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내게는 질문이 먼저다”
신작 장편 『사하맨션』 출간 21세기의 언어로 그린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
많은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데, 저는 읽히는 재미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2019. 05. 30)
조남주의 4번째 장편 소설 『사하맨션』 이 출간됐다. 『82년생 김지영』 (2016년 10월 출간) 이후 3년만의 신작. 『사하맨션』 은 조남주가 7년 동안 다듬고 다듬어 완성한 소설이다. 『82년생 김지영』 이 완성된 직후 편집자는 조남주에게 “다음 작품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이때 조남주가 조심스레 꺼내 놓았던 소설이 『사하맨션』 이다. 국가 시스템 ‘밖에’ 놓인 난민들의 공동체를 그린 소설. 배경은 가상이지만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 불안은 지금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105만 부, 일본에서 13만 부가 팔린 『82년생 김지영』 이후의 첫 장편. 독자들과 출판계는 조남주의 변신, 혹은 꾸준함을 기대하고 있었다. 조남주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2012년 3월이었다. 쓰고 고치는 7년 동안 나를 비롯해 나를 둘러싼 가깝고 먼 세상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며, “『사하맨션』 이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내가 소설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가 먼저였다”고 밝혔다.
5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조남주 작가는 “간담회 자리가 무척 긴장된다”고 말했지만 조금은 여유로워 보였다.
어떤 내용을 담느냐, 그것이 내게 더 중요하다
독자들이 많이 기다렸습니다. 『사하맨션』 을 출간한 소감이 어떤가요?
많이 긴장이 됩니다. 소설을 쓰고 처음으로 내보이는 자리라서, 어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솔직하게 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목이 독특합니다. ‘사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러시아연방에 소속돼 있는 사하(Sakha) 공화국에서 따왔습니다. 모티프를 사하공화국에서 가져온 건 아니고요. 맨션의 이름을 소설을 쓸 때부터 계속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초원 아파트, 상그릴라 아파트 같은 이름도 있었고요. 사하공화국은 인간이 사는 지역 중에서 최저 기온을 기록한 지역이에요. 최저 기온은 영하 70도까지 내려가고 최고 기온은 30도가 넘습니다. 기온차가 100도가 되는 지역이죠. 반면에 전세계 다이아몬드 매장량의 절반 정도를 보유한 곳으로 짐작되는 곳이에요. 소설의 주제와 상징적으로 어울릴 것 같았어요.
『82년생 김지영』 보다 먼저 쓰기 시작한 작품이라고요.
초고를 쓰기 시작한 게 2012년 3월이에요. 『82년생 김지영』 은 제 나름대로 주제를 잡고 논리적으로 인물들을 설정해서 썼다면, 『사하맨션』 은 그때그때 가지게 된 질문들을 담은 소설이에요. 『82년생 김지영』이 밑그림을 다 그려놓고 구석부터 차분하게 색칠한 작품이라면 『사하맨션』 은 계속 덧쓰고 지우면서 쓴 소설이라 마지막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어요. 계획하지 않고 쓴 소설에 가까운 것 같아요.
변화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도 있었나요?
그보다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이 소설은 제게 오답 노트 같은 느낌이에요.
이번 작품의 배경은 가상의 공간입니다. 리얼리즘이 강했던 전작과 비교하면 SF적인 요소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사하맨션』 에 등장하는 과학, 의학 기술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없지만 이 소설을 SF라고 생각하며 쓰진 않았어요. SF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있지만, 미래 사회를 상상하며 쓴 소설은 아니에요. 『82년생 김지영』 도 르포나 에세이 같다고 말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읽히느냐 보다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제겐 더 중요했어요.
『사하맨션』 을 쓰면서 자주 한 생각이 있나요?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싶고, 사람들이 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늘 궁금해요. 이 마음으로부터 글을 쓰게 되고요. 많은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데, 저는 읽히는 재미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소설에는 밀입국자, 아이,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요.
처음 이 소설을 쓸 때 ‘과연 이 사회가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 그들이 기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주고 있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2012년부터 한국 사회가 세월호, 메르스, 정권 교체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퇴보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럼에도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을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특별히 애정을 갖고 쓴 인물이 있었나요?
‘우미’라는 인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미는 체격이 크고 운동 신경이 좋은 친구예요. 제게는 이런 인물에 로망이 있어서 애정을 갖고 본 인물이에요. 또 『사하맨션』 에는 아이를 키우는 할머니 이야기가 연달아 나와요. 한 공동체 안에서 여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의지하고 연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우리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보육 문제를 할머니들이 대신해주고 있는 상황을 담고 싶었어요. 노년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사하맨션』 줄거리 살펴 보기
21세기의 언어로 그린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주인공은 한 사람만이 아니다. 살인자가 되어 사하맨션에 찾아든 남매가 중심에 있지만 30년 동안 맨션에 세 들어 사는 인생들이 콜라주처럼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추락사를 자살로 둔갑시킨 사장을 죽인 도경과 그 누나, 남매처럼 10년 전 국경을 넘었다는 관리실 영감, 본국에서 낙태 시술을 하다 사고가 발생해 도망쳐 온 꽃님이 할머니,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없었던 사라, L2로 태어났지만 보육사의 꿈을 좇았던 은진…… 사하맨션 입주자들의 면면은 그들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가 마주한 차별과 혐오의 현상을 돌아보게 한다.”(김현 시인)
‘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엄마’라는 정체성
『82년생 김지영』 이 일본에서만 13만 부가 팔렸고 대만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18개국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독자들을 만나기도 하셨는데요.
올해 2월에 일본에 다녀왔어요. 일본 방송사에서 한국으로 취재를 오기도 했는데, 일본 여성 독자들이 한국 여성 독자들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걸 크게 체감했어요. 또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82년생 김지영』 이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힌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82년생 김지영』 의 성공으로 ‘페미니즘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에 부담은 없는지요.
부담감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동시에 상관 없다는 마음도 있어요. 결론적으론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입장이에요. 제가 지금 관심이 가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비중이 크니까요. 하지만 ‘페미니즘 작가’라는 부담감 이면에 ‘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엄마’라는 사실에 관해서는 여러 생각이 들어요. 요즘 청소년 문화를 보면 굉장히 상반된 의견을 가진 친구들이 충돌하는데, 만약 제 아이가 “우리 엄마가 『82년생 김지영』 을 쓴 작가”라고 말했을 때, 일상생활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런 생각은 솔직히 하게 돼요.
후속작이 궁금합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청소년 세대에 관심이 생기면서 쓰게 된 소설이에요. 청소년 세대를 위한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부모로서, 부모 세대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미보다 그 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커요.
『사하맨션』 을 읽어줬으면 하는, 희망하는 독자층이 있나요?
글쎄요. 『82년생 김지영』 이 나오고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 의견을 덧대주시면서 소설이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쾌감 같은 게 있었어요. 『사하맨션』 을 읽고 ‘어떤 생각을 바꿔주세요’ 같은 바람은 당연히 없어요. 제 생각과 경험, 지식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어떤 의견을 보태주심으로 소설 밖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하맨션조남주 저 | 민음사
“신자유주의 디스토피아의 현재와 미래, 삶의 진상(眞相)과 이상(理想)을 동시에 가리켜”(신샛별 문학평론가) 보이는 이 작품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공존시키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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