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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특집] 존 버거, 온전한 모습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 열화당 이수정

<월간 채널예스>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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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온전한 모습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갔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존 버거 같은 작가에게는 알맞은 접근이었다고 생각해요. (2020.08.11)


‘성공한 덕후’가 한 번은 해야 할 일이 성지 순례라면, 열화당 이수정 실장은 이미 성공을 거뒀다. “파리 외곽에 있는 작업실이었죠. 포도주를 많이 마셔서 그날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요. 그래도 작별의 순간만은 또렷해요. 정말이지 꽉 안아주셨거든요.”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해왔다. 아마도 이 정도가 존 버거에 대한 가장 짧고 건조한 소개일 듯하다. 열화당은 2004년, 김우룡 번역가의 제안으로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을 낸 이후 스물세 권의 존 버거를 출간했다. 그 사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열화당의 첫 번째 존 버거,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한국어판에 작가는 이런 글을 써서 보내왔다. “The book is as much yours as mine.”
열화당이 소설을 낸다는 게 어색했던 시절을 건너 존 버거의 소설들을 차례차례 출간했다. 그는 누구보다 탁월한 이야기꾼이므로.  

와, 존 버거라니! 거장과의 첫 작업,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겠지요?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한국어판을 존과 아내 베벌리에게 보낸 후 받은 메일이 생각나네요. “이제야 이 책이 제대로 출판되었군요”라고 쓰여 있었어요. 두 번째 책을 선정할 때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표작들이 먼저 떠올랐지만, 첫 얼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첫 장편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1958)를 골랐죠. 이후 베벌리는 새로운 소식이 생길 때마다 열화당에 알려왔습니다. 

지금까지 총 스물세 권(『그들의 노동에』를 각 권으로 할 때)의 존 버거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종류의 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잘 팔리는 작품만 골라서 내기보다는 ‘작가의 온전한 모습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갔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존 버거 같은 작가에게는 알맞은 접근이었다고 생각해요. 작가와 가족이 이런 저희 마음을 알아봤기에 가능했고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는 의지도 필요했습니다. 2쇄를 15년 후에 찍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김우룡 번역가가 처음을 열어주셨고 강수정, 장경렬, 김현우, 진태원, 신해경, 최민 번역가까지. 좋은 번역가를 많이 만난 것도 큰 행운이자 힘이었습니다. 특히 『G』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는 김현우 번역가는 정말 든든한 존재고요.

무려 18년째 존 버거 책의 한국어판 편집자로 일해왔어요. 자연인 존 버거를 느낄 기회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책을 보내면 언제나 다정한 메일이 왔어요. 요지는 ‘어떻게 이렇게 낮은 정가로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였죠.(웃음) 존은 열화당 특유의 코팅하지 않은 종이 질감을 좋아했어요.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을 항상 써줬고, 종종 드로잉을 선물했어요. 그러다 2008년에 드디어 존을 만났죠. 지금 생각하면 과분한 만남이었습니다. 

잘생기고 다정한 사람이군요, 존 버거는. 

네, 섹시한 남자죠.(웃음)

천재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늘 글 쓰는 게 힘들다고 얘기했어요. 2017년 서울에서 <존 버거의 스케치북>이라는 작은 드로잉전을 열었는데, 그때 보내온 친필 원고가 아주 인상적이었죠. 흰 종이에 글을 쓴 다음 가위로 자르고 풀로 이어 붙인 원고였어요. 글이 안 써질 때는 그림을 그렸죠. 그 그림들을 책으로 묶어 내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여러 권의 책에 같은 글을 중복해서 싣기도 해요. 이 담론에서도, 저 이야기에서도 필요한 글일 때요. 편집자 기질이 농후한 작가였어요.


『다른 방식으로 보기』와 『Ways of Seeing』.
존 버거는 사진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자주 했다. 터키의 위트 넘치는 일러스트레이터 셀축 데미렐과의 공동 작업들.

그의 명성은 알지만 읽지 않은 잠재적 독자, 작가와 출판사 입장에서는 ‘긁지 않은 복권’이 아직 많아요. 존 버거 초심자는 무엇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처음 읽을 책은 역시 『다른 방식으로 보기』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미술비평서로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가 담겨 있죠. 특히 유럽 전통 유화와 광고 속 남성적 시선을 비판합니다. 두 번째 읽을 책으로는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 어떨까요? 픽션과 에세이의 경계에 있는 책으로, 이야기꾼 존 버거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잘 드러나 있어요. 마지막으로 추천할 책은 한국 독자들이 유난히 아끼는 『A가 X에게』입니다. 

존 버거 중급자를 위한 추천 차례예요. 그를 더욱 입체적으로 덕질하기 위해 무엇을 보고 읽을까요? 

존 버거는 1960년대에 이미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 강연을 하고 사진, 영화, 연극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했어요. 그래서 유튜브에도 자료가 많아요. 특히 틸다 스윈턴을 비롯해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5년에 걸쳐 촬영한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를 보면 존 버거라는 인물이 얼마나 입체적이고 열려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이해가 존 버거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드로잉이 담긴 『벤투의 스케치북』, 시집 『아픔의 기록』, 사회비평 에세이집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사진가 장 모르와 협업한 『제7의 인간』(눈빛)을 권합니다. 그의 다양한 언어를 만날 수 있어요. 


존 버거가 생존해 있을 때 출간을 약속한 책이 2017년 그의 죽음 이후에 나오게 됐다.
김현우 번역가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삼부작 소설 『그들의 노동에』도 그 중 하나다.

존 버거의 새 책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새로 번역된 『결혼식 가는 길』이 올가을에 출간돼요. 존 버거가 아들 이브와 예술을 주제로 주고받은 엽서를 모은 『엽서로 나눈 대화』(가제)가 번역을 앞두고 있고요. 초기작 『코커의 자유』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밖에 절판된 책, 누락된 글들을 모은 선집도 기획 중이고요. 궁극적으로는 그의 모든 글을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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