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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일기는 서랍 같아요”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출간 기념 독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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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는 게 종합으로 나아가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버지니아 울프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서랍 같아요. 생각날 때마다 뭔가를 써서 던져 넣는 거예요. 그 다음에 기도하는 거죠. 자기들끼리 의미를 만들어 놓게 해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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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 글 읽는 여자

 

<씨네21>의 김혜리 기자가 새로운 영화 에세이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출간했다. 『영화를 멈추다』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이번 책에는 2014년부터 올해 1월까지 <씨네21>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 연재됐던 글들이 담겼다. 40편에 이르는 ‘영화 일기’는 관람 날짜를 기준으로 열두 달 목차로 재편되어 있다.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켜 온 예리하고도 따스한 시선, 정갈한 문체는 어김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 23일 저녁, 신촌역 인근의 작은 카페에서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의 출간을 기념하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김혜리 기자가 최다은 SBS PD, 배우 임수정과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의 공개방송이 진행된 것이다. 이 날은 촬영으로 인해 자리를 비운 배우 임수정을 제외한 두 사람, 김혜리 기자와 최다은 PD가 독자들을 맞았다. 1부에서는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에 대해, 이어진 2부에서는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혜리 기자는 “글 쓰는 여자, 글 읽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번 책과 교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했다”며 영화 <디 아워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이 영화는 만난 적 없는 인간들의 커넥션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도 만나지 못한 채로 진행자와 청취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닿지 않는데 닿아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서 선택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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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작품이에요. 각본과 각색은 데이비드 헤어라는 작가가 썼는데요.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 The Hours』라는 소설이 원작입니다. 이 작품의 한국 번역 제목은 『세월』이에요. 원작 소설 자체가 또 다른 작품에 대한 변주의 성격을 보이는데요. 구조는 버지니아 울프의 『더 이얼스 The Years』에서, 내용의 모티프는 『댈러웨이 부인』에서 가져왔어요. 『더 이얼스 the years』의 한국 번역 제목도 똑같이 『세월』이고요.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는 현대의 변주와도 같은 소설입니다. 그것을 영화로 옮긴 것이 오늘 이야기할 영화 <디 아워스>예요.”

 

영화 <디 아워스>는 세 여성의 결정적인 하루를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의 첫 줄을 쓰는 1923년의 어느 날, 그리고 1951년에 그 소설을 읽는 가정주부 로라의 하루, 마지막으로 2001년의 뉴욕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클라리사의 일상을 오고 가면서 비춘다. 세 여성은 『댈러웨이 부인』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을 로라가 읽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인간은 다 고독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예술이 커넥션을 만들어줌으로써 위안을 받기도 하고, 굳이 누구랑 연결된다는 의식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각자 고독하고 고통을 통해서 서로 느슨하게 줄이 그어져 있다는 섭리나 질서 같은 걸 <디 아워스>가 보여줘요. 그것이 아마 제가 이 영화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던 제일 큰 이유인 것 같고요. 또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걸 어디에 갇혀있는 걸로 보지 않고, 시간을 넘어서 유동적으로 흘러 다니고 다른 사람과 합쳐지고 확장하는 걸로 바라보는데요. 그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늘 나오는 표현인 것 같아요.”

 

함께 공개방송을 진행한 최다은 PD는 영화에 삽입된 필립 글래스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필립 글래스는 미니멀리즘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선율성을 배제하고 적은 음의 요소를 가지고 반복함으로써 표현하는 음악을 선보인다. 최다은 PD는 “<디 아워스> 이후에도 필립 글래스가 영화 음악을 만들거나 기존 음악이 영화에 쓰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시너지가 난 작품은 흔치 않았다. 지금도 필립 글래스 하면 거론되는 작품이 <디 아워스>다”라고 말했다. “필립 글래스 음악의 미묘한 변화가 어떻게 장면과 맞물렸는지 보는 것도 아주 큰 재미”가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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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서랍 같아요

 

2부 시간은 김혜리 기자의 낭독으로 시작됐다. 저자는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의 서문 일부와 ‘삶을 지어올린 곳’이라는 제목의 글을 낭독했다.

 

주시하지 않으면 영화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본 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는 두려움은 2010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씨네21>에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한 동력이었다. ‘김혜리의 영화 일기’가 아니라 볼썽사납게 소유격이 두 개가 들어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여야 한다고 고집부린 까닭은 이 저널의 제1저자는 내가 아니라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일기’를 쓰는 나는 다만 매일 영화가 보여준 것을 적어두는 속기사였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10쪽)

 

낭독이 끝나자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서문에 “영영 셋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하나 그리고 둘, 다시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하나 그리고 둘 A One & A Two>은 제가 굉장히 사랑하는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요. 가끔 글을 쓴 때 뜬금없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글에 한 번 넣어 봐요. 어떨 때는 ‘제법 어울리는 걸’ 할 때가 있죠.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일기라는 게 종합으로 나아가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버지니아 울프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서랍 같아요. 생각날 때마다 뭔가를 써서 던져 넣는 거예요. 그 다음에 기도하는 거죠. 자기들끼리 의미를 만들어 놓게 해달라고요. 정반합에서 셋은 합을 가정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물론 셋이 나오면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고 계속 써나간다는 의미로 썼던 것 같아요.

 

저희는 킬링 타임으로 영화를 볼 때가 있는데, 기자님은 매번 적으시면서 보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자님께서 킬링 타임을 위해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김병옥 감독님 시트콤을 봐요(웃음). 요즘 새벽에 케이블채널에서 밤새 해주는데, 보고 있으면 정말 저 오붓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를 보고 또 다음 작품을 기다리던 때가 그리워요. 그런데 시트콤을 보면서도 적기는 해요(웃음). 김병옥 감독님은 제가 몇 차례 기획 기사도 썼고 ‘언젠가 인터뷰를 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약간 작품 활동을 멈추고 계셔서 재방송을 보면서 적지는 않아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감명 깊은 대사, 인상 깊은 장면들을 메모하는데요. 글씨를 못 알아보게 쓸 때도 있어요. 기자님은 어떻게 메모하시는지 노하우를 알고 싶습니다.


글씨를 못 알아보고 겹쳐 쓰는 건 저도 똑같고요. 그래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서(正書)를 해야 돼요. 그런데 오래 하다 보면 적당히 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종이에 세로로 선을 긋거나 접어서 중간 선을 만들어요. 그래서 되도록 안 겹치게 쓰려고 하는데요. 늘 써 놓은 걸 보면 엉망이에요. 제일 난감한 게 볼펜 잉크가 떨어졌을 때예요. 어둠 속에서는 볼펜이 안 나오는 게 안 보이잖아요. 예전에는 자국만 남아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 위에 연필을 칠했죠(좌중 웃음). 아주 드물게 친구나 엄마랑 영화를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조금 미안하기는 해요. 같이 갔는데 혼자 다른 생각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요.

 

글을 쓰실 때 적확한 단어를 고르려고 사전이나 검색 어플을 이용하시나요?


검색 어플이 뭔지는 잘 모르겠고요. 저는 사전을 정말 좋아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의 종류가 사전이라서 어떤 물욕이 있어요. 사전이 있으면 마음이 놓여요. 물론 일을 할 때 단어를 확인하는 실용적인 용도도 있고요. 제가 언어를 굉장히 어눌하고 불확실하게 쓰기 때문에 이 세계를 단어로 정리해 놓은 책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요. 헌책방 가서 제일 많이 사는 게 사전이에요. 요즘 사전이 많이 안 만들어지는데 헌책방에 가면 많거든요. ‘외국어 사전’도 있지만 ‘소설어 사전’ 같은 것도 있고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 사전’도 있어요. 그림 사전도 굉장히 좋아해서 ‘세계만물그림사전’도 가지고 있어요. 또 좋아하는 사전이 ‘징후 사전’이에요. 몸의 통증이나 역기능을 용어로 풀어놓은 거예요. 그 사전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어떤 인물이 보이고 있는 행동을 찾아보면, 사전에 답이 있지는 않지만, 뭔가 생각을 우회시키면서 덜 진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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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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