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어려운 책에 대한 어려운 리뷰]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응답하라 1990, 현/사/연/ 앙드레 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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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어려운 책을 어렵게 읽었던 시대. 쉬운 책, 쉽게 읽히는 리뷰가 대세인 요즘, 도전정신 반 허세 반으로 붙잡았던 그 시절의 사상가들이 문득 떠오른다. 90년대 스타일을 간직한 번역가 이정인씨의 현대 사상가 리뷰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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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계급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도발적 주장

 

앙드레 고르(Andre Gorz, 1923~2007) - 사실 고르스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 는 미셸 푸코(1926년생), 질 들뢰즈(1925년생) 등과 프랑스라는 같은 공간에서 동세대를 산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지적 맥락에 있는 인물이다. 일단 그는 프랑스 태생이 아니었고,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낳은 고등사범학교 같은 엘리트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강단 학계와도 거리가 멀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고르는 1949년 프랑스로 이주해 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경력 대부분을 언론인으로 보냈다. 그래서인지 앙드레 고르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현실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으며, 60~70년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신좌파 활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가 전후 프랑스 사상계의 거인 장 폴 사르트르의 인간주의ㆍ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었던 것과 달리 사르트르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앙드레 고르는 평생 인간주의를 고수했다. 그러나 탈공업화에 대한 그의 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왜 1970년대에 그러한 반인간주의ㆍ탈주체를 내세운 이론들이 득세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신좌파 전략가에서 생산중심주의 비판으로

 

1950년대 여러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약한 앙드레 고르는 1962년 전후 사르트르가 창간한 당대 가장 영향력 있던 진보적 월간지 <레 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 ‘현대’라는 의미)>의 편집진에 들어간다. 고르는 여기서 이탈리아 신좌파의 논의를 소개하는 한편 그 자신도 여러 기사와 저술을 통해 60년대 신좌파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유럽의 신좌파 운동은 1956년 헝가리 혁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56년 10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헝가리 노동자ㆍ민중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소련군은 헝가리를 침공하여 시위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헝가리 민중들이 목숨을 잃었고 헝가리 공산당 개혁파인 총리 나기 임레는 소련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소련을 지지해온 유럽 좌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 전역에서 젊은 급진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민주적이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이렇게 기존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와 사민당의 의회주의를 모두 반대하는 급진적 청년 운동가들을 신좌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르 역시 사민당의 의회주의 전략을 불신했지만, 구 좌익의 엘리트주의적인 전위당 노선도 거부했다. 또한 그는 유럽의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분배에만 호소하는 전략이 통하기 힘들고 창조성, 자율성, 소통 등의 가치가 보장되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투쟁이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자본주의 붕괴론은 수동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이며, 자본주의 위기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투쟁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스스로를 혁명적 개량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고르의 『노동의 전략과 신자본주의 (Strategie ouvriere et neocapitalisme, 1964)』같은 책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신좌파 활동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1968년 5월 혁명이 일어나자 고르의 입장은 더욱 급진화되었다. 그는 사르트르가 옹호하던 마오주의 경향들과는 여전히 거리를 두었지만 제도 교육을 거부하는 급진적인 학생 운동과 기술문명에 비판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 등의 영향으로 학교, 병원 등 근대 제도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1969년 <레 탕 모데른>의 편집장이 된 앙드레 고르는 “대학을 파괴하라(Detruire l'Universite)”라는 과격한 기사를 써서 이에 반발한 <레 탕 모데른>의 일부 보수적 편집진들이 사임하는 일을 빚었다. 하지만 고르 자신도 1974년에는 이탈리아의 급진 좌익 그룹 <로타 콘티누아(Lotta Continua, ‘투쟁은 계속된다’)>에 대한 대대적인 특집기사를 기획했다가 반발에 부딪쳐 편집장을 사임한다.


고르는 스탈린주의나 마오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로타 콘티누아>처럼 자주관리를 주장하는 급진좌파는 옹호했다. 그러나 68년 혁명 이후 급진주의를 전통적인 노동계급에 도입하려는 시도들은 대개 실패로 끝났다. 고르는 1975년 『생태주의와 정치(Ecologie et politique)』라는 책을 냈는데, 정치적 생태주의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받는 이 책에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생산 중심주의로 비판하고 생태주의 관점을 뚜렷이 했다.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1980년 고르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19세기 중반 이래 거의 모든 진보적 사상에서 혁명의 주체로 상정된 것은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른 공업 노동계급이었다. 하지만 고르는 이것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2차 대전 이후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주로 제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었다. 대부분의 좌파는 공산당과 사민당의 주요 기반인 이들을 프롤레타리아의 핵심이자 미래에 올 혁명의 주체 혹은 사회진보의 원동력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68년 혁명은 여기에 의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투쟁이라기보다 대학생과 청년 중심의 운동, 다시 말해 구좌파 용어로는 “쁘띠부르주아”들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 담론들은 이런 역사적 주체의 부재에 대한 철학적 반영으로 읽을 수 있다. 푸코나 들뢰즈 같은 이들은 68혁명에서 계급투쟁이 아니라 원자화된 개인들의 투쟁의 집합을 보았다. 푸코의 후기 저작들은 그러한 개인의 투쟁이 바로 체제 자체 대한 저항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분자적 탈주의 선이 접속하여 큰 흐름이 된다는 들뢰즈와 과타리의 형이상학적 주장은 그 자체로 68년 혁명에 대한 은유였다. 하지만 이들의 사고는 급진적(radical)이긴 했으나 혁명적(revolutionary)이진 못했다. 원자화된 개인들의 집합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찾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체로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정치는 급진적인 민주주의로 수렴되었다.


반면 고르는 좌파가 선험적으로 받아 들여 온 전통적 노동계급 중심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탈공업사회에서 전통적인 노동계급은 이제 특혜 받는 소수층에 불과하며 “어디서 일하건 무차별한 직무에 일시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해서 생산을 관리하는 노선은 더 이상 사회주의로 가는 중심 전략이기 어려우며, 탈공업사회의 새로운 사회주의 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사실 탈공업화 논의는 다니엘 벨 같은 보수적 학자들에 의해 이미 7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고르의 논의는 이에 대한 좌파적 수용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좌파 진영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좌익정당 사회주의노동자당(SWP)는 80년대 중반 고르의 책제목을 직접 빗댄 - 과연 노동자계급에게 안녕을 고할 때인가 - 라는 기사를 냈다. 유럽과 북미 등 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전통적 노동계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ㆍ브라질ㆍ한국 같은 신흥공업국들의 부상으로 전세계적으로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런 주장은 시간의 검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중국 등 이른바 신흥공업국들에도 전통적인 노동자들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된 정규직노동자와 불안정ㆍ비정규직노동자의 임금격차는 나날이 증대하고 있으며, 고르가 예기한 고용 없는 성장 현상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고르가 제시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는 90년대와 2000년대 반세계화 운동 속에서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하다을 뜻을 가진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를 합성한 신조어)라는 새로운 버전으로 등장했다.

 

 

정말 프롤레타리아에게 안녕을 고할 것인가

 

앙드레 고르는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추상적이고 철학적 논의를 넘어 현실 사회를 분석했고 탈공업화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이라는 현실의 변화를 포착했다. 그러나 영국의 노사관계 이론가 리처드 하이먼이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에 대한 서평(“Andre Gorz and his disappearing proletariat”)에서 지적하듯이 이들을 기존의 노동계급과 달리 계급으로 조직이 불가능한 비(非)계급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이 비판했던 포스트구조주의자들처럼 현실 변화의 집단적 주체를 제시하지 못하고 삶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추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대안으로 빠져든다. 그가 제시한 탈공업사회의 사회주의 역시 상당히 모호한 것이었으며 고르는 이후 점차 기본소득 같은 정책대안으로 기울어졌다.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계급 (2012)』이라는 책에서 불만 가득한 빈곤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는 프레카리아트가 극우 지지로 넘어가기 쉬운 위험한 계급이라고 썼다. 가이 스탠딩 역시 고르처럼 기본소득을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유무형의 사회서비스를 화폐로 일괄 지급하는 것을 뜻하는 기본소득은 오히려 우파 의제로 사용되기 더 용이해 보인다. 최근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당선 같은 사태들은 우익 포퓰리즘이 기존의 좌파 의제를 차용해서 조직적ㆍ집단적 주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원자화된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는데 이미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불안정ㆍ저임금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들이 비계급이나 위험 계급일 뿐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 듯하다.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앙드레 고르 저/이현웅 역 | 생각의나무
1980년에 출간된 앙드레 고르의 저작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예지와 사회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성찰로 점철되어 있어, 당대에 그가 왜 그토록 뛰어난 평가를 받았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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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정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사회활동 틈틈이 추리소설, 교양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한 번 글을 썼다 하면 정해진 원고 분량를 훌쩍 넘기며, 수많은 고유명사를 흩날리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말투가 경직되는 그는 진정한 90년대 필자이다.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앙드레 고르> 저/<이현웅> 역 13,500원(10% + 5%)

맑스와 함께 맑스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대한 놀라운 비판! 1980년에 출간된 앙드레 고르의 저작이다. 그럼에도 시대를 뛰어넘는 예지와 사회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성찰로 점철되어 있어, 당대에 그가 왜 그토록 뛰어난 평가를 받았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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