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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어려운 책에 대한 어려운 리뷰]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응답하라 1990, 현/사/연/ 언어가 실재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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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어려운 책을 어렵게 읽었던 시대. 쉬운 책, 쉽게 읽히는 리뷰가 대세인 요즘, 도전정신 반 허세 반으로 붙잡았던 그 시절의 사상가들이 문득 떠오른다. 90년대 스타일을 간직한 번역가 이정인씨의 현대 사상가 리뷰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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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대인 기호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자전적인 소설 『무사들』에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데리다를 등장시킨다. 사이다(데리다)는 1968년 5월 혁명 직후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해체”라는 괴상한 이론을 제기하며 소수지만 열렬한 추종자들을 획득하는 인물이다. 사실 『그라마톨로지』를 비롯해 서구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데리다의 주요 작업들은 이미 1967년에 시작됐지만, 구조주의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비판은 분명 1968년을 예고하는 면이 있다. 

 

 

포스트구조구의의 대표적인 사상가

 

자크 데리다는 미셸 푸코, 질 들뢰즈와 함께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꼽힌다. 1960년대 프랑스 학계에서 시작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연속된 사상운동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으며, 이 두 조류가 언어, 욕망, 차이 등 공유하는 주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포스트(post)라는 접두사에 연속과 단절이라는 의미가 모두 들어있듯이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상당히 다르고 심지어 적대적인 면도 있다.  

 

구조주의는 근본적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엄밀성을 추구하는 강단 학자들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인간과 세계의 가변적 영역을 배제하는 구조조의 방법론은 결국 형이상학적 성격을 피하기 어려웠다. 영국의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이 『역사유물론의 궤적』에서 지적한 것처럼 프랑스 68년 5월 혁명은 그 자체로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일수 있었다. 구조주의가 2차 대전 이후 5?60년대를 거치며 안정화돼 가던 서구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영이라면 68년 혁명은 바로 그 구조에 대한 집단적 반항이었다.

 

드골의 급속한 산업화 정책으로 프랑스는 60년대 들어 2차 대전의 상흔을 지우고 물질적 풍요를 누렸다. 대학교육이 확대되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넓은 층이 고등교육의 수혜를 받았으며, 영화의 누벨바그 세대가 보여주는 것처럼 미국 문화와 자유주의가 젊은 세대에 널리 퍼졌다. 반면 드골의 통치는 매우 권위적이었으며, 프랑스 사회는 여전히 전통과 인습의 힘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독립에서 보이듯 3세계 운동의 성장과 미국식 자유주의라는 모순적인 요소들에 고무된 젊은 세대는 모택동주의와 같은 급진주의에 기울어졌다. 내재된 사회적 갈등과 불만은 1968년 학생들의 시위로 갑자기 터져 나왔다. 시위는 눈덩이처럼 확산되었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프랑스를 혁명의 열기로 불태웠던 68년 5월 봉기는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소멸되었다.

 

혁명도 드골도 사라진 70년대의 프랑스는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 같은 소설에 나타나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소비 자본주의로 들어섰다. 때문에 남미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 투쟁을 하다 나중에 미테랑의 비서를 지낸 레지 드브레 같은 인물은 68년 혁명을 두고 “중국으로 여행을 생각했으나 결국 발견한 것은 콜럼버스처럼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냉소적인 사후 평가일 뿐이며 68년 혁명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프랑스 68년 혁명의 발발과 좌절은 혁명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던 프랑스의 젊은 지식인들은 발전한 현대 사회의 구조 속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그 혁명이 결국 구조 앞에 좌절해 버리는 현실을 동시에 보았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구조주의의 바탕 위에서 구조주의를 비판하고 구조적 안정성에 이론적 균열을 내고자 했다. 이러한 지향을 잘 표현하는 것이 68년 혁명 당시 유행했던 “판석 아래 모래가 있다”는 표어일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판석(구조)이 전부가 아니라 그 역시 구조로 포괄할 수 없는 것들(욕망, 실재, 권력 등)에 의해 지탱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포스트구조주의는 “판석”을 들어내고 “모래”를 드러내려 했다. 뤽 페리?알랭 르노의 말대로 데리다, 푸코, 들뢰즈로 대표되는 포스트구조주의야말로 68년의 사상이었다.

 

 

기호학을 기록학으로


구조주의 기획은 소쉬르의 언어학 모델에 기초한다. 소쉬르는 기표(말)와 기의(뜻)은 완전히 무관하며 그 결합은 임의적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암묵적으로 서양 형이상학의 주요한 전통 중 하나인 실재론에 종지부를 찍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을 언어 전체의 차이체계에 의해 고정된 안정적인 모델로 바라보았다. 소쉬르는 언어학을 이러한 차이체계가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는지를 밝히는 학문으로 규정했으며, 이러한 차이체계(구조)가 언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모든 의미체계에 대한 일반적인 과학, 세미올로지(기호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떻게 보면 60년대 프랑스 구조주의는 세미올로지라는 “소쉬르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학으로부터 구조주의를 받아들인 인류학(레비-스트로스), 정신분석학(라깡), 마르크스주의(알튀세르)는 저마다 인간 정신과 사회를 포괄하는 보편적 구조를 밝히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자기 분야의 우위성을 경쟁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구조주의가 기대고 있는 소쉬르의 모델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그는 여기서 기표들의 차이체계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실제로는 문자라는 눈에 보이는 물질성을 가진 매개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기발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데리다에 따르면 서구 철학의 전통은 글에 비해 말이 더 본원적인 것이라는 음성중심주의에 지배되어 왔고, 그것은 로고스중심주의와 결합하여 서구 형이상학을 지탱해 왔다. 예컨대 글을 단순히 말의 모사 또는 보충물로만 파악하는 음성중심주의는 내면의 소리(말)와 대상을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플라톤 이래의 서구 형이상학은 이런 음성/로고스중심주의에 기대어 이성=말(글)=실재로 파악해왔다.

 

소쉬르 역시 문자보다 소리에 우위를 부여하고 기표/기의 관계를 고정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음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소쉬르가 『일반언어학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언어를 연구하는데 있어 만일 문자가 없다면 “모든 언어의 녹음 견본을 수집해야” 하는 불가능한 작업을 부딪쳐야 한다. 문자는 소쉬르의 언어학에 의해 배제되었지만 실제로는 언어학 연구의 전제 조건인 것이며, 나아가 소쉬르가 의미가 생성되는 모든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 차이체계는 실제로는 (소쉬르가 배제해버린) 문자 체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일반언어학강의』에서 소쉬르가 제시한 세미올로지 기획을 문자학 혹은 기록학을 의미하는 “그라마톨로지”로 대신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라마톨로지는 세미올로지와 같은 포괄적인 일반과학이 아니라, 그런 일반과학이 불가능함을 드러내줄 뿐이다.

 

 

보편적 과학성에 숨겨진 배제

 

해체란 『그라마톨로지』에서 보여준 것 같은 뒤집기를 통해 보편적 과학성으로 내세우는 모든 논리는 자신의 체계에 맞지 않는 것을 은밀히 배제한다는 것, 즉 스스로를 자체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모든 형이상학적 주장은 사실 자신이 배제시킨 바로 그것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데리다는 언제나 항상 언어(개념)는 실재를 완전하게 포착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이론도 절대적 과학성,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러한 작업은 데리다와 마르크스의 접목을 주장한 마이클 라이언의 주장처럼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어느 정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데리다의 비판방식이 너무 근원적이었기 때문인지, 데리다 자신이 초기부터 좌파에 대해 지지를 표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해체 이론의 정치적 성격은 대단히 모호하게 인식되어왔다. 특히 데리다 이론을 초기에 가장 열렬히 받아들인 것이 영미권의 매우 탈정치적인 문학비평의 한 사조, 이른바 해체비평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면이 있었다. 반면 포스트식민주의를 주창한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마이클 라이언 등은 데리다의 방식을 좌파 정치에 이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직 남아있는 데리다의 가능성

 

데리다는 1993년에 마르크스에 대한 오랜 침묵을 깨고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을 썼는데, 소련이 몰락하고 역사의 종말이 회구되는, 마르크스주의가 완전히 한물갔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 시점에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소환하고 긍정한다. 그러나 데리다 특유의 비의(秘意)적인 어투로 가득한 이 책 역시 마르크스적인 현실 사회에 대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었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데리다는 2004년에 죽었고, 해체 역시 이제 한 때의 지적 유행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하지만 모든 형이상학을 거부한 데리다의 이론이 가진 파괴력은 여전히 유용해 보이기도 한다. 해체와 혁명적 사회과학의 결합의 가능성은 아직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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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마톨로지 자크 데리다 저/김성도 역 | 민음사
독자들은 데리다가 자신의 텍스트와 타자의 텍스트를 서로 교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창안하며 전통적 선입관과 전제로부터 벗어나 참된 문제를 제기한 문제학의 발명가였음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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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정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사회활동 틈틈이 추리소설, 교양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한 번 글을 썼다 하면 정해진 원고 분량를 훌쩍 넘기며, 수많은 고유명사를 흩날리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말투가 경직되는 그는 진정한 90년대 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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