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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독자] 『13·67』 찬호께이 작가

우리의 첫 번째 작가, 찬호께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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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 각국의 저자와 출판사들이 각자의 언어로 책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서점에 놓인 책들은 아직 한국 독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번역자일 것이다. 그리고, 번역자야말로 한 줄 한 줄 가장 꼼꼼하게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맨 처음 독자, 번역자가 먼저 만난 낯선 책과 저자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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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독자’의 시각으로 찬호께이에 대해 써달라는 말을 듣자, 그 이름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정기적으로 중국어권 출판계의 새 책을 살펴보는데, 분야도 주제도 짐작되지 않는 요령부득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그 책이 바로 『13.67』 이다. 추리소설이고 2013년부터 1967년까지 시간 역순으로 흐르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 뒤에는 일관된 호평이 놀랍고 의아했다. 어떤 소설이기에?

 

읽어보니 『13.67』 은 한마디로 멋졌다. 자로 잰 듯 정교한 플롯, 단 한 글자도 허투루 넘길 수 없게 촘촘히 짠 트릭,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반전. 미스터리 자체도 훌륭했지만, 작품을 뒤덮은 홍콩의 분위기가 매혹적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가 홍콩의 거리 어딘가에 살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소설을 쓴 사람이 궁금해졌다.

 

찬호께이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홍콩에 살며 추리소설을 쓰지만 책은 타이완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다. 홍콩에는 추리소설을 발표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몇 곳 있지만 추리소설을 내지는 않는다. 가까운 타이완에서 책을 그대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홍콩 사람이 쓴 추리소설을 본 일이 없다. 찬호께이는 홍콩이 추리소설의 불모지, 사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홍콩에서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 공간은 좁고 사람은 많고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에서, 종이 위에 미스터리의 세계를 건설한다.

 

그렇다면 그는 사막에서 삶을 이어가는 선인장 같은 남자일 것이다. 작가 자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찬호께이가 사막의 오아시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린왕자가 우리에게 알려준 진리에 의하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추리소설의 불모지 홍콩은 찬호께이의 작품 속에서 이보다 더 추리소설에 어울릴 수 없는 도시가 된다. 그의 소설은 홍콩을 더 없이 매력적이고 아이러니하며 인간적인 곳으로 만든다.

 

찬호께이는 소설 속 홍콩의 모습을 꼼꼼하게 조형하고 그곳에서의 삶을 깊은 애정을 담아 바라본다. 한 치 어긋남도 없이 똑 떨어지는 글쓰기에 그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인간’임을 부지불식간 떠올리게 되지만 배경이 되는 도시와 그곳의 인간군상에 대해 느껴지는 애정 어린 시선이 작품에 감성적인 색채를 더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13.67』 은 홍콩이 작품의 숨은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여섯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13.67』 에서, 여섯 개의 사건은 모두 현대 홍콩의 중요한 변화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홍콩의 사회상과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개개의 단편은 그 자체로 완결성 있고 뛰어난 본격 미스터리의 면모를 갖췄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생각나는 클래식한 미스터리부터 홍콩 누아르, 청춘의 버디무비까지 하나하나 분위기가 다르다. 그 전에 쓴 『기억나지 않음, 형사』 역시 『13.67』 에 비하면 미숙할지 모르지만 찬호께이의 작가로서의 재능과 매력은 이미 온전한 형태로 나타나 있다.

 

찬호께이는 아직은 젊은 작가다. 불혹을 갓 넘긴 나이도 그렇지만, 추리작가로서도 역시 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2008년에 처음 추리소설을 썼다. 이제 8년째, 장편 추리소설은 『기억나지 않음, 형사』『13.67』 이 전부다. 지금까지보다 이후의 시간이 더 기대되는 작가다.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던 때 우연히 타이완 추리작가협회 신인공모전의 광고를 봤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고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도 좋아했기에 ‘한번 써볼까?’ 한 것이 첫 해부터 결선 진출, 이듬해에는 1위를 했다. 추리소설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작품 의뢰도 들어왔다. 하지만 초기에는 시장 반응이 빠른 호러, 판타지, 라이트노벨 등을 써야 했다. 그래도 찬호께이는 미스터리 기법을 녹여 넣어 알맹이는 추리라고 자부한다.

 

현재 추리소설로 출간된 장편은 달랑 두 권, 나머지는 단편소설이거나 문학상 투고용이었다. 작품 수는 적지만 반향이 컸다. 실질적으로 첫 장편 작품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가 시마다 소지가 직접 수상작을 고르는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받았다. 다음에 쓴 『13.67』 은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대상에 뽑혔다. 그 해 타이완에서 최고의 책 중 하나라는 의미다.

 

추리작가로서 찬호께이가 거둔 성과는 나름대로 작지 않다. 권위 있는 상도 받고 여러 언어로 작품이 번역되었으며 영화화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추리작가로 산다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니다. 추리소설의 토양이 탄탄하지 않은 중국어권, 게다가 홍콩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영미 소설이나 일본 소설이 우선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찬호께이는 지금에 만족하며 끝까지 추리소설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찬호께이에게 소설을 쓰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에게 과거 언젠가 찬호께이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 『13.67』 『기억나지 않음, 형사』 두 권의 추리소설로 한국 독자들에게 동시대의 홍콩에 훌륭한 추리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시켰다.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 다시 ‘맨 처음 독자’라는 말을 생각한다. 내가 찬호께이의 첫 번째 독자라면, 찬호께이는 나의 첫 번째 작가다. 아니, 우리의 첫 번째 작가다. 우리에게 거의 처음으로 중국어권 추리소설의 존재를 인식시킨 작가가 아닌가. 찬호께이는 지금 세 번째 장편을 쓰고 있다. 그 작품은 우리에게 또 어떤 모습의 찬호께이를 기억시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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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저/강초아 역 | 한스미디어 | 원서 : 13?67
뛰어난 추리 능력을 갖춘 홍콩 경찰총부의 전설적 인물 관전둬, 오랜 파트너인 뤄샤오밍과 함께 복잡하고 의문점이 많은 사건을 해결해왔다. 관전둬가 경찰총부에서 퇴직한 뒤 오랜 시간이 흘러 암 말기 환자로 혼수상태에 빠진 시점에서 시작한다. 뤄샤오밍은 특수한 기계장치를 통해 관전둬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사건의 진상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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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초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 다니며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만들었다. 현재는 중국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13.6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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