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자기계발서 속에 인생이 있을까?
『스탠드펌』 외
자기계발인지 자기개발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사회학에 빠졌을 때는 모든 사람에게 영웅이 될 것을 주문하는 자기계발 분야 책을 상당히 싫어했으나, 서점에서 일한 뒤로는 책에는 저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권을 모아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2017.06.20)
출판도 유행을 탄다.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다. 21세기로 막 들어섰을 때만 해도 자기계발서에서 그리는 인간상은, 내 안의 『secret』을 발견하여 깨우친 뒤 일찍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으로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으고 『네 개의 통장』을 운용, 그리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중 전자가 되는 것이었다. 각각 책이 강조하는 지점은 다르나, 이러한 책은 성공을 위해서 자신을 열심히 채찍질하도록 요구한다.
채찍질도 너무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너무나 자신을 다그쳤는지, 이에 대해 비판하는 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거대한 사기극』(부제 :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적당히 사는 법』, 『노오력의 배신』이 그러하다. 그리고 삶의 질이 높기로 유명한 덴마크에서 인기를 끈 책, 『스탠드펌』의 저자인 스벤 브링크만 역시 자기계발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가속화 문화에서 우리는 더 많이 하되, 더 잘 해야 하고, 더 오래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의 내용이나 의미는 거의 중요치 않다. 자기계발은 이제 목적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자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중략) 이 책은 가속화 문화의 자기계발 명령에 말대꾸할 언어를 찾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가 마주친 생태, 경제, 심리적인 여러 위기들은 대개 끝없는 성장과 문화 전체의 가속화를 부추기는 편협한 철학의 결과다. (중략) 이 책은 물론 독자들이 자기계발서 유형의 책들을 이제 그만 내려놓게 할 목적으로 썼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서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기계발서로 위장한 문화비평서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29~39쪽)
저자가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개념은 자아실현이다. 자아실현은 얼핏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실제로 등장했을 때는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1960년대 이 말이 생겨난 이유는 자유를 위해서다. 당시 자아실현은 사회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가짜 자아를 벗겨낸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자아실현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응하는 데 도움 주는 개념이다. 라캉 식으로 표현하자면,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발전을 요구하는 게 현재의 자아실현이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의 다른 표현은 자기긍정이다. 스벤 브링크만이 ‘긍정’이라는 개념을 문제 삼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책은 긍정을 강조하는 현재 세태를 조롱하며 ‘긍정 파시즘’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이어서 그는 긍정이 문제되는 이유로 ‘고통의 비정치화’를 꼽는다. 심리학자 브루스 레빈의 논의를 빌려 저자는 고통의 비정치화가 사람들에게 닥치는 온갖 문제를 외부 환경보다는(동기 부족이나 비관주의적 관점 등) 자기 자신의 개인적 부족함으로 돌리는 것이라 말한다.
긍정적인 태도는 안을 향한다. 뭔가 일이 틀어지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뜯어보고, 우리의 동기를 탐색해야 한다. 모든 것이 우리 잘못이다. 실업자들은 실업수당제도에 대해 불평할 권리가 없다. 그냥 정신을 차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일자리를 찾아야 할 뿐이다. 모든 일이 ‘자신을 믿는 것’에 달려 있다. 하지만 자신을 믿는 것은 철저히 편협한 생각일 뿐이다. 이런 생각은 중요한 사회, 정치, 경제 문제를 개인의 동기와 긍정성의 문제로 일축해버리고 만다. (87쪽)
오랫동안 서구를 이끌었던 기독교를 대신해 자아종교가 탄생했다. 종전에는 사제가 담당했던 일을 이제 심리치료사와 코치가 담당한다. 저자는 “은총과 구원은 자아실현과 역량 강화, 평생학습으로 대체되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우주의 중심 하느님이 있던 자리에 이제 자아가 들어앉았다.”(155쪽)라고까지 판단한다. 자아종교는 내면을 탐색하여, 스스로 일하고, 멈추지 않고 발전하기를 요구한다.
어떻게 본다면 멈추지 않고 발전하는 인간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에 어울리는 인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인간상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 계몽주의자들이 품었던 일직선으로 진보하는 문명에 대한 확신이 오판이었듯, 개인도 끊임없이 발전할 수는 없다. 멈추지 않고 오로지 전진, 이라는 구호는 인간을 벼랑으로 내몬다. 번아웃 증후군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스탠드펌』의 부제처럼 저자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자’고 제안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저자는 여러 가지 제안을 건넨다. 내면을 탐색해봤자 있는 건 공허함이니 그만 자아를 찾으라고 말한다. 긍정만 하지 말고, 자주 투덜대라고 권한다. 욕망을 표출하지 말고 참아내는 기술이 필요하며, 코치보다는 친구를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때 혹은 지금도 문학소녀/문학소년인 독자가 반길 말도 담았다. 바로 소설을 읽으라는 것. 이유는 이렇다.
자기계발서와 대부분의 자서전과 달리 소설은 삶을 더 정직하게 그린다. 삶의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럽고 다면적인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 소설을 읽다 보면 삶을 뜻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우리 삶이 사회, 문화, 역사와 얽혀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런 점을 깨닫고 나면 경험해진다. 그리고 겸허함은 끊임없는 자기탐색과 자기계발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는 일로 우리를 이끈다. (177쪽)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이런 말에 절반만 동의한다. 삶을 정직하게 그리는 자기계발서도 있고, 반대로 실제 세계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소설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가 『스탠드펌』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강조하듯, 우리는 발전ㆍ미래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반복과 과거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복과 과거를 본다는 의미는 내면이 아니라 외부를 본다는 뜻이겠다.
그럼에도 ‘남들은 모두 자기계발에 매달리는데 나 혼자만 굳건히 서 있는 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는 답하지 못하겠다. 글 서두에서 언급했듯, 과함은 좋지 않은 법. 자아도 중요하고 타자도 중요하다. 독서로 쳐도 한 분야로만 치우친 읽기는 좋지 않다. 오늘은 자기계발서, 내일은 소설, 모레는 평전, 이런 식으로 읽으면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읽는다면…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에드워드 로이스 저 / 배충효 역 | 명태
자기계발서에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개인으로 환원한다는 점이다. 그 중 빈곤을 대하는 태도가 대표적인데, 일부 자기계발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개인 탓이며, 설사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자기계발서만이 아니다. 학계에서도 가난은 개인 탓, 이라고 주장하는 담론이 존재한다.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는 사회학계에서 빈곤의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담론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밝히고, 빈곤을 해결할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 즉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자기 개발의 정석
임성순 저 | 민음사 |
『스탠드펌』에서는 자기계발서 대신 소설을 읽으라고 권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 한 권을 추천하자면, 『자기 개발의 정석』을 꼽겠다. 일단 제목부터 자기계발과 맞닿아 있다. 임성순 소설가는 스티브 코비의 『성공하는 7가지 습관』에서 소제목을 차용했는데, 저 책은 1990년대 인기 있었던 자기계발서였다. 어쩌면 20대 때 저 책을 읽었을지도 모를 주인공은 20년 후, 대기업 부장이 된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만 보면 썩 괜찮으나, 실은 언제 조직에서 내쳐질지 모를 위태위태한 위치고 기러기 아빠이다. 월급은 고스란히 딸의 캐나다 유학비로 다 빠져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도 나빠진다. 분량은 짧지만, 대한민국의 중년을 촘촘하게 묘사하는 이 소설은 진정한 자기개발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렇게 쓰면, 꽤 중후한 느낌이나 경쾌한 문체와 엉뚱한 전개로 읽는 재미가 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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