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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엄마’라는 단어를 이길 수 없어요”

<월간 채널예스> 2020년 6월호 장편소설 『오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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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누군가 세상을 떠나는 경험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겪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죠. 상실을 온몸으로 견디는 주인공 정아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긍정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0.06.01)


영화 <환상 속의 그대>를 연출한 강진아 감독이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죽음과 상실의 문제를 고민해온 그가 이번에는 ‘엄마와의 작별’을 이야기한다. 『오늘의 엄마』의 주인공 정아는 남자 친구의 세 번째 기일에 엄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는다. 한 번의 죽음에 익숙해질 새도 없이, 지지부진한 간병 생활이 시작된다. 그동안 우리는 상실의 흔적을 너무 쉽게 지워온 게 아닐까? 새로운 이별 앞에서 매번 당황하고 마는 이에게, 강진아의 소설은 아픔을 정직하게 되풀이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소설로만 할 수 있었던 이야기

영화감독이 아닌, 소설가로서 첫 책을 출간하셨어요. 

출판사 투고를 거쳐 나오게 된 소설이에요. 시나리오를 쓸 때, 등장인물에 깊이 못 들어간 걸 반성했거든요. 인물의 속마음을 자세히 쓰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소설 형태가 됐어요. 완성본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투고란이 있더라고요. 무작정 원고를 보냈고 출간을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죠.

특이한 출발이네요.

편집자의 연락을 받고 놀랐어요. ‘어떻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과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거든요. (웃음)

처음 소설을 구상하셨을 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나요?

누군가에게 공백기로 보일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영화 활동을 잠시 멈추었던 시기와 엄마를 간병하는 동안, 사회적으로 단절됐지만 저는 매일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요즘 뭐해?’ 물으면, 노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 저조차도 기억을 지워버리려 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분명 그 시기에 저는 누구보다 애쓰고 있었는데 말이죠. 

‘오늘의 엄마’라는 제목만 봐도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아요. 

‘엄마’라는 단어를 이길 수가 없어요. (웃음) 엄마를 떠나보낸 뒤에도, 주인공 정아의 삶에 늘 ‘오늘의 엄마’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원래 제목은 ‘엄마의 엄마’였어요. 엄마의 입장에서 본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소설을 진행할수록 핵심이 외할머니가 아닌, 엄마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외할머니 부분을 덜어내고 엄마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죠. 그래서 제목도 ‘오늘의 엄마’가 된 거예요. 

영화 <환상 속의 그대>부터 죽음의 문제를 다뤄오셨어요. 『오늘의 엄마』에서 정아는 남자 친구인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엄마의 암 선고 소식을 듣게 되고요. 

죽는 게 무섭지 않으세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컸어요. 평소에 죽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죽음을 경험하면서 느낀 건, 결코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예요. 죽음의 여러 가지 모습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남자 친구인 ‘그’의 죽음을 넣은 건, 정아가 바로 엄마의 상실을 맞닥뜨리면 너무 혼란스러울 것 같았어요. 대면하기 힘들어서, 엄마와 시간을 많이 못 보냈을 수도 있고요. 



엄마와의 이별을 앞둔 주인공 정아는 서른 살이 되기 직전의 나이예요. 

제일 부침이 강한 시기죠. 20대가 될 때는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홀가분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데 스물아홉 살은 기존의 세계와 작별하기도 어렵고, 책임감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아직 서툴지만 다 짊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픈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정아가 서른을 앞둔 나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간병기 하면 주인공이 성숙해지거나 가족끼리 끈끈해지는 소설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지 않아 신선했어요. 언니와 다투기도 하고, 간병 생활이 끝난 후에도 삶은 그대로 이어지죠. 

완전한 성숙은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은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도 많잖아요. 저는 중학교 때 문제점을 지금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해요. 나이를 먹으면 성숙해질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오히려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고 집착하면, 괴로움만 늘어나는 것 같아요. 상실을 겪어보았으니 이제 괜찮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상실은 한번 경험했다고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매번 다르게 겪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단절된 시간을 긍정할 수 있기를

정아는 엄마를 관찰하면서 공통점을 찾아요. “엄마의 이런 취향을 뒤늦게 배우면서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되었다”(132쪽)고 하죠.

실제로 닮아서 그런 걸까요? 엄마가 아프니까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고 싶었을 거예요. 분명 과거의 정아는 엄마를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이별을 앞두자 “우리는 끊어져서는 안 돼”하고 엄마를 붙잡는 거죠. 엄마와 이별하는 동안에는 비슷한 점만 보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정아와 정미 자매의 성격이 굉장히 달라요. 정아가 감성적이라면, 언니 정미는 이성적이고요.

자매의 관계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언니와는 실제로 뒷이야기가 있어요.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언니한테 따진 적이 있어요. 제 방식이 아니라, 첫째인 언니의 방식대로 엄마와 이별했다는 생각에 억울하더라고요. 그런데 언니 입장에서는 사과를 못 하겠다는 거예요. 언니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최선을 다했는데, 제게 사과하면 그 시간을 부정하는 셈이 되니까요. 그때 언니의 입장을 생각하게 됐어요. 같은 상황이라도 엄마와의 이별 방식은 저와 언니가 달랐던 거죠. 그 차이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어요.

언니도 소설을 읽었나요?

계속 망설이다 출간 직전에 원고를 보여줬어요. 언니의 첫 반응이 “이거 나 아닌데”였어요. 실제 인물을 모델로 쓰면 정작 당사자는 못 알아본다던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웃음) 언니는 등장인물 정미가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엄마의 간병을 정미만큼 꿋꿋하게 해내지 못했다고요.

선배 고호민은 정아의 곁에서 웃음을 주는 인물이에요. 연애인 듯 아닌 듯 현실적인 관계죠. 상실을 겪는 정아 곁에 바깥의 누군가를 두고 싶었나요? 

정아가 마주하는 여러 관계를 다채롭게 그리고 싶었어요. 인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사람이 달라지잖아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하죠. 좋은 시절에 기쁨을 나누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힘든 시기에 조력자가 되어주는 사람도 있어요.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의외의 인물이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해주기도 하고요. 그중, 고호민은 정아의 힘든 시절을 함께 하는 사람인 거죠. 

투고 후 혹독한 편집 과정을 거치셨다고 들었어요.

온통 빨간펜이 그어진 교정지를 받아들고 완전 충격받았죠! (웃음) 처음부터 다시 원고를 고치면서 비로소 독자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초고를 쓸 당시에는 여유가 없었거든요. 여러 버전의 원고를 가져가서 장면을 넣고 빼기도 하고,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은 고쳐 썼어요. 그렇게 열심히 다듬은 끝에, 완전한 소설의 형태가 된 거예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책 한 권이 나오는구나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어요.

‘작가의 말’을 안 쓰시려 했다고요. 왜 그랬나요?

아직 작가라는 자각이 희미해서 쓸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편집자님이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자리라고 해서 고민 끝에 부랴부랴 쓰게 됐죠.



어린 시절, 등굣길에 우연히 마주친 낯선 개와 이별하는 장면을 쓰셨어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개의 눈빛을 선명하게 기억하신다고요.

평소에도 스쳐 지나간 관계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 사람은 그때 왜 그랬을까’ 계속 질문하기도 하고요. 비록 관계는 끊어졌지만, 한 사람이 준 영향은 남아서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저를 따라왔던 개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은 곁에 있지 않더라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거죠. 한때는 과거를 놓지 못하는 성격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계속 담아둔 것이 이야기의 형태로 나오는 것 같아요.

소설이 어떤 독자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나요?

지금도 병원에서 가족의 상실을 견디고 있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간병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가족 중 누군가 세상을 떠나는 경험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겪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죠. 단절된 시간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는 것 같아요. 한 세계와 이별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시기인데 말이에요. 상실을 온몸으로 견디는 주인공 정아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긍정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엄마
오늘의 엄마
강진아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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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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