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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이어 인혁당 그린 권여선 소설가

『토우의 집』, 『처녀 치마』 권여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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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권여선의 새로운 장편 『토우의 집』이 나왔다. 전작 『레가토』에서 1980년 광주를 다룬 작가는 이번에도 국가폭력을 썼다. 다만 표현 방식은 다른데, 전작 『레가토』가 정공법이었다면 이번에는 주제로 다가가기 위해 동심으로 우회한다.

소설 대부분이 세상과의 갈등을 그린다. 권여선 소설가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녀가 그리는 갈등은 스케일이 크다는 사실이다.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존재하지만, 권여선 작가는 국가 폭력과 인간이 어긋나는 지점을 묘사해왔다. 장편소설 『레가토』가 그랬다. 이 작품에서는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서 무장해제되어가는 인간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2014년 11월에 출판된 『토우의 집』도 소재는 국가폭력이다. 전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레가토』에서 1980년 광주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했다면, 『토우의 집』에서는 역사적 사건이 배경으로 은은하게 깔린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사전 지식이 없다면 『토우의 집』이 어떤 역사적 사건을 쓰고 있는지도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모를 독자가 꽤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원과 은철은 삼벌레고개에 산다. 고개로 난 산복도로 근처에 사는 사람은 주로 서민들. 세상물정에 아직은 밝지 않은 아이들은 마을 사람을 관찰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고도성장기의 변두리를 정겹게 묘사하는 듯하던 소설은 원의 아버지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돌면서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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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은 어린 아이가 당하는 비극적인 이야기

 

『토우의 집』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바쁜 일 없이 조용하게 지냈는데, 책이 나왔으니 사인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외출할 일도 생기네요.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웃음)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인터뷰도 나오시기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아니요. 사람 만나는 건 좋아하는데, 인터뷰나 강의처럼 공식적으로 만나는 걸 안 좋아할 뿐이에요. 술자리나 식사자리에서 만나서 얘기 나누고 상대의 매력을 만끽하는, 그런 사적이고 편안한 자리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채널예스의 인터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소설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레가토』에 이어 『토우의 집』도 국가폭력을 다루셨습니다.

 

80년 광주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가 대학 1학년 때였는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작가가 된 다음에 언젠가는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엄두가 안 나서 미뤄오다 몇 년 전에 『레가토』라는 장편에 썼어요. 2차 인혁당 사건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놀라웠죠. 언젠가 써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떻게 써야 될지 모양새가 잘 나와주지 않아서 고민을 오래 했죠. 『레가토』에서는 광주를 성인, 그것도 지식인의 입장에서 정면으로 다뤘는데, 인혁당 사건도 그렇게 쓸까 하다가 그러면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편적 호소력이 부족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사건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한 가족, 구체적으로는 한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중심에 놓고 쓰게 됐죠. 『토우의 집』은 가족 중에서도 특히 어린 아이들이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토우의 집』이 나온 시기가 미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교롭다는 생각은 했어요.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 때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그 딸이 대통령이 되었죠. 그런데 그때 희생된 가족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르잖아요. 소설을 쓰다 보니까 자꾸 현재의 시점으로 넘어오고 싶은 욕망이 강했습니다. 프롤로그나 에필로그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는 모습을 보는 은철의 가족 얘기를 넣어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뺐어요. 제가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 난데없이 불운이 닥쳐온다는 것에서 개개인이 얼마나 크나큰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하나 공교로운 것은 작년에 벌어졌던 세월호 역시 사람들이 난데없이 가족을 잃게 된 사건이었다는 점이죠.

 

『레가토』 주인공이 성인이라면, 『토우의 집』에는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레가토』도 그렇고, 이전에 썼던 운동권 소설에서 주인공은 주로 학생이나 지식인이었고, 지식인이 아니라도 성인이긴 했어요. 성인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데, 아이들은 다르죠. 아무 죄도 없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아이가 당하는 고통이 훨씬 더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금도 어떻게 써야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그런 소설이 가능한가 고민을 많이 합니다. 중요한 화두죠.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는 사람이라는 사실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깔린 배경이 정치사회적인 사건입니다. 동시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토우가 되지 않아야겠죠.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절대 권력이 행하는 공포 앞에서는 곧바로 굳어버리고, 진흙 인형처럼 변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듬거나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해요. 토우는 자기 안위만 염려하고 자기 가족만 챙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 경직된 인간상태에 대한 알레고리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모두 토우가 되지 말아야 하는 거죠. 진시황 무덤 속의 그 많은 토우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들은 백성을 자기 무덤의 부장품처럼, 진흙 인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기계적인 사물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다운 게 뭔가에 대한 답은 없겠지만,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녁 내내 순분은 자꾸 새댁이 아니라 새댁 남편 생각이 났다.  -『토우의 집』 p. 323

 

소설집 『처녀 치마』가 다시 나왔습니다. 이 단편집의 의미는?

 

첫 단편집이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었죠. 그리고 제일 아픈 손가락이기도 해요. 『푸르른 틈새』라는 장편으로 서른두 살에 등단했을 때, 저는 소설에 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단편 쓰는 법을 몰랐죠. 등단작이 처음 쓴 장편인데, 일기 쓰듯 쓰다 엉겁결에 당선됐거든요. 등단 직후에는 제법 청탁이 들어왔는데, 단편을 너무 못 쓰니까 1년 반 정도 지나서 청탁이 끊겼습니다. 그렇게 8년 이상을 잊힌 작가로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룸(지금의 ‘자음과모음’)에서 단편집을 내자고 연락이 왔길래 깜짝 놀랐어요. 잊힌 작가의 작품을 왜 내나 싶었죠. 아무튼 내자니까 내기로 하고, 단편을 추려보니 1권 분량이 되어서 그걸 마흔 살에 냈어요.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뺀 작품도 있긴 했지만, 묶는다는 데 의의가 있었죠. 단편집이 나오고 나니까, 누군가가 단편집을 읽고 청탁을 했어요. 8년 넘게 안 쓰다 다시 쓰니까 굉장히 떨렸어요. 그런데 떨면서도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 했구나,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쓴 작품이 「분홍 리본의 시절」이죠. 그때는 이 작품이 내 생애의 마지막 단편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썼어요. 그런데 다음에 또 청탁이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그래서터 재등단한 모양이 되었어요.

 

『처녀 치마』라는 책을 내지 않았다면, 지금 완전히 잊힌 작가로 살고 있을 거예요. 내용과 별개로 이 책은 제게 의미가 큰 책인데, 이렇게 다시 나오니까 기분이 좋죠. 쓰다가 힘들 때가 있어요. 나이도 있고, 감도 떨어진 것 같고, 내가 봐도 내 문장이 너무 별로인 순간. 이럴 때는 ‘때려치울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분홍 리본의 시절」을 쓰던 때를 생각해요. 그땐 정말 소설을 쓰는 게 얼마나 좋은지, 계속 이렇게 쓸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때의 절박한 열망을 생각하면 다시 쓰게 되죠.

 

 

『레가토』를 쓰고 나서는 일단 강을 건넜다

 

첫 소설집의 <트라우마>에서도 그렇고 ‘운동권’이라는 장치가 나옵니다. 작가님의 작품에는 운동권이 첫 작품에서부터 근작까지 자주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작가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희 때는 많은 사람이 운동권 비슷했어요. 열심히 안 해도, 마음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는 광주 이후의 학번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이 있었죠. 대학에 와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내용과 너무 달라요. 광주사태는 폭도가 일으킨 사건이라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았고요. 이런 게 세상에 너무 많은 거죠. 젊은 나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가 안 되더라고요.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고, 그러면서도 뭘 하려면 무섭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갈등이 굉장히 많았어요. 후일담 소설들에도 자주 나오는 내용이지만, 정말 훌륭했던 선배들 중에 다치고 죽은 사람들도 많고요, 망가진 사람들도 많아요. 180도 변신해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속물이 된 사람들도 많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요. 이런 걸 보고 경험하니까, 소설을 쓸 때 자연히 그런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죠.

 

운동권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쪽에서는 왜 새로운 이야기를 못하고 다 끝난 이야기를 쓰느냐 하는 비판도 하고, 운동권 쪽 사람들은 또 아니 왜 그렇게 찌질한 이야기만 쓰느냐 하는 비판도 해요. 제 작품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면이 있죠. 그런데 제 눈에는 그런 것만 보이는데 어쩝니까? 『레가토』를 쓰고 나서는 일단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쓰더라도 예전처럼 쓰지는 않을 듯해요. 요즘은 지금 제 주변에 있는, 저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얘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레가토』를 쓰던 그 즈음에 저도 모르게 제가 진짜 소설가가 된 거 같아요. 자기 것만 들입다 파다가, 이제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들을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사람이 바뀌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글이 저를 많이 교정했죠. 저는 참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이라 하면, 구체적으로는 어떤 모습인가요?

 

겉으로 눈에 띄게 사악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속에서는 증오, 분노가 들끓는, 아주 오만하고 고약한 인간이 될 수도 있었거든요. 글을 쓰면서 덜 그렇게 된 거죠.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더 잘 쓰게 됩니다. 좋아하면 아 좋다 하고 마는데, 싫어하면 왜 싫지, 왜 이렇게 꼴보기 싫지, 자꾸 생각하게 되고, 부정적 감정에 계속 긁히고 자극이 되요. 그러면 저도 들여다보고 대상도 들여다보게 되죠. 그렇게 들여다보면 대상에게서 이해할 만한 사연을 발견하기도 하고, 저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이해나 납득을 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조금은 관용이 생기고.

 

작가님 작품에서 ‘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최근작인 『토우의 집』에서부터 첫 소설집인 『처녀 치마』에도 토가 등장하는데요. 이런 상징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몰랐는데, 언젠가 제 작품을 꼼꼼히 보는 어떤 평론가 선배가 그런 내용을 지적해서 ‘어, 그러네’ 했던 적이 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술을 좋아하고 많이 토해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뭔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면의 구토증과 연관이 있는 듯해요. 구토물만큼 혐오를 유발하는 게 없는데, 뭔가를 제어할 수 없는 자신, 표현되지 않고 소화되지 않고 역류하는 뭔가가 있어서 제가 자꾸 제 인물들을 토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작가님의 작품 전반이 늦가을 같은 스산한 분위기인데요. 작품 전반에 담는 정서가 다소 어두운 것 같습니다.

 

막 봄 같지는 않죠. 『토우의 의 초반 분위기는 봄인데, 그게 또 읽다보면 뒷부분과 대비되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실제 삶도 기쁜 일보다는 애잔하고 쓸쓸한 일이 많은 것처럼 제 소설도 밝고 명랑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적이라거나, 한 사람의 삶을 다룰 때 계속 비극적인 모습만 그린다고 볼 수는 없어요. 저는 한 인간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게 되는 순간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는 편인데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다 뜻하지 않은 일격이 올 때 사람이 석류처럼 툭 터져버리는 방식을 그리는 게 재미있어요. 저도 그럴 때가 많고요. 나는 누구였지? 이렇게 급진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스산한 늦가을에 가까운 분위기가 나지 않았나 싶네요.

 

문학이란 뜬구름 잡는 얘긴 지겨워. 문학이란 거 사실 유아 문화 아니니? 어른들이 누가 시를 읽고 소설을 읽어? (「12월 31일」 중에서)

 

『처녀 치마』에 수록된 「12월 31일」에 어른이 누가 시를 읽느냐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다소 거창하게 말해서, ‘문학의 종언’이라는 진단이 10여 년 전 작품에도 나와서 독자로서 읽기에 흥미로웠습니다. 사회적으로 지금 문학은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보시나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심해졌죠. 그때도 개탄스러웠는데, 지금 보기에는 그 시대가 황금시대로 보일 정도죠.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사람들이 다양한 걸 원하니까요. 많은 오락거리, 볼거리가 있는 시대에 문자를 읽는다는 게 쉽지 않겠죠. 각자 선택에 따라 다른데, 글을 읽고 얻는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독서 인구로 남을 거예요.

 

예전에는 작가들이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적인 문체를 자랑스러워했어요. 문학의 발전과 함께가는 소중한 미덕이기도 했고요. 요즘은 그걸로 충분한가, 그런 고민을 해요.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표현하고 싶은 스타일로 쓰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추는 문제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작가 쪽에서 좀더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면 독자 쪽에서도 소설을 좀더 읽어주지 않을까 그런 거죠.

 

활자로 사람 마음 흔드는 게 쉽지는 않아요. 드라마는 내용이 막장이라도 연기하는 사람이 울면, 저도 울거든요. 시각적으로 바로 오잖아요. 그런데 소설로 글로 사람을 울린다는 건 정말 힘들어요. 잠깐 눈물이 고이게 하는 것, 그 정도도 힘들거든요. 그런 면에서 글로 사람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그 흔들림은 더 잊을 수 없고 더 오래 가고 더 강력할 거라는 믿음은 있어요. 제가 워낙 극소수 마니아 독자만 있는 작가인데 이제 조금은 외연을 넓히려고 고민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스타일을 갖다 버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같이 가야죠. 『레가토』를 쓰고 제 글쓰기 인생의 2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는데, 2기에는 쓰고 싶은 것만 쓰기보다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걸 쓰려고 최소한 노력은 해 보려고 해요.

 

많은 작품을 내지 않았지만 이상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타셨습니다. 주제의식도 그렇지만 선생님의 문장력과 주제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보면 평소에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으실 것 같아요.
 
의외로 독서량이 많지 않아요. 다독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읽은 거라도 잃지 말고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요즘 작가들은 어마어마한 이론가들이 쓴 어려운 이론서도 읽고 새로운 이론이나 관념도 빨리 받아들이는데, 저로서는 부럽죠. 저는 읽었던 책을 계속 읽어요. 소설도 그렇고 이론서도 예전에 읽어서 좋았던 책을 여러 번 읽죠. 『전쟁과 평화』는 예전에 나온 세로쓰기 책으로 읽는데, 다 읽으려면 한 달 정도 걸려요.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번역이 참 좋지는 않지만 5~6년에 한 번씩은 봅니다. 이론가 중에서는 벤야민이 그런 존재이고요. 요즘은 제발트가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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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이 없다는 점은 글쓰기의 매력

 

2014년에 모교에서 창작 과정을 맡으셨는데요. 어땠나요.

 

가르치는 일이 의미가 있고, 가르치는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평등한 관계가 아니잖아요. 또 소설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고요. 그럼에도 서울대에서 처음 생긴 창작 강의였기에, 창작을 하고 싶은 학생들의 목마름을 아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딱 한 학기만 하겠다는 조건으로, 시와 소설 반반 나눠서 한다고 해서 맡았어요. 학생들이 의외로 잘 쓰더라고요. 당장 신춘문예에 등단할 정도로 잘 쓴다기보다, 되게 독특하고 이상한 글을 잘 써요. 심사에서는 떨어지겠지만, 학생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글쓰기가 신선했어요.

 

뭘 가르쳐야 할지 많이 고민하셨을 듯합니다.

 

결국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아는 선에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읽혔고요, 읽고 나서는 무엇이 좋고 어디에 끌리는지 이야기하게 했고요, 서로 써온 소설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합평회를 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 자신이 쓴 문장들이 이렇게 읽히는구나 객관화할 수 있고, 감을 익힐 수 있거든요. 인원이 좀 적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쉬워요. 수업 듣는 학생이 많으니 한 사람당 주어진 발표 시간이 15분씩밖에 없었거든요. 많이 읽고 토론하는 것, 이게 정공법이죠.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독자와 만날지 알려 주신다면.

 

앞서 말했듯, 제 글쓰기 인생의 2기가 시작됐어요. 조금 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려고 해요. 감동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정동이라는 말을 쓰고 싶네요. 감동은 쓰나미가 밀려오는 느낌인데, 소설로 그런 걸 하는 건 쉽지도 않고 또 바람직한 것 같지도 않아요. 대신 정서가 조금 움직이는, 감수성이 살짝 넓어지는, 새로운 정서적 경험이 생겨나는,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아직 방법은 모르겠어요. 잘못 빠지면 신파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럴 값에 일단 고민하는 건 재밌으니까요. 완성이 없다는 점, 그게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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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권여선 저 | 자음과모음(이룸)
큰 길 곁으로 골목마다 채국채국 집을 지어 머리를 치켜든 다족류 벌레처럼 보이는 삼벌레고개. 그곳은 사람이 토우가 되고, 토우가 사람의 집에 들어가 살다가, 캄캄한 무덤이 되어버린 ‘토우의 집’이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등을 수상, 고통과 상실의 현장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를 피하지 않고, 오래토록 간직하는 작가 권여선의 세번째 장편소설 『토우의 집』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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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치마권여선 저 | 자음과모음(이룸)
작가는 이미 작품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연애’라는 헌사를 붙인 바 있다. 연애가 비로소 연애인 것은 작가의 말처럼 “사랑이란 말처럼 상대방 면전에서 남발되거나 소모될 수 없는” 그만의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처녀치마』는 그동안 한국 문단에서 보여준 작가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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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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