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이 브랜드가 된다면
『 JOBS 잡스 - EDITOR 에디터』 손현 편집자
『JOBS 잡스』 시리즈를 통해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보면 좋겠습니다. (2019. 08. 29)
『JOBS 잡스』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 『매거진 B』 편집부가 펴낸 단행본 시리즈이다. 그간 『매거진 B』는 단순히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문화를 감각적으로 소개해왔다. 단행본에도 『매거진 B』다운 ‘관점의 전환’이 녹아있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질문을 달리하는 것. 『JOBS 잡스』 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까’라는 질문 대신 ‘내 삶에서 어떤 직업적 사고를 취할 수 있을까?’로 관점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첫 테마는 ‘에디터(편집자)’다. 에디터에 대한 책을 만든 편집자의 말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직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JOBS 잡스』 시리즈의 손현 편집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매거진 B』를 만든 지 9년 만에 첫 단행본이 나왔어요. 왜 단행본을 기획하게 되셨나요?
단행본 기획에 대한 논의는 사실 4~5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매거진 B』(이하 『B』)를 매월 안정적으로 발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단행본 제작을 온전히 진행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2018년 10월, 그동안 객원 에디터로 협업해온 제가 『B』 편집부에 정식으로 합류할 즈음, 박은성 편집장과 새로운 단행본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집장은 ‘인물’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저 역시 편집부에 합류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단단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보통 사람 100명을 취재하여 한 명을 한 권에 담아 전집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히 ‘직업’을 주제로 그 직업과 연관된 사람들이 각자의 삶과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이야기를 담자는 기획으로 방향이 좁혀졌습니다. 마침 조수용 발행인은 박은성 편집장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수십 개의 브랜드를 다뤄온 매거진 <<B>> 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인터뷰에서 나왔습니다.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와 함께 일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누적이라고도 할 수 있죠. 브랜드가 어떤 사람이 만들어낸 상징적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그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은 실체에 가깝고, 우리가 그 사람을 조명하는 것은 본질로 한번 더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브랜드의 이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의 일,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의 브랜드 이야기일 겁니다.” (13쪽)
그렇게 직업적 사고, 직업의식을 다룬 『JOBS 잡스』 시리즈로 단행본의 첫 문을 열었고요. 『B』와 마찬가지로 인터뷰집 형식을 취했고, 에세이 2편을 추가했습니다.
책 디자인이 『매거진 B』 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의 만듦새에 있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인가요?
아트 디렉터는 담는 책을 하나의 물건이라고 생각했을 때 ‘잘 기획된 상품의 패키지’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판형, 제본 방식, 두께 등 책의 꼴을 먼저 정하고 디자인했습니다. 작은 판형이 가지는 장점을 취하면서도 책 자체는 작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활자도 신경을 썼고요. 눈썰미가 있는 독자분이라면 이미 발견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잡스 - 에디터』의 판형은 정확히 『B』의 절반 크기(120x170mm)입니다. “『B』와 마찬가지로 ‘잡스’ 시리즈도 각각의 책이 저마다 매력을 갖고 오래도록 읽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트 디렉터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에디터’라는 직업으로 묶이지만 인터뷰 대상자들이 각기 다른 일에서 전문성을 쌓은 사람들이라 다채로웠습니다. 인터뷰 대상이나 필자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내부적으로는 3가지 기준을 세우고 접근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 둘째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사람,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리브랜딩한 사람입니다. 이런 추상적인 기준도 있지만, 매우 현실적인 선정 기준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B』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터뷰했던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죠.
미스터포터의 브랜드 & 콘텐츠 디렉터인 제러미 랭미드(Jeremy Langmead)는 박은성 편집장의 추천으로 선정했습니다. 편집장은 『B』의 ‘미스터포터’ 이슈를 취재할 때, 그를 처음 알게 되었고 커리어에 대해 꽤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음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마침 이번 책의 ‘오프너(Opener)’ 꼭지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의 브랜드를 선정해 한 권의 잡지로 펴내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아쉬움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 여러 맥락의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매력적인 취재 대상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눔에도 지면에 모두 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는 하죠.” (9쪽)
다른 인터뷰이나 필자는 여러 차원에서 다양성을 고려하였습니다. 프린트와 디지털 영역에서 골고루 활동 중인 에디터와 함께, 이미 널리 알려진 에디터가 라인업에 있다면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에디터도 찾으려 애썼고요. 그렇게 후보군 리스트를 만들어 틈틈이 동료 에디터나 콘텐츠 업계의 지인을 찾아가 피드백을 받고, 저희가 후보군으로 고려 중인 분들의 평판을 묻거나 추가로 추천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다들 같은 업계의 에디터 출신이라 그런지, 첫 책의 섭외에 흔쾌히 응해주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지금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직업을 통해서 얻은 인사이트나 태도를 묻는 인터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특히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요?
비록 하나의 ‘직업’을 주제로 하는 단행본이지만, 그 직업에 연관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흥미 있는 책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려면 보편적으로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 있어야겠죠. 기존 인터뷰 기사를 읽다 보니, 특정 현안이나 인터뷰 시점에 발표한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묻는 등 시의성에 초점을 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크게 4가지 단계(what now, what next, personal, advice)로 인터뷰 질문 구조를 짰습니다.
특히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에서 현재 직업과 연관된 단서를 찾고자 했고요. 실례를 무릅쓰고 실패에 대한 기억도 물어봤습니다. 성공담도 중요하지만 실패에서 얻는 교훈도 크니까요. 물론 이 흐름은 편집 과정에서 개별 질의응답을 재구성하거나 도중에 추가된 기획도 있어서 4단계가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매거진 B』는 감각적인 사진 레이아웃이 인상적이었던 잡지였어요. 그런데 이번 단행본에는 사진이 없습니다. 의도하신 것인가요?
그동안 『B』에 감각적인 사진이 많았다면, 『JOBS 잡스』 단행본 시리즈는 독자가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진 대신 인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추가하는 식으로 방향을 조정했고, 인물 소개란에 각자의 SNS 주소를 추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자신의 업을 찾고 싶어 하는 모든 개인’이 잠정적인 타깃 독자층입니다. 기본적으로 브랜드에 관심 있는 『B』의 독자층을 제외한다면, 어떤 형태로는 일하고 있는 사람들, 취업을 준비하거나 새로운 분야로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 이 책이 좋은 화두를 던져주면 좋겠고요. 개인적으로 또 바람이 있다면, 이 시리즈가 진로 선택을 앞둔 청소년이나 대학생에게 더 많이 닿았으면 합니다. 저는 건축을 전공하고, 플랜트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에디터로 전업하여 저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기까지 10년이 걸렸거든요. 이 진로가 내가 가야 할 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는 의외로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JOBS 잡스』 시리즈를 통해 나에게 어떤 욕망이 있는지,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잡스 시리즈 2권은 언제 나올 예정인가요? 주제는 무엇인지요?
답하기 난처한 질문입니다. 편집장의 목표는 연내 2권을 더 내는 것입니다. 올해가 몇 달 안 남았습니다. (웃음) 우선은 셰프, 건축가 정도로 고려 중입니다.
에디터는 어떤 직업의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에디터’에 대한 책을 직접 편집하신 에디터님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편집장과 함께 『JOBS 잡스』 시리즈를 기획하고 에디터를 다룬 첫 책을 편집했는데요. 저 역시 일하는 동안 에디터로서 갖춰야 할 직업의식이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구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리 오랜 경력은 아니지만, 유료 콘텐츠 플랫폼과 종이 잡지 그리고 단행본 제작에 참여하면서 결국 이 업의 본질은 사람 간의 관계와 평판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하고요. 예전에 “지금 내 업의 본질은 섭외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중요한 덕목은 데드라인까지 차분히 버틸 수 있는 체력, 그리고 좋은 평판이다.”라고 SNS에 남긴 적이 있습니다. 이 생각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인터뷰 내용에도 나오지만 다양한 매체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 종이책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만의 기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집중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의 터치만으로 훨씬 재밌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가 하면 언제든 각종 알림 메시지가 침투하기 쉬운 스크린이니까요. 이런 침투가 불가능한 종이책이 역설적으로 지금 시대에 더욱 생명력을 가질 것이라 생각해요. 무선 제본이든 사철 제본이든 물리적인 형태로 묶여있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완결성이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그만큼의 집중력을 유지할 가치가 있는 콘텐츠이냐는 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지속적인 출간을 통해 저도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수용 발행인의 답변도 함께 옮깁니다. 요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 보면, 이 답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책의 내용이 알차고 좋아서 그 책을 산다’라는 개념도 물론 중요하지만 책 자체가 갖는 존재감이 물리적으로 내 시야에 있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저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매거진 <<B>>도 그랬고, 직업 시리즈도 마찬가지인데, 특정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사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 건, 그 주제에 관심을 두겠다는 의지의 직접적 표현인 셈입니다.” (13-14쪽)
*매거진B 편집부
균형 잡힌 브랜드를 한 호에 하나씩 소개하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다. 브랜드가 지닌 철학은 물론 숨은 이야기와 감성, 문화까지 감각적으로 담고 있어 브랜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2011년 11월에 창간하여 지금까지 패션, 라이프스타일, 테크, 도시 등 80여 개의 브랜드를 소개해왔으며, 아마존 등의 온라인을 비롯하여 유럽과 북미, 아시아의 주요 도시에 있는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1년에 10권, 국문과 영문을 별도 발행한다.
JOBS 잡스 - EDITOR 에디터매거진 B 편집부 저 | REFERENCE BY B
다섯 편의 인터뷰와 두 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들은 스스로 정의하는 에디터의 일, 일과 삶에 대한 가치관, 실패에 대처하는 법, 에디터가 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 등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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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첫 번째 직업은 에디터이다. 에디터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해, 그중에서 전달할 가치가 있는 주제를 선별하고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소재와 도구를 조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글과 이미지, 글과 소리를 결합하기도 하고 취재원의 음성과 객관적 사실, 에디터의 해석을 엮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