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열음 “글 쓰는 쾌감, 피아노 못지않아요”
첫 음악 에세이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펴내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음악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펴냈다. 현재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공부 중인 손열음은 오는 7월 24일,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프시코드 주자로 데뷔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클래식 이야기를 담은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가 출간됐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에 대한 솔직한 속내부터 좋아하는 음악가에 대한 애정, 음악교육을 비판한 ‘콩쿠르에 목숨 거는 사회’ 등 피아니스트이자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손열음의 진솔한 고민이 담겼다.
5년간, 50여 편의 음악 칼럼을 쓴 손열음은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고, 학교 앞 책방에서 살다시피 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책방 아주머니가 서울에 주문 넣어주신 책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손열음. 이제 저자가 되어 자신의 책을 손에 들었다. 현재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공부 중인 손열음에게 <채널예스>가 메일을 띄었다. 손열음은 바쁜 연주회 일정에도 불구하고 짧은 질문 하나도 허투루 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을 말머리로 붙여가며, 정성 어린 답장을 보내왔다. 현재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공부 중인 손열음은 오는 7월 24일,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프시코드 주자로 데뷔한다.
쓸 때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지금 이 순간은 도쿄에 있어요. 어제 도착했고요. 내일 또 다른 곳으로 떠나요. 공식적으로 사는 곳은 독일의 ‘하노버’라는 도시지만 연주여행 때문에 막상 거기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해요.
서문의 ‘주제 파악’이라는 표현이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책이 늦게 나왔나 보네요. 주제 파악을 잘하는 것 말고, (웃음) 손열음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해주신다면.
저는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을 잘 못하는 편이예요. 무슨 말이냐면, ‘무엇이 좋다, 나쁘다’ 이런 똑 부러진 판단보다는 주로 ‘이것은 이러하다, 저것은 저러하다’ 하는 식으로 생각을 늘어놓는 편이라서요. 한마디로 제 장점, 단점도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모든 면이 다 장점이자 단점이지 않을까요? 다만 살면서 참 불편하다고 느낀 점은 ‘숫기 없는’ 것이요. 이건 정말이지 도움이 안 돼요.
최근 TV에 출연해 『논어』를 읽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어요. 대중에게는 피아노와 논어의 조합이 새로웠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밝혔는데,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저는 ‘책 속의 책 읽기’나 ‘책 마인드맵’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현재 읽고 있는 책 하나를 기준으로 그 책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책을 찾아 읽는다든가, 또는 그 책의 저자와 연결고리가 있는 또 다른 저자의 책, 혹은 현재 그 책과 비슷한 소재를 다룬 책 등등을 찾는 것? 『논어』는 아주 어렸을 적에 산 책이고 사실 끝까지 다 읽어보지도 않았어요. 제가 원래 역사 분야를 좋아했었고 특히 조선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유교, 성리학의 근본이 궁금해졌죠. 그래서 그냥 대충 뒤적여볼 생각으로 사본 것뿐이었어요. 심지어 진지하고 심도 있게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화제가 돼서 정말 민망해요.
<중앙SUNDAY>에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오랫동안 연재했는데요. 바쁜 연주회 일정도 있고, 마감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럼을 이어간 건, 글 쓰는 재미를 알기 때문이었을까요.
솔직히 쓸 때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힘들어요. 재밌어 하며 쓴 글은 정말이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글 쓸 적에 컴퓨터 앞에 앉아 구상만 하며 훌쩍 보내버리는 시간까지 다 합하면 한편에 6-7시간 정도가 드는데, 이게 평범한 일상에서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보다 내일 음악회가 있다거나, 지금 당장 리허설을 가야 된다거나 하는 긴박한 상황일 때가 더 많거든요. 그래서 그 순간엔 정말 벗어나고만 싶을 정도로 싫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막상 글을 다 썼을 때의 쾌감이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감히 비교해선 안 되겠지만 ‘출산을 반복하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을 정도예요. 하하. 태어난 아기를 보면 그 끔찍했던 산고도 다 잊혀진다면서요. 제가 매달 느끼는 기분도 그 100분의 1 정도는 되지 않나 싶어요.
36쪽 ‘오늘 연주는 어땠나요?’에서 ‘잘 된 연주’에 대한 글이 흥미로웠습니다. 연주회는 청중과의 교감을 놓칠 수 없을 텐데요. 최근 ‘잘 된 연주’는 어떤 연주회였나요?
지난주에 독일 바트 키싱엔이라는 도시에서 있었던 리사이틀이었어요. 여름에 큰 음악제를 하는 곳으로 올해 네 번째로 참가한 거였는데 워낙 제가 좋아하는 장소라 그랬는지 아침에 하는 연주인데도 너무 잘 됐어요. 제가 원래 아침에는 사람 구실을 거의 못하거든요. 내가 하는 음악에 내가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 드는 연주가 있는가 하면 나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연주가 있어요. 지난주가 딱 후자였어요. 정말 신났어요.
책 출간 기념 음악회에서 에른스트 슐체의 시를 낭송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시보다는 이 시의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리트를 좋아해요. 책에도 썼지만 아마도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일 거예요. 사실 저는 시에 조예가 없는 편인데, 그나마 슈베르트나 슈만의 가곡을 들으며 가끔 독일시를 읽어요.
책에 소개한 음악가 중에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저에게는 너무너무 많으니, 독자 분들이 읽고 매력적으로 생각하실 음악가를 꼽아 볼게요. 아마도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 아무래도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은 한참 예전의 사람들이잖아요.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는 그래도 우리와 크게 떨어지지 않은 시대를 살았으니 독자 분들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이 살았던 20세기 초반은 그 시대상이 처절하지만, 그랬기에 예술가 개개인의 본질이 한층 더 도드라지기도 했어요.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인생궤적 역시 그렇고요. 그게 아주 인간적이고, 그래서 매력적으로 느끼실 것 같아요.
현재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와 수학 중입니다. 아리에 바르디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가장 큰 영향, 변화는 무엇인가요.
선생님을 만나고 하나부터 열까지 바뀌었어요. 예를 하나 들면, 유학을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엄청나게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열음. 근데 혹시 너희 문화권에서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하는 것이 실례니? 만약 그렇다 해도 여기서는 상대방 눈을 좀 더 쳐다보며 말해도 좋을 것 같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야.” 그때서야 제가 낯선 상대방의 눈을 잘 못 쳐다본다는 걸 알았어요. 그걸 고치려다 보니 낯가리는 성향도 자연히 많이 줄었어요.
음악적으로는요?
음악적으로는 가히 제 꿈을 이뤘어요. 원래 제가 유학을 가기 전 꿈꾸던 스승이 ‘내가 하는 음악적 표현들의 당위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이었거든요. 한마디로 여기서 작게 연주하면 ‘왜’ 작게 연주하는가. 또 여기를 클라이막스로 만든다면 ‘왜’ 여기가 클라이막스인가 하는 질문들에, ‘이러이러하기 때문에’라고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을 꿈꿨던 거예요. 그때까지의 저는 ‘그저 이렇게 느끼니 이렇게 연주할 뿐'이었거든요. 그러면서도 타고난 성향이, 잘 모르는 걸 그저 실행부터 하고 보는 걸 몹시 겁내 하는지라, 제 스스로의 음악에 설명 못할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러다 선생님을 딱 만났는데, 선생님이 딱 제 꿈 속의 스승인 거예요. 그러면서도 또 놀라우리만치 유연하시고요. 보통 그렇게 이지적인 분은 딱딱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상일 텐데 선생님은 그렇지도 않으세요. ‘체계화해서 만들되, 체계화한 그 논리는 직관을 자유롭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해야 한다’는 게 선생님의 지론이세요. 평생을 목표로 꼭 하나 써보고 싶은 게 있다면, 선생님의 이런 가르침들을 엮은 책이에요.
책 하니까 생각났는데 저에게 마르셀 프루스트, 슈테판 츠바이크, 슈무엘 아그논,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작가들을 소개해준 사람도 선생님이에요. 물론 저도 선생님께 움베르토 에코 같은 작가들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실은 한국 문학 작품을 더 많이 소개하고픈데, 번역본이 너무 적어 아쉬워요. 시중에 영어번역본으로 나와있는 작품들 중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몽땅 구해다 드리긴 했어요. 아주 좋아하세요.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삶은 어떨까
책과 클래식 음악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공통점은, 처음에 딱 시작했을 때는 ‘이거 언제 끝나나’ 싶다가 빠져들기 시작하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가 되는 것? 또 책을 영화에 비교하고, 클래식 피아노 음악을 가사가 있는 팝 음악에 비교해 본다면요. 후자에 비해 상상의 여지를 훨씬 많이 열어준다는 것도 비슷한 점일 듯 해요. 다른 점은 독서는 중간중간 끊어 가며 할 수 있지만 음악회에 오신 분들은 아쉽게도 중간에 한번 나가면 끝이라는 것?
요즘 주로 듣고 있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가 궁금해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근 일주일간 들은 음악이 전혀 없네요. 요 몇 달간 연주가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저도 안 들을 수 있을 땐 안 듣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이강숙 교수님이 집필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읽어보셨을 텐데요. 독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정말 솔직히 말하면, 몇 번 시도했는데 제대로 못 읽었어요. 너무 민망해서요. 총장님의 다른 글들은 좋아하는 것이 참 많은데 그 책만은 못 읽겠더라고요. 지금쯤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의 제가 열여섯이었는데 이제는 스물아홉이 되었고, 아주 많은 것이 변했으니까요.
정말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요. 한 달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나요?
서예하고 춤을 배워보고 싶어요. 꾸준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한 번도 시도를 못해봤어요.
만약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 자유에 재주도 포함된다면, 그러니까 제가 만약 재주가 있다면 몸으로 사는 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를 테면 운동선수나 무용수? 사실 음악도 ‘반 체능’ 이기는 해요. 그런데 피아노라는 악기의 특성도 그렇고 저의 성향도 그렇고, 저는 아무래도 현상을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모든 과정에서 몸보단 머리가 먼저 반응하는 편이예요.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삶은 어떨까? 그에 대한 동경이 무지 커요. 또 확실한 잣대에 의해서 평가 받고 눈에 보이는 수치를 매기는 게 가능한 그런 사회는 왠지 그 속이 되게 건강할 것 같다는 환상이 있어요. 물론 제가 그 실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하지만 몸이 너무 힘들 것 같긴 해요. 전 아마 못하겠죠? (웃음)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손열음 저 | 중앙북스(books)
손열음의 이번 책은 타 클래식 입문서와는 다른 세 가지의 차별점이 있다. 첫째, 클래식 매니아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우면서도 밀도 높은 글이라는 점. 둘째, 청중의 눈을 포함해서 연주자의 눈으로 음악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들이 평소 궁금해했던 비밀스러운 영역인 ‘연주자의 삶‘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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