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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효 “‘유목민’과 ‘정착민’의 경계에서 여행하는 법”

『남미 히피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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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직면하는 게 두려운 사람’이라면 <남미 히피 로드>를 멀리하는 게 좋다. 두려움과 애써 마주할 필요는 없으니까. (2019.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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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주기로 대륙을 옮겨 다니며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 노동효. 그동안 TV, 라디오,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구 행성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소개해왔던 그가 『세계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이후 7년 만에 신작을 냈다. 남아메리카 두 바퀴를 돌며 경험한 마술 같은 이야기 남미 히피 로드』 .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히피 공동체 ‘레인보우 패밀리’와 안데스 산맥에서의 숲 생활, 콜롬비아 커피마을의 서커스 학교 체험, 남아메리카의 골목과 광장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방랑 시인, 떠돌이 명상가, 유랑서커스단, 길거리 수공예가 등 남아메리카의 자유 영혼과 어울려 지낸 체험담이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더불어 생생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각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지만 “어떻게 이런 여행이 가능한가?”하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도 점점 커졌다. 결국 노동효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2010년부터 2~3년 주기로 ‘장기체류 후 이동’ 이라는 방식으로 여행하고 있다. 왜 이렇게 긴 기간을 잡고 여행하는가?

 

여행지의 풍경은, 타인의 삶이 그렇듯이 베일에 감싸여 있다. 한 도시를 하루, 이틀 만에 다녀오거나 너무 빠르게 움직이면 베일을 젖히고 들어갈 여지가 생기지 않는다. 같은 여행지를 다녀와도 다른 감흥을 갖는 건 여행자마다 다른 감성과 취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속도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자가 향상시켜야 할 중요한 기술은 각 여행지에 맞는 속도를 아는 게 아닐까?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느리지 않게.

 

내가 도착한 도시가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주일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등하교하고 직장인이 출퇴근하는 ‘평일’과 ‘불금’의 풍경이 다르고, 연인이 나들이 떠나고 가족이 어울려 쇼핑을 하는 ‘주말’ 풍경이 제각각 다르다. 한편 6월에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 여행자는 한국을 매일같이 비가 내리고 습한 나라로, 1월에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 여행자는 검정 파커를 입은 채 무표정한 사람의 나라로 기억한다. 그런 외국인 여행자는 알 수 없다. 한국의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피는 봄 한국인이 얼마나 환한 표정을 짓는지. 결국 ‘장기체류 후 이동’은 지구와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넓은 대륙의 경우 최소 2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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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다들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경비는 어떻게 마련하는가? 대단한 재력가라는 소문이 사실인가?

 

‘장기체류 후 이동’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 전, 일거리를 갖고 나간다.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는데 수천만 원이 들었다. 돈을 갖고 나갔다면 마음 편히 여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통장잔고가 줄어드는 걸 보며 마음 편한 사람은 없으니까. 글과 사진을 보내고, 번만큼 쓰면서 떠돌았다. 물론 재력가財力家라는 건 사실이다. 재력가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란 의미라면. 재물을 많이 가진 자가 재력가라고 여기지 않는다. 비싼 차가 있으면 뭐 하나, 차가 제 집과 회사 주차장에만 세워져 있다면. 소형차라도 바닷가, 들판, 산장, 휴양지에 더 자주 서 있을수록 재력財力이 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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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단숨에 친구를 만드는 능력이 놀랍다. 더구나 당신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영화나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비결이 뭔가?

 

우선 상대가 선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갖고 있다. 상대를 ‘선’하게 여기고 대하면 그는 선한 면을 보여준다. 상대를 ‘악’하게 여기고 대하면 그는 악한 면을 보여준다. 느닷없는 강도는 예외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가 만나는 인간은 내가 만든다. 남아메리카에서 누구를 만나든 소설에서 나온 주인공처럼 대했다. 그러면 진짜 소설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순서상으로 어느 게 먼저일까?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문화이자, 나라며, 세계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는 만큼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가령 당신이 명상에 관심이 많고, 잭 케루악을 좋아하고, 밥 말리를 즐겨들으며, 세계 여행을 하며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번역본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치자. 그런 당신을 만나면 정말 흥미로울 것이다. 근데 상대가 당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디를 여행했고, 어디가 좋았고, 어디로 갈 거라는 천편일률적인 말만 하고 떠날 것이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관심은 ‘눈’과 ‘가슴’으로 전달된다. 상대가 진정 ‘호기심 가득한 눈’과 ‘뜨거운 가슴’으로 관심을 가지면 당신은 신비로운 주인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여행지에서 ‘김치~’ 하고 사진만 찍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명소 앞에서 누구나 하는 포즈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 이유란, 그런 신비로운 만남이 없기 때문이지 않았던가? 평범과 신비, 그 사이의 장막을 젖히는 방법은 ‘관심’과 ‘호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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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선 한 주제를 가지고 일생을 거는 탐험가 정신이 느껴진다. 근데 왜 주제가 ‘여행’인가?

 

인류가 만들어낸 건 무수히 많다. 돌도끼, 화약, 종이, 바퀴, 철도, 자동차, 스마트폰 등등. 나는 그것들 중 ‘길’을 가장 사랑한다. 길을 사랑하는 이유는 어찌할 도리 없는 호기심 때문이다. 15살 때 처음 집을 나갔다.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날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왜 어린아이는 기차가 사라지는 저편으로 떠나고 싶어 할까? 왜 지구 어느 곳에 살든, 인류는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어 할까? 과학자들은 인류가 이동한 까닭을 기후나 식량부족으로 설명하지만, 그 이전에 ‘호기심’이 있었다.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빙하기에 태어났더라면, 그 궁금증 때문에 베링 해협을 건너는 대열에 함께했을 것이다.) 인류의 이동이 ‘호기심’ 때문이라는 건 현대인이 지구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기후, 식량부족 때문에 보이저 1호를 밖으로 보냈을까? 아니다. 태양계 너머, 우리 은하계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먼저다. 인류는 끊임없이 ‘길을 만드는 존재’고, 그건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나는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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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도시를 거점으로 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바꾸는 새 인류의 출현을 예견했다. 마음껏 삶의 자유를 누리는 부유한 유목민, 외국인 근로자나 쫓겨난 농민처럼 어쩔 수 없이 떠도는 가난한 유목민, 그리고 부유한 유목민을 꿈꾸는 정착자로서 가상의 유목민으로 나누었다. 당신이 만난 히피는 자크 아탈리의 분류 항목에서도 벗어난 종족인 것 같다.

 

자크 아탈리가 남아메리카에서 히피와 한 시절을 보냈더라면 분명 호모 노마드의 분류에 히피류 유목민을 포함시켰을 것이다. 대단한 석학일지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을 읽을 순 있겠지만 경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내가 자크 아탈리라면 『4차 산업혁명과 히피』 라는 책을 쓰겠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인간이 해온 수많은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 그로 인해 기본소득이 북유럽을 시작으로 지구 전체로 퍼질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 같지만 히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다. 그들이 만드는 음악, 미술, 문학, 수공예품은 인공지능이 절대 따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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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부재자 투표를 위해 10일에 걸쳐 아마존을 횡단할 생각을 하다니 놀랍다. 당신은 ‘세계 어디에 있든 사람은 모국어로 생각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 생각, 상상력은 공동체의 미래를 바꾸기도 할 것이다.

 

서른 살이 되기 전, 또래 친구들은 이십대가 지나갔다는 생각에 슬퍼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기뻤다. 21세기가 시작되던 무렵이었고, 서른이란 나이는 이십대와 달리 이 사회에 대해서 발언을 하고 행동을 할 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이라고 여겨졌으니까. 20세기에 대해선 내게 책임이 없다. 1차 대전, 2차 대전, 한국전쟁, 4ㆍ19, 유신정권, 5ㆍ18, 6월 민주화 운동, IMF….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거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21세기는 다르다. 내가, 당신이 입는 옷, 듣는 음악, 보는 영화,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21세기의 역사가 된다. 21세기의 죄악과 부패는 누구에게 전가할 수 없다. 21세기에 벌어지는 모든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투표는 정말 일부분. 22세기의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21세기의 역사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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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와 같은 유목민에겐 ‘고향’이란 단어가 없을 정도로 정주의식이 희박하다면, 정착민은 고향, 출신을 중히 여긴다. 당신은 그 경계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날개’와 ‘뿌리’를 동시에 갖고 싶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날개와 땅을 움켜질 수 있는 뿌리.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2~3년은 다른 대륙에서, 2~3년은 국내에서 체류하기로 했다. 그런 탓에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의 경계에 서 있을 때도 있고, 한 마을에서 장기체류할 때는 현지인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에 있을 때도 있다. 다른 여행자가 보기엔 현지인 같고, 현지인이 보기엔 이방인 같은 상태. 경계에 서 있는 건 불안할 수도 있지만, 나는 좋다.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지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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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글을 읽으면 사건과 연상되는 영화, 문장, 노래 등이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그것들이 독자로 하여금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끌어올린다.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언제 어떻게 익혔나?

 

20대 시절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같은 음반을 듣고 또 듣고. 지금은 극장에서 상영종료 후 관객을 다 내보내지만 그 무렵 영화를 보면 복도에서 다음 회를 기다려 같은 영화를 두세 번 보곤 했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땐 처음부터 끝까지 조각칼로 뇌 표면에 문장을 새기듯 읽었다. (제대 후 그 느낌이 사라졌는데 AS를 받을 길이 없다.) 그렇게 들은 음악, 본 영상, 읽은 문장은 길을 가고, 풍경을 바라볼 때도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음악을 또 듣고, 같은 영화를 또 보고, 같은 책을 또 읽고. 모든 걸 다 살 수 있는 돈이 없었으니까. 그 시절의 결핍이 지금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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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친 도시인에게 여행을 부추기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커다란 꼬리를 뒤채며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마치 한 순간의 짧은 꿈같았고, 호스텔 관리인 마틴이 치는 우쿨렐레 연주는 몽환적이었다.”는 장면처럼. 당장 못 떠나는 사람들을 어쩌라고, 이리 몽환적으로 아름다운가! 한편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한 면도 있다.

 

지인들에게 원고를 보내고 모니터링하고 돌아온 반응이 “너무 재밌고, 부럽고, 따라하고 싶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얼른 이 책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동시에 절대 보여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 책을 아이가 읽다가 훅 바람이 들어버리면 어떡하지? 나도 들썩이는데 아이가 이 책을 읽고 가방도 벗고, 허례허식도 벗고, 가정과 사회가 짐 지운 의무도 벗고, 점점 가벼워져 훌쩍 떠날까봐 두려웠다.”고. 그 얘기를 들으며 문득 1960년대의 히피, 뉴아메리칸 정서를 대변하는 영화 <이지 라이더>의 대사가 떠올랐다.

 

“우리가 그렇게 위협적인가? 그래봤자 머리 좀 기른 것뿐이잖아?”


“아니. 그들은 네게서 ‘자유’를 본 거야.”

 

‘자유와 직면하는 게 두려운 사람’이라면  남미 히피 로드』  를 멀리하는 게 좋다. 두려움과 애써 마주할 필요는 없으니까. 돌아서 피해가면 되니까. 그러나 책 읽는 동안만이라도 ‘자유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남미 히피 로드』  를 읽는 게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자유와 직면하는 게 두려운 사람, 자신이 그어놓은 테두리를 제 아이가 벗어날까 두려운 부모에겐 다소 위험한 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을 아이는 어차피 남고, 떠날 아이는 어차피 떠난다.

 

내가, 당신이 그랬듯이.

 


 

 

남미 히피 로드노동효 저 | 나무발전소
여행이란 ‘자신이 태어난 행성, 지구를 몸에 새기는 일’이라고 여기는 작가의 여행 루트를 따라가 보노라면 우리가 여행지에서 풍경처럼 지나쳤던 사람들이 ‘오래 사귄 벗이나 형제’처럼 그립고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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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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