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정희진 “글쓰기는 약자가 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저자 이메일 인터뷰
글쓰기는 생각하는 노동이지요. 자신의 경험을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거듭 숙고하고, 모두의 성장을 희망하는 것. ‘너-나-우리’의 권력 관계를 고민하는 것. 저는 이러한 인간 행동이 ‘품위 있게’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04.10)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저자가 2012년부터 연재한 칼럼을 엮은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출간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세월호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목소리가 담겼다. 저자에게 글쓰기는 윤리적 실천이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현실에서, 약자가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고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 글쓰기다. 끊임없이 내 안의 소수자성을 발견하고, ‘너와 나’의 새로운 세계를 모색해야 하기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수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숙명여대 A씨 사건과 디지털 성범죄 등 젠더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가 큰 이 시점에, 정희진 저자에게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2012년 처음 연재를 시작하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강남역 사건, 페미니즘 리부트 등 젠더 이슈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여성주의의 대중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다른 분야의 책과는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여성주의 관련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요. 그러나 대중화가 곧 민주화는 아니죠. 민주주의는 다수의 합의가 아니라 배제 없는 사회를 뜻하니까요. 대중화된 만큼 여성주의에 대한 여론의 편견, 반발도 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모순으로서 젠더, 그 갈등의 가시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제목 모두 글쓰기에 대한 작가님의 태도가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는 약자에게 ‘글쓰기’로 싸운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책 제목은 약간 슬프고 힘없는 어조예요. 두 권 모두 실제 사건을 쓴, 책 본문에서 가져온 문장입니다. “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글을 쓰는데.”(1권, 66쪽) 그 문장에서 따온 거예요.
인생이 억울한 일 천지잖아요.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일도 많고. 그런데 항의도, 소송도, 논쟁도, 투쟁도 불가능할 때 있지요. 누구나 분하고, 스트레스로 ‘암에 걸릴 것’ 같은 상황 있잖아요? 저는 권투를 배우려고 했어요. (웃음) 그런 상황을 글로 쓰자는 거죠.
그러나 그것이 자기 경험 쓰기, 힐링을 목적으로 한 글쓰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위험합니다. 글쓰기는 생각하는 노동이지요. 자신의 경험을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거듭 숙고하고, 모두의 성장을 희망하는 것. ‘너-나-우리’의 권력 관계를 고민하는 것. 저는 이러한 인간 행동이 지성이고, ‘품위 있게’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겠어요? 가해자는 완강하고 저는 힘이 없는데.
‘품위 있게’라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품위 있게 싸우기”도 영화 <그린 북>에 나오는 흑인 음악가의 말이지요. 사람이 움직이기만 해도 때리는 철저한 백인 지배 사회에서 속수무책일 때, 뭘 할 수 있겠어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백인의 학대에 무대응으로 처신하고, 자신이 잘하는 피아니스트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글쓰기로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합니다. 글쓰기가 제가 가진 그나마 최선의 자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새로운 언어는 억울하고 우울해서,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색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30대에는 “정체성의 정치로서 젠더를 가시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신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의 ‘잘못된 만남’ 혹은 사회 구성 요소, 인식론으로서 젠더”(2권 13쪽)로 관심이 옮겨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변화의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질병을 앓고 나이가 들고 한마디로 건강 약자가 되면서부터예요. 처음 페미니즘에 눈떴을 때는 대부분 여성들처럼 흥분과 감격의 연속이었죠. 저도 그 과정이 격렬했어요. 정말 ‘말씀’을 영접한 거예요. 그러나 인생에는 언제나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죠. (웃음) 황홀한 만큼, 해방된 만큼, 더 큰 고민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지금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나이 듦과 장애 이슈예요. 통증(pain)처럼 강력한 권력은 없죠.
하나하나 쉽지 않으셨겠지만, 가장 힘들게 쓴 글을 하나 꼽으신다면 어떤 것인가요?
이런 질문이 가장 어렵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 인터뷰를 쓰기 위해 제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쓰기 힘든 글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책 내용 자체가 어려울 때(제 이해력이 떨어질 때), 사회적 검열, 자기 검열, 댓글 등 독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 솔직할 수 없어서 저 자신과 협상을 거듭해야 하는 글, 사회생활을 위해 제 생각을 드러내면 안 되는 글들이 어렵습니다.
굳이 꼽자면, 저와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의 사회운동을 다룬 ‘투쟁기’가 어렵습니다. 사회운동도 비판과 논쟁의 영역이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풍토가 아직 낯선 것 같습니다. 더 현실적으로는, 외국 작품이나 고전은 작가가 멀리 있잖아요.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글쓴이의 글은 더 필요한 부분인데 솔직하게 쓰기 어렵지요. ‘주례사 비평’이 그래서 있는 거죠.
약자의 시선으로 보기
최근 숙명여대 A씨 사건은 “누구의 여성주의인가라는 논쟁”(2권 190쪽)을 불러일으킨 사례였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실감하며 상처를 남기기도 했는데요.
이 문제는 여성학 이론의 역사이기 때문에, 이 지면에서 정리가 안 됩니다. 다만 소수자 배제 혹은 혐오가 ‘여성운동’이 된 현실에 대해서는,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ale to female’인 경우 말고, 벤 바레스(1954-2017)처럼 ‘female to male’인 남성이 여성운동을 하는 경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문단의 미투 운동이 있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연루된 사람들의 창작물을 전과 같이 읽을 수 없고,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당혹감, 무력감 등이 남았습니다. 넓게 보면, 남성 중심으로 꾸려져 왔던 한국문학의 정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도 맞닿아있는데요. ‘미투 시대’의 독서는 어떠해야 할까요?
물론이죠. 아시다시피 이 문제는 복잡합니다. 좋아했던 작가의 인간성, 사생활, 여성관, 백인 중심주의를 알았을 때, 작품이 잘 읽히지 않죠. 어릴 적 제가 좋아했던 알베르 카뮈, D. H. 로렌스도 지금은 거부감이 있죠. 예전에 읽어서 다행이죠. (웃음) 하지만 모든 독서 행위가 작가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제 나름의 관점에서 필요한 책은 읽어야 하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한국문단사는 다시 쓰여야 합니다. 훌륭한 작품의 기준, 훌륭한 글의 기준도 바뀌어야 하구요. 문제는 이게 자본과의 투쟁이라는 사실이죠. 일단 어느 정도 책이 팔리고 읽혀야 하고, 안 팔리는 책이라도 평론은 활발해야 하는데 말이죠. ‘고전’의 정의가 많이 팔리는데, 안 읽는 책이잖아요?
문단 미투 운동에 대해 한마디 덧붙인다면, 남성 중심적 문단 문화의 문제였죠. 언어와 그 평가 자체가 성별화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성성과 대립되는, ‘투명한 여성성’이 있는 것은 아니죠. 남성과 비(非)남성이 존재할 뿐이죠. 이 비남성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배경이 무엇이라 보시나요?
디지털 성폭력은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성 착취 산업은 자본주의 기술에 따라 변화할 뿐입니다. 안드레아 드워킨의 말대로, 여전히 여성의 몸은 남성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공부한 영역이 아내폭력, 기지촌 성 산업, 전시 성폭력 등이었어요. 이 부분의 연구는, 연구자 자신의 ’분노 조절 장애’, 정신력과의 투쟁입니다. 저도 안 믿기고 익숙해지지도 않고, 여성주의자들도 피해자의 말을 의심합니다. 물론, 믿어지지 않지요.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인생은 달라지니까요. 그러나 이는 의심의 영역이 아니라 분석의 문제입니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통제 하에 있다는 인식은, 1970년대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의 공헌이지요. 여성의 존재성이 ‘시민’이 아닌 ‘몸’으로 환원될 때,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물건(object)이 됩니다. 물건이 상품이 되고 사고 팔리고. 이것이 성매매와 성폭력의 연속선이죠.
“여성주의만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학문은 드물다”(2권 15쪽)고 하셨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팁을 하나 주신다면요?
여성주의는 인문, 사회과학은 물론 핵물리학부터 영장류학, 식물학까지 모든 분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구의 경우, 뛰어난 페미니스트 철학자 중에는 자연과학자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도나 해러웨이, 이블린 폭스 켈러, 주디 와츠맨 등이 대표적이죠.
가장 중요한 팁은 여성주의가 근본적으로 약자의 시선을, 즉 가시화되지 않은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제 글이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독창적’이라는 평을 가장 많이 듣는데, 그것은 100퍼센트 여성주의 덕분/때문일 겁니다. 저는 규범적인 사람이고, 생각이 깊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성주의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히 다른 세계 그리고 몰랐던 세계와 만나게 됩니다. 그 충돌에서 최대한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것. 이것이 독서이고, 저의 언어를 진전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향한 혐오의 언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분노하는 동시에, 무기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반복적인 분노마저 지쳐가는 여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성혐오는 그 자체로 인류 문명사지요.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까지 체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성차별만 있는 건 아니죠. 『제2의 성』을 보면, 옛 유대인들이 가족 식사 모임에서 하는 기도가 “주님,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충격을 받았어요. 여성의 지위가 이렇구나, 남들은 여자인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는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더라구요. 제 자신에게 놀랐어요.
저 역시 요즘 분노와 좌절, 우울의 세월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은 않습니다. 여성주의는 남성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세계관이 아니라(그건 실현 불가능한 자유주의지요) ‘우리’가 배제되는 방식을 고민합니다. 사실, 행복이나 편안한 상태는 인생에서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런 사람도 많지 않고요. ‘부정적 감정(dark emotions)’은 현실 인식이기도 하죠. 극복해야 할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죠. 삶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진리’를 수용하면, 고통도 상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행/불행 자체가 계량할 수 없는 영역이잖아요? 우리에게 유일한 위로는, 누구나 힘들다는 것 그래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분노는 정치적 힘이지만, 사유로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갉아먹기 쉽죠. 제 일상도 ‘행복’하곤 거리가 멉니다. 외로움과 노동(글쓰기)의 연속이죠. 하지만 인생과 자연을 즐길 줄 아는 능력, 감사하는 능력은 인간의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숙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화가 난다고 해서, 밤에 폭식하거나 전화로 친구들 괴롭히지 마세요. (웃음) 우울한 사람끼리 온라인에서 만나서 하소연 대화라도 하면 어떨까요? 인간은 ‘fun’이든, ‘joy’든 즐거움 없이 살기 힘들어요. 타인의 위로와 공감은 인생 최고의 기쁨이죠. 만일 내가 그런 기쁨을 받을 수 없다면, 주면 되지요. 아, 물론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저 | 교양인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 혼’이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63편의 글에서 저자는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글쓰기의 윤리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한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저 | 교양인
글쓰기는 삶이자 생계라고 담담하게 털어놓는 저자가 서가를 기웃거리고, 책상에 앉아 괴로워하며 자신을 알기 위해 치열하게 쓴 글과 글쓰기 여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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