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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 “엄마가 떠난 후 가장 그리운 건 대화였어요”

에세이 『엄마, 나는 걸을게요』 출간 기념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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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가장 그리운 것도, 그냥 대화였어요. 딸이랑 엄마 사이에는 ‘그래도 엄마밖에 이해해줄 수 없어’라는 지점이 있잖아요. 그것이 끊어졌을 때의 나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절망이 너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2018.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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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엄마를 떠나 보낸 후 딸은 긴 여정을 시작했다. 800킬로미터의 산티아고 길. 그 위를 40여 일 동안 걷고 또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는데도 삶은 어째서, 어떻게 지속되는가?” 쉬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내내 맴돌았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질문은 점차 번져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인생의 속도와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지, 답을 찾고 싶었다. 죽음을 통해 마주하게 된 삶의 질문들이었다. 외롭고 깊은 성찰 속에서 여행은 끝을 맺었고,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온 딸은 한 권의 책 속에 그 모든 순간을 담아두었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삶을 마주한 채, 그녀는 읊조리듯 말했다. 『엄마, 나는 걸을게요』 라고.

 

저자 곽현은 산티아고 길 위에서 자신에게 묻고 답했던 말들을 기록해 나갔다. 자신처럼 상실감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나에게 위로를 보내요, 그 길에서’라는 제목으로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됐던 글들은 ‘제4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국제 교류 관련기관 및 연구기관 등에서 일했던 그녀에게 이제 ‘작가’라는 새로운 칭호가 생겼다.

 

지난 16일, 『엄마, 나는 걸을게요』 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곽현과 은유, 두 명의 작가가 독자들을 맞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서른 중반에 어머니를 떠나 보냈다는 공통된 아픔이 있었다. 그녀들은 엄마를 잃은 후 삶의 방식에 변화를 맞았고, 그 이야기를 글 속에 담아내면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봤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 속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실마리를 찾기 위해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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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그리운 건 ‘엄마와의 대화’


은유 : 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지는 못했는데요. 많이 들었어요.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하는데, 학인 분들이 써오신 글을 보다보면 회사를 그만두고 가는 곳이 다 산티아고더라고요(웃음). 왜 산티아고일까, 그게 항상 궁금했어요. 곽현 작가님은 왜 산티아고를 선택하셨어요?

 

곽현 :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힘들었는데, 제 안에서 답을 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산티아고 길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굉장히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배경지식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도 산티아고 길을 걷고 왔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거든요. 제가 힘들어지니까 그 길이 떠오르더라고요.


은유 : 얼마 동안 걸으셨죠?


곽현 : 정확히 말하면 41일 동안 걸었는데요. 길에서 만난 사람 중에 제가 제일 오래 걷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보통은 30일 조금 넘게 걸리거든요. 저는 처음부터 많은 걷는다는 욕심을 버렸고 완주에 의미를 뒀어요. 하루에 20km 정도는 꼬박 꼬박 걷자고 생각했어요.

 

은유 :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나와 끝났을 때의 나 사이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곽현 :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을 계기로 걷기 시작했던 거잖아요. 그래서 가장 큰 바람은 제 마음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잘 보내드리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런 점에서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의 대답들을 외부에서 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사회화된 나의 모습을 굉장히 크게 생각하고 외부의 권위에 많이 흔들렸던 것 같은데요. 조금 솔직하게 나 자신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40여 일 동안 계속 자기와의 대화를 한 거잖아요. 물론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어떤 여행보다도 혼자 있는 시간을 길게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이나 살아나가야 될 방식 같은 것들을 조금 정리할 수 있었고요. 기존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놓을 수 있었어요. 반대로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들도 크게 볼 수 있었고요.


은유 : 중요한 것들을 내려놓았다고 하셨는데, 어떤 건가요?


곽현 : 어떤 권위 있는 조직이나 기관에 몸담고 있어야 내가 안정된 사람이고 잘 살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 그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연구 과제, 문화나 환경 관련된 과제들을 했었는데요. 그냥 해야 될 것 같아서 했던 일이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질문하기보다, 제가 해야 되는 것들을 쓰고 그게 제가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강요해왔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길을 걷고 난 후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라는 답을 저한테 준 것 같아요.

 

은유 :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머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곽현 : 저희 엄마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분이셨어요. 완벽한 가정 안에서 저희를 잘 키우시는 어머니이자, 평생 시어머니를 모신 굉장히 좋은 며느리이셨고, 저희 아버지한테는 굉장히 좋은 아내셨어요. 원래 저희를 낳기 전에는 일을 하셨던 분이셨는데요.


은유 : 어머님께서 아나운서이셨다고요.


곽현 : 네. 더 열심히 즐겁게 자신의 삶을 사실 수도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를 만나시는 바람에(웃음), 여러 가지를 많이 못 하시고 어머니로서의 삶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신 거죠.


은유 : 요즘 말로 경력단절여성이 되신 거죠. 결혼과 동시에.


곽현 : 네. 그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런 부분들이 있었지만 항상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분이셨어요. 저에게는 친구 같은 엄마였고요.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다 수용이 가능한 분이셨거든요. 어머니가 살아오신 환경 안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들도 이해를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가장 그리운 것도, 그냥 대화였어요. 딸이랑 엄마 사이에는 ‘그래도 엄마밖에 이해해줄 수 없어’라는 지점이 있잖아요. 그것이 끊어졌을 때의 나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절망이 너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은유 : 엄마랑 수다 떨고 싶을 때는 어떻게 그리움을 삭이시나요?


곽현 : 엄마하고만 할 수 있는 대화가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산티아고 길은 일상의 공간이 아니다 보니까 엄마 생각이 덜 났어요. 그러다가 길의 끝에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디에 있든지 엄마의 영혼 자체가 나와 같이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마음속으로 엄마랑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떠올려보기도 해요. 그럴 때 예전처럼 가슴 아프거나 그리워서 눈물짓는 건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시간이 약이라서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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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죽음을 인식하게 됐어요


은유 : 저도 1년 전에 이 자리에서 북콘서트를 했었어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라는 책을 냈을 때였는데요. 그때 엄마 이야기를 했었어요. 저도 엄마가 돌아가셨거든요. 책에서 ‘엄마가 돌아가신 일이 삶의 큰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곽현 작가님이 보시고 동병상련의 동지의식을 많이 표현해주셨어요. 엄마의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의 심정과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땠나요?


곽현 : 저는 마지막 날까지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저희 어머니는 3~4년 전에 투병을 하셨다가 완치가 되셨고, 그러다 재발을 하셨는데요. 누구나 살아갈 확률이 1%밖에 안 된다고 해도 자신은 분명히 1% 안에 들 거라는 실낱 같은 희망들을 갖고 있잖아요. 그러면 99%를 보지 못하는 거고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엄마가 평소에 너무 건강하셨고, 또 힘든 암을 극복하셨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발해도 전처럼 잘 이겨내실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죽음이 내 이야기라고 생각을 잘 안 하게 됐고, 의사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도 ‘아니야, 우리 엄마는 달라’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지만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는 분들에 비하면 무의식적으로 준비는 됐던 것 같아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어도. 한동안은 집에서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은유 : 엄마가 해 놓으신 것들이 있잖아요. 일상의 흔적들.


곽현 : 네, 또 저희 엄마가 해 놓으신 게 너무 많더라고요. 집에 있다 보면 조금 후에 엄마가 올 것 같고, 너무 힘들었어요. 오히려 산티아고는 아예 다른 공간이다 보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사실 한동안은 엄마를 떠올리는 일을 일부러 안 하려고 했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니까, 엄마가 남겨 놓은 메시지나 메일도 다 지웠어요. 그런데 산티아고 길에서 그런 기억을 많이 마주했고, 기억하기 싫었던 것도 다 기억했어요. 또 엄마가 병원에 계셨을 때 아프고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저를 굉장히 많이 괴롭혔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 기억들이 건강하셨을 때의 엄마에 대한 것으로 점점 옮겨가더라고요. 그런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은유 : 저도 책에 그런 이야기를 썼었어요. “엄마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 보고 나니까 삶이라는 추상 명사가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죽으면 한 줌의 재로 될 몸뚱이, 나를 다 쓰고 살자는 약간 억척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변했다”라고요. 곽현 작가님께서도 이 부분이 굉장히 공감이 되셨다고 해요. 삶의 방식도 변했다고 하시고요. 어떤 변화가 있으셨어요?


곽현 : 죽음이라는 게 사람을 굉장히 많이 변화시키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은유 작가님과 살아온 궤적은 다르지만, 책에 쓰신 글에 공감했던 것 같아요. 죽음이라는 게 누구나 겪게 될 일인데, 처음에 저는 그게 저만의 고통이고 상실이고 아픔이고 비극이라고 받아들여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죽음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어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그래, 나도 죽어’라는 개념으로 옮아가니까 마음에 큰 위안이 됐어요. 그리고 ‘내가 내일 죽는다고 했을 때, 이것만은 꼭 하다가 죽고 싶은 게 있다면 뭘까’를 생각하게 됐고요. 산티아고 길에서 처음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슈가 엄마를 떠나 보내는 거였다면, 나중에는 ‘내가 놓치지 않고 꼭 지키고 싶은 것 하나는 찾아가야지, 그건 뭘까’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간 거예요. 그러니까 내면에서 에너지가 생겨나서 힘을 받게 됐어요.

 

은유 : 지금 상실을 겪은 누군가가 힘들어하고 슬퍼하고 있다면, 어떻게 위로해주시겠어요?


곽현 : 저도 위로를 많이 받았지만, 크게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사람이 너무 힘들면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서 있고 싶잖아요. 상대가 내 마음을 얼마나 알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그런 조언들이 힘은 되지만, 사실은 잘 안 들려요. 일단은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리 잘 지켜온 관계라고 해도 후회나 미련이 남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조금 편하게 가지시고 떠나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종교의 힘으로 의미를 찾으셔도 좋을 것 같고, ‘영혼은 영원한 거니까’ 이렇게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너무 슬퍼하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고 잘 다독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고요. 자신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조금 더 단단해지면서 일어날 힘이 생기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엄마, 나는 걸을게요곽현 저 | 도서출판가지
그 쉽지 않은 물음에 관해 더듬더듬 납득해나간 흔적이다. 떠난 엄마를 그리며 자신에게 건넨 치유의 말이며 같은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야 할 누군가를 위한 작은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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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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