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3인의 미술사학자와 함께하는 아트 토크

『게이트웨이 미술사』 출간 기념 ‘미술이 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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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젠틀렌스키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관심 없어요. 그림 그리는 데 몰두하느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하죠.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열정적인 예술가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서 강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알 수 있죠.

3월 31일 저녁 7시, 산울림 소극장에서 『게이트웨이 미술사』 출간 기념 아트 토크 ‘미술이 있는 밤’이 열렸다. 산울림 극장은 새내기 시절 동기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꿈꾸듯 봤던 추억이 있는 장소다. 대학로 연극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에게 또 다른 연극 세계를 알게 해준 ‘게이트웨이’ 같은 역할을 해준 게 산울림극장이었다. 이 날은 연극 무대가 배우들이 아닌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강은주 이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그리고 이연식 미술사가의 릴레이 강연으로 채워졌다. 산울림극장에서 또 하나의 ‘게이트웨이’가 추가되는 날이었다.

 

미술사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1950년 영국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미술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훌륭한 미술 입문서로 남아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굳건히 버티고 있는 미술사 책이 존재하며, 매체가 영상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게이트웨이 미술사』가 출간됐다. 21세기 독자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을 장착하여, 미술로 들어가는 문을 크게 미술의 요소와 원리, 매체, 역사, 그리고 주제로 나눴다. 이 네 개의 문을 열어줄 첫 번째 강연자는 이주은 건국대 문화컨텐츠학과 교수였다.

 

이주은교수님.jpg

 

우리는 왜 예술을 예술로 느끼는가

 

"우린 왜 예술을 예술로 느낄까요? 너무 엉뚱한 질문인가요? 우리 근사한 거 보면 ‘와, 이거 예술이네’ 이러잖아요. 또 형편없는 거 보면 ‘이것도 예술이야?’ 이러고요. 이런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는 데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자 그럼 그림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왜 예술을 예술로 느끼는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약간 실망하셨을 수도 있어요. 첫 번째 그림은 ‘쿠푸 왕의 대 피라미드’에요. 식상하실 수도 있는데, 게이트웨이라는 말 때문에 가져왔어요. 이 그림에는 안 나와 있지만 피라미드 앞에 보면 항상 스핑크스가 있죠. 스핑크스가 사실은 관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요. 스핑크스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다 맞히면 영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게이트웨이가 열리거든요. 그러나 대부분 그것을 못 맞추고 스핑크스 앞에서 돌아가게 되죠. 우린 이 큰 관문을 열어야 합니다."

 

피라미드에는 평균 2.5톤의 돌덩이가 230만 개 들어가 있다. 높이만 봐도 146m 가량이 된다. 굉장히 크고, 압도적인 데서 오는 경외감은 피라미드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다. 피라미드 안에는 인테리어 공간이 있기 때문에 건축물로 분류가 된다. 건축과 조각은 똑같은 입체지만, 건축은 공간감 조각은 양감이 두드러진 것으로 구별을 한다. 물론 요즘에는 다양한 형태들의 예술작품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 구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레이철 화이트리드의 조각 ‘집’과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라는 건축과 조각에 대한 구분의 예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연자가 이어서 보여준 사진은 ‘올메크족의 거대 두상’ 이었다.

 

"펑퍼짐한 코, 두툼한 입술. 미남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올메크족은 기원전 2500년경부터 서기 400년까지 멕시코 만 연안에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높이는 1.5미터에서 3.6미터에 이르고, 무게는 각각 6톤에서 25톤 사이에요. 결국 이건 어떤 위대한 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크고 단단한, 움직이지 않고 끝까지 나를 지켜보는 얼굴은 위대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규모를 키운다는 건 중요하다는 걸 말해요. 규모에 얽혀 있는 문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다르게, 성냥을 사람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놓은 조형물이 있어요. 그럼 이 성냥이 굉장히 중요한 걸까요? 요즘엔 거의 쓰지도 않고, 흔하고 가치가 없는 거죠. 이런 것의 규모를 키워놓은 것은 역설을 보여주기 위한 예술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죠."

 

잠볼로냐의 ‘사비니 부족여인의 강간’은 앞에서 살펴본 정적인 조형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세 사람이 꼬여 복합적인 방향성을 나타냄으로써 아주 역동적이고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어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 선을 이용해 시선을 모아주는 방식,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3등 선실’에서는 선을 통한 화면 구성에 대한 해석을 읽어낼 수 있었다.

 

"계속 선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까 이번에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해요. 점도 노란 색과 푸른 색 계통이 왔다 갔다 하면서, 대조적인 색깔을 이용합니다. 아주 가까이에서 그림을 보면 노랑, 주황, 빨강 점들이 이어져 있어요. 사실 이렇게 점을 통해서 색을 섞어 나가는 이 방식을 사실 색보단 빛의 방식이라 할 수 있어요. 빛은 스펙트럼 효과가 있잖아요. 이런 빛의 효과는 알갱이들이 가진 색을 살리면서, 우리 눈에서는 그것을 섞인 색으로 보게 만듭니다. 우리 눈은 어떤 색들을 일일이 파악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이 있거든요."

 

따뜻한 색의 계열은 봄에 느끼는 기분 좋음, 푸른 계열은 평온하면서도 우울한 느낌이 든다. 이 두 가지 톤을 쓴 이유는 곡예사들의 서커스가 겉으로는 화려하고 신기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이들의 삶에는 우울한 면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다. 색은 언제나 이렇게 뉘앙스, 기분 이런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

 

"색 하면 역시 마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세라가 점을 혼합하는 방식을 섰다면, 마티스는면을 잘라서 붙임으로써 면으로 바로 색과 색을 대비시키는 거예요. 아주 뚜렷하게 대비시키는 거죠. 이 사람 야수파인데 색을 아주 강렬하고 때로는 도발적으로 썼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마티스가 드로잉하는 방식인데요. 마티스는 한 번에 아우트라인을 그리는 방식을 썼는데, 가위로 종이를 오리는 방식과 거의 비슷합니다."

 

강은주교수님1.jpg

 

무엇을 보든 관점을 가져라

 

강은주 교수가 이어받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이야기했다. 강은주 교수는 먼저 『게이트웨이 미술사』의 8가지 대표작품을 제시하며, 여성 작가가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몇 개인지 관객들에게 물었다. 함께 간 서포터즈 김준호 마케터는 ‘잘 모르겠지만 의도상 하나도 없지 않을까’라고 답했지만 땡! 여성 작가의 작품은 두 개였다. 피라미드와 석상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잘 모르니, 여섯 작품 중에 두 작품이나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연자는 왜 ‘두 작품밖에’가 아닌 ‘두 작품이나’라고 강조했을까?


"앞서 사회자께서 『게이트웨이 미술사』를 앞으로 중요한 책으로 많이들 읽으시겠지만, 지금까지는 곰브리치와 잰슨의 『서양미술사』가 대표 미술서라고 말씀하셨죠. 이 두 책의 초판본이 1950년과 1962년에 나와요. 그런데 이 두 책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여성 작품도 다루지 않았어요. 이것이 개정판을 거치면서 비로소 몇 명의 여성 작가가 비로소 언급이 되고 있다는 거죠. 이게 미술사의 현실이에요. 반면 이번에 나온 『게이트웨이 미술사』에서는 대표 작품 중 여성 작품이 두 개라는 게 아주 놀라웠던 거죠. 지금까지 많은 미술 서적이 여성 작가에 대해 언급 안 해왔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는 미술작품 감상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여성 작가들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과 그런 의미에서 그 동안 미술사 속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위대한 여성 작가들 중 한 작가인 젠틀레스키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자 해요."

 

젠틀레스키는 바로크 작가로 구분되며, 대부분의 학자들이 1593년경에는 태어났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그녀는 화가인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젠틀레스키는 아버지 공방에서 많은 작품을 그리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비교적 후반부의 작품으로서 그녀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뚜렷이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과거 대부분 화가들의 자화상을 보면, 캔버스를 앞에 세운 채 팔레트를 들고, 얼굴은 관람객을 향하고 있어요. 나 화가야, 하고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젠틀렌스키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관심 없어요. 그림 그리는 데 몰두하느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하죠.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열정적인 예술가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서 강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젠틀렌스키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바로크 거장인 카라바조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당시 바로크 미술계에서 독특한 자유주의 양식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극적인 빛의 효과를 통해서 화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할 줄 알았던 작가다. 이 날은 젠틀레스키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작품을 살펴봤다. 유디트는 아시리아의 침략으로부터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장을 유혹해서 죽인 여성 영웅이다.

 

"유디트의 살해 장면은 당시 바로크 화가들에게는 좋은 주제가 됐습니다. 젠틀레스키와 카라바조의 작품을 비교해 볼까요? 젠틀레스키의 작품 속 여인들은 상황에 굉장히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카라바조의 작품 속에는 너무나 청초하고 연약한 표정을 지으며 살인을 망설이는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죠.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젠틀레스키는 이 주제로 평생에 걸쳐 무려 일곱 작품을 남기는데요. 그녀는 아버지 공방에서 일하던 시기, 아버지 친구이자 자신에겐 스승 겸 동료 화가였던 타시라는 화가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죠. 이 사건으로 공개 재판이 오가는 가운데 그녀는 굉장히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받습니다. 즉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주제를 통해서 남성에 대한 적대감, 복수심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겁니다.


저는 젠틀레스키에게 강인한 여성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부도덕하고 옳지 못한 일을 행하는 남성을 벌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바란 것 같아요. 그러한 역할 모델로 자신의 이미지를 유디트에 투영한 것으로 해석 가능한 거죠.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앞서 봤던 자화상의 얼굴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디뜨 얼굴의 유사성을 이야기하거든요."

 

강연자는 이어서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하녀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젠틀레스키 작품에서는 하녀가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카라바조 그림에서는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관람객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유디트를 우아하거나, 정숙하거나, 관능적이게 묘사한 다른 남성 작가들과의 작품 비교를 통해서 젠틀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의 강인함을 증명했다.

 

"과거부터 미술사에서 젠더라는 문제를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해 왔어요. 1970년 이후 린다 로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작가는 없어’라는 질문을 던진 이후에 ‘화가로서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논의를 해왔고요. 두 번째는 ‘미술 작품 속에서 제한된 남성과 여성 이미지의 성적 차이’에 대한 논의입니다. 젠틀레스키의 작품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이런 것들이에요. 우선,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남성 작가들이 보여주지 않는 특징들을 분명히 의미 있게 다시 봐야 한다는 거예요. 또한, 남성 작가들이 남녀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우리에게 시각적 유형화를 강요하지 않는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젠틀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명화라는 작품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녀가 여성으로서 느껴야 했던 부당함과 여성 영웅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여성 화가였지만 전업 화가로서 성공하고자 했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읽어낼 수 있다. 강은주 교수는 이러한 특별한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미술사를 이해하는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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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통해 역사를 본다는 것

 

세 번째로 이연식 교수는 어두운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서두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연식입니다. 앞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참한 얘기를 많이 해줬는데, 저는 어두운 기운을 뿜으면서 정신 없는 소리를 해야 하는 판이네요. 먼저 이집트인들의 그림을 살펴볼까요? 이집트인들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무덤에 남아 있는 이를 위한 그림입니다. 얼굴은 측면인데 몸은 정면인 사람들, 이집트인들이 사람을 묘사하는 아주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을 못 그리는 것이었을까요? 무덤의 주인공은 이집트 사람들의 법칙에 따라 그려졌지만, 나머지 새, 식물, 물고기 등은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는 거죠. 하지만 사람을 그릴 땐 법칙을 따라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 이유는 이집트인들은 무덤에 사람을 불완전한 상태로 그리면 무덤의 주인 역시 불완전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팔다리 다 보여야 하고, 몸이 온전한 상태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만큼 이미지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자의 서’는 이집트 문자를 해석할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다. 그러나 문자도 적혀 있지 않는 그림 같은 경우는 직관적으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해석을 할 수가 없다. 과거 예술가들은 세계의 질서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상상을 더해야만 한다. 즉 어떤 이미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먼저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덜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나온 그림은 앞서 잠깐 살펴봤던 고야의 ‘1908년 5월 3일’이었다.

 

"1808년 5월 2일 폭동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인들은 5월 3일 큰 처형을 합니다. 고야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 어마어마한 학살과 전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런 그림들 때문에 우리는 고야를 애국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그림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실은 굉장히 부조리하고, 혼란스럽고, 잔인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아요.


고야를 비롯해 스페인 작품에 영향을 받은 작가 중 마네가 있습니다. 마네는 스페인 작품이 너무나 스타일리쉬하다고 생각했어요. 곧바로 흉내를 냈죠. 스페인 사람들이 검정색 옷을 차려 입는 방식을 그대로 배워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회화라는 게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입체감, 공간감이 잘 드러나고 볼륨감이 있어야 했는데 마네 그림을 보면 볼륨감이 없죠. 너무나 단순하지만 대담하고 아름답습니다."

 

마네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일본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프랑스 화가들의 마음 끌었던 건 일본 화가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센스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얼마나 일본판화를 정신 없이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반 고흐의 친구였던 탕기라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다. 반 고흐는 일본 판화에서의 독특한 구도, 강렬한 색채에 감명을 받았다. 초반에는 원래 있는 밑그림을 고스란히 베꼈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점점 반 고흐 나름대로 이것을 해석해낸다.

 

"19세기 유럽 그림에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면, 화가들이 추구했던 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정교하고 입체감 있게 그리는 게 가장 좋은 미술의 조건이었다면, 점점 대담하고 단순한 색채가 훌륭한 미술의 조건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마티스죠. 이젠 자기 부인의 얼굴 한복판에다가 얼룩을 그려놓을 수 있는 배짱이 생깁니다. 마티스의 후기 작품을 보면 더 이상 어떤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색채가 소리를 내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리듬감 넘치는 춤을 그림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주죠.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더 화려한 색감 보여줍니다. 결론은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라는 겁니다."


 

 

게이트웨이 미술사데브라 J. 드위트,랠프 M. 라만,M. 캐스린 실즈 공저/조주연,남선우,성지은,김영범 공역 | 이봄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현대적 감각으로 미술을 전해야 한다는, 기존의 방식에 대한 고려 없이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된 이 책은 따라서 차별화에 대한 강박이나 설익은 시도의 결과물이 아닌 온전히 21세기 독자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을 장착한, 미술 세계로의 수월한 진입을 돕는 의미 있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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