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농부’의 사람냄새 나는 인생 이야기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공상균 작가
시를 읽다가 내가 살아온 경험의 한 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는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 앞에서 읽기를 멈추죠. 그리고 시의 장면을 찬찬히 살피며 경험이 겹치는 지점에서 오래 머뭅니다.(2020. 05.22)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는 ‘시 읽는 농부’ 공상균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농부로 산 세월보다 시에 마음 얹어놓고 산 세월이 더 길다는 공상균 작가는 정성껏 고른 30편의 아름다운 시에 사람냄새 찐하게 나는 인생 이야기를 엮어서 깊고 따뜻한 감동을 책에 담았다. 연애 편지를 쓰듯 세심하게 써내려 간 문장들에서는 작가의 단단하고 따뜻한 성품, 묵묵히 꿈을 향해 걸어온 삶을 엿볼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은 “글은 일생이다”라는 말을 이 책의 지은이에게 처음으로 들려주고 싶다는 추천의 글을 썼다. 그러면서 그 일생이 아름답고 진진하고 싱싱해서 그의 글들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에는 세상이 피워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듯 시를 읽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족이 주는 평안에 감사하며 벗들과 함께 꿈을 향해 묵묵히 길을 톺아가는 성실한 농부이자 꿈꾸는 시인인 한 사람의 일생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첫 출간이신데, 이 책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요?
2년 전, 서울에 있는 한 출판사 대표님으로부터 마케팅 관련 책을 한 권 써보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 분야의 책을 쓰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께서 그동안 농촌에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농산물 판매한 경험담도 좋다며 거듭 청을 하시기에 저도 엉겁결에 약속을 했습니다. 대신 마케팅 이론보다는 그동안의 경험과 제가 좋아하는 시를 접목시켜 문학적인 마케팅 책을 써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다 쓰고 보니 ‘실용’과 ‘문학’의 중간 지점에서 서성이는 어색한 글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과 합의하여 구두상의 약속을 파기하고 새로운 출판사를 찾던 중 ‘나비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제 원고를 읽어보신 대표님께서 “이웃들과 나누는 이야기 가운데 마케팅 요소들이 다 들어 있으니 사족처럼 달린 마케팅 이야기를 다 걷어내고 밀도 있는 산문집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메일을 주셨습니다. 저도 단번에 좋다고 했지요!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마케팅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렇잖아도 마음에 짐이 되던 참이었거든요. 그래서 초고를 다 뜯어고치는 작업을 해서 이번에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귀농하신 지 벌써 30년이 넘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도시 생활이나 다른 삶을 꿈꿔보신 적은 없으세요?
도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다른 삶을 꿈꾼 적은 있습니다. 몇 년 전, 여행작가 김남희 씨가 찍은 파키스탄의 훈자마을 사진을 보고 반해서 그곳에서 일 년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산을 배경으로 살구꽃이 핀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그리고 백세 노인도 밭에 나와 일하는 그들의 건강한 삶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글을 쓰고 싶었어요. 훈자마을이 장수촌이잖아요. 어쩌면 제게 숨 거두는 날까지 몸을 움직여 일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은 시를 읽으면서 열일곱 살, 스무 살, 서른 살, 살아온 모든 순간으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하셨어요. 작가님께 시를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시를 읽는 것이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서사와 서정이 알맞게 어우러진 시를 좋아합니다. 이번 책에도 주로 그런 시를 골라 실었습니다. 이야기는 없고 이미지만 툭툭 던지는 어려운 시는 아직 제게 다가오지 않아요.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탓일 수도 있겠죠 시를 읽다가 내가 살아온 경험의 한 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는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 앞에서 읽기를 멈추죠. 그리고 시의 장면을 찬찬히 살피며 경험이 겹치는 지점에서 오래 머뭅니다. 그러다보면 시는 제 삶의 소중했던 순간 앞으로 나를 데려다줍니다. 이상국 시인의 시 ‘국수가 먹고 싶다’에서 밥벌이하기 위해 집을 떠나던 열일곱 살의 나를 다시 만났던 것처럼요. 삼사십 년이 넘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만난 열일곱 살의 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은 행운이죠. 제가 쓴 책을 받아들고 머리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요. 열일곱 살의 내가 안쓰러운 거죠. 이런 경험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자양분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지난날의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훗날의 나를 가슴에 그리면서 꿈을 잃지 않는 삶. 시가 주는 힘이 아닐까요?
책에서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더불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달픈 마음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드님과 함께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요. 작가님은 자녀분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몸은 늙는데 마음은 늙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요즘도 아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꿈을 이야기할 때 내가 얼마나 가슴 설레는지를 보여주고 싶거든요. 꿈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를 읽는지도 모르겠어요.
책에도 쓴 것처럼, 지금 제가 꾸는 꿈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하나는 매실농장 옆에 작은 도서관을 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동화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년들이 농촌으로 와서 우리 농촌이 시끌벅적 더 젊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족들이 응원을 해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특히 아들은 내게 꿈은 이루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품고 있을 때가 행복하다면서 꿈꾸는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끝내 이런 모습으로 훗날 아이들 기억 속에 남지 않을까요?
나이 오십에 뒤늦게 대학생이 되어 자녀분들과 비슷한 나이의 동기들을 만나 소설과 시를 공부하셨다지요. 그 후에도 청년 농부들이 농촌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는 데 길잡이가 되고 싶어 다시 창업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셨고요. 늦은 나이에 창업, 공부, 이직 등 새로운 길을 꿈꾸면서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밥 딜런이 한 말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 아닐까요? 제 나이 쉰아홉 살에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창업대학원이었죠. 30년을 농촌에서 살아보니 청년들에게 농촌은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청년들을 농촌으로 불러들여 창업을 하게 할 수 있을까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정년을 앞둔 직장인이나 청년들이 상담하러 제법 찾아오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제 경험치만을 가지고 그들에게 농촌으로 오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해 공부를 더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덕분에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었고, 그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마케팅 하는 법을 대학원에서 깊이 있게 배웠죠..
덕분에 청년들에게 농촌으로 와서 창업하면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만큼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할 자신도 생겼습니다. 이야기의 힘을 믿기 때문이죠. 이야기란 가만히 있지 못하고 퍼져나가는 속성이 있고, 또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의 발생지를 찾아가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죠. 이야기의 이 두 가지 속성을 알면 도시에서 비싼 임대료나 권리금을 내고 목 좋은 곳에서 장사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오히려 한적한 시골에서 차별된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면 더 경쟁력이 있습니다. 손바닥 위에 스마트폰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만나는 청년들에게 더 과감하게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만 손에 들고 와도 농촌에서 할일이 많다고요.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제 책에 몇 꼭지 다루었습니다.
요즘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면서 코르나 블루, 즉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겪으면서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시가 있을까요?
권순진 시인의 ‘낙타는 뛰지 않는다’라는 시를 추천합니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초원은 생존 경쟁이 심하지만, 사막은 온통 모래뿐인 결핍의 장소이기 때문에 오히려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내용의 시입니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 천천히 걸어야 하고 목이 말라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제 페이스를 지켜야 하는 곳이 사막입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요구하는 이 시대도 어찌보면 사막을 걷는 형국이 아닐까 합니다.
모래 위의 삶은 그저 긴 여행일 뿐
움푹 팬 발자국에
빗물이라도 고여 들면 고맙고
- 『낙타는 뛰지 않는다』 중에서, 권순진
자족이 주는 평안이 이 시대의 힘듦을 견디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딱 한 편의 글만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어떤 글을 들려드리고 싶으신가요?
‘곡성 할머니들의 몸으로 쓰는 시’입니다. 일흔 지나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시집까지 내신 할머니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에게 동시를 자주 읽어드리면서 시 짓는 법을 알려주신 ‘길 작은 도서관’의 김선자 관장님에게도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시가 어렵지 않다는 것과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관장님과 할머니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이 보고 자파 죽것소’ 보다 더 진한 그리움을 숨겨놓는 글쓰기는 누구에게 배우셨을까. <눈>이라는 시는 군더더기 나 설명 하나 없는 명징한 글이다. 선 몇 개로 그린 맑은 그림이다. 머리로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질곡의 세월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 들려주는 속삭임이 너무 아프다.
사박사박.
하염없이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들과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아 시를 썼을 할머니는, 정작 슬픈 감정 모두를 눈 속에 묻어버리고 ‘사박사박’ 네 글자로 끝을 맺는다. 절제미의 완결판이다.
- ‘곡성 할머니들의 몸으로 쓰는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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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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