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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특집] 박성우 “내 아이의 마음을 읽는 방법”

『아홉 살 마음 사전』의 후속작 『아홉 살 함께 사전』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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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싫어’, ‘짜증나’라는 말로 뭉뚱그려서 말하는데, 그게 굉장히 안 좋은 거거든요. 자기 감정을 모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어른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감정이라는 게 사물의 이름처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항상 복합적으로 와요.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런 감정을 분명 느끼지만 무슨 감정인지 모르는 거예요. (2018.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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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감정을 모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2017년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선정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홉 살 마음 사전』 의 후속작 『아홉 살 함께 사전』 이 출간됐다. 마음을 표현하는 80개의 단어를 담았던 『아홉 살 마음 사전』 은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번에 출간된 『아홉 살 함께 사전』 에는 ‘관계와 소통’에 필요한 단어 80개가 실렸다. 학교 안팎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더 큰 사회와 만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홉 살 함께 사전』 은 각 표현의 의미를 짚어주는 동시에, 언제 어떻게 그 말이 사용되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 “이불을 자꾸 차 내는 동생이 잘 자도록 이불을 덮어주기”, “새로 나온 입체 스티커를 사 주지 않으면 구구단을 외우지 않겠다고 버티기”, “친구에게 비밀 이야기하기” 등 아홉 살 무렵의 아이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건과 감정을 담았다. 어린이 독자들은 책 속 이야기에 공감하고 몰입하면서, 표현의 사용법을 쉽고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냈을까. 어쩌면 이렇게 고운 표현으로 받아 적었을까.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함께 사전』 을 읽으며 떠올랐던 물음표는 박성우 시인의 이름 앞에서 느낌표로 바뀌었다. 시집 『가뜬한 잠』 ,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등으로 한결같이 따스한 시선을 보여줬던 시인. 동시집 『불량 꽃게』 와 청소년 시집 『난 빨강』 , 『사과가 필요해』 를 통해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했던 시인. 딸과 함께 쓴 그림 동시집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를 선물처럼 안겨줬던 시인. 박성우라면 어린이를 위한 마음과 소통의 이야기를 정성스레 준비할 법했다.

 

“2014년 초에 연락을 받았어요. 아이들의 마음에 관한 사전을 같이 만들고 싶다고요. 마침 저희 딸아이가 여덟 살이었어요. 그때 아이가 했던 질문을 떠올려 보면, 일곱 살 즈음까지는 주로 눈에 보이는 걸 물어봤는데, 그 단계가 지나면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을 물어보더라고요. 이를테면 ‘아빠, 과학이 뭐야?’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사전에서 찾아서 뜻을 읽어주면 어려우니까 이해를 못하죠. 그럴 때는 ‘과학은 전구가 어떻게 켜지는지, 공룡이 왜 사라졌는지, 별은 왜 뜨는지 알아보는 거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금방 알아들어요. 『아홉 살 마음 사전』 , 『아홉 살 함께 사전』 도 그런 과정이에요. 그래서 처음 『아홉 살 마음 사전』 제안을 받았을 때, 시기가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됐다 싶었죠. 처음부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책,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 의미 있는 책을 만들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아홉 살 마음 사전』 을 준비하다가 연계선상에서 『아홉 살 함께 사전』 도 쓰게 됐고요.”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는 말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예사로 오간다. 하물며 아이들은 오죽할까. 아직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아이들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함께 사전』 으로 이어진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진짜 중요하잖아요. 예전에는 표현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죠. 요즘 아이들은 ‘싫어’, ‘짜증나’라는 말로 뭉뚱그려서 말하는데, 그게 굉장히 안 좋은 거거든요. 자기 감정을 모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어른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감정이라는 게 사물의 이름처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항상 복합적으로 와요. ‘시원섭섭하다’는 말처럼요.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런 감정을 분명 느끼지만 무슨 감정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로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건데, 그런 점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알려줄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아홉 살 마음 사전』 , 『아홉 살 함께 사전』 은 두 명의 시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의 유병록 시인이 편집을 맡은 것. 앞서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를 같이 만들었던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로 마음과 뜻이 잘 맞았다. 예민한 감각으로 단어를 가려 고르는 것까지도, 똑 닮았다.

 

“저는 ‘함께’라는 말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책을 쓸 때는 ‘관계 사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목으로 쓰기에는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공부를 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유병록 시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단어들이 나왔어요. ‘더불어’, ‘친구’, 같이 비를 피한다는 의미에서 ‘우산’까지, 별별 이름을 다 생각했어요(웃음). 그러다가 유병록 시인이 ‘함께’라는 말을 했는데, 듣는 순간 전율이 오더라고요. 저는 ‘함께’라는 말을 쓰면서도 책의 이름표로 달아줄 생각을 못했거든요. 함께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혼자 하면 뭔가 우울해지고, 가라앉고, 낮아지고, 쓸쓸하고, 고요하고, 이런 기분이 드는데 ‘함께’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들뜨고, 뭔가 기쁜 일이 있을 것 같죠. 뭘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고요.”

 


언어와 생각의 폭이 달라질 거예요


박성우 시인의 작품에서는 늘 온기가 느껴졌다.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 안에,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전해줄 수 있는 체온이 담겨 있었다.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함께 사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누구도 상처 받지 않도록, 그 어떤 편견도 스미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책 속 깊숙이 ‘배려’와 ‘공존’이 자리를 잡았다.

 

『아홉 살 함께 사전』 을 쓸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관계와 관련된 내용이니까 쉽게 쓸 수 없었어요. 예를 들면 용서라는 단어에 대해서 쓸 때 ‘어느 선까지 용서라고 봐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다투는 상황을 쓸 때도, 사실은 아이들이 다툴 때 과격하게 밀치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지만, 그런 표현은 쓰지 않았어요. 책에 실린 표현 중에 가장 과격한 게 ‘동생을 밀어서 넘어뜨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부정적인 의미의 표현들, 이를테면 ‘끼어들다’나 ‘잡아떼다’ 같은 말을 설명할 때는 인물들의 이름을 다 뺐어요. 혹시라도 같은 이름의 아이가 책을 읽고 상처 받으면 안 되니까요. 또 모든 아이들이 엄마아빠랑 사는 건 아니잖아요. 아빠하고 아이로 이루어진 가정도 있고, 엄마랑 또는 할머니랑 사는 아이들도 있어요. 책에 입학식 날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때도 할머니가 참석하시는 걸로 했어요. 나름대로는 보이지 않게 배려하려고 한 거예요.”

 

어쩌면 지극히 사소한 부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박성우 시인은 책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도 다듬고 고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능한 세심하게 배려하고 싶었고, 고민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없이 진중해지는 자신을 보면서 원고 위에 ‘발라하게’라고 적어두었을 정도다.

 

“예전에는 가정 안에 가부장적인 모습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젠더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 그런 운동이 있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저희가 잘못 살아왔다는 이야기죠. 이 책에서는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하는 모습도 보여주려고 했어요. 외할머니 생신 때 식구들이 다 같이 외할머니 댁에 가서 식사하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배우다’에서도 ‘나는 피아노를 잘 못 치지만 엄마랑 같이 치고 있어’라고 쓸 수도 있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거든요. 그래서 종이접기로 바꿨어요. 어떻게 보면 너무 소심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아홉 살 함께 사전』 의 또 다른 미덕은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런 말하면 못 써’, ‘그런 마음은 미운 마음이야’라고 다그치기보다 ‘그런 말은 어떤 상황에서 써야 하는지’ 올바른 예를 보여준다.

 

“‘거절하다’ 같은 말에 대해서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잖아요. 사실 그건 언어를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개념이에요. 그런 걸 보면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편협하게 언어를 쓰는지 알게 되죠. 거절하는 건 중요한 거잖아요. 거절할 건 거절할 줄 알아야 되죠. 예시로 ‘모르는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기’를 썼는데, 저희 딸아이한테도 교육시키는 부분이에요. 또 다른 예가 ‘물놀이는 어른이랑 같이 가야 한다’는 건데요. 친구가 우리끼리 물놀이 가자고 하니까 거절하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 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울려’라는 부분도 마찬가지예요. 울린다고 하면 무조건 ‘나쁜 거야, 화낼 일이야’라고 하는데 따뜻한 눈물, 행복한 눈물, 아름다운 눈물, 기쁨의 눈물도 있잖아요. 책에 나온 것처럼, 전학 가서도 잘 지내라는 친구의 편지를 받았을 때도 눈물을 흘릴 수 있죠. 눈물의 의미와 울림이 얼마나 큰지 알아가는 거예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언어의 폭, 상상의 폭, 생각의 폭, 행동의 폭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봐요.”

 

박성우 시인은 두 권의 사전 속에 예쁜 말, 착한 말만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 그대로 실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책이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그 때문일 거라고, 시인은 덧붙였다.

 

“책에 ‘요구해’도 나오잖아요. 나한테 필요한 게 어떤 건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돼요. 예전에 저희가 자랄 때는 무조건 참으라고 했죠. 그건 정말 안 좋은 교육이에요. 혼자서 ‘내가 뭔가 잘못된 건가?’ 생각하게 되잖아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죠. ‘숨기다’라는 것도 좋지 않은 개념으로 생각되고는 하는데, 책에 그런 예가 나와요. 엄마 생일을 모르는 척하면서 선물도 사고 깜짝 파티도 준비하는 거예요. 요즘은 엄마들도 자기 일을 가지고 있잖아요. 바쁘게 일하는 엄마가 직장에 다녀와서 그런 장면을 본다면, 그 어떤 에너지보다 클 거라고 생각해요.”

 

그림 작가 김효은은 『아홉 살 마음 사전』 에 이어 『아홉 살 함께 사전』 에서도 함께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온다. 시인이 쓴 글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상황을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담백한 그림체와 고운 색감이, 마치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김효은 작가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를 테면 ‘삐쳐’에서 세 명의 아이들이 다투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아이들이 ‘화해하다’에도 똑같이 나오거든요. 아이들이 같이 어울리다가 삐치기도 하고 또 화해를 하잖아요. 그런 과정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김효은 작가는 글을 해석하는 능력이 정말 빼어난 작가예요. 시를 써도 잘 쓰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왜 쓰는지를 알고, 하나하나 접근하면서 그림을 그린 것 같아요. 이런 작가와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얕보다’의 그림에 나왔던 아이들도 ‘인정하다’에 다시 나오는데요. 앞에서는 한 살 어린 옆집 동생이 나보다 줄넘기를 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나오고, 뒤에 가면 그 동생이 나보다 줄넘기를 잘하는 걸 보고 인정하는 내용으로 이어져요. 이런 걸 보면서 얕봤다가도 인정할 줄 아는 걸 배우는 거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인정했을 때 함께 갈 수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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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에는 세 가지 ‘마음’이 있다


『아홉 살 마음 사전』 , 『아홉 살 함께 사전』 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박성우 시인의 딸 규연 양이다. 집필부터 교정에 이르기까지, 부녀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책을 완성했다. 공저자이자 감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홉 살 마음 사전』 은 거의 딸아이하고 같이 썼어요. 책의 1/3 정도는 아이가 말한 내용이에요. ‘불쾌해’라는 단어의 예시에도 실려 있는데요. 불쾌하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이야기해줬더니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두꺼운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짝꿍이 ‘너 그림만 봤지?’ 그랬다는 거예요. 그때 비슷한 마음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교정도 같이 봤어요. ‘아빠, 이거는 조금 이상한데?’라고 말하면 뺐어요. 아이가 정확히 모르는 단어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는데, 그래도 모른다고 하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거니까요. ‘예쁘다’라는 부분을 보면 예문에 고구마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딸아이가 고구마를 캤었는데 그게 예뻤대요. 예쁘다고 하면 우리는 곰 인형 같은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고구마도 예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의 말을 듣고 추가했어요. 조금 더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아이랑 같이 책을 쓰면서 저도 많은 공부가 됐고, 무엇보다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사실 박성우 시인은 문단 내의 소문난 ‘딸바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함께 산책을 하고,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집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꼭 산책을 같이 해요. 뒷산의 낮은 곳으로만 걷는데, 이제는 날다람쥐처럼 산을 잘 타더라고요(웃음). 사실은 엄마한테 쉬는 시간을 주려고 산에 가기 시작했어요. 도서관도 마찬가지고요.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엄마의 쉬는 시간을 위해서 갔어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지금은 엄마한테 하지 못한 이야기도 아빠한테 다 해요. 비밀이 없어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만의 비법이라면, 방학 때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딸의 방에 놀러가요. 그리고 같이 그림을 그려요. 어떤 걸 그리든 간섭하지는 않아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게 해요. 강요는 하기 싫거든요. 스스로 하는 게 중요하죠.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는 서로의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요. 다른 일을 하더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요. 의외로 딸이 좋아하더라고요. 책읽기도 아이한테 강요하지 않고요. 웬만하면 똑같이 책을 읽어요. 지금은 아이가 조금 컸으니까 따로 읽는데요. 책을 읽고 5분이든 10분이든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아마도 진짜 ‘비법’은 따로 있는 듯했다. 박성우 시인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내한테 항상 강조하는 세 가지가 있어요. 가훈 대신 ‘우리 집 마음’이라고 부르는데요. 첫 번째가 존중하는 마음이에요. 가족끼리는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분명 아이들은 실수를 많이 해요. 그런데 어른들도 실수하잖아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지만 엄청 많이 해요. 사실은 작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안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결국 큰 실수도 막아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실수 한 번 했다고 해서 화내고 그러면 절대 안 되죠. 아이들이 그냥 짜증을 내는 것처럼 보일 때도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몸이 아프다거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거나, 엄마아빠한테 서운한 마음이 있다거나,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투정부리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을 꼭 표현하게 해주고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시인이 정한 ‘우리 집 마음’의 두 번째는 배려하는 마음, 세 번째는 사랑하는 마음이다. 특히 첫 번째로 손꼽히는 ‘존중하는 마음’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박성우 시인은 절대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야 한다고, 중간에 말을 끊거나 혼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한 번은 딸아이와 문구점에 갔다 오는 길에 둘이 싸웠어요. 딸아이가 ‘아빠, 나 삐쳤어. 먼저 갈 거야’ 하고 막 뛰어가더라고요. 저도 속상하고 화가 나서 일부러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가다 말고 멈춰요. 그러더니 ‘아빠, 빨리 와. 우리 가족이니까 같이 가야지’ 하는 거죠.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우연히 아이가 쓴 일기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는데요. 자기는 서서 구구단을 외우는데 아빠는 편하게 앉아서 검사를 했대요. 너무 불공평하다는 거죠.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아빠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고요. 아이들 말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서 끝까지 들어줘야 돼요. 절대적으로 많이 들어주고 존중해주고, 그렇게 하면서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게 아주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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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한테 풍선 불기를 가르치면 되겠어요?


부녀의 공동 집필은 그림 동시집 『우리 집 한 바퀴』 , 『동물 학교 한 바퀴』 에서도 이루어진 바 있다. 특히 『동물 학교 한 바퀴』 는 두 사람의 놀이가 고스란히 책속에 담긴 경우라고.

 

“아이들이 성장기마다 특징이 있는데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역할극을 제일 좋아해요. 선생님 놀이, 병원 놀이 같은 걸 엄청 좋아해서 같이 해줘야 돼요. 『동물 학교 한 바퀴』 는 선생님 놀이를 하다가 쓴 책이에요. 딸아이가 자기는 항상 선생님을 하고 저는 학생을 시켰어요. 시험도 봐야 되고 엄청 힘들었죠(웃음). 그런 거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어서 제가 질문을 했어요. ‘토끼는 키를 잴 때 귀까지 재나요, 머리까지 재나요?’, ‘캥거루는 목욕하고 몸무게를 잴 때 아기 캥거루를 빼고 재나요, 안고 재나요?’ 그러면 아이가 재밌어 해요. 자기도 정답은 모르겠는데 재밌다는 거죠. 그리고 저한테 시간표도 짜라고 했어요(웃음). 그래서 코알라의 시간표를 썼죠. ‘1교시 잠자기, 2교시 잠자기, 3교시 잠자기, 4교시 잠자기, 급식 먹기, 5교시 잠자기...’ 이런 식으로요. 코알라는 잠자는 게 공부거든요. 그렇게 딸아이랑 이야기하면서 놀다가, 아이가 재밌어하는 내용은 메모를 해놨어요. 학교 간 사이에 정리를 하고요.”

 

동시 「고슴도치」는 당시의 경험으로 쓰게 된 작품이다. “선생님, 저는 가시 때문에 / 풍선 불기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 그렇지만 엉덩이로 풍선 터트리기는 니가 최고잖아 / 그러면 됐어.”라는 내용의 시다. 딸과 함께 학교 놀이를 하는 동안 시인의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슴도치한테 풍선 불기를 가르치면 아무리 열 시간, 만 시간을 시켜도 잘할 수 없어요. 그런데 한국 교육은 일괄적으로 풍선 불기만 시켜요. 아이가 풍선을 불고 못 불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너는 풍선 불기만 해야 돼’라는 건데, 이를테면 그게 공부라는 거죠. 그런데 반대로, 고슴도치한테 풍선 터트리기를 시키면 1등이잖아요. 잘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죠. 우리 아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분명히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뭘 할 때 즐거워하는지를 잘 보면 장점도 발견할 수 있고요. 이왕이면 아이가 남들이 볼 때 좋아 보이는 삶보다 스스로 행복해하는 삶을 사는 게 좋잖아요. 그게 훨씬 아름다운 거고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름다운 거잖아요. 엄마아빠가 유심히 살펴보면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성우 시인과 권지현 시인은 문단에서 보기 드문 부부 시인이다. 당연히 딸 규연 양 역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박성우 시인은 “항상 엄마아빠가 글 쓰는 모습을 봐서” 영향 받은 바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일찌감치 꼬마 작가의 남다름을 눈여겨 본 안도현 시인은 “엄마아빠보다 더 뛰어난 글을 쓸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엄마아빠가 글 쓰는 걸 항상 봐서 그런지, 어디를 다녀오면 기록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이 진짜 재밌게 놀고 온 뒤에는 기록하고 싶어 해요.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하죠. 처음에는 방법을 모를 수 있는데 ‘오늘 놀았던 일을 한 번 그려볼까? 한 번 써볼까?’하고 몇 번 이야기하면 ‘그럴까?’ 하면서 그리고 써요. 그때 한 줄을 쓰든 두 줄을 쓰든 ‘이것밖에 못 쓰냐’고 하면 안 돼요. 자유롭게 쓰게 하고, 한 가지 정도만 주의하면 돼요. 단순히 ‘재밌었다, 신났다’가 아니라 뭐가 신났는지, 뭐가 재밌었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쓰게 하는 거예요.”

 

지난달에는 박규연 양이 직접 쓰고 그린 책 『아빠, 오늘은 뭐하고 놀까?』 가 출간됐다. 열 살 무렵부터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학교도서관저널>에서 독후감 꼭지에 글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규연이가 쓴 글들이 많으니까, 저 대신 딸아이가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딸이 써서 보냈는데 너무 좋다는 거예요. 연재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년 동안 연재를 했어요. 그 글들이 이번에 책으로 나왔는데요. 원래는 출간을 안 하려고 했었어요. 처음에 연재할 때부터 책으로 묶지 않겠다고 했고요. 그런데 <학교도서관저널> 측에서 꼭 내야 된다고 하고, 이 글들은 창작품이라기보다는 생활글이니까 괜찮겠다고 생각이 돼서 출간하게 됐어요. 규연이 꿈이 작가인데, 저도 딸이 작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동시나 동화를 써보라고 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해요. 많이 경험하고 생각하다 보면 안 쓰고는 못 배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쓰라고 말해요. 그리고 작가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를 꿈꾼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가 꿈꿀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고, 엄마아빠는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면서 함께하는 거죠.”

 

박성우 시인은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함께 사전』 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홉 살 마음 사전』 이나 『아홉 살 함께 사전』 은 독서로서의 힘보다는 대화로서의 힘이 더 큰 책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이라면, 지식을 습득하는 책이 아니라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는 거예요. 자신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책이에요. 지식을 습득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함께 생각을 나눌 줄 아는 공부가 정말 필요하다고 봐요. 이 책은 공부하는 자세로 읽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편하게 펼쳐서 오늘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찾아보고, 모호하게 알던 단어들의 뜻을 찾아가고,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 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가 혼자 읽는 건 권하고 싶지 않아요. 꼭 가족이 같이 읽고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함께하는 삶의 가치, 함께 살아가는 기쁨도 알게 되면 좋겠고요. 재밌고 즐겁게 읽으면서, 많이 교감하고 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아홉 살 함께 사전박성우 글/김효은 그림 | 창비
저학년 어린이들이 학교라는 사회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현을 그림과 함께 사전 형태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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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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