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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이현우 “하루키 문학은 시대적 징후로 의미 있어”

이현우가 읽은 『여자 없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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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또 한 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를 증명했다. 장편소설이야 그렇다 치고, 소설집이 이렇게 인기를 끄리라고는 하루키 본인도 예상이나 했을까. 한국의 대표적인 서평가 로쟈가 읽은 『여자 없는 남자들』을 들여다보자.

9월 13일 파주 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이현우 서평가의 강연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출판도시 인문학당 토요 정기강연이자 2014 예스24 가을 문학캠프 일정 중 하나로 기획됐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 서평가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등 저작 활동과 비평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강연 주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 작가답게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가 읽는 하루키의 단편집,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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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프란츠 카프카

 

먼저 하루키 애독자는 아니라고 밝힌 이현우는 그 이유로 “하루키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책도 분업해서 읽어야 하는데, 내가 안 읽어도 충분히 많이 읽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주제로 강의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웬만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수락했다. 강연을 위해서 자료를 찾다 이현우와 하루키 사이에 공통 분모를 발견한다. 하루키가 영향을 받은 작가인 도스토옙스키와 카프카가 그들.

 

하루키는 도스토옙스키 외에도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 등 러시아 작가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라고 제목에도 인용할 정도로 카프카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한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목표가 도스토옙스키와 레이먼드 챈들러를 한 권에 넣는 것이라 말할 정도다. 러시아 작가와 카프카는 이현우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현우는 하루키와 비슷한 면모로 ‘아버지와 관계’를 꼽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아버지와 원만하지 않은 관계였다.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가업을 아들이 물려받길 원했지만, 아들은 문학을 추구했다. 그렇다고 카프카가 대놓고 아버지에게 반항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지만 정작 부치지는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하다.

 

1949년에 태어난 하루키는 부모가 다 교사였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일을 관뒀고 아버지는 국어교사를 계속했다. 하루키는 외아들이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일본문학을 가르쳤다. 어느 순간부터 부자 관계가 틀어진다. 이현우는 틀어진 계기를 아버지의 무리한 교습으로 본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르치면 안 되는데, 주말마다 일본 고전을 가르치다 보니 사이가 나빠졌으리라는 추측. 그렇다고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 인물처럼 가출을 한다거나 격렬하게 반항하지는 않았다. 6년 동안 견뎠다. 유년시절의 경험으로 하루키는 일본 문학은커녕 일본어로 된 신문도 기피하게 된다.

 

대신 그는 미국 대중소설을 탐독한다. 어떻게 보면 하루키 문학의 출발점인 셈이다. 작가가 되려는 생각이 대학 때까지는 없었다.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고 영화 시나리오에는 조금 관심이 있었지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결혼은 일찍 했다. 결혼 조건이 자식은 낳지 않는 것. 하루키는 졸업하고 재즈바를 운영했다. 아버지가 싫어할 만한 모든 걸 한 셈이다. 결혼식에도 하루키의 아버지는 참석 안 했고,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이후에도 아들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키 문학의 근본에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억압적인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기까지

 

스물여덟 때 야구경기 보며 그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처음 쓴 작품은 수상작으로 뽑혔지만, 나중에 이 작품을 부끄럽게 어겼다. 등단하긴 했지만, 그 자신도 의외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루키는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두 번째 소설도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썼다. 독자가 생기고 평단으로부터 반응이 나온다. 특히 비판이 그에게 자극을 준다. 오기가 난 하루키는 제대로 써보기 위해서 가게를 접었다. 그리고 쓴 세 번째 작품이 『양을 쫓는 모험』. 이후로 한국에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을 썼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한국에 하루키가 알려지긴 했지만 이 작품은 하루키에게는 예외적인 소설이다. 원래 하루키에게는 카프카 작품의 환상성이 있는데, 『노르웨이의 숲』은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왜 이런 걸 썼느냐면, 환상이 나오기 위해서는 준거적 현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10만 부만 팔려도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예상을 빗나가서 수백 만 부가 나갔다. 이후로는 계속 외국에서 거주하며 소설을 쓴다. 작가로 승승장구하며 3~4년에 장편을 내고, 그 사이에는 단편이나 에세이집을 썼다.

 

하루키는 스스로도 고백하듯,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가는 아니다. 대신 그가 자신 있는 분야는 체력. 오전에 글쓰는 작가로 유명한 하루키는 오전에는 글쓰고 오후에는 달린다. 철인3종 경기에도 출전할 정도로 운동 중독자다. 작가로서 굴곡 없이 롱런하는 비결은 바로 이런 체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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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문학의 특징

 

하루키가 환상적인 소설만을 고집한 건 아니다. 1995년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계기로 작풍이 바뀐다. 이현우는 “『언더그라운드』 이전 작품이 거리를 두고 도피적 성향의 글을 썼다면 그 이후는 개입하는 참여적인 작품을 쓴다.”고 평했다. 한때 ‘무국적 작가’라는 평을 들었던 하루키로서는 큰 변신이었다. 이런 전환을 두고 하루키 문학을 향한 평가도 좋아진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하루키의 모습이다.

 

“전업작가는 원래 장편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엘리스 먼로 같이 평생 단편만 쓰는 예외적인 작가도 있지만, 전력을 다해 쓰는 건 장편소설이다. 장편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에세이나 단편을 쓰고, 하루키는 번역도 한다. 이런 작업에서 영감을 얻는데, 이번에 나온 단편집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하루키는 아마 장편을 준비하고 있을 거다.”

 

하루키 본인 입으로 소개한 ‘작품에 반복되는 플롯’이 있다. 잃어버리고, 찾는다. 그런데 찾고나서는 기뻐하지 않고 실망한다. 이런 패턴은 소설집에서도 반복되는데, 잃어버리는 건 여성이다. 여성을 잃어버려서 남자는 불행하다. 다행인 사실은 그런 남자가 혼자는 아니라는 점.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여성 독자보다는 남자 독자가 읽으면 좋을 만한 소설집이다.

 

여성의 섬세한 심리는 생략됐다. 이번 소설집 외에도 하루키 작품에서 여성의 역할은 대개 매개체인 경우가 많다. 남자 주인공을 어디로 이동하는, 안내하는 역할. 이번 소설집에서 여성은 사라지거나 죽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현우 서평가가 이번 소설집에 내린 평가는 다음과 같다.

 

“현실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작품을 쓰겠다고 했지만, 이번 소설집은 그렇지 않다. 사회 현실 무게감은 별로 없다. 이야기 자체는 재밌지만 현실의 무게감을 다루고 있진 않다. 그런 걸 만회하는 게 하루키 소설에서는 대중문화 코드다. 이런 대중문화 코드는 음악의 효과를 낸다. 음악은 아무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이런 게 하루키 소설의 단점일 수도 있지만 매력이기도 하다. 하루키 작품을 읽으려면 이런 걸 알고 시작하면 음미하고 즐길 수 있다.”

 

다음은 청중과 이현우 서평가가 주고 받은 대화다.

 

독자와 나눈 질의응답

 

하루키에 대한 평이 갈리는 듯하다. 왜 다른 평가를 할까.

 

벌써 한국에서 종합베스트셀러 1위인데 한국적 현상은 아니다. 영어권에서도 인기가 많다. 내가 2004년 러시아에 있을 때였다. 대형서점에 갔는데, 거기서 하루키 신간이 나왔다고 방송이 나오더라. 매대에도 많이 쌓여 있었고. 이렇듯 전세계적 현상이다. 왜 이렇게 많이 읽을까. 다르게 말하면 언어나 문화적 장벽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매력이자 단점이다.

 

하루키는 리얼리티보다는 음악적 추상성을 추구한다. 1960년대 일본의 사회적 변혁이 좌절되는 걸 하루키는 봤다. 그런 면에서 하루키가 말하는 상실은 개인적 상실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상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이후 세대에게 이런 면이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 변혁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루키는 재즈, 음악, 지구력으로 버텼다. 마라톤 완주하면 대단한 뭔가가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정이 중요하다. 하루키 문학은 이런 시대를 대변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의 주체이고 뭔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루키 문학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키가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인데 과연 받을 수 있을까? 이현우가 한림원에 있다면 하루키를 노벨 수상자로 결정하겠나?

 

도박사가 5대1로 배당할 정도로 5년 이내 수상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다. 카프카상 등 유력 문학상은 이미 다 받았고. 하루키 문학은 시대적 징후로 의미가 있다. 다만, 그의 문학관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노벨 수상작가를 보면 크게 두 부류다. 예술적 혁신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사회에 의미를 줘야 한다. 솔제니친이나 아우슈비츠 생존작가가 쓴 작품은 기술적 힘보다는 메시지에 주목했다. 서구 독자나 비평가가 좋게 평가하는 데 우리가 왈가왈부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루키가 둘 중 어떤 걸 충족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내가 선정위원이라면, 모르겠다. 하루키 작품을 다 읽지 않았다. 앞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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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문학동네
제목처럼 ‘여자 없는 남자들’을 모티프로 삼은 이번 소설집에는 말 그대로 연인이나 아내로서의 여성이 부재하거나 상실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병으로 인해 사별하거나(「드라이브 마이 카」), 이유도 모르는 채 타의로 외부와 단절되기도 한다(「셰에라자드」).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구성의 「예스터데이」와 카프카 소설 속의 세계를 무대로 한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면 모두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데, 그 때문인지 예전 작품들과 비교해 현실적이고 진중한 분위기가 강하고, 남녀를 비롯한 인간관계의 깊은 지점을 훨씬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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