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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 “어쭙잖은 위로는 하고 싶지 않아요”

『블랙코미디』 출간 기념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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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타인이잖아요. 가치관, 성격, 살아온 길, 앞으로의 미래도 다 다른 거죠. 제가 어쭙잖은 한 마디 말을 해서 잘못 적용되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17.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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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생각하게 만드는 웃음


지난 15일 저녁, 예스24 홍대던전에서 『블랙코미디』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유병재는 이번 책을 통해 ‘작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책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개나 소나 책을 쓴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개나 소나 책을 쓴다고요. 제가 그런 사람이 되니까 너무 부끄러웠어요. 책을 쓰면서도 두세 번 정도 출판사 분들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못 쓰겠다고 고사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갈 때마다 쓰실 수 있다고, 잘 될 거라고, 기분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는 거예요. 출판사가 있는 북촌이 여유로운 동네이기도 하고, 저한테 ‘작가님, 선생님’ 해주시면서 좋은 말을 해주시니까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쓰다가, 또 ‘진짜 못 쓰겠습니다’ 하고 반복하고... 그러면서 쓴 책이에요.”

 

방송작가로 일하면서도 늘 ‘작가’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다는 그는 “이번에 운 좋게 책을 내게 돼서 조금은 덜 부끄럽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출간 과정과 그 끝에서 찾아온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쓰는 동안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뭔가 하나 끝날 때마다 ‘맞다, 나 책도 써야 되지’ 하고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까 항상 개운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거죠. 그런데 책을 다 쓰고 나니까 굉장히 소중한 신체 부위가 하나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딱 한 권 썼을 뿐인데도 나의 지식과 감정, 느낌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된 거죠. 책을 써보니까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블랙코미디’라는 다섯 글자만큼 유병재식 개그를 단번에 보여줄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항상 웃음을 유발하지만 천천히 곱씹다 보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좀처럼 을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종 지질하게 구는 그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그가 처한 상황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랙코미디』에 실린 138편의 짧은 글에는 ‘자학의 시詩’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글들이 짧아서 금방 읽히실 거예요. 그런데 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2~3년 정도 쓴 것 같은데요. 마치 사금 캐듯이 조금씩 모아서 썼어요. 제가 매일 인스타그램에 검색을 해요. ‘유병재’나 ‘블랙코미디’를 해시태그로 해서 찾아보는데요. 재밌게 보셨다는 분들도 계신데, 약간 애매한 이야기들도 있어요. 너무 재밌어서 서점에 앉아서 다 읽었다고 하시더라고요(좌중 웃음).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기는 한데요... 오늘 오신 분들은 다 책 사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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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무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화면 안이나 밖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똑같았다. 유병재는 ‘베스트셀러 코너에 『블랙코미디』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면서 부끄러운 듯 고백하다가도 “그러다 보니까 순위에 조금 연연하게 되더라. 혜민스님이 조금 밉기도 하고, (출판계의) 강적들이 약간 야속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진담과 농담, 진심과 장난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농담이나 웃음에 대해서 스스로 정한 선이 있어요. 그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여러 감정이 공존할 수 있는 웃음이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해요. 마냥 웃긴 것보다도, 물론 그런 걸 만드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지만, 약간 씁쓸하거나 슬플 수도 있는 게 ‘블랙코미디’인 거죠. ‘이거 웃어도 되나?’ 싶을 수도 있고요. 약간 생각을 하게 되는 코미디인 것 같아요.”

 

유병재는 “농담을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을 위해서 계속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영감은 찾아가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라는 이창동 감독의 말에 공감하면서, 항상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최대한 노력은 하려고 하죠. 영감이 잘 떠오르는 책상이나 카페가 있으면 계속 거기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극장도 좋더라고요. 일부러 재미없는 영화를 보기도 해요. 재미있는 영화보다 재미없는 영화를 볼 때 영감이 더 많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저것보다는 재밌게 잘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좌중 웃음). 비틀어 볼 수도 있잖아요. 또 화장실 갔을 때도 많이 나오고, 잘 때도 많이 나오고요. 제가 마사지를 좋아하는데 마사지 받고 있을 때도 많이 떠올라요. 얼마 전까지는 공연과 책을 준비하면서 일부러 교과서를 봤어요. 국어 교과서에서 비유법에 대해서 보기도 하고, 수학 공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보려고도 하고요. 최근에는 배가 살살 아프면 재밌는 게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부러 설사약도 먹어봤어요(좌중 웃음). 영감을 얻으려고 별 걸 다 해보는데, 딱 정해져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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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워하지는 말자


진행자와의 짧은 대화가 끝난 뒤, 작가 유병재의 낭독이 시작됐다. 『블랙코미디』에 실린 글들 가운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통장」, 「편견」, 「우리 형」 4편을 읽고 각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김수영 시인의 동명 작품을 패러디한 것으로, 유병재는 원작이 자신의 삶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힘없는 사람들한테 화를 내고, 반항도 제대로 못한다는 시의 내용을 보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편견」 안에는 냉철한 성찰이 담겼다.

 

「편견」

한국 여자는 어떻다는 둥……
어떤 지역 사람들은 뭐가 문제라는 둥……
한 집단의 특성을 단정 짓는 사람들의 특징은
주변의 몇몇 사례만을 가지고 굉장히 쉽게 판단해 버린다는 데에 있다.
진짜다.
내 주변 보니까 다 그렇던데.
(『블랙코미디』 67쪽)

 

“제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제일 싫어하는 하나가 편견인데요. 그런 오류를 많이 범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개인만 보더라도 정말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나도 나를 이해 못 할 정도로요. 그런데 우리는 개인도 아닌 지역으로, 성별로, 출신으로 묶어서 말할 때가 있잖아요. 너무 쉽게 상대를 판단해 버리는 거죠. 그런 모습들이 너무 바보 같고 못된 것 같은데요. 그런 게 남한테만 있는 게 아니고 저한테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이야기를 아이러니하게 써봤어요.”

 

뒤이어 독자들의 낭독이 시작됐다. 세 명의 독자가 「다래끼」, 「핑계」, 「파일」을 읽었다. 유병재 작가는 “「파일」은 완전히 술에 취해서 쓴 글”이라며 “자존감이 가장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썼었다”고 밝혔다. 그는 낭독을 함께한 독자들에게 직접 선물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북콘서트가 시작되기에 앞서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병재에게 매니저란?


처음에 군대에서 만났어요. 뜻이 맞아서 밖에 나가서도 같이 살자고 했는데, 진짜 현실로 이뤄졌어요. 형이 없는 삶은 정말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어떤 반려동물 같은(좌중 웃음)... 사람도 동물이에요. 동물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니까. 아마 불의의 사고로 형이 먼저 죽는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형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이왕이면 형이 먼저 죽는 게 낫지 않을까(좌중 웃음)... 그 아픔을 형한테 주는 것보다 제가 감당하는 게 나으니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납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유병재 씨도 화가 많다고 들었는데, 그럼 저도 글을 써야 할까요?


제가 진짜 화가 많아요. 뭐 이런 것까지 화를 내나, 싶을 정도로 짜증을 많이 내는데요. 화를 내 본 기억이 없어요. 화를 내는 방법을 까먹었어요.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화를 내서 그 사람한테 미움 받는 게 싫어서 화를 못 내는 거예요. 저는 사실 글 쓰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에요. 개인적인 팁이 있다면, 저는 화나게 한 사람과 제 모습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상상해요. 상상 속에서 심하게 괴롭히는 거죠.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씀은 드릴 수 없는데요(좌중웃음). 실제로는 전혀 하지 않고 상상 속에서만 하는 거예요. 정말 심하게 괴롭히는 상상을 해요. 나중에는 오히려 제가 미안할 정도로.

 

사회나 어떤 현상에 대한 화를 글로 담아내신 것 같기도 해요. 그게 ‘블랙코미디’인 것 같고요.


맞아요. 대놓고 ‘이거 잘못된 거 아닙니까, 나는 반대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웃음을 만드는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비꼬는 걸 굉장히 좋아했고요. 잘해요. 깐족거리고 걸. (매니저) 형하고 살면서도 몇 번 비꼬아서 물을 맞은 적이 있어요. 기분 나쁘게 하는 걸 잘 하는 것 같아요. 대놓고 화내는 게 아니라 진짜 기분 나쁘게 하는 거 있잖아요(좌중 웃음).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지키려고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잘 못 지키면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를 미워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해요. 이기적이고 뻔뻔하더라도, 그게 가장 마지막 끈인 것 같거든요. 내가 너무 못났고, 어떨 때는 비겁하고, 못 됐고, 비열하고, 너무 싫어 보여도, 나까지 나를 싫어하면 너무 큰 마지막 끈이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좋아하려고 하는데요. 안 될 때가 많죠.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친구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데요. 네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거라고 말하는 것 외에, 더 능동적으로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없다고 생각해요(좌중 웃음). 개인적으로나 일적으로는 그런 요구나 제안을 많이 받아요. 젊은 친구들이나 또래들에게 위로를 해달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더 못할뿐더러,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걸 경계하는 이유는, 저와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타인이잖아요. 가치관, 성격, 살아온 길, 앞으로의 미래도 다 다른 거죠. 제가 어쭙잖은 한 마디 말을 해서 잘못 적용되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요. 저는 위로라는 단어에서 ‘윗사람으로서 해주는 말’이나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해주는 충고’ 같은 색깔을 빼고 싶었어요. 「‘울지 마’라는 위로」에도 썼듯이, 옆에서 같이 가면서 손 한 번 잡아주는 게 훨씬 낫지 않나 싶어요. 어쭙잖게 잘난 척 하는 건 안 했으면 좋겠어요.


 

 

블랙코미디유병재 저 | 비채
폭소와 비판, 공감과 풍자를 오가며 ‘즐거움이라는 한 가지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는’ 유병재식 농담으로 진짜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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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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