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카라멜 마키아토
『매일 갑니다, 편의점』 펴낸 봉달호 작가 인터뷰
누구에게든 먹고 사는 문제는 어렵고 눈물겨운 일이지요.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중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책과 글이 저에게는 휴식이고 일종의 해방구입니다. (2018. 10. 18)
“편의점을 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봉달호 저자가 보낸 투고 메일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책을 내본 작가도 아니고, SNS 스타는 더더욱 아닌 아저씨라니…. 편집자인 저는 사무적으로 원고를 열어보았습니다. 열기 무섭게 900매가 넘는 원고를 단숨에 읽었죠. 그것도 깔깔거리면서요.
상품을 발주하고, 진열하고, 계산하고, 폐기 상품을 버리는 편의점의 일상은 ‘글’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봉달호 점주는 영수증 뒷면이든 라면 박스 귀퉁이든 기록을 멈추지 않았고, POS 단말기 틈으로 독서대를 놓고 선 채로 짬짬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성실한 하루하루가 모여 평범한 아저씨는 ‘편의점 작가’가 되었습니다. 묘한 매력의 아저씨, 봉달호 작가를 만나보시죠.
『매일 갑니다, 편의점』 을 비롯해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등 작가가 아닌 분들이 쓴 에세이가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밥벌이가 아닌 글을 쓴다는 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소설가 김훈 선생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이 생각나는군요. 누구에게든 먹고 사는 문제는 어렵고 눈물겨운 일이지요.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중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책과 글이 저에게는 휴식이고 일종의 해방구입니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 에필로그에 저는 이렇게 썼어요.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오늘의 현실 밖으로 뛰쳐나가 꿈을 좇는 여행이기도 했고, 반대로 ‘이것은 꿈인가’ 하면서 살을 꼬집어 현실을 확인하는 각성의 기록이기도 했다.”
하루 14시간씩 편의점에서 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근무 시간인데 글은 언제 쓰시나요? 혹시 자신만의 글쓰기 노하우가 있을까요?
신문 기자들이 마감 시간에 임박했을 때 가장 기사가 잘 써진다고 하잖아요. 누구든 ‘심장이 쫄깃할 때’ 집중도가 최고로 높아지고 잠재력이 폭발하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편의점 일일 발주 마감 시간이 9시 50분이거든요. 그러면 9시 정도부터는 상품 발주를 시작해야 해요. 나름대로는 그 시간을 저만의 원고 마감 시간으로 잡고 매일 한 편씩 글을 썼어요. 평소 영수증이나 박스 뒷면에 적어두었던 글을 그때 정리하는 거죠. 아침에 손님들은 계속 들어오고, 나만의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심장은 콩닥콩닥 뛰고…. 그러다 보면 속도감 있고 간결한 글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아 참, 글 쓰는데 정신 팔려 발주 시간을 놓쳐버린 끔찍한 사건도 몇 번 있었답니다.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크게 혼났죠. (웃음)
책을 보면 손님과의 에피소드, 편의점 토막 상식, 점주로서의 애환 등 다양한 결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책에서 꼭 전하고 싶은 하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처음에 글을 쓸 때 내가 무엇을 말해야겠다, 뚜렷한 주제를 정해뒀던 건 아니에요. 어디에 어떻게 발표하겠다는 계획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쭉 썼어요. 그런데 다 쓰고 나니까, 원고를 모아놓고 보니까, 스스로 놀랐죠. “서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어쩌다 편의점을 시작하게 되었고, 늘 카운터 바깥에 있던 입장에서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달라진 시선의 차이를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제 책은 손님의 입장에서 더러 불편한 내용이 있을지도 몰라요. ‘편의점 주인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독자들도 한 번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그런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고맙겠습니다.
날마다 수백 수천 명의 손님을 맞이하는데, 지금까지 만난 손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희 편의점은 오피스 빌딩 지하에 있어요. 거의 모든 손님이 회사원이에요. 그에 얽힌 에피소드가 매일 반복되죠. 저희 가게에 하루 세 번 이상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요. 항상 카라멜(캐러멜) 마키아토를 사 가서, 제가 ‘마키아토’라는 별명을 붙인 손님인데, 자그마치 일 년 동안 줄기차게 그것만 드시더군요. 그런데 며칠 전 가게에 찾아와 “앞으로 뵙지 못하게 됐다”고 작별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그분은 계약직이었는데,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떠나신 거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려요. 세상과 사회, 인생의 축약판이 편의점이에요.
삼시 세끼를 편의점에서 해결하시는 만큼 편의점 음식에 대해선 전문가이실 텐데요, 가장 좋아하는 편의점 먹을거리를 꼽아주신다면?
흠, 좀 잔인한 질문이군요. 삼시 세끼 편의점 음식을 만 5년 동안 매일 먹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솔직히 삼각김밥 냄새만 맡아도 신물이 날 지경이에요. 저도 지글지글 냄비에 끓는 김치찌개나 솥뚜껑 위에 굽는 삼겹살을 더 좋아한답니다. 하하, 진담 섞인 농담이고요, 굳이 가장 좋아하는 편의점 먹을거리라기보다는… 신제품은 다 먹어보는 편이에요.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 신제품이 출시되면 뭐든지 제가 일단 뜯고 씹고 맛보고 나름대로 평가해봐요. 그래야 손님들에게 권할 수 있고, 상품 발주를 계속 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치킨집만큼 눈에 자주 띄는 게 편의점입니다. 편의점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데, 6년 차 점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지요?
흔히 편의점은 그냥 물건 갖다 놓고 팔면 되는 업종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진열에도 법칙이 있고, 상품 구색도 점포마다 특징이 있어요. 같은 점포인데도 점주가 달라지니 매출에 적잖은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죠. 상품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트렌드를 파악하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서비스 정신도 있어야 하고, 뭐든지 가지런히 진열하고 쓸고 닦는 습관도 있어야 하고, 또 부지런해야 하고…. 편의점 점주도 나름대로 전문직이랍니다. 다른 편의점에서 알바라도 몇 개월 해보고 자기 적성에 맞다 생각하면 해야지 무작정 덤벼들었다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또 알바의 시각과 점주의 입장은 굉장히 다르답니다. 신중하세요.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독서광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근무 틈틈이 읽는 책이 연간 40~50권 정도라는 문장을 읽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 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이 있을까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편의점과 관련된 책이라면 『마이 코리안 델리』 를 추천해요. 백인 남성이 한국계 여성을 만나 미국에서 편의점(정확히 말하면 델리)을 차린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요절 복통 재밌는 내용도 많고, 편의점 점주로서 세계 어디나 공감하는 코드를 발견하며 신났어요. 필자가 원래 직업이 문학잡지 편집자라서 문체도 유려하고, 다문화 가정이 겪는 여러 가지 갈등과 화해의 메시지까지 담고 있어 과자선물세트 같은 달콤한 책이에요.
화가 이미경 작가님이 쓴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도 마음 가득 추천하고 싶어요. 2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만 펜화로 그린 그림을 모은 아주 독특한 책인데, 세월의 촉감이 묻어나는 가슴 뭉클한 책이에요.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어찌나 눈물겹던지….
매일 갑니다, 편의점봉달호 저 | 시공사
민폐 고객부터 요주의 인물, 단골에 이르는 여러 손님과의 에피소드는 주인공 특유의 오지랖과 아재 개그를 만나 격한 공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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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주인 6년 차 아저씨가 카운터 너머에서 관찰해온 손님과 일상 이야기. 물건을 사기 위해 잠깐 들르는 무색무취한 손님에게도 각자의 사연은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벌어지는 관찰과 아재적 상상력이 더해져 편의점의 하루는 시트콤처럼 흘러간다. 손님 입장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 지갑에 영향을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