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골목, 취향의 천국

『골목 도쿄』 공태희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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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나 유럽의 진귀한 식재료는 물론 한국의 특이한 식재료도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 곳이 도쿄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건 우리 한국인만 아니라 일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신기한 일이죠. (2019. 01. 28)

[골목도쿄] 작가 프로필 사진_페이퍼로드.jpg

 

 

『골목 도쿄』 를 집필한 OBS 공태희 PD는 일본 방문 횟수만 200번이 넘는다. 어느 순간 카운트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카운트를 멈췄다. 출장 때문에도 자주 가지만 맥주나 커피, 소소한 생필품을 사러 가기도 한다. 작가는 일본 이외에도 항공기, 밀리터리, 역사, 요리, 청소, 자동차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덕질하며 홍덕인간(弘德人間, 덕질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으로 살고 있다.


첫 책  『골목 도쿄』 는 전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인 도쿄를 깊숙이 파고든 인문 서적이다. 도쿄 골목 문화, 음식, 아베의 관광 정책 등 도쿄의 깊은 면모를 덕후의 세밀한 시선으로 다뤘다.


음악 방송 전문 PD님이신데 첫 책으로 도쿄를 다룬 인문서를 내셨어요. 이 책은 어떻게 집필하시게 된 건가요?

 

음악방송 PD라고 해봐야 남들과 별다를 것 없어요. 아티스트들과 무대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정작 일의 대부분은 평범한 직장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퇴근하죠.


책을 내게 된 계기는 정말 사소합니다. 큰 프로젝트의 경쟁 입찰을 앞두고 있던 때였어요. 기획서만 수백 장 넘게 준비해야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몇 달을 그 일에만 매진했더니 1차 서류심사 접수를 하자마자 허무감이 몰려왔습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탁PD의 여행 수다>에 스스로 출연 신청을 했어요. 일본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신 있었으니까요. 막상 공개 방송 무대에 오를 땐 정말 걱정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덕후 아저씨의 이야기를 좋아할까 싶었거든요. 속으로 덜덜 떨면서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방청객 여러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집중해주시고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내가 아는 이야기를 남들과 공유한다는 게 멋진 일이구나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내가 잘 아는 일본 이야기를 길게 써보자고요.
 
책 본문 중에 도쿄가 뉴욕을 능가하는 '취향의 천국'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어떤 면에서 말씀하신 건가요?


도쿄의 다양성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지점은 역시 요리와 식재료입니다. 뉴욕이 자랑하는 거의 모든 요리는 도쿄에서도 즐길 수 있어요. 전 세계의 수도 격인 뉴욕에서 구하지 못할 식재료란 거의 없죠. 그런데 도쿄의 식재료가 한 수 더 위입니다. 도쿄라면 일반 떡볶이 말고 국물 떡볶이를, 사리곰탕면도 봉지 라면과 컵라면 2종 모두 먹을 수 있죠.


북미나 유럽의 진귀한 식재료는 물론 한국의 특이한 식재료도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 곳이 도쿄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건 우리 한국인만 아니라 일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신기한 일이죠.

 

도쿄도 전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 중 한 곳이고 오랫동안 많은 것들이 재개발로 허물어졌을 텐데요. 그럼에도 옛 것이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도쿄의 수많은 노포의 주인들은 노포가 있는 건물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죠. 해를 거듭해 임대만으로는 결코 노포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일본의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매출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이름난 가게라도 품질이 떨어지면 대를 이어 노포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일본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선진국이었습니다. 소득과 생활수준이 높다고 선진국은 아니죠. 다양한 취향이 다양한 부문에서 존중받는 것이 선진국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도심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은 엄청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역민 한 명 한 명의 이해와 동의를 구했기 때문이죠. 지역의 대규모 개발의 이익이 반드시 지역민에게 돌아간다는 확신을 지역민이 믿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투기자본이었다면 이 세월을 기다릴 수 있을 리가 없죠. 다행히도 도쿄의 대규모 개발에는 돈은 물론 뜻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과 개발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몇 개의 큰 프로젝트를 멋지게 성사시켰습니다. 물론 도쿄에서도 단기간 대규모 개발이 붐처럼 일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만, 그 결과가 생각보다 허망했습니다. 생각보다 이익도 크지 않았고,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학습효과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일본 원도심 재개발의 접근법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도쿄를 이미 두세 번 이상 방문해본 여행자에게 "이 골목(동네)도 가보았니?"라고 추천해주실 만한 곳이 있을까요?


아카바네라는 곳이 최근 몇 년 동안 급속히 도쿄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아카바네는 신주쿠의 규모에 살짝 못 미치는 부도심인 이케부쿠로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아카바네는 동화처럼 아기자기한 동네가 절대 아니에요. 역을 나서면 아케이드 상가가 길게 뻗은 평범한, 정말 평범한 동네입니다. 그런데도 아케이드 상가를 벗어나자마자 펼쳐지는 골목은 굉장히 굉장하고 대단히 대단합니다. 세련된 스탠딩 와인바(와인 다치노미야)옆에 버젓이 곱창구이(호루몬야키)를 팔고, 그 건너편에는 어이없게도 일본 전통 과자인 화과자를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좁은 골목길들이 혼돈의 카오스처럼 펼쳐진 곳이에요.


아카바네 사람들은 이런 혼란스러움에 일본 특유의 정리정돈을 더했습니다. 골목은 혼란스러운데 가게 안은 정갈하죠. 골목길 가게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지점까지 씩씩하게 나아간 느낌입니다. 이른바 요새 한참 떠버린 이른바 뉴트로, 그 뉴트로의 고향 행성 같은 곳이 아카바네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탁PD의 여행수다> ‘골목 도쿄 2부’를 들어보세요)

 

일본을 200번 넘게 방문하시면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면?


역시 사람들입니다. 서로 존재조차 모른 채 몇 십 년을 살았는데 이제는 서로 알뜰히 챙겨주는 친구들이요. 게임으로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NPC(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퀘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도우미 캐릭터)에 불과했던 상대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말을 건네며 서로 퀘스트를 함께 뛰는 친구가 된 셈입니다. 그것도 이제는 서로의 나라를 번갈아 다니면서 몇 번이고 즐거운 퀘스트를 함께 뛰는 사이가 되었죠.

 

만약 도쿄의 친구분들이 서울에 놀러 온다면 어느 골목(동네)에 데려가고 싶으신지요?


제 친구들은 거의 모두 한국 일정을 꼼꼼하게 결정하고 오는 편이에요. 심지어 저보다 서울은 물론 부산의 골목골목과 맛집을 더 잘 알고 있는 친구까지 있어요.(웃음) 일본인인 주제에 요즘 막 떠오르고 있는 통인동 골목의 라이징 한식 레스토랑을 제게 안내해주기도 합니다(웃음).


서울을 좋아하는 일본인이라면 서울이 아닌 한국도 분명 좋아합니다. 저에게 일정을 통으로 맡긴다면 저는 주저 없이 제 고향이며 지금 살고 있는 인천으로 데려옵니다. 인천은 조선 최초의 개항장과 최초의 근대 시민공원, 최초의 철도역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닌 곳입니다. 인천 신포동에는 50년 이상 된 노포가 구성된 알찬 맛집들입니다. 게다가 월미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킹이 두 개씩이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골목 문화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 철도, 음식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어요. 작가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분야의 공통점과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본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 종종 일뽕이나 일빠로 오해 받습니다. 단언컨대 저는 일뽕도 일빠도 아닙니다. 일본을 잘 알고 있고 앞으로 더 잘 알고 싶은 덕후라고나 할까요.


덕후에도 여러 서브 장르가 있는데 저는 ‘생활형 덕후’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편하고 안전하고 공정하고, (나름대로) 우아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좋아합니다. 요리나 청소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죠. 밀리터리 덕후라면 당연히 역사와 과학에도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니 자연스레 항공기 덕후, 공항 덕후의 큰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취향이라는 것은 한 사람을 구성하는 부품 중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을 알고 싶다면 가장 빠른 길은 결국 그 사람이 지닌 취향의 총합을 계량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덕후들이 스스로 덕후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나는 덕후입니다”라고 크게 소리쳤으면 좋겠어요. 덕후의 삶이야말로 세상을 불행하지 않게 사는 방법 중,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골목 도쿄공태희 저 | 페이퍼로드
쇠락해가는 도시 재생에도 훌륭하게 성공하고 에도 시대의 전통을 여실히 살린 도쿄 골목 문화, 그것을 얄미울 정도로 상품화에 성공한 아베 정부의 관광정책 등 도쿄의 깊은 면모를 덕후의 세밀한 시선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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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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