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 도보여행가 황안나 “제 인생 후반전은 걷기로 시작됐어요”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황안나
올해로 일흔여섯. 그녀는 사천 킬로미터가 넘는 해안길을 두 번이나 걸었다. 일흔다섯에 여덟 번째 지리산 화대종주를 해냈다. 산티아고 순례길, 네팔 히말라야 등지를 다녀왔지만 아직도 갈 곳이 너무나 많다.
65세에 800km 국토종단, 67세에 4,200km 국내 해안일주, 산티아고, 네팔, 홍콩, 몽골, 동티베트, 아이슬란드, 시칠리아 등 50개국 여행, 75세에 여덟 번째 지리산 화대종주 완주.
이 압도적인 기록의 주인공은 그러나 소녀 같은 미소와 차분함, 매순간 작은 것에 감동 받는 높은 감수성의 소유자다. 그녀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눈물 나게 아름답다. 책 읽기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남편은 절대로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많이 살고 싶어요.”라고.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저자 황안나는 쉰여덟의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다. ‘나를 찾기 위해서’ 내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열정 넘치는 도보여행가의 탄생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했지만 늦은 일이란 없었다.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사진도 배웠고, 체력도 훨씬 좋아졌고, 어렸을 때 꿈이던 작가의 꿈도 이뤘다. 길이 그녀에게 건넨 수많은 선물들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매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삶을 막아서던 혹독한 시련과 뜨거운 욕망을 묵묵히 견뎌내지 못했다면 일상의 고마움을, 저 들꽃 한 송이의 고마움을 알 수 있었을까. 숱한 시간을 견디며 조금씩 삭혀온 늙은 가슴속엔 잔잔한 평화가 깃들었다. (177~178쪽)
사람들이 도전을 망설이는 것은 상상 탓일지도 모르겠다. 해보지 않은 것은 어렵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러나 일단 한 걸음 내딛으면 도전은 더 이상 근접 불가의 영역이 아니게 된다. 내 생활 안으로 들어온 단단한 현실일 뿐. 도전 앞에서 저자 황안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네 번째 책이다. 저자는‘책이 부끄러워요!’하며 수줍게 웃었다. 책으로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 그저 매일의 단상을 블로그에 끼적인 글들이라 누가 책을 샀다고 하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하며 가만히 웃었다. 그 웃음이 가을하늘처럼 맑고 청명해서 가슴이 시원하고 또 훈훈해졌다. 열정이 가득한, 청년 못지않게 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도보여행가 황안나.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순간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매일 새벽 5시 40분에 헬스장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어요. 오늘도 운동하고 오셨어요? 게을러지고 싶으실 때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14년째 다니고 있어요. 새벽 6시 정각부터 두 시간동안 해요. 특별한 일 있을 때는 운동량을 좀 줄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저더러 ‘오래 살려고 운동하느냐?’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다른 이들처럼 다이어트 하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 백 세 시대라고 하는데 사는 날까지는 제 힘으로 움직이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운동은 꼭 해요. 지난 1일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갔다 왔는데 동행했던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역시 나이 앞에 장사가 없군요.’라고요. 전에는 매일 선두에서 날아다녔어요. 칠십대 초반까지도 훌훌 날아다녀서 늘 선두에 섰는데요. 올해는 일흔여섯이 됐잖아요. 이번에는 중간 그룹 뒤쪽에서 갔어요. 이렇게 서서히 힘이 빠지는 거죠. 그래도 다니면서 ‘내가 일흔다섯까지는 다니겠지.’ 했는데 어쨌든 일흔여섯에도 시작은 했어요.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어딜 가든 여기가 이번에 온 게 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다녀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눈물 나게 아름다워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배로 더 감동이 오죠.
풍경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야생화 같은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자연, 풍광, 이런 것들이 선생님께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사람들은 제가 풍경에 감탄사를 너무 남발하니까 주책 할머니로 보일 텐데요. 감동이에요. 어딜 가든 말이죠. 전에는 사진도 아름다운 것만 찍었는데 지금은 눈밭에 앉은 새 한 마리 같은 것도 눈물 나게 다가와요. 그러니까 그런 걸 많이 찍게 되죠. 다른 사람들은 경치 좋은 거 찍을 때 나는 삭아가는 나뭇잎이라든지 하는 것들이요. 보는 것, 듣는 것마다 정말 소중해요. 순간순간이 정말 소중한 거예요. 어떤 분들은 농담처럼 소녀 같다고 하는데 좋게 말해서 그렇지 주책이겠죠. 너무 심하게 감동 받으니까요(웃음). 남들이 우리보고 닭살 부부라고 하는데요. 젊은이들이 보는 그런 기준의 닭살 부부가 아니라요. 함께 고생도 많이 했고, 함께 이 나이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함께할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어딜 가든 손잡고 다니는 거예요.
애칭이라는 ‘오볍씨’를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됐습니다. 요즘은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즐겁고 건강한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며칠 전에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여보, 나도 책을 한 권 내야겠어.”라고요. 웃지도 않고 워드도 안하는 사람이 뜬금없이 책을 낸다니 의아해서 바라봤더니 “내가 제목을 다 정했어.”그래요. 제목이 뭐냐고 물으니까 “여보 어디가?”래요(웃음). 그래서 한참 웃었죠. 한참을 웃다 보니 그 다음에는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늙은 남편을 집에다 혼자 두고 얼마나 내가 많이 다녔는지 말이에요. 저는 거의 30년 가까이 절대빈곤으로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60살을 코앞에 두고 나니 그동안 살면서 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 속에 한이 너무 많이 서렸던 거예요. 아마 그대로 노년을 맞았으면 한이 너무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길 위에서 다 풀어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즐겁게 사는 거예요. 해안길 4,000km가 넘는 길을 사 개월 걸려서 걸었거든요. 두 번을 그랬어요. 예순일곱 살에 한 번 걸었고 일흔셋에는 되나 안 되나 궁금해서 걸었죠. 궁금한 건 해봐야 하잖아요. 나는 길을 걸으면서 다 풀었어요. 다 풀고 나니 삶이 정말 즐거운 거예요. 한풀이로 길을 걷다 보니 이제는 길중독이 돼서 걸핏하면 배낭 메고 나서거든요. 게다가 최근 몇 년은 방송, 강연, 결혼 주례, 인터뷰 같은 것들로 계속 나갔어요. 그러니까 우리 남편이 아침에 눈 뜨면 ‘여보 오늘은 어디가?’하더니 글쎄 ‘여보 어디가’로 책을 내겠대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 얘기를 하니까 전부 뒤집어지게 웃어요. 그래서 올해는 일을 좀 정리하고 남편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생각이에요. 영화도 보러 다니고 하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또 생겨요(웃음). 근데 어떻게 다 욕심을 내겠어요.
50대 후반 쯤 되면 부부지간에도 그냥 소 닭 보듯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강연 가면 아무리 의(義)가 좋은 부부라도 때로는 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함께도 해야 하지만 따로도 있어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장기 도보여행을 하면서 혼자 모든 걸 해야 하니까 연애 시절처럼 애틋하게 남편이 보고 싶고, 남편의 좋았던 점이 떠오르면서 ‘내 남편이 참 괜찮은 남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사무치게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다른 부부들보다는 각별하게 지내는가 봐요. 집에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남편에게 삼시 따끈따끈한 밥 해줘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건 해주려고 노력해요. 근데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렇게 다니면서 어떻게 다 하냐고요.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일을 참 많이 해요. 저는 그렇게 살아요.
행복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
‘행복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어요. 선생님이야말로 누구보다 삶이 주는 기쁨을 감사하게 누릴 줄 아는 분 같습니다. 긍정적인 태도가 선생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나요?
나는 오래 살고 싶진 않아요. 많이 살고 싶어요. 저는 다른 사람의 하루보다 활동 시간이 많아요. 한 달에 책을 열 권 이상 보거든요. 영화도 한 달에 네 편에서 다섯 편 가량 봐요. 요즘은 블로그를 좀 게을리 하지만 야후 블로그 때는 많이 들어오면 이삼만 명, 제일 안 들어오면 칠팔천 명은 들어왔어요. 초등학생부터 70, 80대 노인까지 다양하게요. 야후 하면서 해외에 사시는 교수님들 그런 분들을 많이 사귀어서 초등학교 선생 출신 할머니가 사귀고 지내는 분들이 참 많아요. 대학생 친구도 많고요. 주로 내가 가서 밥 사줘야 해요(웃음). 걔네들이 사회 나와서 결혼한다고 해서 주례도 섰고요. 남들보다 많이 사는 거 맞죠?
맨 처음 나간 책에 쓴 말이 ‘행복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동대문 달동네 살 때예요. 사글세방인데 부엌도 없는 문간방이었어요. 연탄아궁이 하나 있었어요. 거기에 사과 궤짝 하나 놓고 스텐 공기 네 개 놓고 살았죠. 그래도 양은 주전자에 물 끓여 스텐 공기에 커피를 타고 냉방이다시피 한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앉아 있으면 행복했어요. 근데 안채에 세 들어 사는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서 나를 보고 이러는 거예요. ‘우리 딸이 사위가 돈 못 벌어온다고 싸워서 내가 애기 엄마 얘기를 했다. 그렇게 사는 여자도 있는데 뭘 그러냐.’고요. 처음에는 기분 더럽더라고요. 나를 보고 이렇게 사는 여자도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요, 사실 그때 나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어요. 희망이 있으니까요. 이불 둘러쓰고 앉아 깨진 라디오를 들으면서 ‘참 좋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그런 말이 나온 거예요. 행복이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이라고요. 엄청 많이 가진 친구가 나만큼 안 행복하더라고요. 저는 긍정적으로 살았어요. 퇴근길에 떨이 장미를 사서 소주병에 꼽기도 하고요. 연탄도 한꺼번에 들여놓질 못해서 새끼줄에 몇 개 구해서 살 때인데도 괜찮았어요. 하도 밝게 사니까 친구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제가 좀 나사가 빠진 줄 알았대요. 그러고도 실실대고 웃었으니까요.
‘걷기가 성격도 변화시켰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아주 내성적이에요. 노래방을 죽어도 안 가요. 음치도 아니고, 음악 시간에 애들 음악 지도도 하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노래는 죽어도 안 부르려고 그래요. 그런 성격이에요. 체육 시간도 싫어했어요.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뜀틀 넘는데 실수를 해서 아이들이 웃으면 어떡하나 고민하는 이런 성격이에요. 그런데 걸으면서 아주 활달해졌어요. 아마 하느님께서 제 그런 성격을 고쳐주시느라고 그런 시련을 주셨나 봐요. 공부를 좀 잘했으니까 공부 못하는 친구들 좀 깔봤어요. 잘난 척을 좀 했고요. 그런데 그런 게 전부 없어지고 모난 성격, 까다로운 성격도 좀 둥그러지고요. 인내심도 생겼고요. 많이 변했죠.
식성도 그래요. 김치하고 밥 외에는 먹는 게 없었어요. 절대빈곤으로 오래 살다보니까 신김치만 밤낮 먹고 살잖아요. 30년 가까이 그러니까 뷔페에 가서도 저는 김치 먹었어요. 근데 길을 걷다 보니까 달라졌어요. 4개월 씩 해안일주 걸을 때인데요. 비수기의 바닷가는 슈퍼도 문을 닫았어요. 피서철, 봄에서 가을까지만 하고 음식점도 닫아놓은 데가 많아서 고생을 많이 했죠. 굶다가 식당에 들어가면, 게다가 혼자 들어가면 혼자라 싫어하지만 아무거나 편한 거 달라고 했어요. 라면을 안 먹었는데 걸으면서 라면도 먹고요. 그러니까 성격, 식성이 걸으면서 다 바뀐 거죠.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 계속 선생님을 길에 오르게 하는 걸까요?
몸살 기운이 있어서 아프다가도 배낭만 메고 길 위에 서면 정말 자유스러운 거예요.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겨, 시간의 부림을 받고 살잖아요. 그런데 일단 길 위에 서면 그 시간들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요.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만 걷고 싶으면 그만 걷고 더 걷고 싶으면 더 걷고요. 오늘은 밥 먹기 싫다, 그냥 걷자 하면 안 먹어도 되고요. 시간을 내 마음대로 부리니까 그것 때문에 자유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또 나이 들어가니까 자연과의 만남이 정말 좋아요.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고 했던 걸 다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그래서 자꾸 나서게 돼요. 길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는 말이 오죽하면 있어요. 더군다나 혼자 길 걷는 건 말도 못하죠. 그래도 그런 자유스러움, 편안함이 좋아요.
나는 남달리 호기심이 많아요.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까?’ 이러니까 자꾸 나서서 걷게 돼요. 세상이 얼마나 무서워요?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해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길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에게서 또 많이 배웠고요. 부끄러웠고요. 그러니 자꾸 나서게 돼요.
그렇게 다닐 수 있는 것도 가족의 응원이 있으니 가능할 것 같아요.
자다가 남편 등이 만져지잖아요?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문득, 우리 남편이 건강이 많이 약해져서 함께 할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르지만 남편 떠나고 나서 한밤중에 아무것도 안 잡혀질 때를 생각하게 됐어요. 슬픔을 가불해서 엊저녁에는 좀 질금댔어요. ‘여보 당신 아프지 말고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줘야 돼.’했어요. 자다가도 어떤 때는 괜히 잠자는 남편 손을 끌어다가 만지기도 해요. 그게 닭살 차원으로 보고 웃을 얘기가 아니라, 혼자 남을 날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는데요. 남편 가고 나서 만약에 그때까지도 체력이 있다 해도 남편 없는 빈집에 들어올 자신이 없어서 나는 못 걷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아니면 길을 떠났더라도 집에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마냥 걸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요즘 슬픔을 가불한다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남편한테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방 수그러들고 남편 다독이게 돼요. 어제는 피곤해서 제가 오후 네 시쯤 잠이 들었어요.
소파에서 책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자다보니까 남편이 이불 갖다 덮어주고, 작은 난로 인형을 데워서 이불 속에 넣어줬더라고요. 그런 하나하나가 눈물겨운 거예요. 언젠가 나 혼자 남았을 때 그런 거 해줄 남편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요. 다른 할머니들이 이상하다고 해요. 할머니의 오복이라고 하잖아요. 건강할 것, 돈이 있을 것, 딸이 있을 것, 친구가 있을 것, 남편이 없을 것(웃음). 근데 난 절대로 아니에요. 난 남편이 있어야 해요. 아파서 누워있어도 있어야 돼요. 누워있는 남편이라도 얘기할 상대가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죽는 날까지 남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친구들이 닭살이라고 하거든요. 아마 내가 안 걷고 그냥 살았으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는 원망의 마음 같은 게 남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진짜 고마워요. 그만큼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니까 무슨 한이 있겠어요. 아내가 나가서 도보여행을 하고 올 테니까 4개월 동안 혼자 밥 해먹고 빨래하고 있어라 하면 어느 남편이 좋아하겠어요. 걸을 때 진도에서 만났던 어떤 할아버지는 나한테 삿대질을 막 하면서 야단치더라고요. 시퍼렇게 화를 내면서 우리 마누라 같으면 난 당장 이혼이라고 해요. 내가 강연에서 회사원들에게 오늘 저녁 집에 가서 부인들이 4개월 동안 나가있겠다고 하면 허락할지 생각해 보라고 하면 전부 나가 자빠져요. 손을 흔들면서요. 근데 우리 남편은 걱정하지 말고 두 번 씩이나 갔다 오라고 해줬어요. 그뿐이에요? 스페인 산티아고 갔을 때는 70일이나 있었어요.참 고맙죠.
지치고 힘들 때도 있으실 텐데 정말 대단하네요.
일흔여섯 살짜리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눈길을 올라가는데 칼바람이 불어서 목덜미가 얼더라고요. 그래도 찬바람에 두 뺨이 빨갛게 상기가 되고 코끝에 칼바람이 들어오는 게 정말 상쾌했어요. 재작년 겨울에 홍천강을 걷는데 너무 추우니까 강이 얼어서 얼음장이 쩡쩡 갈라지는 소리가 나요. 그날은 늦어서 밤까지 걸었어요. 달밤에 강물 언 얼음이 쩡쩡 갈라지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남들은 추워서 못 간다고 하는데 저는 비오는 날 등산도 진짜 좋아해요.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도 상쾌하게 들려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로 다녀요. 어떤 때는 사과 넣어간 게 얼어서 이가 안 들어갈 정도로 그렇게 추울 때도 걸었어요.
지금이야 나이만큼 아프죠. 일흔여섯에 아무 데도 안 아프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요. 비명소리 지를 만큼 아프지 않는 것뿐이지 기분 나쁘게 아파요. 근데 나오면 진짜 즐거워서 잊어버려요. 사람들은 내가 무슨 철인인줄 알지만 아픈데도 불구하고 나오는 거죠. 확실히 걷기 이후로 지금까지 감기 한 번을 안 앓았어요. 현직에 있을 때는 여름에도 감기를 앓았는데 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걷기 전도사가 됐어요. 저처럼 건강한 할머니도 없죠.
2년 전 KBS 생로병사의 비밀 특집에 나갔거든요. 종합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신체 나이가 48세라고 나왔어요(웃음). 물론 저도 척추가 다른 노인들처럼 안 좋아서 재작년에 척추 수술을 받았어요. 근데 의사가 그 다음날로 병원 복도를 아무것도 안 짚고 걸어 다니니까 막 혼내더라고요. 처음 봤대요. 오죽하면 간병인이 할 일이 없어서 한 번도 나를 부축한 일이 없어요. 그게 다 걷기 덕이죠. 근육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다리가 단단해요. 그러니까 수술을 해도 근육이 감싸고 있으니까 지탱을 한 거죠. 퇴원해서 40일은 안정하라고 그랬는데 퇴원해서 20일 만에 박범신 문화여행을 따라갔어요. 그게 다 걷기가 준 선물이에요. 걷다가 보니까 건강해지고 성격 변하고 인생관 달라지고 그랬어요. 스트레스 받는 게 없어요. 전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니까요.
인생 후반전은 걷기로 시작
걷기를 시작할 때 이런 삶을 상상하셨어요?
나는 교사될 생각은 없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서점에 가면 내가 대학교를 가서 작가가 되고 내 이름 적인 책을 여기 꽂아야지 생각했어요. 십 대 때 내 꿈이 그거였거든요. 근데 아버지 철도 공무원 월급으로 동생들이 다섯이나 있으니까 교사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 쓰러지시고는 동생 다섯을 학비를 댔어요. 그렇게 살았죠.
그런데 내가 등단 작가는 못 됐지만 십 대 때 꿈을 예순다섯 살에 이뤘어요. 서점에 가서 내 책을 봤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 책을 세 권이나 들고 계산대로 가요. 쫓아가서 내가 돈 내고 싶더라고요(웃음). 인생 65년 만에 자신에게 감동 받아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딸 노릇, 어미 노릇, 언니 노릇, 누나 노릇 하느라 내가 없었잖아요. 그러다가 65세에 서울 대형서점에 내 책이 매대에 쌓여 있는 걸 봤을 때, 그때처럼 나 자신에게 감동한 날이 없어요. 주부들 만나면 가족이나 부모, 형제들에게 소홀히 하라는 게 아니라 다만 올인하지 마라, 나에게도 시간을 투자해라, 내 책상이 없으면 어떠냐, 그렇게 말해요. 나는 부뚜막에 앉아서도 책 봤어요. 나중엔 책도 못 사겠으니까 종로 서적에 들러 계단에 앉아서 『토지』를 다 봤어요. 그런데 글쎄 예순다섯 살에 서점에서 내 책을 보았으니 정말 엄청나게 감동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네 권 째 나온 책이네요.
모든 게 걸었으니까 얻게 된 거잖아요. 나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된 건 정말 걷기예요. 삶 자체가 바뀌니까 책을 낼 만큼 할 얘기도 많았고요. 어느 날 보니까 내 이름 앞에 ‘도보여행가’라고 붙더라고요. 처음엔 아주 민망했지만요. 제 인생 후반전은 걷기로 시작됐어요.
느린 걸음으로나마 나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무엇이든 겁먹지 않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일흔다섯 할머니도 화대종주를 해낼 수 있다는 걸 보고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111쪽)
도전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시작이 반이라고도 하는데, ‘시작’에 도움이 될 만한 선생님만의 비법이 있나요?
얼마 전에 번지점프를 다 했다니까요. ‘남들은 다 하는데 내가 뭐가 어때서 못해? 정 무서우면 설마 죽겠어?’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나를 극한 상황에 올려놓는 걸 해보려고 해요. 그러니까 100km를 잠 안 자고 밤새도록 걷는 거예요.
미쳤죠. 잠 안자고 250리를 걷는 거예요. 그걸 두 번을 했어요. 한 번은 스물두 시간 만에 들어가고 한 번은 열아홉 시간 만에 들어갔어요. 그것도 미친 짓이잖아요. 그런데 남들이 모두 못한다고 하면요, 나는 꼭 성공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못하지, 그만 둬야지.’ 그게 아니라 ‘어디까지 가서 못하게 되나 보자.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요. 50km가 넘어서니까 어쩌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요. 나중에는 뭐 감각이 없어요. 그냥 왼발이 나가면 오른발이 나가는 식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걸은 거예요. 음식점에 들어가는데 계단에 발이 안 올라가요. 그만큼 아주 진을 다 빼고 걸은 거죠. 그때도 제가 최고령이었어요. 매스컴들이 전부 난리 났었죠(웃음). 나 자신에 대한 오기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늙었으니까 이제 그런 짓 하지 말아야지 생각해요. 남들이 볼 때는 이걸 도전으로 보는 게 아니라 노욕으로 볼 거예요.
보길도, 고려산, 굴업도, 화암사처럼 잘 몰랐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훌륭한 국내 여행지가 많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으세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혹은 SNS에서 보고 메모를 해요. 누가 어디 간다고 하면 그걸 보고 메모를 해요. 2월에는 지심도, 두미도를 가려고요. 지심도는 2월에 가면 섬 전체가 동백이에요. 섬도 자그마해서 한 바퀴 돌아보는데 두 시간 밖에 안 걸린대요. 근데 거기를 여태 못 갔네요.
아들, 며느리가 함께 여행 책을 많이 냈어요. 서로 정보 제공을 해요. 지난여름에 시칠리아를 다녀왔는데요, 아들, 며느리가 출판사와 협찬을 받아서 유럽 여행 중에 이태리를 간다고 하면서 시칠리아를 안 간다는 거예요. ‘거기 시칠리아 무슨 해변은 빼놓으면 안 돼.’ 그렇게 제가 말해서 거길 다녀왔죠. 아들은 내가 구례에 왔다 하면 ‘엄마 구례를 가셨으면 사성암을 가보세요.’라고 하고요. 저는 또 ‘전봉산을 갔더니 곰배령에 야생화가 한참 폈다. 해 넘어갈 때 찍어야 야생화 색이 아름답다.’ 알려주고 그래요.
자가용을 이용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여행의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하물며 도보여행은 어떨까요. 도보로 해안길 4,200km를 걸으셨는데 도보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기차나 비행기나 승용차 타고 하는 여행도 정말 많이 다녔죠. 남편하고도 많이 다녔고요. 승용차를 타고 동해안 역시 수십 번을 다녔어요. 그런데 이걸 내 발로 걸었죠. 최대한 바닷가로만 걸었어요. 군사 지역이나 절벽이 가로 막혔거나 이러면 할 수 없이 국도로 나가서 걸었지만 말이에요. 걸으니까 놓친 것들을 많이 봤어요. 차로 다니면 유명한 곳, 이름난 곳만 보게 되잖아요. 길가에 꽃 한 송이 피어 있는 것, 이런 건 걸어야 봐요. 그래서 요즘은 도보 여행을 많이 해요.
제가 전적으로 공감 했는데요 니체도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걷기를 시작하면 사색도 흐르기 시작한다.’멈췄던 사색도 흐르기 시작한다고 했어요. 저는 길은 스승이라는 말도 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갈등이잖아요. 선택의 연속이죠. 산다는 게 견디는 거니까요. 저는 부부싸움을 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부평 공원이라도 걸어요.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이렇게 걷다 보면 자연히 생각도 하게 되잖아요. 화가 나서 나갔지만 ‘내가 이렇게 했으면 싸움이 안 됐을 텐데 나도 잘못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요. 원고가 전혀 안 써질 때도 나가서 걷다 보면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요. 해답이 생겨요. 일거양득이에요. 생각도 정리가 되고 건강에도 좋고요.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기억나는 책 추천해주세요.
밤을 꼬박 새워서 책 읽는 건 십 대, 이십 대가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밤 꼬박 새워 책 읽는 것도 많이 해요. 저녁 밥 먹고 나서 읽기 시작해서 책장 딱 덮고 나면 다섯 시가 돼요. 그럼 우리 영감 아침밥을 해줘야 하고 나는 헬스장 가고 그래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밤 꼴딱 새워서 봤어요. 재미있어요. 그 작가 요나손이 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그것도 봤죠. 요즘은 종교, 철학, 인문 골고루 다 봐요. 강신주, 고미숙 작가도 좋았고요. 『책은 도끼다』 박웅현 그 분 책도 다 사서 봤고요.
곧 이사를 가요. 이제는 다 버리고 가야 하잖아요. 제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방에 문 여는 곳만 빼고 사면을 꼭대기부터 방바닥에 이르기까지 책장을 짜 맞췄어요.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방에는 인문학 책만 다 있고요. 근데 어느 날 우리 아들, 며느리가 오더니 책을 다 보관하래요. 걔네가 은퇴 후에 지리산 어디쯤, 하동이나 함양이나 이쪽 가서 살겠대요. 그곳에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책사랑방 같은 것, 쉼터 같은 걸 제공하고 싶다고 책을 모아두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정리를 못하고 책을 끌고 가려니 짐이 엄청 많아졌어요. 요즘은 너무 바쁘다 보니까 안 읽은 책이 있어요. 제가 책에도 썼지만 적독(積讀), 사놓고 쌓아만 놓고 못 읽는 책들인데요. 그것만 봐도 흐뭇해요. 제가 예스24에 돈 진짜 많이 들였어요(웃음).
‘사전장례의향서’(184쪽) 기록해 두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용 또한 검소하고 간결한 것을 원하셨어요.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있겠지만 흔하게 작성하는 게 아닌데요.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만약에 비석을 세운다면 비문을 뭐라고 쓸 거냐고요. 화장할 건데 비석을 무엇하러 세워요. 그렇지만 만약에 그러면 뭐라고 할 거냐고 하기에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어요. ‘이만하면 됐다’(웃음).
화장할 건데 왜 관을 비싼 걸 하고 수의는 또 몇 백만 원짜리 수의를 하나요. 모두 태울 거잖아요. 내가 친구들 보다 먼저 죽을지 나중에 죽을지 몰라요. 하지만 벌써 내 친구들이 힘들어서 못 다녀요.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칠십은 칠십이야. 못 다녀요, 내 친구들이.
내가 생각하는 젊음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에 있다. 이십 대라도 꿈과 열정이 없다면 노인과 다름없지만, 육십 대라도 열정을 가지고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살아간다면 굳이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거론할 것도 없이 분명한 청춘이다. (9쪽)
‘젊음은 살아가는 자세에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청춘이세요. 하지만 우리 시대 젊은이들은 점점 더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손녀에 대한 안타까움도 쓰셨는데, 그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전해주세요.
사회적인 책임도 너무 많아요. 요즘 젊은이들의 목표가 정규직이 됐잖아요. 젊은이들이 꿈이 없는 거예요. 손녀딸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데 취직부터 머릿속에 있어가지고는 힘들어해요. 더군다나 고민이 더 많겠죠. 조소과거든요. 취업하기가 진짜 힘든 거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요즘은 연애도, 미팅도 못한대요. 돈이 없어서요.
나아가서 결혼도 안하고, 애도 못 낳고 그러다 보니까 40대만 돼도 얼굴에 어떤 활기라든지 그런 게 없어요. 다 지친 모습들로 40대에 벌써 시들었어요. 제일 걱정은 꿈이 없는 젊은이들이에요. 늙었어도 꿈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그걸 하느라 움직이게 되는데요. 손자가 대학을 어디가야 좋을지 아주 낙심천만이 돼서 웃지도 않고 어깨가 축 늘어져서 그러는데 하나마나한 얘기겠지만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줬어요. 흔해 빠진 얘기라 도움은 안 되겠죠. 그래도 오죽하면 그래요. 왜 취직에 네 인생을 매다냐, 즐겁게 하다보면 길이 보인다고요. 어학연수를 가잖아요? 근데 나는 좀 다른 얘기를 했어요. 나가는 목적을 순전히 어학연수에다가만 두지 말고 너는 이태리나 유럽 쪽을 가서 건축물이나 조각물 관광을 하고 다녀라, 그런 것을 좀 보고 안목을 높여라 하고요. 어학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해외 유학 가는 목표를 어학연수에만 두지 말라는 얘기를 해요. 그렇지만 사실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하기도 미안해요.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요. 할머니인 나도 꿈이 있으니까 밥을 굶을 적에도 빵 하나, 물 한 병 들고 운동화 신고 산에 다닌 거예요.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되잖아요. 앞날이 무궁무진하게 창창한 젊은이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무런 꿈도 없이 사는 걸 보면 참 안타까워요. 젊은이들이 연애도 하고 젊음을 좀 즐겨야 되는데 말이에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거 하라는 거, 꿈을 가지라는 거, 아주 흔한 얘기죠. 그런 말하기도 미안해요. 무슨 꿈을 어떻게 가져요, 우리 현실이 힘든걸요. 그저 안됐기만 하죠. 요즘 젊은이들한테 감히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힘내라고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 줄까? 할 말이 없어요. 팔자 좋은 할머니가 참 꿈같은 얘기를 한다, 이럴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여튼 인생을 좀 멀리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 번 뿐인 삶인데 어떻게 그렇게 삭막하게 살다가 인생을 마쳐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죠. 근데 어려운 얘기예요. 젊은이들한테 한 말씀 해주세요, 난 그게 제일 힘들어요. 정말 가엾어요.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황안나 저 | 예담
우주나이에 지지 않고 용감하게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가 지난 17년간 걸어온 ‘두 번째 인생’ 이야기를 담아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이 책에는 지난날의 추억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과 세계 각지를 걸어서 여행한 이야기 등 그녀만의 유쾌한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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