모든 여행은 사람을 성숙시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언어, 문화와 다른 곳으로 가면, 우리는 현지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지리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지에서 주위를 더 살펴야 합니다. 그곳의 시차에 빨리 적응해야 하고, 현지의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고(잘못하면 배탈이 납니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현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행은 교육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의 다름을 통해 배우는 것이지요. ‘그랜드 투어’가 바로 그런 여행을 통한 교육이었지요. 저는 ‘그랜드 투어’의 일환으로 여행지에서 그 지역과 연관된 인문학 고전이나 예술을 공부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 지역과 연관된 인문학 고전 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가진 생각의 깊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의 다름에 접근하게 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런 생각들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다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여행의 목적입니다.
전작 『나의 로망, 로마』 에 이어, 시리즈의 두 번째 도서를 출간하셨습니다. 로마에 이어질 도시로 베네치아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베네치아야말로 우리 여행의 가장 이상적인 목적지가 될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별명은 ‘세상의 다른 곳(Alter mundi)’입니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베네치아와 비슷한 풍경을 찾을 수 없습니다. 로마 제국 말기, 석호 위에 말뚝을 박아서 삶의 터전을 이룬 사람들이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다닐 수 없습니다. 걷거나 배를 타야 합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동방 비잔틴 문화를 만나고, 북유럽의 고딕 양식 건물과 마주치게 되고, 직선의 르네상스와 곡선의 바로크가 공존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다른 생각이 존중받는 곳이 베네치아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시는, 로마나 피렌체가 아니라 베네치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베네치아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곤돌라를 타고, 가면을 쓰고 카니발을 즐기는 것이 베네치아 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베네치아에는 특이한 거주 환경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그 좁은 골목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베네치아의 진면목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서 단테, 괴테, 보카치오, 몽테뉴, 모차르트, 찰스 디킨스, 헤밍웨이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베네치아에서 성찰과 성숙을 이루었다고 하는데요. 베네치아에 어떤 특별한 힘이 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요?
베네치아는 통일 국가 이탈리아에 편입되기 전에 강력한 도시 국가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공화국’이라고 자부할 만큼,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습니다. 베네치아가 해상 무역으로 지중해를 주름잡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실크로드와 유럽을 연결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베네치아의 국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16세기 초반에는 교황청, 프랑스, 독일, 스페인이 모두 연합군을 결성해서 베네치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동방의 여행자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의 모험은 베네치아 상인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무역활동을 펼쳤는지 잘 보여줍니다.
또한 베네치아는 예술의 도시였습니다. 로마가 스페인에 함락된 이후(1527년), 베네치아는 르네상스의 중심도시가 되었습니다. 천재 예술가들이 시대의 혼란을 피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공화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인재가 몰려든 것입니다. 또한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1차 십자군 원정의 성공 이후부터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십자군들은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성지를 향해 떠나는 유럽의 마지막 항구가 된 것입니다. 또 베네치아는 세계 최초의 관광 가이드북에 제일 먼저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여행 명소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베네치아를 다녀가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의 다른 곳’ 베네치아를 더 문화적으로 풍성하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저는 제 책에서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쳐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베네치아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는, ‘생각의 생각’을 펼쳐보았습니다.
흔히 베네치아 하면 수상 도시, 카니발의 도시 같은 화려한 겉모습을 떠올리지만,『삶이 축제가 된다면』 에서는 그보다 훨씬 깊은 베네치아의 역사가 소개될 뿐 아니라 문학, 회화, 건축, 음악 등 예술적인 면모도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의 마음속 깊이 남은 한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저는 발다사레 롱게나가 건축한 살루테 성당을 가장 뛰어난 베네치아의 예술작품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발다사레 롱게나는 베네치아 토종 건축가였습니다. 그보다 앞선 시대의 건축가 산소비노나 팔라디오 등은 모두 외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롱게나는 베네치아 출신으로 고향의 예술적 아름다움에 대해서 누구보다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가 건축한 살루테 성당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우선 이 건물은 토목공학적으로 매우 훌륭합니다. 개펄에 참나무 말뚝을 박아 넣어 기초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거대한 건축물이 지금도 튼튼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그의 기초 토목공사가 완벽했음을 증명합니다. 성모 마리아가 쓴 왕관과 닮은 원형 건물도 인상적입니다. 카날 그란데(대운하)를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건물이기 때문에 주변에 장식을 덧붙이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방향에서 보나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거대한 원형 건물을 건축한 것입니다.
건물의 정신도 고귀했습니다. 흑사병이 휩쓸고 갔던 베네치아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전염병을 퇴치시켜 준 하늘의 섭리에 감사드리기 위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그래서 롱게나의 살루테(Salute) 성당은 그 이름의 의미대로 ‘감사’와 ‘건강’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혹시 책에 포함되지 않은 베네치아의 명소 중 독자들에게 추가로 소개하고 싶으신 곳이 있을까요?
지면의 여유가 있었다면 베네치아 인근 도시를 순례했을 것입니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기차로 30분 정도만 가면 파도바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단테 시대에 인문학자들의 요람으로 알려졌던 유명한 파도바 대학이 있던 곳입니다. 지금도 이탈리아 최고의 대학이 있습니다. 베네치아 출신이었던 카사노바도 이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했습니다. 기회가 되어 베네치아에 가신다면 꼭 파도바를 방문하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특히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오토가 그린 <스크로베니 채플의 벽화>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화려한 청금색 하늘이 천장에 그려져 있고, 최초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던 지오토의 작품이 건물 내부 전체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명작입니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를 통해 로마와 베네치아를 독자들과 함께 여행하셨는데요. 앞으로는 어떤 도시로 떠나실 계획이신가요?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 다음 책은 “보석처럼 빛나는 이탈리아 소도시 순례”입니다. 이탈리아 3대 도시(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를 제외한 소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주제는 “여행,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고향에 있는 집일 것입니다.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 저의 최종 목적지는 서울입니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지요.
보석처럼 빛나는 이탈리아 소도시를 먼저 소개하고, 그곳에서 살다가 객지로 떠났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예컨대 14세기의 인문학자 페트라르카는 고향 아레초를 떠나 프랑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페트라르카는 고향 아레초로 돌아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는 체르탈도 출신이었는데 나폴리에 가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체르탈도로 귀향하던 보카치오는 어떤 생각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왔을까요?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다음 여행지에서는 시라쿠사를 떠났던 에우리피데스, 카프리로 돌아왔던 하드리아누스 황제, 라벤나에서 결국 고향으로 가지 못했던 단테, 로미오가 고향 베로나에서 도피해 왔던 만토바, 페루자에서 전쟁을 마치고 아시시로 돌아온 성 프란체스코, 우르비노에서 <궁정론>을 썼던 카스틸리오네 등의 이야기보따리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결국 우리가 베네치아를 여행하고 나서 “인생은 다르게 살 수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로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은 뒤 어떤 다른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라시나요?
축제와 같은 삶입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우리 모두는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대단한 진보를 이룬 것 같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할 백신을 아직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잠시 편리함을 주지만, 영속적인 행복을 제공해주지는 못합니다. 열심히 돈을 모아도 결국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하고, 저와 여러분이 남긴 재산을 계산하기 위해서 세무서 직원들이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순간을 향유할 수 있는 행복에 몰입하는 것이 어떨까요?
요즘 100년을 넘게 사신 연대 출신 교수님들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인생, 뭘 남겨야 한다구요? 그런 거 없습니다. 제가 백 년쯤 살아보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사세요!” 그렇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100년을 살아보신 분들의 조언이니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저 자신부터 매일 매일 축제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베네치아 사람들에 대한 책을 쓴 것입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처럼 축제와 같은 삶을 매일 살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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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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