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혁 JTBC 기자 "시민들의 ‘어깨 토닥임’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날 그곳 사람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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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점처럼 흩어진 선한 마음을 선으로 이어보는 사람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점과 점이 잘 이어지도록 선의를 베풀어주신 모든 취재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8.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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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생에게 이가혁 기자의 별명은 ‘가혁벗’이다. 부럽다. 그는 이대 농성 취재 후 차례로 최순실, 정유라, 촛불혁명, 탄핵, 세월호의 모든 현장에 있었다. 흔치 않은 이력이고 으스대도 될 만하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가혁벗이 부럽다. 절실한 누군가의 벗이 된다는 것... 거기에 우리가 때로는 답을 못 구해 허우적대는 저널리즘의 본질이 있지 않을까.

손석희(JTBC 보도담당 사장)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 대한민국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정유라-최순실-박근혜-삼성으로 이어지는 소위 ‘슈퍼 갑’들의 결탁과 촛불의 힘으로 이뤄낸 탄핵, 그리고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까지. 쉴 새 없이 뉴스를 봐야 할 이유가 가득했던 그때, 현장에서 늘 발 빠른 보도를 했던 이가 있다. JTBC 이가혁 기자다. 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 도피 중이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독일에서 덴마크까지 추적해 신고한 것으로도 유명한(?) 그가 신간 『그날 그곳 사람들』 을  출간했다. 법조팀, 경찰팀 등 사회부에서 주로 일해온 저자는 2016년 겨울, 정유라를 찾아 23일 동안 독일과 덴마크에서 체류하고, 귀국 후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으로 출근했던 이야기, 2017년 봄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후 목포신항에서 83일 동안 머물며 취재했던 내용 등을 들려준다. 책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부분은 역시나 정유라 추적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정유라를 찾는 과정에서 어떤 상황을 겪었고, 어떤 판단으로 덴마크 올보르의 확실한 은신처로 추정된 곳 앞에서 덴마크 경찰에게 신고해야 했는지를 마치 소설 같은 전개로 보여준다.


책은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사건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 이가혁은 1986년생으로 이제 7년 차에 접어든 기자다.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체험과 기억 중에서 어쩌면 가장 강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그는 동시대 수많은 젊은이와 함께 겪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책 곳곳에 보인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는 한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각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정확한 상황 판단 지침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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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와, 이건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 기분이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졌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억을 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강렬한 기억이 차츰 옅어지더라고요. 그날,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느낀 것이 이렇게 많은데 그냥 사라지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잊어버리기 전에 그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하자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됐어요.

 

책의 에피소드 모두가 그렇겠지만, 유독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요?

 

목포신항이요. 세월호가 막 뭍으로 올라와 거치가 끝났을 무렵, 보도에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선체를 바로 앞에서 살펴본 적이 있어요. 기름과 해조류가 뒤섞인 독특한 냄새가 났고, 큰 선체에 햇빛이 모두 가려져 느껴지던 서늘함도 생생해요. 세척하기 전 상태라 표면에 따개비 같은 것도 잔뜩 붙어 있었고요.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 않은 거대한 고철덩어리에 불과했죠. 그런데 기가 막히고 슬픈 건 그 끔찍한 몰골을 한 고철덩어리에 여전히 흔적을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고철덩어리를 마치 자식의 신체 일부처럼 여기며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이죠.

 

책에는 선하고 용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요. <정유라를 찾아서>의 선의의 제보자부터 “해방 이화! 총장 사퇴!”를 외친 맨 처음 한 사람, 팽목항 냉장고를 채우는 명봉 씨나 광화문 광장 레전드 명언을 남긴 숨은 고수도 있었죠. 기자님께서도 “나는 점처럼 흩어진 선한 마음을 선으로 이어보는 사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어요.

 

딸이 읽는 동화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토끼가 모자를 잃어버렸는데 숲속 친구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결국 모자를 찾아주는. 제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숲속 친구들 같아요. 저와 일면식도 없던 분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며 도와주셨거든요. 각자의 방식대로 불의에 저항하고, 이웃의 슬픔에 공감하는 분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런 분들을, 또 그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비효율적인 일을 한 분들이겠죠. 논리적 관점으로 따져도 그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동화 같은 일이죠. 제 딸이 동화책을 보며 까르르 웃듯이 취재현장에서 다시 떠올리며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존재가 ‘사람들’이에요.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요? 또, 기자로서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중,고등학교 때부터 집으로 배달된 신문을 넘겨보는 버릇이 있었어요. 그때는 정치, 사회 기사보다 그냥 읽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읽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덕분에 자연스럽게 뉴스와 가까워진 것 같아요. 저녁 메인 방송 뉴스도 앞머리 20분 정도는 챙겨 봤고요. 미국 9.11 테러 때는 TV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기자가 된 후로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요. 독일 덴마크 출장으로 23일, 목포신항에서 83일. 이래저래 출장이 많다 보니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두 돌도 되지 않은 딸을 혼자 돌봐야 했으니까요. 최소한의 가사 분담도 못하는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반대로 책의 서론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취재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면? ‘기자하기를 잘했다.’, ‘이래서 기자하지!’ 싶은 순간들이요.

 

결국 보람을 느낄 때인 것 같아요. 광화문 광장에서, 목포신항에서, JTBC 취재진을 향해 박수 쳐주시고 어깨를 토닥여 주실 때 피로가 풀리죠.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점심때 받은 ‘어깨 토닥임’ 한 번으로 야근 후 집에 들어가 잠들기 전까지 버틸 정도였어요. 제 보도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거나 용기를 얻었다고 말씀하셨던 분들도 기억에 남아요. 가끔은 ‘그 정도로 열심히 취재해서 만든 보도가 아닌데...’ 하고 민망하기도 해요.

 

분위기를 조금 바꿔볼까요. 밴드 보컬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메일 주소도 gawang(가왕)이던데, 뭔가 해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대학 시절에 퓨전재즈와 펑키(punk가 아닌 funky) 장르를 주로 하는 학내 밴드 FUZE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대학 밴드라고 하면 주로 락(rock)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FUZE는 제가 평소 좋아하던 스티비 원더나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같은 뮤지션의 음악을 주로 다뤘죠. 입사 후에 회사 이메일 주소를 정해야 하는데 뭔가 기억에 남는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건방지게’ 가왕(gawang)으로 정했네요. 아, 물론 진짜 ‘가왕’ 조용필 씨도 좋아하고요.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요. 기자님이 생각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저널리즘’ 이란 무엇인가요? 저널리즘을 실현하는, 꿈꾸던 기자의 모습으로 살고 계신가요?

 

이런 질문이 나올까 봐 늘 걱정인데 역시나 나왔네요. ‘사실’, ‘공정’, ‘균형’, ‘품위’라고 생각해요. 손석희 선배가 <뉴스룸>의 전신인 JTBC <뉴스9>의 앵커를 맡으며 내세운 네 가지 가치이기도 해요. 저널리즘의 본질이나 가치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게 어렵다 보니 저도 편하게 차용하고, 가끔씩 되뇌기도 합니다. 체득이 돼 바로바로 발휘가 되어야 할 텐데 아직 그런 수준은 되지 못했고요.


꿈꾸던 기자의 모습은 없어요. 대신 ‘이런 기자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건 있었는데, 그건 지켜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한 독자분이 ‘담담하게 글을 써주셔서 좋았다.’고 하시면서 ‘계속 담담하게 이야기 들려주세요.’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분 말씀처럼 담담하게 생각하고, 담담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날 그곳 사람들이가혁 저 | 자음과모음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 대한민국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정유라-최순실-박근혜-삼성으로 이어지는 소위 ‘슈퍼 갑’들의 결탁과 촛불의 힘으로 이뤄낸 탄핵, 그리고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까지. 쉴 새 없이 뉴스를 봐야 할 이유가 가득했던 그때, 현장에서 늘 발 빠른 보도를 했던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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