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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부탄의 행복지수,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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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황폐해지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생각이 들면서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부탄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그곳에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있어요. 그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가 있고요. 그런 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인 것 같아요. ‘저렇게 사는 게 사람 같이 사는 거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나만 안녕하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괴물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 사람을 온전히 사람으로 여기는 그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건 당연한 호기심이 아닐까. 나는 부탄의 가난함을 들춰서 이미 윤택해진 우리가 어째서 여전히 가난한지, 그리고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7~8쪽)

 

그래서 그녀는 부탄으로 향했다. 마흔의 문턱 앞에 서고 보니 열정만으로 삶이 반전되는 일은 흔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십여 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일상도 녹록치 않았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 참사를 목격하고도 자신들의 안녕만 지키려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곳이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국민의 97%가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하는 나라, 첫눈이 오면 모든 관공서가 임시휴일을 맞는 나라, 국왕이 먼저 민주주의 도입을 제안하며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나라. 부탄이 소리 없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는 보름간의 부탄 여행기다. 저자인 김경희는 KBS의 라디오와 <수요기획>, EBS의 <세계의 아이들>과 <하나뿐인 지구> 등의 제작에 참여하며 사람, 자연, 문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왔다. 2010년 단편소설 「코피루왁을 마시는 시간」으로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가이며, 다큐에세이 『제주에 살어리랏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소설가이자 방송작가로서 그녀가 지닌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은 이번 책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에서 부탄은 선입견에 갇히지 않은 맨 얼굴을 보여준다. “순박하고 착해 보인다는 흔한 말로는 부족한 정갈한 매력”을 지닌 부탄의 사람들은 “산이 거기에 있고, 별이 그 자리에 있으며 인간이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기를” 기도하며 살아간다. 여성들은 자신의 직관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스스럼이 없으며, 같은 이유로 이혼을 선택해야 할 때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변화가 시작됐고, 이제 부탄의 사람들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따라 부르며 레스토랑에서 김밥과 매운 라면을 맛본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 역시 멈추지 않는다.

 

아직도 부탄은 누군가에게는 낯선 곳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산속의 가난한 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는 있는 그대로의 부탄을 만나게 해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이곳에 행복이 머무는지, 부탄의 사람들이 지키는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저자 김경희는 부탄을 다녀온 후 “다시 사는 게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사람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고, 자신을 되찾았다고 했다. 부탄이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답을 듣기 위해 만남을 서둘렀다. 1월의 첫 번째 화요일, 우리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로 새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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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은 운명처럼 가게 되는 곳


부탄으로 떠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2년쯤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를 통해서 부탄을 처음 접했어요. 처음에는 ‘이런 나라가 있구나’ 하고 무척 신선했어요. 그리고 그곳이 궁금해졌죠. 그때부터 부탄에 대해서 알아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1년 반 정도가 지났는데, 세월호 사건이 있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로도 서른아홉이 되니까 여러 가지로 힘든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때 부탄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제주에 살어리랏다』를 출간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가게끔 구실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을 통해서 만나본 부탄은 어떤 곳이었나요?


책을 읽으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굉장히 동화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눈이 내리면 모든 관공서가 휴일을 맞는다는 것 자체도 그랬고요. 권위나 권력으로 누르는 힘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기본적으로 그런 걸 싫어해서 더 와 닿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부탄은 국왕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나라이기도 하잖아요. 그건 되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대부분 조직에서는 무언가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만드는데, 위에서 편안하고 부드럽게 이끌어서 사람들이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건 굉장히 다른 거잖아요.

 

여행을 가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큐멘터리 제작 때문이었나요?


부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출판사도 만나게 됐고, 소개해주신 부탄 명예영사님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러다가 강병찬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죠. (강병찬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부탄 축구팀을 이끌었고, 지금까지도 ‘부탄 축구의 아버지’라 불린다) 강병찬 감독님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됐어요. 7~8분 분량의 트레이너를 제출하면 정부에서 몇 편을 선정해서 본편을 제작하도록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였는데요, 거기에 뽑혀서 부탄으로 가게 됐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병찬 감독님을 다 잊었지만 부탄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아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당시 촬영하신 다큐멘터리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부탄에서 트레일러를 만들어 왔는데 해당 프로젝트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본편은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덕분에 부탄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셨네요.


갈 수밖에 없도록 인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책에서도 소개했듯이 부탄에서 복싱 감독으로 계시는 한국 분이 계신데요. 그 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부탄에 오는 사람들은 다 운명처럼 오게 되는 거라고요. 모든 일들이 부탄에 갈 수밖에 없게끔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읽어 보면 부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고유의 분위기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무척 놀라운 게, 거리낌이 전혀 없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일단 와요. 와서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물어봐요. 타인에 대한 경계심도 없고요. 보통은 부탄을 가난한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전혀 움츠려있지 않아요. 학교에 찾아갔을 때도 전교생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제가 누구인지, 몇 살인지 물어봐요. 제가 묻기도 전에요. 그리고 자기랑 사진 찍자고 하고요, 사진 찍으면 보여 달라고 하고 보여주면 다시 찍어달라고 해요(웃음). 그렇게 당당하고요. 공항의 경비원은 경비원대로, 또 농부는 농부대로, 다 기본적인 품위가 있는 것 같아요. 당당함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들을 만나는 동안 “중히 여기어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하셨어요.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배려 같아요. 배려가 항상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부탄을 떠날 때, 여행 내내 같이 다녔던 가이드 ‘점배’가 옷 매무새를 단정하게 했던 것도 배려가 배어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함께 사원을 올라갈 때도, 제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특별한 말은 없는데 계속 저를 살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괜찮아요? 힘들지 않아요? 짐을 들어줄까요?’ 이런 말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런 느낌은 어느 여행지에서도 받을 수 없는 느낌인 것 같아요.

 

부탄의 사람들은 배려가 몸에 배어있고, 자존감이 강하고, 품위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일단 자연에서 배운 부분이 있을 거고요. 그리고 종교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부탄은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사회니까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타고난 품성이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이 자연에서 어떤 걸 배운다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굉장히 작은 존재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 같아요. 자연이 항상 그 자리에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초등학교에 가도 ‘자연에서 배우라’는 말이 붙어있어요. 학급마다 아이들이 맡아서 기르는 화분이 있고요. 항상 자연에게서 배우라는 게 그 나라의 철학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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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여성들, 사랑도 육아도 쿨하게 한다!


부탄의 사람들은 “남을 부러워하거나 비교하는 욕망을 에너지로 삼지 않기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라고 적으셨어요. 우리의 삶이나 사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요. 제가 방송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방송 일도 치열하잖아요. 항상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아이템을 찾아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맛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걸 찾아냈을 때의 만족감 같은 거죠. 그런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치고 올라오는 걸 보지 못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하긴 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제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서른아홉 때쯤 되니까 몸도 조금 힘들기도 하고  ‘이렇게 계속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일 힘들 때 부탄에 갔던 건데, 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부탄이 많이 깨준 거예요. 여행을 떠날 때는 ‘부탄은 행복의 나라니까 되게 좋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갔는데, 여행하는 동안 심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뭐하고 살았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하니까요. 행복해질 줄 알고 갔는데 오히려 내 모습 때문에 초라해지기도 했어요.

 

부탄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어땠나요? 전혀 그늘이 없던가요?


없어요. 12살 소년 ‘점소’ 같은 경우도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하고 형하고 셋이 사는데요. 어머니는 근처 종(드종, Dzong)에서 청소를 하시고 가난한 형편이에요. 그러면 어두울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더라고요. 친구들하고 자연스럽게 매일 뛰어 노니까 그럴 수 있는 거겠죠. 그리고 일단 비교하지 않는 사회인 거예요. 누구네 아빠가 어떻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이 도시 사회에서는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하잖아요. 그런 게 전혀 없는 거죠. 아빠가 없을 수도 있는 거고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점소의 엄마도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셨어요. 남편이 가족을 힘들게 해서 헤어지셨는데, 청소를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이혼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부탄에서는 엄마가 혼자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워도 아이가 방치되는 시간이 없어요. 엄마가 일하는 동안 옆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늘 같이 어울려서 다녀요.

 

자연스럽게 한국의 아이들과 비교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우리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지셨나요?


지금 우리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저희가 자랄 때와는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학교 갔다 오면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뛰어 노는 일이 거의 없고요. 엄마들이 만날 약속을 잡아서 아이들을 놀게 해줘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뛰어 놀면서 친구를 접하고, 사귀고, 상처 받기도 하고, 나랑 맞는 아이를 고르고, 이런 경험을 할 수가 없어요. 사실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친구를 사귈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일단 아이들이 시간이 없어요. 학원으로 다 가니까, 학원 친구들끼리 학원 끝난 후에 잠깐 노는 것 외에는 뛰어 놀 시간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놀 줄도 모르고, 친구 사귈 줄도 모르고, 무리 안에서 각자 역할들을 키워갈 줄을 몰라요. 그런데 부탄의 아이들은 생생해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부탄과 한국, 두 곳의 엄마들도 차이가 있나요?


한국의 엄마들은 오로지 아이 위주로 생활하는데 부탄 엄마들은 전혀 그런 게 없더라고요. 부탄의 아이들이 한 시간 반, 두 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가거든요. 그러니까 아침에 동네 아이들이 다 같이 학교에 가고 나면 엄마들은 자기 할 일을 하고, 서로 모여서 차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눠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후에도 같이 집으로 오는데요. 그러다가 언덕에 누워서 자기도 하고 쉬었다가 다시 내려오기도 해요. 이 집에 가서 놀 수도 있고 저 집에 가서 놀 수도 있고요. 거의 대부분 아이들은 해질 무렵에 집에 들어오는 것 같은데, 그래도 전혀 걱정이 없죠. 그런 부분들이 정말 부럽더라고요.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마음껏 뛰어 노는데도 영어 실력은 우리 아이들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부탄의 학교 수업은 모국어를 제외한 전 과목이 영어로 진행된다). 학습 적극도도 더 뛰어나고요. 교육에 있어서 부탄 사람들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굳이 어떤 걸 강요해서 가르치지는 않고요. 말씀 드린 대로 ‘자연이 가르치고 자연에서 배운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성장하거나 배우는 힘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 자라면, 그리고 주변 어른들이 잘 살아가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죠. ‘점배’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제가 앞으로 부탄도 변하지 않겠냐고 말하니까, 시간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변하는 거라고 말하면서, 우리도 변하겠지만 그래도 속도를 지킬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른들이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하면서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어른들이 악하지 않게 잘 살고 아이들이 뛰어 놀 자연이 있다면, 아이들은 잘 클 수 있는 것 같아요. 배우고 성장하는 힘은 이미 가지고 태어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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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사는 게 사람 같이 사는 거구나


40대에 접어드는 어른 여자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여성들의 삶도 눈여겨보신 것 같아요. 부탄의 여성들은 우리나라 여성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나요?


저도 동네에서 아이들을 같이 키우는 아줌마들과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가 무엇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었나, 라는 거죠. 그래서 ‘부탄 여자들은 결혼 생활도 행복하다고 하던데 어떻게 남자를 택할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제가 부탄 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 자존감이 높고 당당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대가 마음에 들면 여자들이 먼저 대시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거죠. 부탄 사람들이 연애할 때 만남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나이트 헌팅’이라고 하더라고요. 수도 팀푸 같은 곳에서는 밤에 시계탑 밑에 모여서 만나기도 하고요. 아니면 마을에서 축제 같은 걸 할 때 춤추면서 서로를 보는 거예요. 그건 상대의 배경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본능으로 선택하는 거잖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거니까, 사랑이 식었다고 해도 매달릴 필요도 없는 거고요. 그래서 부탄의 여자들은 상대가 마음이 떠났다면 쿨하게 보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정 내에서의 발언권이나 결정권은 경제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잖아요. 모계사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부탄에서는 주로 아내들은 경제활동을 하나요?


경제적인 활동도 같이 하더라고요. 물론 집안일을 하는 여자도 있기는 한데요. 여자들이 일을 많이 하기는 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시골에 갔을 때 모내기 하는 아주머니들을 만났는데, 다 여자들만 있고 남자가 안 보여서 원래 모내기는 여자들이 하는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여자들이 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남자들은 뭐 하냐고 하니까 식사 준비를 하고 있대요.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큰 힘이 필요한 일들은 남자가 하는데, 기본적인 일들을 여자들이 하는 것 같아요. 도시의 경우는 같이 일을 하고 집안일도 서로 분담해서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도 부탄 사람들은 권위나 권력보다는 어우러져서 함께 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2010년에 단편소설 「코피루왁을 마시는 시간」으로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등단 뒤에 아직 첫 작품을 발표하지 않으셨는데요. 언제쯤 선보일 계획이세요?


소설을 계속 쓰고는 있어요. 조금 더 써서 마흔다섯 이전에는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어떤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최근에 「코 없는 남자 이야기」라는 단편을 발표했는데요. 책으로는 봄쯤에 나올 거예요. 저를 포함해서 일곱 명의 작가가 호텔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단편소설을 썼어요. 「코 없는 남자 이야기」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면 권력과 권위에 대한 것이기도 해요. 첫 번째 단편도 그렇고, 저도 모르게 계속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쓰고 싶어요.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방송 대본을 쓰실 때 각각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쓰고 난 뒤에 ‘에세이인데 소설처럼 읽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오히려 그게 (저의) 색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방송 일은 힘들 때도 있고 그렇지만 제가 생계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애증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소설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분야이고요. 에세이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소설은 저를 조금 숨겨야 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에세이는 저를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에세이는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부탄 여행이 작가님의 삶에 가져 온 변화는 무엇인가요?


완전히 변했다고 할 수는 없는데, 무언가 문턱을 넘은 것처럼,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확실히 변했어요. 10년 넘게 일을 해오다 보니까 ‘내가 감이 떨어졌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초조할 때도 있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것들에 너무 전전긍긍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늙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조급함이나 욕심을 다 내려놓은 건 아니지만 ‘너무 안달복달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 편안하게 가자’는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아직도 다 내려놓지 못한 제 모습을 보면서 부탄 갔다 와도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는 걸 계속 느끼고는 있지만,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여행하시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일 감동받은 순간을 꼽으라면, 거리에서 노래 불러준 소녀를 만났을 때였어요.  그 친구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노래 불러줄 수 있냐고 했는데, 쭈뼛대지도 않고 흔쾌히 불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마치 오디션에서 노래하듯이 온 정성을 다해서 부르는 거예요. 노래를 잘하기도 했지만, 정말 잘 불러주고 싶고 감동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았고, 너무 고마웠어요.

 

여행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으셨어요?


그런 비결보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내가 원하는 걸 숨기거나 나 아닌 모습으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해요. 내가 못하는 것들은 받아들이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부탄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계속 드는 생각인데요, 이제는 내가 원하지 않거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억지로 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억지웃음 지으면서, 마치 잘하는 일처럼 하려고 하는 건 안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명예 같은 거대한 일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되게 소중한 것 같아요. 나의 맨 얼굴을 보여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행복한 것 같아요.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읽고 부탄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탄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부탄 여행은 비용도 많이 들고, 거리도 너무 멀고,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 모든 걸 감수하고 간다고 해도 좋은 먹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동하는 시간도 길어요. 정신적인 변화를 얻는 것 외에 가서 볼 수 있는 거라곤 종(드종, Dzong)과 자연 밖에 없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황폐해지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생각이 들면서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부탄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그곳에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있어요. 그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가 있고요. 그런 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인 것 같아요. ‘저렇게 사는 게 사람 같이 사는 거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나는 부탄의 가난함을 들춰서 이미 윤택해진 우리가 어째서 여전히 가난한지, 그리고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적으셨습니다.


그 부분은 아마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느낀 감정들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사건 이후에 불과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물론 모두가 마음속에 가지고는 있겠지만요. 그런 걸 보면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좋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속은 텅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탄 사람들은 우리와는 정반대잖아요. 가난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웃과 같이 나누면서 우리보다 행복하게 만족하면서 살아요. 그 모습을 보시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어쩌다가 감성도 없고 남의 아픔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당연히 느껴지실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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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김경희 저 | 공명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방송 작가 김경희는 문득 삶에 지치고, 사람이 싫어졌다. 바쁜 일상이 끝없이 이어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특별한 꿈을 꾸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삶도 없다는 것을 알 만한 나이,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이 향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이었다. 그곳에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녀는 일상의 스위치를 완전히 끄고, 마음을 멈춘 채 부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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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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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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