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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입체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을 말하다

페미니즘 소설 『현남 오빠에게』 출간 기념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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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살았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결국 개인 간에 생기는 갈등은 언제나 정의롭지 않은 환경에서, 약한 개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 소설을 쓰려고 했다. (2017.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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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페미니즘 소설 『현남 오빠에게』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30-40대 국내 여성 작가 7인이 참여한 이번 소설집은 국내 최초로 ‘페미니즘 소설’임을 표방한 책이다.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젊은 여성(『현남 오빠에게』), 사춘기 아들과 딸을 둔 중년 여성(『경년更年』), 화성에 남겨진 실험동물(『화성의 아이』) 등 작가의 면면만큼이나 다채로운 등장인물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을 읽고 “사실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입체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양경언 평론가의 말처럼 『현남 오빠에게』는 그 자체로 페미니즘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북토크에는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구병모, 김성중 작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넓은 강연장을 가득 채운 독자들의 관심만큼이나 책을 출간한 작가들의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자리였다.


독자와 마주 앉아 인사를 나눈 후, 최정화 작가는 “다른 책을 냈을 때와 굉장히 달랐던 것 같다. 이번에는 ‘내가 어떤 발언을 했다’라는 생각이 더 많았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고민하며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구병모 작가 역시 “소설집에 참여하신 작가님들과 함께여서 더욱 뜻 깊은 자리다.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사회를 맡은 양경언 평론가는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과 언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들은 많다. 그런데 막상 문학 작품으로 페미니즘을 접하려고 하면 찾아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야기로 페미니즘을 만나면 어떨까, 하는 고민 속에서 이번 작품집을 기획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박혀 나온 것을 보니 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다룬 이야기가 얼마나 없었으면 이야기를 길어 올리기 위한 노력을 이런 말을 만들면서 해야 했을까 싶었다. 이중과제적으로 이 말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작품과 여성주의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는 화성으로 쏘아진 실험동물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와 죽은 개 ‘라이카’, 버려진 탐사로봇 ‘데이모스’라는 세 인물이 친구가 되는 이야기다. 작가의 첫 SF 소설이기도 한 이 단편에 대해 작가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을 가져오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다. “내심으로는 싱글맘 이야기라고도 생각하면서 작업했다.”는 김성중 작가는 여성주의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관점임을 강조했다. “여성주의는 마르크스주의나 자유주의처럼 하나의 관점, 세계관, 인식론”이라고 했던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작가는 “세 인물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아주 즐겁게 쓴 소설이다.”라며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실은 올해 내내 여성주의에 관해 여러 청탁을 받았다. 산문, 서평, 소설 등을 받았는데 거절한 적이 없다. 글을 써가는 과정에서 이것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여러 층위의 고민을 하게 됐다. 여성주의라는 것은 남성과 여성, 소수자, 아이 등등의 여러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의 카테고리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주의는 이 전체를 다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큰 동그라미를 겨냥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썼다.”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는 맏딸인 ‘유진’이 엄마 ‘정순’에게서 받은 오랜 집착과 애증을 예민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야기다. “겪었던 것들을 썼다.”는 최은영 작가는 작품 속 한 장면이 실제 과거 남자친구와 있었던 일화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언젠가 그와 대학로에 있는 재즈 바에 갔던 적이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비싼 칵테일을 두 잔 시켜놓고 음악을 들었다. 그들의 뒤쪽에서 중년 여자 여럿이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저걸 유한부인들이라고 하나?”
그는 뒤를 돌아본 뒤 경멸조로 말했다. 자신에게 누군가를 그렇게 부를 권리가 있다는 듯이.
노동자 계급 출신을 운운하면서 유진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고, 데이트 비용을 그녀가 대부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의 입에서 나왔던 그 말. 급진좌파라는 그의 입에서 나왔던 그 말.
난 어째서 그를 견뎠을까.(66-67쪽)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살았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결국 개인 간에 생기는 갈등은 언제나 정의롭지 않은 환경에서, 약한 개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 소설을 쓰려고 했다.”

 

최정화 작가의 단편 『모든 것을 제자리에』에는 ‘붕괴된 건물 촬영기사’라는 직업의 여성 ‘율씨’가 등장한다. 습진 때문에 붕대를 감은 자신의 오른손에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는 ‘과장’과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의 오른손이 “내 몸에 딸려 있었으나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속한 육체가 아니”(151쪽)게 되었다고 믿기에 이르는 율씨의 이야기다. 작가는 기쁜 마음으로 청탁을 수락했지만 막상 작업을 할 때는 괴로웠다고 말했다. “좋은 페미니즘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두 달 동안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썼다. 결국 완성이 안 됐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이 이야기로 바꿔서 냈다. 제가 갖고 있던 여러 문제의식 중에는 ‘나는 여자인데 왜 안 불편할까’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 이 작품으로 같이 얘기해보고 싶었다. 여성인데 왜 남자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여성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내 눈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것인지, 하는 질문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 질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이설 작가의 『경년更年』은 열다섯 살 아들과 열두 살 딸을 둔 40대 중년 여성이자 엄마인 ‘나’의 이야기이다. 갱년기를 겪으며 사춘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딜레마 투성이다. 아들의 여성혐오는 물론이고 화장과 아이돌에 집착하는 딸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묵직하고 복잡하다. 또한 “여성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소설의 원제가 ‘75년생 김지연’이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김지연은 저의 본명이다. 또한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아래세대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서 같이 하고 싶었다. 교육 현장과 아이들이 갖고 있는 의식들, 또 그런 의식을 심어주는 부모들의 무의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드려보고 싶어 쓰게 된 소설이다.”

 

무엇보다 김이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여성혐오나 길들여진 악습의 표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조사 하나도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민감하게” 작업했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소설 속에서 여러 여성들의 팍팍한 삶을 그려왔지만 사실은 “나도 모르게 남성적인 시선으로 대상화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새의 몸을 한 그리스 신화 속 괴물 ‘하르피아이’를 제목에 등장시킨다. 낯선 섬에서 벗을 수 없는 구두와 원피스를 입고, 정체 모를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주인공 ‘표’의 이야기는 그래서 묘한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평면적인 여성 이미지(여신 혹은 악녀)를 지적한 구병모 작가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분법적인 관념들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그동안 여성에게 고정관념으로 부여된 괴물 이미지를 극대화 해보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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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느낀 여성에 대한 억압들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작가로 산다는 것으로 옮겨갔다. 먼저 김이설 작가는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가 아이를 키울 때는 ‘독박육아’라는 단어도 없었다. 당연히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가, 남자는 바깥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마감에 허덕여야만 남편이 쪽잠을 자주면서 아이를 봤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아이를 안고 오타를 본다.”

 

김성중 작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출산 후 육아를 하며 소설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는 김성중 작가는 “상대적으로 작업시간을 확보”했음에도 글을 쓰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고 나의 단어상자가 흔들렸다. ‘연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필통’이 나왔다. 정말 공포였다. 이번 가을부터 조금 돌아오는 것 같다. 자기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들이 어느 면에서 대동소이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으로 있는 것, 엄마로 있는 것, 그 와중에 아이는 미치게 예쁜 것 등에서 오는 혼란에서 중심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아이가 자는 사이에 쓰면서 문체를 개발했다고 한다. 어깨의 짐을 지고 일어나버린 거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어도 위로가 안 된다.(웃음) 지금도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구병모 작가는 중성적인 자신의 이름을 둘러싼 일화를 전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대부분 ‘여자인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작가는 그런 반응을 마주하고 “잘했어, 잘 속였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적인 이미지를 너무 강하게 주지 않는 데 성공했나보다, 라고 생각했던 거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니까 왜 여성임을 감추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도 여성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소설을 쓰고 싶다.”

 

최은영 작가는 “많은 경우 슬프고 우울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이유는 제가 어린 여자였고, 굉장히 가부장적인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 작가에게 목소리를 찾아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또한 내가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쓸 때, 내 언어를 가지고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내 글에 힘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살면서 들은 얘기 중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이다. 나도 생각이 있고, 할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게 글쓰기란 항상 내가 가진 힘을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최은영 작가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갖지 않고 인물을 재현하면 미학적으로 별로 좋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영역으로 여성주의가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최정화 작가는 소설 속에서 여성 인물을 그려내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가 과거에 썼던 단편에서는 여성이던 화자를 남성으로 바꾸기도 했다. “여성이 등장하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는 경험”을 말하며 여전히 사회가 변화하지 않고 있음을, 사회에 여성에 대한 억압이 만연해 있음을 지적했다.

 

“동네 백수 남자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여성 화자는 그런 상황에서 마음 편히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없다. 저는 집에 갈 때 굉장히 두려워한다. 누군가와 마주치는 순간에 대해 힘들어하면서 귀가한다. 그러니 남성과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는 여성 화자를 쓰는 게 어렵더라. 결국 화자를 남성으로 바꿨다. 가령 새벽에 여성이 자연을 만끽하면서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여성이 이런 처지에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기 집조차 편하게 들락거릴 수 없고, 혼자 여행도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현실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나는 전보다 한결 자유로워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브래지어를 더 이상 착용하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은 체모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으며 공공장소에서 생리대를 꺼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았다.(중략)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못했다. 내 안의 여성혐오가 튀어나올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여성인데도 여성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행위에 가담할 때가 있었다. 남성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재단하거나 내 성정체성과 위반되는 문화를 즐길 때가 있었다. 이 소설을 쓸 때 역시 비슷한 두려움을 느꼈다.(153쪽)

 

 

 



 

 

현남 오빠에게구병모, 김이설, 김성중, 조남주, 손보미 저 외 2명 | 다산책방
“울컥 치미는 반가움과 그리움”을, 이들의 애인과 남편, 가족과 친구 등에게는 또 다른 공감과 위로, 성찰의 소중한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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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현남 오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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