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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괜찮아 경험'이 중요한 이유 (G. 영화감독 이길보라)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53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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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엄청나게 고민하고 걱정할 때 엄마아빠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 경험’ 이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거든요. ‘그냥 해봐’라는 단문이 ‘아, 맞다. 이렇게 걱정해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직접 가서 봐야지’라는 굉장히 단순한 삶의 철학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2020.09.17)


아빠가 매일같이 내게 하는 말이 하나 있다. “괜찮아, 경험.”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시무룩해하면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경험.” 휴학을 하고 매일같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도 아빠는 말했다. “괜찮아, 보라 경험.” 어느 날, 임플란트를 하고 턱이 잔뜩 부은 사진을 찍어 보냈을 때도 아빠는 똑같이 말했다. “괜찮아, 경험.” 내가 무엇을 하든,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돈을 버리든 시간을 버리든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보라야. 괜찮아, 경험.” 엄마와 아빠의 그 밑도 끝도 없는 유쾌함과 모든 것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나는 그 말에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부모로부터 삶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지. 

이길보라 감독의 에세이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감독 이길보라 편>

오늘 모신 분은 “계속 시끄럽게 해보고 말하고 부딪치고 껴안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입니다.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와 <로드스쿨러>, <기억의 전쟁>을 만들고 책 『길은 학교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쓰신 분이죠. 오늘은 신작 에세이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로 <측면돌파>를 찾아와주셨습니다. 이길보라 감독님입니다.

김하나: ‘보라’라는 이름이 예쁜 이름이기는 하지만 아주 독특한 이름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길보라’가 되면 아주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길보라’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셨나요?

이길보라: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만들 때부터 ‘이길보라’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아마 2012~2013년부터 그 이름을 썼던 것 같은데. 그 영화가 저희 엄마아빠의 반짝이는 세상을 딸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담은 다큐멘터리인데요. 그 영화를 찍으면서 ‘나에게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이야기, 그러니까 길경희와 이상국의 이야기가 모두 나에게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 양성 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길보라’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김하나: ‘이길보라’라고 하면, 약간 이름부터 이기고 들어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것도 어디에서 봤던 것 같은데 ‘이 길을 보라’ 하는 느낌도 들고. ‘이길보라’라고 하면 되게 인상적이 되는 것 같아요. 부모님에게서 온 것들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계속 인식하는 것도 있고, 또 가족과의 관계가 아주 돈독한 것 같아요. 특별히 그런 살가운 분위기 같은 게 있으신가요? 

이길보라: 그렇죠.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되게 많이 해주셨고요. ‘되게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엄마아빠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고 딸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은 어떤 그런 것들이 잘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랬던 것 같고요. 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봤을 때는 아무래도 부모님이 수어를 사용하시는 농인이시다 보니까 저희 가족 안에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안에서 잘 뭉쳐야 된다, 이 밖으로 나가면 세상은 너무 힘들고 세상은 우리를 차별하고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니까 이 안에서만큼은 우리가 똘똘 뭉쳐야 된다’라는 분위기 같은 것들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냥 단순하게 저희 엄마아빠가 저를 엄청나게 사랑해주셨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김하나: 한국에서는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미명 하에 품안의 자식으로 싸고도는 일도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납니다. 부모님이 처음에 많이 말리기는 하셨지만 어쨌든 떠난다는 딸을 보내주셨잖아요. 그것도 놀라운 것 같아요. 

이길보라: 그렇죠. 

김하나: 왜 처음에 ‘나는 학교 그만두고 여행을 가야겠어’라고 생각하셨는지? 중학교 때는 학생회장도 하시고 표창장도 많이 받으셨는데,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던 ‘우리 보라’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던 걸까요?

이길보라: 그래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화도 내셨던 것 같은데요. 저희 아버지도 사실은 제가 여행을 혼자 가겠다고 하니까, 학교를 그만둔다는 포인트에서 화가 나신 건 아니고, 인도를 어떻게 여자 혼자 가냐는 포인트에서 너무 화가 나고 걱정이 되셔서 감정을 주체를 못해서 난생 처음 제 뺨을 때렸던 적도 있고요. 저는 너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기숙사에 돌아가기를 반복했었는데. 그때 저희 엄마아빠는 그때까지 그들이 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보라를 믿자’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보라가 혼자서 더 큰 세상을 보겠다고 여행을 준비했고 그를 위해서 여행계획서도 꼼꼼히 작성했으니까, 그리고 그에 따르는 여행 비용도 혼자서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까, 그러면 보라를 믿어보자’라고 나중에는 포기 반 믿음 반으로 수락하셨던 것 같아요. 

김하나: ‘코다’이시죠? ‘코다’가 뭔지 설명을 조금 해주실까요?

이길보라: ‘코다’는 CODA, 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 아래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 말이고요. 이 코다 안에도 굉장히 많은 정체성들이 있어요. 

김하나: 그렇더라고요. 『우리는 코다입니다』라는 책을 읽어봤더니 코다 안에서도 다채로움이 있어서 아주 흥미롭더라고요. 부모님이 농인이신데, 보통은 사람들이 농인과 청인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을 쓰면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제가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농인이라는 단어와 청각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어감이 아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길보라: 영어에서는 ‘Deaf’라고 쓰는데, 영어를 쓰는 농인들은 대문자 D를 써요. ‘deaf’로 쓰는 게 아니라 ‘Deaf’. 우리가 Korean, American이라고 쓰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Deaf라고 쓰는데요. 병리학적 관점으로 어떤 손상의 개념으로 청각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인 수화언어와 우리만의 문화인 농문화를 가지고 있는 농인이다’라는 관점에서 농인이라고 말하는 거죠. 

김하나: 농사회와 농문화에 대한 자긍심 같은 게 배어있는 말이 농인이라고 봐도 될까요?

이길보라: 그렇죠. 그리고 스스로 ‘나는 농인이야, 이제부터 나를 농인으로 불러줘’라고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농인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청각장애인은 사회에서 부여하는 이름인 거잖아요. 그런데 농인은 자기가 ‘나는 농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나를 농인으로 호명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농인이 되거든요. 그게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김하나: 농인이라고 하는 말과 수어에 대한 세계,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너무 큰 게 깨어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주 거대한 레이어가 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음성언어가 주로 쓰이는 곳에서 음성이 아닌 수어로 몸짓을 통한 언어로 아주 다채롭게 수많은 것들을, 때로는 음성언어보다 더 많고 아름다운 것들을 충분히 표현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회이고, 내가 그것을 장애라고 인지하지 않고 나는 이런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고 인지하는 게 얼마나 큰 세계가 열리는지... 그게 너무 멋지게 느껴졌어요. 

이길보라: 저도 그런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저한테도 있는 것 같아요. 

김하나: 그렇다면 그 순간이 ‘청인 부모님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차이가 있구나’를 느꼈을 때인지, 아니면 ‘코다라고 하는 말이 세상에 있구나, 이런 사람들이 나 말고도 이렇게 많이 있었어’를 깨달았을 때의 차이였는지?

이길보라: 후자와 또 다른 순간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전자 같은 경우는 나의 부모님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느꼈던 건 특별히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수어로 옹알이를 했고, 엄마가 저한테 수어를 가르쳐줬고, 나중에 어린이집에 가서 음성언어를 두 번째로 배웠고, 그때 어린이집에서 제가 말이 꼴찌였고... 

김하나: 그때 이미 수어는 일등이었는데. 

이길보라: 그렇죠, 너무 잘해서 엄마가 천재라고(웃음). 왜냐하면 너무 빨리 언어를 익혀서 그때부터 통역을 했으니까...

김하나: 의사소통의 기준으로 본다면 수어로 의사소통을 아주 빨리 잘하는 아이였는데 음성언어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늦된 애가 돼버리는 것도, 정말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이길보라: 맞아요. 그때 할머니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이 엄청 걱정했다고 하는데, 막상 저희 엄마아빠는 그래서 걱정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말 잘하는데? 수어 잘하는데? 이렇게 우리는 잘 소통하는데?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김하나: 영화(<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보신 분들이 엄마아빠의 표정 이야기 많이 하시죠?

이길보라: 네, 엄청 좋아하시고. 되게 많은 포인트에서 팬이 되시는 것 같아요. 이상국의 팬이 되기도 하고 길경희의 팬이 되기도 하고. 

김하나: 맞아요. 두 분 표정이라든가 밝음에서 오는 에너지 같은 걸 많이 받으셨겠어요. 

이길보라: 굉장히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정말 유쾌한 거. 

김하나: 어떻게 보면 그 유쾌함이나 몸을 사용하고 표정을 아주 밝게 짓는 게, 수어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더 강화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이길보라: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모든 농인이 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 같고요. 엄마아빠의 경우는 선천적으로 유쾌한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유쾌하게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김하나: 그런 부모님 특유의 긍정성이라든가 유쾌함 같은 것들을 은연중에 보고 굉장히 많이 습득하지 않으셨을까, 그런 게 지금까지 이길보라라고 하는 사람이 행보를 걸어오는 데 굉장히 좋은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길보라: 굉장히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엄청나게 고민하고 걱정할 때 엄마아빠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 경험’ 이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거든요. ‘그냥 해봐’, ‘가서 봐’, ‘가서 만져봐’, ‘가서 먹어봐’, ‘갔다 와’라고 하는 단문들이 ‘아, 맞다. 이렇게 걱정해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직접 가서 봐야지, 직접 가서 만져보고 먹어봐야지’라는 굉장히 단순한 삶의 철학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이길보라 저
문학동네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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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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