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이야기 게임
장편 소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이번 소설은 일종의 게임처럼 기획했습니다. 독자들을 일종의 문학적 퍼즐로 이끌고 싶었죠. (2019.12.16)
ⓒEmanuele Scorcelletti
비밀을 가진 것은 매혹적이다.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기욤 뮈소의 신작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은 그런 매혹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유명 작가 ‘네이선 파울스’는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아름다운 지중해의 보몽 섬에 은둔한다. 그리고 그 섬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 과연 기욤 뮈소의 소설다운 시작이다. 진실을 찾으려는 등장인물들처럼 독자 역시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이 게임의 설계자를 만나 묻고 싶어진다.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이 퍼즐 게임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그 비밀의 열쇠를 쥔 기욤 뮈소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작가의 비밀스러운 삶에 매혹되다
이번 신작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까지 한국에서 16번째로 소설을 출간하셨어요. 한국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 해 전부터 열성적으로 지지해준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항상 주의를 기울여요. 제가 쓴 이야기를 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 이런저런 방법으로 알아보기도 하고요. 진심으로 서울을 다시 방문하게 되기를, 그래서 어쩌면 서울을 제 소설의 배경으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소설의 제목인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무슨 뜻인가요? 특별히 작가‘들’인 이유가 있나요?
그야 이 소설에 여러 명의 작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우선 유명작가 네이선 파울스, 그다음으로 신인 작가 라파엘 바타유, 그 외에도 제가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줄곧 영감을 주고 자양분이 되어준 많은 실존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이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작가도 있지 않나요?
지금까지 사랑, 가족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오셨어요.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은 ‘작가’에 대한 소설입니다.
‘작가’는 사실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주제예요. 이전에 출간한 다른 작품들에도 암암리에 등장합니다. 가령 『종이여자』 를 예로 들 수 있겠죠. 이번에는 아예 소설 한 편을 작가라는 주제에 할애했어요. 인간혐오 증세가 있거나 언론 시스템의 톱니바퀴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기를 고집하는 일부 작가들의 삶에 깊이 빠졌거든요.
소설 속 주인공 ‘네이선 파울스’는 작가의 삶에 대해 “작가로 산다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삶이니까.”(53쪽)라고 혹평합니다. 혹시 작가님도 비슷한 생각인가요?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사는 삶은 어떤가요?
물론 전 네이선 파울스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글쓰기는 어둠의 작업입니다. 굉장히 고독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제 삶은 무척 행복합니다만 아주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죠. 아침마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가서 저녁 7시쯤까지 글을 써요. 집에서는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아요. 언제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쓰죠. 스티븐 킹이 말했듯이 글을 쓰려면 반드시 ‘문을 닫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를 떠나 상상의 세계로 탈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간 작가님이 쓴 소설의 주요 배경은 뉴욕, 파리, 앙티브 등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였어요. 이번에는 가상의 공간 ‘보몽 섬’을 등장시켰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작 『아가씨와 밤』 을 쓰면서 지중해의 분위기를 탐사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그 속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서 이번에도 다양한 풍경과 감각을 향해 문을 열었습니다. 몇 년 동안 뉴욕이나 파리를 묘사하다가 깎아지른 절벽과 황무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을 움직이니 그야말로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 앞머리에서 보몽 섬은 이 세상과 멀리 떨어진 일종의 평화스러운 전원풍 안식처, 피난처로 묘사됩니다. 그러다가 극적 긴장이 고조되어감에 따라 풍경이 점점 음울하고 신비스럽게 변해가죠.
소설에서 “독창성 있는 작가가 되려면 구조나 스토리보다는 언어 자체의 탐구에 집중해야 합니다.”(26쪽) 라는 한 작가의 주장이 언급되는데요. 작가님은 ‘문체’와 ‘스토리’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시나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언어를 맞추는 거라고 봅니다.
은둔 작가 ‘네이선 파울스’부터 모험에 뛰어드는 작가 지망생 ‘라파엘 바타유’, 기자 ‘마틸드 몽네’ 등 소설 속 캐릭터들이 매력적입니다. 인물을 창조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소설의 성패는 줄거리에 달려있지만 적어도 그만큼, 아니면 그 이상으로 등장인물들에도 비중이 있다고 봅니다. 등장인물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 그들이 느끼는 풍부한 감정 등이 픽션의 밀도를 높이고 독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공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니까요. 미국 소설가 데니스 루헤인이 한 말이 제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해요. “당신은 항상 가장 좋은 인간들에게서 가장 나쁜 면을 보고, 가장 나쁜 인간들에게서 가장 좋은 면을 본다.” 글을 쓰면서 등장인물들이 제가 미처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하고 싶어 할 때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죠.
“기욤 뮈소의 소설은 영화 같다”는 평이 많아요. 한국에서 2016년에 작가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가 개봉되기도 했죠. 창작 단계에서 영화적 연출을 고려하시나요?
영화를 직접 봤는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어요. 홍지영 감독이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제 소설의 감수성을 한국적인 맥락으로 해석해서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줬죠. 2년 전 브뤼셀에서 홍 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 특히 좋아하는 배우인 김윤석 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의 다른 소설도 한국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글을 쓸 때 딱히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지는 않습니다. 비록 제가 글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독자들이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이미지를 완성해간다고 할 수 있지만요. 폴 오스터도 말했듯이 소설 한 편은 작가와 독자가 동등한 비중으로 참여하는 창조물입니다.
ⓒEmanuele Scorcelletti
소설은 독자가 참여하는 게임
결말을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님은 반전을 즐겨 사용하세요. 소설에서 반전은 어떤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시나요?
소설을 쓸 때 항상 독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해요. 이번 소설은 일종의 게임처럼 기획했습니다. 심지어 여러 층위를 가진 게임이죠. 책들과 작가들을 소재로 삼은 게임인데, 소설에 등장하는 인용문들은 필요할 때마다 힌트 또는 성찰의 문을 열어주는 단서처럼 활용돼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 인용들이 다른 책을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또한 독자들이 참여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을 일종의 문학적 퍼즐로 이끌고 싶어요. 몇 해 전부터 줄곧 절 사로잡고 있는 현실과 픽션 사이의 신비하면서도 유동적인 경계를 맛볼 기회를 독자에게 제공하고 싶었죠.
작가 지망생 라파엘에게 작가 네이선은 “삶 자체에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하라.”(233쪽)고 조언합니다. 만약 작가님이라면 위험하긴 해도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면 모험에 뛰어들 건가요?
아버지가 된 이후 나는 가급적 내 자신이 신체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하고자 합니다. 지적인 모험을 감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인물들이 알고 있는 진실이 소설에서 여러 번 뒤집힙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진실’은 무엇인가요?
‘진실’이야말로 제가 애착을 갖고 있는 주제입니다. ‘세상엔 3개의 진실이 있다. 나의 진실, 너의 진실 그리고 그냥 진실!’이라는 속담을 아주 좋아해요. 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결코 같을 수 없고, 각기 다른 관점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 중 어느 누구도 진실을 전부 알지는 못하고, 독자들마저도 마지막에 가서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 작품에는 소설에 작가에 대한 수많은 인용이 나와요. 은둔 작가 ‘네이선 파울스’도 모델이 있나요?
네이선 파울스는 J.D. 샐린저, 밀란 쿤데라, 엘레나 페란테, 필립 로스 등 여러 작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샐린저는 자신의 소설이 거둔 성공의 포로가 된 나머지, 더는 새 작품을 쓰지 못했어요. 기대 이상의 큰 성공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 은둔의 삶을 택한 거죠. 쿤데라를 비롯해 언급한 작가들 대부분이 언론을 굉장히 경계했습니다. 몇십 년 동안 인터뷰라고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문학 교수이자 작가로 정점에 서 있던 필립 로스는 소설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해 독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죠. 엘레나 페란테는 아예 얼굴을 세상에 드러낸 적이 없는 작가입니다. 한동안 로맹 가리가 얼굴 없는 익명의 작가로 지냈듯이 말이죠. 로맹 가리는 제가 흠모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에요.
작가가 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2명을 꼽는다면요?
어머니와 국어(프랑스어) 선생님입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독서에 대한 제 열정 덕분에 자연스레 생겼는데요. 도서관 사서였던 어머니 덕분이었죠. 어머니는 독서를 좋아했던 제게 모든 종류의 문학작품을 섭렵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 후, 저와 책은 즐거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죠. 그 관계는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어요. 점점 더 기술 지향적이고, 이미지의 범람으로 피폐해지는 사회에서 오히려 우리 사이는 더욱 끈끈해졌다고 할 수 있어요.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국어 선생님이 연 단편소설 쓰기 대회예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야기를 꽤 잘 지어내고 그 일을 좋아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Emanuele Scorcelletti
작가님도 슬럼프에 빠져 네이선처럼 절필을 선언하고 싶은 적은 없으셨나요? 글이 안 써질 때 주로 무얼 하시나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든 그렇지 않든 일단 글을 씁니다. 전 이른바 ‘영감’이라는 것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죠. 꾸준히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영감이 떠오르더군요.
좋아하는 경구, 또는 좌우명이 있나요?
저급함을 멀리하자. 저급함은 전염병이므로.
가장 집착하는 소재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나요? 아니면 돌아가고 싶지 않으신가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영원히 변화를 거듭하고, 내일의 인간은 오늘의 인간이 아니고, 오늘의 인간은 더 이상 어제의 인간이 아니죠. 시간은 우리를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면서 자기 규칙을 따르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시간에 맞설 수밖에요.
소설 창작 이외에, 요즘 작가님의 머릿속에 맴도는 관심사는요?
두 아이의 교육입니다.
창작자에게 제일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창성. 작가라면 자기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을 찾아내야죠. 항상 남을 따라 하지만 말고 스스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야 합니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기욤 뮈소 저/양영란 역 | 밝은세상
게걸스럽게 빨아들일 수밖에 없는 역대급 스토리와 악마적 반전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느 날, 죽은 한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고, 경찰의 섬 출입 봉쇄조치가 단행되면서 돌연 어둡고 불안한 그림자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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